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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않는 나쁜 회계사, FIFA의 영주들


등록 2010-06-15 09:32 수정 2020-05-02 19:26
오는 6월 1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월드컵이 개막된다. 이벤트 주최자인 국제축구연맹(FIFA)은 무모한 번영을 약속했다. 하지만 FIFA의 권위적 운영 방식과 범죄적 관행을 저지른 운영진 때문에 FIFA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조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회장 선거에서 투표권 매입, 뇌물수수, 중계권료 횡령 등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개막을 꼭 1년 앞둔 지난해 6월 11일, 조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앞으로 1년간 해야 할 포부를 밝혔다. “2010년 월드컵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구현하려는 프로그램은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와 함께 우승하는 것’이다. 우리는 2010년까지 모든 아프리카 축구협회에 인조 잔디구장을 갖추게 할 것이다”(1)라고 했다. FIFA가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주의)의 유산인 사회적 인종차별로 혼란을 겪는 나라에 이런 관대함을 보인다는 점이 조금 우스워 보이지만, 어쨌든 FIFA에는 그러고도 남을 만큼 돈이 넘친다. 심지어 세계경제 위기도 세계 최고 갑부 스포츠연맹을 점령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경제위기에도 끄떡없는 ‘부자 연맹’

1904년 설립된 FIFA는 2009년 1억4700만 유로의 수익을 냈다. 보유자산이 계속 늘어나 7억9500만 유로에 달한다. FIFA 재무위원장 훌리오 그론도나는 크게 기뻐하며 “미래도 역시 장밋빛”이라고 했다. 그는 “벌써 2014년 월드컵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게다가 현재 6개 회사가(2) FIFA 공식 파트너로 제휴협약을 체결했고, 국내 및 국제 후원에 대한 초기 계약도 이미 마무리됐다. 경제 위기 시대에 서스펜스, 재미를 접목한 월드컵이 브랜드 홍보를 위한 최고 기반이 되고 있다”고 했다.(3) 축구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파트릭 바소르는 “2010년 월드컵은 1994년 미국 월드컵, 2002년 아시아 월드컵이 그랬듯이 아프리카 시장이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4)

회개 않는 나쁜 회계사, FIFA의 영주들

회개 않는 나쁜 회계사, FIFA의 영주들

브랜드와 FIFA 간 이런 로맨스는 36년째 지속되고 있다. 이들의 결혼식은 1974년 6월 11일 서독이 개최한 프랑크푸르트 월드컵 때 성사됐다. 그날, 브라질의 주앙 아벨란제가 영국의 스탠리 라우스 당시 회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그의 뒤에는 신중하면서도 효율적인 미다스의 손, ‘아디다스 프랑스’ 회장 호르스트 다슬러가 있었다. 그는 그때까지 누굴 지지할지 결정하지 못한 대의원이나 상대방의 득표율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는 대의원에게 돈뭉치를 뿌리며 아벨란제 지지를 당부했다.(5) 선거 이튿날 바로 신혼여행 약속 단계에 접어든 이들은 갈수록 수익성이 높은 협약을 체결했다. 자산 상승에 도취된 FIFA는 조직 내에 개발부와 마케팅부, 커뮤니케이션부를 설치했다.

진취적인 다슬러는 코치 연수, 새로운 대회 개최, 심판 연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든 후, 코카콜라를 설득해 아벨란제 금융 프로젝트 캠페인에 끌어들였다. 그 보상으로 “코카콜라는 모든 월드컵에 자사 로고를 선전할 권리를 취득”했고, “일단 코카콜라가 제휴를 체결하자 모든 회사가 제휴를 원했다.”(6) 축구 역사가 폴 디에츠시는 “국제축구연맹이 다국적기업과 ‘파우스트적인’ 협정을 체결했다”고 했다.(7)

다슬러는 자신의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텔레비전의 놀라운 경제적 잠재력을 알아봤다. 그는 1983년 FIFA의 마케팅과 매니지먼트 권한 대행사인 ‘국제스포츠·레저’(ISL)를 설립해 FIFA의 최고 협력자로 등극한 후, FIFA의 든든한 자금줄이 됐다. 이후 모든 것이 뻔한 장사 메커니즘에 따라 작동했다. ISL은 FIFA에서 중계권을 사서 텔레비전 채널에 엄청난 가격에 되팔았다. 아디다스 주주와 FIFA 고위층 간에 ‘윈-윈’ 협약이 체결된 것이다. 2001년 ISL이 위장 도산할 때까지 FIFA의 일부 고위 간부는 이 아디다스 패거리’(아디다스·코카콜라·텔레비전) 브랜드에 충성한 대가로 뇌물을 챙겼다.

돈으로 회장 사고 돈과 연애하고

그 후 블라터 회장의 30년지기인 전 FIFA 부회장 장마리 웨버 등 ISL 간부 5명이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2008년 3월 법원에 회부된 이들의 혐의는 브라질 글로보 텔레비전과 일본 덴쓰 텔레비전이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텔레비전 방송권료로 지불한 7천만 유로를 횡령한 것이다.(8) 커미션을 챙긴 FIFA 관계자 2명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는데도, 웨버와 그의 협력자들은 커미션 수뢰자의 신원 공개를 거부했다. 이 2명의 FIFA 관계자는 2000년 1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21만1625스위스프랑(약 14만5518유로)을 수뢰한 남미축구연맹 회장 니콜라스 레오스와 1999년 12월 1만5975스위스프랑(약 1만1138유로)을 수뢰한 탄자니아 축구협회 전 회장 무히딘 느돌앙가였다.(9)

FIFA 지도부는 지나치게 사랑만 받고 큰 철부지들이다. “FIFA 집행위원 24명과 FIFA 부회장 7명은 경쟁부문에 있는 다른 어떤 다국적기업의 집행위원이나 부회장들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데다, 보수도 더 많다. FIFA 회장 ‘셰프’ 블라터(그의 중간 이름 제프(Sepp)가 프랑스어 발음으로는 셰프(Chef·최고)와 비슷해서 필자는 이를 풍자하듯 표현-역자)의 연간 보수는 ‘기밀사항’이지만 대략 4만 달러로 추정된다.”(10) 피고인 6명은 청문회에서 ISL가 도산할 때까지 지난 10년 동안 조세회피국인 리히텐슈타인의 LGT은행을 통해 9620만 유로의 뇌물을 뿌렸다고 시인했지만, 이 사건이 발생할 당시만 해도 스위스에는 커미션을 금지하는 법률이 없어 이들은 방면됐다. 1998년 아벨란제 후임으로 취임한 블라터는 파산한 ISL을 대신해, 자신의 조카이자 훗날 월드컵 방송권 공식 에이전시가 된 필리프 블라터 ‘인프런트 스포츠·미디어’(Infront Sports & Media AG) 회장과 함께 수많은 다국적기업과 협상에 나섰다. 인프런트 스포츠·미디어는 축구클럽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소유주인 로베르 루이 드레퓌스가 세운 회사다. 그가 사망한 뒤, 필리프 블라터가 2006년 총수에 취임했다. 이전에 필리프 블라터는 세계적 기업 컨설팅사인 매킨지에서 일했다. “매킨지가 2000~2006년 FIFA에 청구한 컨설팅 비용이 700만 유로에 달한다. 필리프 블라터가 FIFA를 돕는 유명 자문위원임을 내세워 FIFA에서 수주한 수많은 일감 덕분이었다.”(11)

뇌물 스캔들, 처벌은 없었다

ISL가 있든 없든, 텔레비전에서 보내는 선물이 FIFA 취리히 본부에 쏟아지고 있다. 2009년 조제프 블라터가 인심 좋은 그의 조카에게서 수령한 방송권료는 4억8700만 유로다. 이 중 4억6900만 유로가 2010년 월드컵 방송권료다. 이는 FIFA 수입의 60%에 달한다.(12)

FIFA에서 자행되는 최악의 부조리는 회장 선출 방식이다. 인구수와 무관하게 각국은 한 장의 투표권을 지닌다. 투표권을 지닌 인구저밀 지역과 가난한 국가가 과도하게 회장 선거에 개입하며, 수십 년째 부패를 저지르고 있다. FIFA 회원국은 207개국으로, 유엔 회원국보다 많다. 이 때문에 지지자가 많지 않은 회장 후보라도 지지자를 쉽게 늘릴 수 있다는 생각에 선거를 포기하지 않는다. 축구 사업체인 ‘풋비즈니스’에서 축구선수와 전문가를 발굴하는 에이전트로 일하는 파트릭 망델위치는 장난치듯 “FIFA는 유럽의 미니 공국과 작은 섬나라의 축구연맹을 세계 주요국 연맹과 똑같이 취급하는 최고 국가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축구 관련 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스포츠 법률과 경제 센터’의 소장 장피에르 카라키요는 “일부 책임자들은 조제프 블라터와 그의 심복이 공을 조금 멀리 찬 것일 뿐이라 여기겠지만, FIFA의 운영 방식은 결코 적절하지 못하다”고 했다.

대놓고 빼돌리는 지역연맹 회장

FIFA 자문위원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잭 워너는 FIFA 시스템을 희화화하는 전형적 인물이다. 그는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의 무소불위의 회장이자 조제프 블라터의 최측근이다. 카리브해 섬나라는 적은 인구에도 국가수로 밀어붙여, FIFA 집행부에서 차지하는 자리만 3석이다.

1500만~3천만 유로 정도의 개인 자산을 보유한 워너는 비싼 가격에 자신에 대한 지지를 팔고 있다. 1999년 FIFA는 CONCACAF의 채무 950만 유로를 탕감해줬다. 2002년 안티구아 바르부다 축구연맹 회장 쳇 그린이 ‘잭 오스틴 워너 축구발전센터’를 짓기 위해 FIFA 본부에 자금지원을 요청했을 때, 취리히는 16만1439달러(약 12만1천 유로)짜리 수표를 즉시 보내줬다. 1년 후, 언론인 앤드루 제닝스가 축구장 현장을 찾았을 때, 그가 발견한 것은 “덤불숲에서 풀을 뜯는 말들과 그 옆에 뼈대만 남은 맥주 배달 트럭이었다.”(13)

보답 전문가인 워너는 블라터 회장이 공격당할 때마다 일관되게 그의 편을 들었다. 1998년과 2002년 FIFA 회장 선거에 결함이 있었을까? 워너는 블라터를 흔들림 없이 지지하며, 회장 선거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아프리카축구연맹의 부회장 파라 아두가 블라터 회장 추종자의 끈질긴 괴롭힘에 희생됐다. 1998년 블라터 사단은 7만5천 유로를 주고 그의 표를 샀다. 파라 아두가 아프리카의 집행위원 18명이 돈을 받고 표를 팔았다고 주장했지만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 못하자, FIFA 징계위원회는 그의 활동을 2년간 정지시켰다. 회장 선거 논란에 대한 내부 조사도 모두 유야무야되었다.

4선 도전, 블라터의 끝없는 욕망

암울한 영혼의 소유자인 블라터 회장은 네 번째 임기를 위해 2011년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웃었다.(14) 그는 아시아축구협회 회장인 그의 경쟁자, 모하메드 빈함맘만 이기면 된다. 파트릭 망델위치는 “모하메드 빈함맘이 자신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주인에게 덤비고 있다”며 재밌어했다. 워너와 빈함맘은 블라터의 심복이었다. 그런데 카타르의 심복 빈함맘이 갑자기 FIFA 회장의 임기를 2회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FIFA 회장이 연임한 뒤에는 “축구만 빼고 온갖 것에 관여한다”고 주장한다.(15) 파트릭 망델위치는 “블라터 후계자는 축구계 명망 있는 가문의 행동규범을 준수하며, FIFA에서 불필요한 것을 쳐내겠지만 그렇다고 FIFA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다비드 가르시아 David Garcia
스포츠계의 비리를 주로 파헤치는 전문기자이며, 등의 저서가 있다.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1) , 2009년 6월 11일, 파리.
(2) 아디다스, 코카콜라, 아랍에미리트항공, 현대, 소니, 비자카드.
(3) 〈2009년 FIFA의 자금 보고서〉, 취리히.
(4) 로낭 다비드, 파비앵 르브렁, 파트릭 바소르, 〈풋타프릭(Footafric), 월드컵, 자본주의와 신식민주의〉, 몬트리올, 2010.
(5) 앤드루 제닝스, 〈레드카드! 혼탁한 FIFA의 내막〉, Presses de la cité, 파리, 2010.
(6) 위의 책.
(7) 폴 디에츠시, , Librairie académique Perrin, 파리, 2010.
(8) 2008년 3월 13일.
(9) 위 기사.
(10) 제롬 제셀, 파트릭 망델위치, , 플랑마리옹, 파리, 2007.
(11) 주간지 〈Bakchich hebdo〉, 2010년 4월 10일.
(12) 〈2009년 FIFA의 자금 보고서〉, 취리히.
(13) 앤드루 제닝스, 위의 책.
(14) 〈AFP〉 2010년 2월 18일 기사.
(15) 2008년 3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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