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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아, 너의 창조주 부고를 써줄래?

컴퓨터를 '계산기'에서 해방시킨 인공지능의 개척자 마빈 리 민스키
등록 2016-02-06 10:01 수정 2020-05-02 19:28

‘우리는 로봇에게 인공지능의 창시자 마빈 리 민스키(1927~2016)의 부고를 써달라고 했다.’
미국 기술문화 잡지 는 1월26일 웹사이트에 이러한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 잡지는 “(그의 죽음을 맞아) 그의 가상의 자손 중 하나에게 부고를 요청하는 것이 적절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기사 말미에는 미국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Automated Insights)사의 자동 기사 작성 로봇 ‘워드스미스’가 작성한 민스키의 간명한 부고가 실렸다. 워드스미스가 엄밀히 말해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은 아니지만, 이 기사는 ‘지능을 가진 기계’ 연구에 삶을 바친 그에 대한 가장 재치 있는 부고라 할 만했다.
인공지능의 개척자이자 수학자, 컴퓨터공학자, 로봇공학자, 피아니스트, 발명가였던 마빈 리 민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명예교수가 2016년 1월24일 미국 보스턴에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
“인간은 생각하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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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키가 죽기 전까지 속해 있던 MIT 미디어랩의 설립자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명예교수는 그의 죽음을 발표하면서, “그는 언제나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보았다. 난해한 것은 종종 쉽고, 쉬운 것은 정말로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고 말했다.

민스키는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만들어낸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학 시절부터 인간 지능과 사고 과정의 미스터리에 빠져 있었다. 그는 사고 과정에서 인간과 기계의 차이점에 주목하고, “인간은 생각하는 기계”라는 철학에 기반한 연구를 발전시켰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컴퓨터를 기존 사고에서 해방시켰다. 컴퓨터공학자 앨런 케이에 따르면 민스키는 “컴퓨터가 ‘미화된 계산기’ 정도의 존재에서 벗어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인간 활동의 증폭기’가 될 운명임을 깨닫게 한 인물”()이었다.

하버드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에서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민스키는 1950년대 초반 인간의 심리 작용을 구조화해 기계에 지능을 부여하는 방법에 관한 이론을 만들고, 1951년 박사학위 과정 중 세계 최초 신경망 기기 ‘SNARC’를 구축했다. 이것은 진공관을 이용해 인간의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 뉴런의 연결망을 본뜬 시스템이었다.

인공지능 분야는 1956년 미국 다트머스학회의 한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이 모임에는 민스키를 비롯해 당시 다트머스대 수학과 교수였던 존 매카시, 수학자 클로드 섀넌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이후 인공지능의 거장으로 자리잡았다.

1958년 MIT 교수로 부임한 민스키는 이듬해 동료 존 매카시(‘인공지능’이란 말을 고안한 인물)와 함께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것이 후일 ‘MIT 인공지능연구소’가 된다. 연구소는 인공지능 연구를 넘어 현대의 컴퓨터에 관한 사고 전반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디지털 정보가 자유롭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생각, 이른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의 기본 개념에 씨를 뿌렸으며, 인터넷의 최초 형태인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용 네트워크 ‘아르파네트’(ARPAnet)의 탄생에 일조했다(지금의 월드와이드웹 형태의 인터넷이 등장한 것은 1989년이다).

민스키의 천재성은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울렀다. 그는 1956년, 지금도 생물학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공초점 스캔 현미경’을 최초로 발명했다. 촉각센서를 이용한 ‘기계손’ ‘기계팔’ 등 로봇 장치를 개발해 현대 로봇공학을 한 단계 진전시켰으며, 1963년 최초의 머리 장착형 디스플레이(HMD·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를 발명했다. 이것은 ‘가상현실 헤드셋’의 선구자 격인 디스플레이로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상업화 직전에 와 있다. 또 다른 발명품으로는 다양한 음악의 조합과 변주가 가능한, 시퀀서(순서기·전자 녹음 장비의 하나) 기반의 신시사이저 ‘트라이덱스 뮤즈’(1972) 등이 있다

민스키는 수학, 철학, 물리학, 신경과학, 로봇공학, 컴퓨터공학 등에 능했으며 몇 편의 공상과학(SF) 소설도 썼다. 그는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무언가를 처음 익힐 때 일어나는 “서투른 느낌”을 좋아한다고 했다. “무언가를 ‘잘할 수 없다’는 건 아주 설레는 일이다. 그것은 소중히 여겨야 할, 아주 희귀한 경험이다.”

민스키는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그는 종종 집이나 사무실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다음(多音)의 대위법으로 구성된 바로크 푸가를 즉흥연주하거나 “바흐 비슷한 곡들”을 작곡하곤 했다.

‘마음의 사회’ 이론이 일으킨 혁명

민스키는 1970년대 초반 컴퓨터공학자인 시모어 페퍼트와 함께 ‘마음(mind)의 사회’ 이론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1985년 출간된 저서 에서 그는 “지능은 단일한 메커니즘의 산물이 아니라, 다양한 능력을 가진 ‘작용요소’(agent)들의 관리된 상호작용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인간의 뇌는 불완전한 부품들의 결합체라는 것이다. 이 부품들은 각각 특정 기능을 갖고 있으나, 사고력이 필요 없는 단편적 기계 작용만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 모든 부품이 결합되면 마치 하나의 사회처럼 복합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층위의 네트워크로 이뤄지는 복잡한 상호작용과 관계들이 바로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민스키는, 인간은 사실상 이러한 뇌를 장착한 기계라고 생각했다. 또한 인간의 뇌는 하나의 단순한 문제를 처리하는 데에도 수많은 방법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이론은 뇌의 작동 방식, 인간의 학습 방법에 관한 생각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는 인간이 언젠가 자신의 지능에 필적할 만한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오늘날 딥러닝(Deep Learning) 등 인공지능에 관한 경쟁적 연구는 모두 그의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고 있다.

마빈 리 민스키는 1927년 8월9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프린스턴대에서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적으로 한곳에 머무르는 인간이 아니었다. 수학 분야를 떠나 ‘지능’ 그 자체 연구에 집중하기로 하고, 1958년부터 MIT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MIT에서 민스키의 강의는 오랜 세월 인기 강좌로 자리잡았다. 저명한 미래학자이자 인공지능 연구자인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 레이 커즈와일 등 그의 많은 제자들이 컴퓨터공학계의 슈퍼스타가 됐다. 민스키는 인공지능 분야의 업적을 인정받아 1969년 컴퓨터공학계의 최고상인 튜링상을 비롯해 MIT 킬리언상, 재팬 프라이즈 등 많은 상을 받았다.

“2001년에는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가진 존재가 될 것이다.” 1968년 SF 소설가 아서 클라크와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그렇게 상상했다. 이들이 만든 ‘HAL 9000’이라는 인공지능 캐릭터(큐브릭의 영화 에 등장한다)는 2001년이면 이런 기계가 존재할 거라고 믿었던, 민스키를 비롯한 당시 많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의 공유된 믿음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큐브릭은 민스키를 찾아가 이에 대해 자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01년 민스키는 “우리는 왜 2001년에 HAL을 얻지 못했나?”라고 물어야만 했다.

민스키는 최근 인공지능 연구와 진보의 방향에 대해 경계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초기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은 현대의 연구자들이 ‘물리학에 대한 선망’에 굴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뇌의 복잡한 사항을 간단한 공식으로 축소시키려는 욕망 말이다. 실제로 1990년대 들어 미국에서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이 대폭 삭감되면서, 많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기계학습, 로봇공학, 컴퓨터 비전 등 구체적인 하위 영역으로 이동했고 순수 인공지능 연구는 제한적으로 진행됐다.

진보에 대한 경계

민스키는 지난해 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 지난 20여 년간 그렇게 많이 향상되지 않았다”면서 “수익성에 좌우되는 기업들이 연구를 주도하기 전에 기초 발명가들의 시대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대대적으로 광고되는, 인간의 자연어 형식 질문에 답할 수 있는 IBM의 초고성능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에 대해 “(그것은) 즉석 질의-응답 기계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이로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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