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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볼테르가 꿈꾸던 만인의 도서관인가?

등록 2009-04-09 06:59 수정 2020-05-02 19:25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4월호]특집/ 정보화의 빛과 그림자

구글은 볼테르가
꿈꾸던 만인의 도서관인가?

로버트 단턴 역사학자





   


◎ 혼돈속의 한국 어디로 가나
◎ 채식주의자 뱀파이어의 불안
◎ 백인 무슬림 여성의 사랑과 연대
◎ 센강이 나눈 파리의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
◎ 홍세화편집인 “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인가?”[5월호 기사 전체목차] | [르 디플로 바로가기]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나날이 많은 지식을 제공하는 인터넷. 계몽 시대의 꿈이 실현되는 걸까, 아니면 반대로 공공 지식이 사적인 욕망에 좌지우지되는 걸까? 구글 덕에, 아니 구글 때문에 이제는 이 문제가 더 이상 추상적인 영역이 아니다. 지난 4년 동안 유명 검색 엔진 구글은 유수 대학 도서관에 있는 저작물 수백만 권을 디지털화해 온라인에 올렸다. 작가들과 편집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구글의 행동은 분명 저작권 위반에 해당되었다. 오랜 논의 끝에 당사자들은 책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달리하기로 했다. 도서관장들의 목표는 분명하다. 소장 서적들을 모든 독자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간단하지만 각종 사회적 제한에 부닥치고 경제적 이익이 걸려 있는 복잡한 프로젝트다. 마치 2세기 전에 문인들이 마련한 프로젝트를 연상시킨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는 문인들이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다. 문인들이 속한 문단이야말로 국경도 없고 불평등도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었다.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능력, 즉 글을 읽고 쓸 줄만 알면 누구나 문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작가의 몫이었고 그 사상이 타당한지 평가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었다. 활자화한 글이 권위를 발휘하던 이 시기에는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만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처럼 글이 황금기를 구가하자 서신을 통한 논쟁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벤저민 프랭클린, 혹은 토머스 제퍼슨의 서한은 상당히 두툼한데, 이들 서한을 보면 문단의 중심부로 들어간 느낌이 든다. 볼테르, 루소, 프랭클린, 제퍼슨은 끝없이 서한을 이용해 당대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토론한 작가들이기도 했다.

이러한 서한들이야말로 일찌감치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정보망의 토대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계몽주의 시대 지식인들, 서한으로 지적 교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나는 제퍼슨(1743~1826)과 제임스 매디슨(1751~1836)이 주고받은 서신을 특히 좋아한다. 두 사람은 제정 과정에 있던 미국 헌법을 비롯해 각종 주제에 대해 서신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또한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특히 매디슨은 워싱턴에 있는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친구 제퍼슨을 위해 책을 자주 구입했으며 그중에서도 드니 디드로의 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계몽 시대에 출간된 을 읽으며 토론하던 훗날의 두 미국 대통령. 정말로 뭔가 있어 보이는 이미지가 아니던가.

그 전에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원칙적으로는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문단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원칙만 민주적이었다. 실제로 문단은 부유층과 귀족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들었던 작가들은 대부분 권력층에 아부하고 조그만 자리라도 꿰차려고 아쉬운 소리를 했으며 정부가 관여하는 신문 한 귀퉁이에 글이라도 써보려고 구걸했다.

또한 이 작가들은 유명세라도 타려고 각종 살롱과 아카데미를 들락날락거렸다. 후원자들이 모욕을 해도 찍소리 할 수 없던 무능한 작가들은 서로 비난하고 헐뜯었다. 볼테르와 루소 사이에 벌어진 ‘기 싸움’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의 저자 볼테르는 루소의 을 읽은 후 1755년에 루소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

“새로운 저서를 잘 받았습니다. 인류에게 적대적인 책이더군요. …이 책처럼 우리 인간을 동물로 만드는 사상으로 가득한 책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은 네발로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루소는 5년 후에 볼테르에게 답장을 보냈다.

“볼테르 씨, …당신을 증오합니다.”

이처럼 사회적인 불평등은 개인 간의 투쟁으로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평등한 광장이 되어야 할 문단은 오히려 18세기 사회를 갉아먹던 폐단, 즉 특권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특권은 단순히 귀족 사회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프랑스에서는 문단, 특히 ‘길드’란 동업조합을 형성하며 독점권을 쥔 인쇄업자와 서점들도 특권을 쥐고 있었으며 책 자체도 특권의 그물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책의 경우는 국왕의 허가, 검열 승인이 있어야만 출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권 세력의 ‘사교 모임’ 문단, 폐쇄적인 운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이런 시스템은 지식사회학, 특히 피에르 부르디외가 내세운 ‘문학의 장’이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부르디외는 문학이란 경쟁적인 견해들이 사회의 지배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율적인 게임의 규칙을 따르는 ‘장’이라고 봤다.

하지만 문학계가 실질적으론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려고 부르디외 학파에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다. 문단은 원칙만 민주적일 뿐 실제로는 특권 없는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폐쇄적인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 계몽주의 시대는 책을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 가장 무르익었던 시대다.

오늘날 일반 도서관이나 온라인 도서관도 18세기 문인 세계처럼 원칙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을까? 동료 여성 한 명이 파티에 참석했다가 자주 들은 질문이라며 내게 들려준 게 있다. “도서관장이라 참 좋죠. 그런데 도서관장이 되는 게 어떤 건지 알아요?”란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내 동료는 이렇게 대답했다. 고 한다. “바로 돈과 권력이 개입하는 일이겠죠.”

대형 공공 도서관들이 내세우는 설립 목표를 보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구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보스턴 도서관 입구 위에서 볼 수 있는 문구다. 뉴욕 도서관의 입구에 붙은 대리석판에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인용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인간의 생활 조건과 미덕을 높이고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려면 교육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문단과 같은 기초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그 기초란 바로 교육이다. 제퍼슨은 지식이야말로 작가, 독자, 책, 도서관, 특히 국회 도서관, 몬티첼로(제퍼슨의 개인 저택이 있는 곳) 도서관, 버지니아 대학 도서관을 빛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식의 힘을 믿었던 그의 신념은 미국 헌법 제1장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미국 헌법에는 저작권보다 “과학과 공공 학문의 발전이 우선한다”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되어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작가들이 지적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얻을 권리를 인정했지만 공공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과 출판권의 대립 속에 저작권 일부 완화

공공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각각 어느 정도로 중요한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저작권 개념이 1710년 영국에서 제정된 ‘앤 여왕 법’을 통해 등장했다는 점을 간과하진 않았다. ‘앤 여왕 법’은 편집자의 무소불위 권력을 제한하고 교육을 증진하는 것을 취지로 하고 있다. 또한 이 법으로 작가들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14년 동안 절대적인 권리를 갖게 되었고 만일 저자들이 갱신을 원한다면 한 번 더 14년 동안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출판업자들은 관습법이 보장하는 영구적인 독점 출판권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독점권을 유지하려 애썼다. 법정들은 저작권과 출판권의 대립으로 발생한 사건을 여러 건 맡게 됐는데, 1774년 ‘도널드슨 대 베켓’ 사건에서 영국 대법원의 판결은 저자의 저작물을 자유시장에 자유롭게 팔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게 되었다.

그로부터 13년 후, 미국 헌법은 당시 영국을 지배한 관점을 차용했다. 작가들과 출판업자들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28년은 현실적으로 너무 긴 기간이고 공공 이익이 우선한다는 것이었다. 1790년에 교육을 증진하려는 취지로 마련된 첫 번째 저작권법은 영국의 모델을 따라 14년간 절대적인 저작권을 부여했고 저자가 갱신을 원하면 단 한 번 14년을 더 연장할 수 있게 했다.

요즘 저작권은 언제까지 보장되는가? 1998년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 법안(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이 소멸될 위기에 처하자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에 일명 ‘미키마우스 보호법’이라 불림)에 따라 저작권은 저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 보호되고 저자 사후 70년까지도 보호된다. 이는 무려 100여 년 동안 저자의 개인적인 이익과 권리가 보호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에 따라 20세기에 출간된 미국 저작물 대다수의 저작권이 소멸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인터넷에서도 1923년 1월 1일 이전에 출간된 저작물만 자유롭게 볼 수 있다. 1923년 1월 1일부터 출간된 저작물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품을 디지털화하고 그에 대한 조건을 정하며 디지털화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사기업들이며 이 기업들은 자사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그 결과 1922년에 출간된 싱클레어 루이스의 소설 은 저작권이 소멸된 데 반해, 1927년에 출간된 는 2022년까지 저작권 보호를 받는 이상한 상황이 됐다.

디지털 시대의 저작물, 사유화의 위험성

부르디외식으로 지식사회학을 통해 현재를 살펴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미키마우스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단은 지식 공화국으로 전문화되었다. 지식 공화국은 평범한 시민들 가운데서도 지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그리고 지식은 디지털화해 온라인에 무료로 배포된다. 적어도 지식이 대중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이 드디어 현실이 되는 걸까?

그러나 구글 같은 기업들은 도서관을 생각할 때 ‘지식의 전당’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의 보고를 떠올린다.

자칫 수세기 동안 많은 노력과 비용으로 마련한 도서관의 저작물들이 단 몇 백만 달러의 비용으로 대규모 디지털화할 수도 있다.

도서관이 저작물을 공공 재산으로 생각해 모두에게 개방하는 건 교육을 위해서다. 하지만 기업은 주주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생겨난 집단이기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기업들이 도서관의 저작물을 상업적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되면 기본적인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게 된다.

모두가 자유롭게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익을 위해 저작물을 디지털화해 온라인에서 판매하게 되면 민간 출판업자들에게 과학 잡지를 맡기면서 저지른 과오를 다시 범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인터넷이 공공 지식을 사유화하는 도구가 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국민이 나서야 사태를 방지할 수 있을 텐데 과연 누가 나서겠는가? 미키마우스 보호법을 도입한 입법자들은 절대로 나설 리가 없다.

공공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게임 규칙은 마련할 수 있다. 공공 이익을 대변하는 곳은 도서관이지 기업이 아니다. 이를 위해선 도서관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을 위해서는 전기 공급 업체 콘에디슨이 건물들을 연결하려고 뉴욕 거리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하던 슬로건을 생각해볼 수 있다. “땅을 파는 게 우리 의무다.” 도서관장의 버전으로 하면 “디지털화하는 게 우리 의무다”. 그러나 디지털화도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된다. 콘텐츠에 대해 시민들이 책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공공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인터넷을 계몽주의 시대의 지식과 단순 비교하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인터넷은 토머스 제퍼슨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지식을 배포할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이 점점 더 영향력을 누리는 사이에 가만히 넋 놓고 있을 기업들이 아니다. 기업들은 개임의 규칙을 선점해 서로 경쟁하려고 한다.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투쟁을 벌이다 보니 소수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차지하게 되어 공공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원칙은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기업들이 공공 재산을 알아서 정상적으로 배포할 때까지 팔짱을 끼고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우리 모두는 문화유산을 볼 권리가 있다. 하지만 어떻게?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공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게임의 규칙을 다시 만들고 건국의 아버지들을 본받아 바람직한 지식의 디지털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 향유 권리

이러한 이상향이 가능해지려면 어디서 먼저 움직여야 하는가? 바로 구글이다. 구글은 4년 전에 처음으로 대학 도서관 목록에 있는 저작물들을 디지털화하고 온라인에 전문을 올리되 네티즌들에게 비용 한 푼 받지 않았다.

이제 1871년에 출간된 조지 엘리엇의 걸작 소설 의 원본(현재 옥스퍼드 대학 보들리언 도서관이 소장)을 디지털 버전으로 무료로 읽을 수도, 다운로드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모두에게 좋고 구글에도 좋다. 구글의 경우는 ‘구글 북 서치’ 페이지에 광고를 받아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글은 저작권 보호를 받는 저작물에서 일부 발췌본을 온라인에 올려 네티즌들이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2005년 9월과 10월에 저자와 출판업자들이 금전적인 손해를 입었다며 자신들의 재산권을 지키겠다고 나서 구글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걸었다. 오랜 협상 끝에 구글과 저자, 출판업자들은 2008년 10월 28일에 합의에 도달했고 현재 뉴욕 법원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다.

이용자는 많은데 컴퓨터는 오직 한 대

구글은 ‘도서권리 등록기관’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 기관은 저자들,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출판업자들을 회원으로 받아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다. 그리하여 구글은 데이터 이용을 유료화할 것이고 우선 대학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절판된 저작물부터 그렇게 할 방침이다.

고등학교, 대학, 여러 단체들은 ‘기관 라이선스’를 구입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라이선스인 ‘공공 이용 라이선스’는 공공 도서관에 발급되고 기본적으로 저작물을 무료로 온라인으로 볼 수 있게 되지만 단 한 대의 컴퓨터만 이용할 수 있는 게 문제다. 만일 줄을 서서 그 컴퓨터 한 대를 이용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드는 이용자는 ‘소비자 라이선스’라는 맞춤 서비스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더구나 구글은 도서권리 등록기관과 손잡고 수익을 각각 37%, 63%로 나누기로 했다.

대신 구글은 저작권이 소멸된 저작물에 대해서는 계속 온라인 무료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저작권이 소멸된 저작물은 구글을 통해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구글은 2008년 11월 전까지 총 700만 권의 저작물을 디지털화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저작권이 소멸된 저작물 100만 권, 저작권이 살아 있고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저작물 100만 권, 저작권이 보호되며 절판되어 찾을 수 없는 저작물 500만 권이 포함된다. 이 중 저작권이 보호되며 절판된 저작물은 라이선스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저자나 해당 출판사의 동의가 없을 경우에는 저작권이 살아 있는 저작물을 데이터로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저작물은 옛날 방식으로 종이책으로 출간되어 판매되거나 디지털 형식으로 전환되어 소비자 라이선스를 통해 유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거나 전자북으로 출간된다.

간단히 말해서 구글과 저자, 출판업자들 간에 맺어진 합의 내용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이 합의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서관이 바야흐로 탄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도서관이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가장 유수한 도서관들을 납작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다. 더구나 구글은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서점 반열에 오르게 될 수도 있다. 구글이 세운 디지털 제국은 아마존을 동네 구멍가게로 전락시키리라.

구글이 제공하는 마법 같은 기술 덕분에 독자들은 원하는 책을 볼 수 있으며 구글에서 검색하는 것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구글과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한 도서관들은 분실하거나 손상된 자료들을 디지털 복사본으로 얻어 채워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구글은 장애가 있는 독자들이 책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구글이 한 약속은 그 실상을 알고 나면 맥이 빠진다. 도서관마다 오직 한 대의 컴퓨터에서만 파일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찾는 사람이 많은 도서관에서는 그 불만이 더 커지게 된다. 여기에 제한 조건이 또 있다. 독자가 저작물을 인쇄하려면 현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시립 도서관들이 뉴욕 중앙 도서관보다 사이버 자금을 더 많이 보유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 구글은 아마도 계몽주의 시대의 꿈을 실현해줄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18세기 철학자들은 지식을 배포하려고 할 때 독점이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했고 서적의 자유로운 유통을 가로막는 런던의 인쇄업체 협회와 파리의 서점 동업조합을 비난했다.

그 어떤 경쟁에도 살아남는 구글

구글은 동업조합도 아니고 자사가 독점권을 행사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구글은 정보 이용을 촉진하는 바람직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구글이 저자, 출판업자들과 맺은 합의 덕분에 그 어떤 경쟁도 물리칠 수 있는 거대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까지 구글은 실질적으로 힘을 남용한 적이 없지만 만일 현재의 구글 경영진이 지분을 매각하거나 일선에서 물러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만일 구글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 공공의 이익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경제적인 부담을 지는 건 독자들밖에 없다.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이들은 시장이 저절로 질서를 잡아갈 거라고 한다. 구글이 너무나 거대한 힘을 갖게 되면 소비자가 더 이상 구글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가격은 저절로 내려가게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기관 라이선스가 지배하는 메커니즘에서는 그렇게 간단하게 수요와 공급이 질서를 찾아가지 못한다.

위키피디아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구글이 미국인 대다수의 온라인 정보 사용을 좌우하고 있다. 미국인 대다수가 기사, 이미지, 세탁기 정보를 찾거나 영화표를 알아보려고 구글을 검색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정보사회 시대를 맞은 지금 구글도, 저자들도, 출판업자들도, 뉴욕 법원도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 균형을 다시 찾지 못한다면 개인의 이익이 공공 이익보다 우선시되는 날이 머지않아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는 날, 계몽주의 시대의 꿈은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된다.

글•로버트 단턴
칼 H. 포츠하이머 대학 교수, 하버드 대학 도서관장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 한불상공회의소 격월간지 전속 번역. 번역서로는 (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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