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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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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과답] BLM, 아시아인으로서 지지한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는 아이들에게 배우다
등록 2020-06-27 07:56 수정 2020-07-03 00:20
아이들과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M) 시위에 나갔다.

아이들과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M) 시위에 나갔다.

우리 아이들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줄여서 BLM) 시위에 나간다고 했다. “엄마도 같이 가면 안 될까?” “그러든가.”

손팻말을 만들며

애린(17)과 린아(16), 린아의 남자친구 타이(16)와 함께 손팻말을 만들었다. 애린은 큰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 데이비드 올루웨일이라는 사람의 초상이다. 이런 사람이란다. 그는 나이지리아계 영국인으로, 경찰의 체계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잔인한 괴롭힘을 겪다가 1969년 익사했다. 이 일로 가해 경찰 두 명에게 실형(각각 3년, 27개월)이 선고됐다. 이는 흑인에 대한 폭력으로 경찰이 기소된 영국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애린은 그림 옆에 “영국의 인종주의를 철폐하라”고 큼직하게 썼다.

각자 손팻말에 뭐라고 써넣을까 고민하다가, 타이는 “그들의 투쟁은 우리의 투쟁이다. 전세계의 인종주의에 반대한다”고 적었고, 린아는 “정치적이 되어라”라고 크게 쓴 뒤, “우리는 어느 편에 설지 결정해야 한다. 중립이라는 것은 억압자를 도와주지, 결코 피억압자를 돕지 않는다”고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학살) 생존자 엘리 위젤의 말을 인용했다. 나는 이렇게 썼다. “아시안으로서 BLM을 지지한다.”(애국심이 넘치는 나는 태극기도 그려넣었다.) 내가 이런 문구를 쓰기까지는 일련의 학습과정이 있었다.

BLM 운동은 2013년 처음 시작된 뒤 우여곡절을 겪었다. ‘백인들의 생명은 소중하지 않냐?’는 억지소리는 차치하고라도, 이 구호를 변형시켜서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All lives matter)라든가 ‘특정 소수집단(여성·성소수자·유대인·아시아인·이슬람교도 등)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나는 이런 구호를 별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심지어 긍정적이라는 생각조차 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구호는 보편적 가치를 상기시켜서 흑인인권운동이 그들만의 운동으로 고립되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소수자운동이 이 구호를 같이 쓰는 건, 흑인인권운동이 억압받는 다른 집단의 운동으로 확산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 생각을 여지없이 깬 것은 아이들이었다.

“‘흑인’을 ‘모든’으로 바꾸면 쟁점이 흐려지잖아. 그건 아무 주장도 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야.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멍청하거나, 아니면 교활한 것 같아. 고의로 물타기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다른 소수자운동은 그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운동을 조직해야지, BLM 운동에 공짜로 숟가락 얹는 건 잘못된 일이야. 소수자로서 이 운동에 연대하는 것이라면 운동의 초점을 흐리지 않는 표현을 해야 해. 그래서 요즘은 이런 표현을 많이 써. 예를 들어 ‘유대인으로서 BLM을 지지한다’ 이렇게.”

불행을 경쟁하는 말들

이 설명을 듣고 ‘아시아 여성으로서’ BLM을 지지한다고 썼더니 린아가 너무 복잡하니까 하나만 고르라고 했다. (나는 늘 약간씩 과하다.) 써놓고 보니 마음에 들었다. 연대를 표현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지켜져야 하는 ‘그들의 권리를 내 처지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일전에 런던에서 있었던 이 시위에 대해 보도한 한국 신문 기사 아래에 이런 댓글이 쓰인 것을 보았다. “웃기네. 영국에서 흑인보다 더 차별받는 사람이 아시아인들이다.” 이 말이 불편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불행을 경쟁하면서 결국 냉소적으로 팔짱 끼고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내가 만든 손팻말, 마음에 들었다.

시위 장소를 잘못 알아서, 졸지에 7명(남편, 나, 애린, 린아, 타이, 린아 친구 타라와 타라 엄마)이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게 되었다. 우리를 향해 박수치거나 엄지를 올리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야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 왜 시위를 하냐고 공격적으로 소리치는 남자에게 남편은 “우린 다 마스크를 썼잖아! 너는 이 시국에 마스크도 안 쓰고 왜 침 튀기고 난리냐?”고 맞받았다. 차를 타고 가다가 굳이 창문을 내리고 “흑인들만 차별받냐? 아일랜드 사람들은 어쩌라고?” 소리 지르는 남자에게는 타라 엄마가 “좀 배워라!”(Educate yourself!)라고 외쳤다. (그녀는 아일랜드 사람이다.) 나는 소리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움찔했다. 아이들도 무서웠을 텐데 손팻말을 높이 들고 당당하게 걸었다. 뒤따르면서 ‘보호자’는 아이들이 행진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시위 장소인 공원에는 한 300명쯤 모여 있었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널찍널찍 앉았다. 모두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이런 글이 눈에 띄었다. “흑인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기 전까지는 어떤 삶도 존중받을 수 없다.”(All lives can’t matter until black lives matter.)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 바탕에 적힌 글이었다. 이게 어떤 맥락에서 쓰인 글인지 이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팻말도 있었다. “우리는 인종차별을 종식시킨 세대가 되고 싶다.” 이건 12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들고 있었다.

시위를 조직한 사람들도, 물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도, 발언자도, 참가자도 다 젊은이였다. 그들은 여러 통계 자료를 인용해 영국 사회에서 흑인이 겪는 불평등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했다. “내가 인종주의자가 아닌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종주의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가족과 친구, 이웃과 ‘불편한 대화’를 시작하자. 그들이 가진 사고에 도전하자.” “인종주의의 근원은 제국주의다. 우리는 학교에서 제국주의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학교 교육과정을 바꾸는 청원에 동참하자. 우리 지역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보내자.” “인종차별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 ‘다른 인종으로 살고 싶냐’고 물어보자. 싫다고 대답한다면 그건 그 사회에 인종차별이 있다는 증거다.”

엄마, 스스로도 교육하세요

이날 하루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는 ‘교육’이다. 우리를 향해 소리치는 남자에게 타라 엄마는 “자신을 교육해라”라고 말했고, 시위에서 젊은 발언자들은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하라고 요구했고, 주변 사람들과 불편한 대화를 해서 그들을 교육하자고 했다. 애린은 내게 말했다. “엄마, 교육받아서 안다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는 뜻이야. 피해자는 그 안에 살기 때문에 이미 삶을 통해서 알고 있거든.”

나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나를 좀 교육해주렴.” 되돌아온 대답. “엄마, 스스로도 교육하세요. 맘만 먹으면 유튜브에 자료는 얼마든지 많아요.”

이스트본(영국)=글·사진 이향규 <후아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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