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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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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꾼에게서 다시 국가로, 공공부채에 관한 야무진 꿈



국제 금융자본, 경제정책 좌우하며 주권 장악

국내 은행의 국채 매입 의무화가 해법 첫 단추
등록 2010-05-13 08:54 수정 2020-05-02 19:26
그리스 공공부채의 70%는 프랑스와 독일의 은행을 비롯한 외국 투자자에게서 꾼 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그리스 정치는 금융기관에 의해 휘둘리고 있으며 스페인·이탈리아·포르투갈도 같은 상황에 처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주권을 수호할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자국 내에서만 빚을 지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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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허위적 토론의 논리에 의해, 그리스 위기가 불러일으키는 논쟁은 제기해야 할 질문(별로 위험하지 않은 질문)과 제기해서는 안 되는 질문(곤란함을 야기하는 질문)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무엇보다 공공부채를 해결할 새로운 방식에 대한 모색은 철저하게 목록에서 제외된다. 유럽헌법 조약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마련해놓았다. 즉, 공공부채 지원 자금은 오직 자본시장에서만 조달하며 국제 투자자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 다른 방식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가 공공재정을 채권시장에 노출시킴으로써 피해를 입은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다른 방법을 썼다면 재앙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가령 공공부채에 대해 화폐 발행을 통한 재정 지원 같은 방법을 썼더라면 어땠을까.(1) >

그리스의 경험은 훨씬 더 많은 빚을 지면서도 위기를 겪지 않은 일본의 예를 주목하게 한다. 그리스의 부채 규모(총 2700억 유로, 200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13%, 2010년 130% 예상)는 2010년 공공부채가 GDP의 200%에 이른 일본에 비하면 적은 편에 속한다.세계에서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며 엄청난 재정 적자(GDP 대비 부채 비율을 기준으로 했을 때)를 보이는 국가에 대해 국제 투자자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해답은 국제 투자자가 일본 정부 부채의 채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일본 공공부채의 95%는 채권자가 국내 예금자다. 미국과는 정반대로, 일본은 국가재정, 나아가 기업재정까지 모두 감당할 만큼 충분한 저축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시장에 손을 벌릴 필요가 없으며, 결과적으로 경제정책이 투자자의 무리한 요구에 휘둘릴 일도 없다. 시장이 경제정책에 간섭하려면 우선 채권자의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소유 없이는 간섭이 불가능한 법이다.

일본과 정반대 상황에 있는 그리스의 예는 국제 금융규제 철폐가 어떤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금융규제 철폐는 경제이론의 논리적 귀결(이 경제이론은 규제 완화가 문제시될 때마다 그것이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며 성장과 고용 확대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이 아니라 그것에서 투자자가 얻는 안정적 이득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은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국내 저축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재정 적자(무역 적자와 예산 적자)를 메울 것인가?(2) 대답은 간단했다. 다른 곳에서 저축을 끌어오는 것이다. 그 대상국은 당시에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주로 일본과 독일이었고 그 뒤 중국으로 확대되었다. 금융규제 철폐 움직임은 자본의 국제적 이동을 보장하는 체제를 구축하려는 전략의 일환이었으며, 미국 경제는 그 덕분에 예금-투자 자본의 흐름을 국내로 제한할 필요가 없어졌다.

일본이 그나마 버티는 이유

많은 국가가 그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채 국제 금융규제 철폐라는 매력적인 주문에 말려들었다. 1970년대부터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대부분 북반구 국가에서 재정 적자는 만성적 골칫거리였다. 그중 프랑스는 예산 적자에 대해 비화폐적 지원을 할 수 있게 규제 철폐 방안을 내놓았다.(3) 그러나 각국의 예금에 대한 국제적 ‘재활용’이라는 놀라운 방법에 매혹된 국가는 그 대가로 투자자에게 복종해야 했다. 자유화된 자본시장에서 채권자와 채무자의 역학관계는 완전히 채권자 쪽으로 기울게 돼 있다. 각 국가는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린다는 것은 곧 시장의 명령에 완전히 복종하게 됨을 깨달았다.

시장의 명령은 최소의 악인가? 그렇지 않으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4) 인플레이션 비율을 최소한도로 유지하라는 요구에서 재정 적자가 늘어날 경우, 설사 그것이 합리적 이유에 의한다 해도 제재를 받는 상황, 화폐 발행을 통한 재정 적자 지원 금지, 정부로부터 독립된 중앙은행 모델 강요까지, 대충 둘러보아도 시장의 강요에 의해 얼마나 많은 경제정책이 포기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경제위기가 도래했을 때, ‘긴축재정’에 대한 압력은 악몽 같은 상황을 만들어낸다. 정부를 불신하게 된 투자자가 대거 국채를 팔겠다고 나서면 금리가 상승해 정부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진다. 금융시장 경색의 여파로 그리스처럼 정부가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지는 상황까지 이를 수 있다. 국가 디폴트(채무이행불능) 가능성에 대한 과열된 염려는 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모든 요구를 정부가 수용할 수밖에 없게 한다. 단기적으로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투자자가 그리스 정부에 강요한 희생을 생각해보라. 회원국의 파산을 막기 위해 유럽연합(EU)이 나서지 않았다면 희생에 대한 강요는 끝이 없었을 것이다.

돈 빌리고 시장에 백기투항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일본의 예를 하나의 대안 모델로 생각해볼 수 있다. 채권자의 횡포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채권자를 바꾸면 된다. 그게 일본 정부의 선견지명이었다. 선견지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 정부는 최소한 다른 국가처럼 규제 완화를 통해 국제 투자자를 국내 시장에 불러들임으로써 합법적으로 국내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모든 종류의 국경, 특히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는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주장에 맞서, 일본은 최소한 국가 부채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실현 가능한 예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적절한 방법을 제시해준다.

그렇다고 일본식 해법이 아무런 제약 없이 국가 부채에 무한정 자금을 쏟아부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은 아니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이 200%에 이르는 일본은 언제 예상치 못한 장애에 부닥칠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높은 부채 비율에도 안정적 경제 조건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국내 예금 확보뿐 아니라 다양한 부수적 요인이 작용한 덕분이다. 무엇보다 정부와 가계저축 취급기관 간의 공조가 두드러진다. 일본 특유의 타협을 바탕으로, 은행 시스템과 연금재단이 가계저축을 대대적으로 국채 매입에 투자한 것이다. 개인 저축자 또한 이에 대해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지난 20년간 침체에 빠진 주식시장에서는 더 이상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된 터였다. 국내 통화정책으로 은행 이자가 거의 제로에 가깝게 떨어진 상황에서 공채가 제공하는 조금의 이익은 차라리 고마운 것이었다.

국채 매입은 예금자에게도 이익

일본의 예를 통해 우리는 저축액 운용 방식에서 예금자의 권한은 모두 중개인, 즉 예금취급기관에 넘어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이 권한이 때로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시장의 단기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조금이라도 나은 수익성을 좇아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자산을 옮기는 서구 투자자와 달리 일본의 기관투자자는 예금액의 상당 부분을 국채 매입용으로 ‘고정’한다. 이런 방식은 안정적 투자를 보장할 뿐 아니라 다른 국가처럼 규칙적으로 투자자 투기 열풍에 채권시장이 들썩이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경제적 안정을 위해 엄청난 부채를 쌓아온 일본의 예를 모두 답습하자는 것은 아니다. GDP 대비 부채 비율 200%가 목표는 될 순 없다. 일본의 방식은 정부의 재정 지원이 가장 시급한 순간에, 가령 심각한 경기 침체가 도래했을 때 공공부채 제약에서 좀더 자유로울 가능성을 제공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지만 분명 대안은 있다. 국제 투자자가 제시하는 공공부채 비율 제한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온갖 계약 조건에 무릎을 꿇을 것인가? 아니면 순수한 의미에서 국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고 가정할 경우(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5) 국내 예금을 국채 매입으로 유도함으로써 재정 적자를 국내 차원에서 해결할 것인가? (특히 충분한 예금을 보유한 프랑스 같은 국가에서 가능하다.) 지금까지 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온 프랑스의 저축취급기관을 일본식 타협으로 이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최소한의 의무 규정을 부과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국내 투자자에게 일정 비율의 국채 매입 투자를 의무화하면 공공부채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졌지만 이점도 많다. 우선 국채는 가계저축에 대해 합리적 이윤 분배가 가능하다. 국채 금리는 보통예금 이율을 상회하지만(또한 과세 대상이 된다) 지나치게 높아지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무위험 자산’으로 분류되는 국채의 수익률이 금리 하한선을 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 저축이 주식연계상품으로 몰리는 것을 막음으로써 규칙적인 주식시장 붕괴에 따른 소액 투자자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주주가 자유롭게 처분 가능한 저축·주식을 수단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임금 인상을 압박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6)

세금 걷어 투기자본에 바칠 건가

외국자본에 의존하는 대신 국내 예금을 국채 매입으로 유도하는 방식은 결국 구축효과(Crowding Out·정부의 재정 적자 혹은 확대 재정으로 이자율이 올라가 민간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는 효과-역자)(7)를 야기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프랑스의 높은 저축률은 충분히 국가재정을 감당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반 기업에 자금을 조달할 ‘여력’이 있다. 더욱이 일반 기업은 원한다면 언제든 국제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솔직히 이러한 방식은 강제적 분배에 해당한다. 세금 징수처럼 즉각적·직접적이진 않지만 부정기적으로 공공부채를 지원하는 간접적 방식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어쨌든 투자에 대한 보상은 주어진다! 이보다 더 가혹한 세금 징수 방법도 있다. 그러나 공공부채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세금 징수 방식은 언제나 제외됐으며 세제 혜택으로 인해 오히려 공공부채가 늘어나는 결과만 초래했다.(8)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상징인 황소상.황소는 증시 호황을 상징한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상징인 황소상.황소는 증시 호황을 상징한다

(정통적) 경제학자에게는 낯설게 들리겠지만, 공공부채 해결 과정의 반세계화는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이러한 반세계화는 정치적 의미를 가지며 민주주의에 직결되는 문제다. 즉, 공공부채 해결이라는 과제를 외국 투자자가 아닌 국내 각 사회 주체 간의 협의에 의해 해결한다는 걸 의미한다. 공공부채 삭감이 필연적으로 제기하는 갈등의 중재 권한을 국내 정치 주체에게 되돌려주자는 것이다. 브뤼노 티넬과 프랑크 방드벨드가 잘 지적했듯이,(9) “우리 자식에게 빚을 물려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소란스럽게 제기하며 전면으로 등장한 세대 갈등은 더 근본적 갈등을 숨기는 역할을 한다. 그 갈등이란(이는 완전히 현대적인 갈등이다) 정부에 대해 채권자가 된 부자와 세금이라는 형태로 정부의 빚을 대신 갚아주어야 하는 일반 서민의 갈등이다.

그들 손에 운명을 맡길 수 없다

평범한 납세자가 낸 세금이 금융자산 소유자에게 이전되는 과정은 어떤 주권적 결정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순전히 자본시장 논리에 따라 진행된다. 정부가 돈을 꾸고 지급하는 이자 총액이 교육예산 다음으로 많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정부 예산 편성이 정치적 주권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주권에 큰 공백이 생긴 것과 다름없다. 공공부채 이율은 얼마가 적당한가? 각 사회 주체에게 이전될 액수는 얼마인가? 이런 문제에 대한 결정은 온전히 정치적 주체에게 맡겨져야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공공부채의 채권자가 대부분 국내 시민으로 구성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채권자와 채무자의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주권 범위’ 안에서 중재할 가능성이 전제돼야 한다.

선거에 입후보한 후보자가 자신의 세금정책을 국민의 선택에 맡기듯이, 국가 예산 조달 방식 또한 국민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대출금리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정부 부채 부담이 커질 경우, 이를테면 구축효과 등에 의해, 상당히 유용할 공공지출을 포기해야 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또한 이익이 부자에게 집중돼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수 있다. 반대로, 대출금리가 지나치게 낮아지면 예금자는 보잘것없는 이자에 실망하고 정부의 공공부채 삭감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장기적으로 진행되면 정부는 지급상환 능력을 상실하고 채권자에게 저당 잡힐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탈세계화는 곧 재(再)정치화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나타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정은 오직 다양한 정치적 주체의 협의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최소한 국제 투자자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치적 공동체 이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채권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해서는 안 된다.

현재 그 모습을 드러내는 신자유주의 독트린은 서둘러 국가 간 경계가 사라졌다고 선언하고는 구조조정(모든 규제 철폐)을 강요함으로써 자신의 이념을 실현해가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의 역사는 우리에게 국가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민족주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그런 교훈에서 정치적 주권의 대안적 형태가 창출되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은 새로이 확장된 영토 위에 대안적 주권을 재구축하는 것을 교묘히 피하면서 국가 개념과 주권을 동시에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의 위선을 설명해준다. 주권적 국가 개념은 서로 다른 구성 요소를 지닌 집단을 공동의 운명 속에 결집함으로써 영토적·문화적 경계를 넘어 확장될 수 있다. 이 공동의 운명이야말로 주권이 뜻하는 본래 의미다. 이렇게 확장된 주권 개념은 국가와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 여기서 주권과 국가는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처럼 단일한 정치적 주체를 형성한 집단이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일이야말로 신자유주의자가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두고 보기만 할 것인가? 최근의 역사적 사건에서 보듯이, 자신의 주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낀 사람이 폭력적으로 들고 일어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권은 때로 자신을 가장 고약한 형태로 표현한다.

지난 20년간 주권이 침식되고 파괴돼온 과정을 보면 이러한 가정이 현실화될 임계점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따라서 주권 회복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전망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초반에는 신자유주의자와 그들에게 협력한 좌파가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린 국가라는 개념을 다시 되살린다는 것이 과거로의 회귀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국가관은 근본적 대응물인 주권에서 분리된 채 협소한 의미로 축소됐다. 국가라는 개념을 감히 역사에서 폐기해버리려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언젠가는 주권이라는 개념 역시 폐기해버릴 셈인가?

중기적 관점에서, 우리는 구식의 방식으로라도 공공부채 해결을 정치적 합의에서 풀어갈 것인가, 아니면 자본시장 논리에 따라 수탈 범위를 결정짓는 체제, 즉 전세계 채권자가 한 국가의 부를 나눠먹는 식의 세계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간단한 결론을 하나 도출할 수 있다. 세계화라는 것이 전세계의 시장화를 통한 주권의 소멸을 의미한다면 반세계화는 곧 재정치화를 의미한다.

글•프레데리크 로르동 Frédéric Lordon
저서로 (Fayard· Paris·2009) 등이 있다.

번역•정기헌




(1) 자본시장에 손을 벌릴 필요 없이,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을 통해 국고에 당좌대월(Overdraft·은행이 당좌예금 거래처에 예금 잔고 이상으로 발행된 수표나 어음에 대해서도 일정 한도까지 지급해 대부하는 형태-역자)을 제공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블로그 ‘La pompe á phynance’에 실린 ‘그리스 위기를 넘어서: 예산 적자, 공공부채, 화폐’(2010년 2월 17일)를 참조할 것.
(2) 미국 가계저축률은 계속 하락해 1980년 8%였던 것이 2006년에는 급기야 0%까지 떨어졌다.
(3) Pierre Rimbert, ‘예전엔 권력이 필요했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다’, , 2009년 4월호.
(4) 프레데리크 로르동, , Albin Michel, 파리, 1997.
(5) 블로그 ‘La pompe á phynance’에 실린 ‘그리스 위기를 넘어서: 예산 적자, 공공부채, 화폐’(2010년 2월 17일) 참조.
(6) 프레데리크 로르동, ‘증시 대차대조표, 자본주의에 마이너스’, , 2010년 2월호.
(7) 경제이론은 ‘구축효과’라는 용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폐쇄적인 금융경제’에서 국가가 우선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면 시장에 가용자금이 바닥나고 다른 경제 주체는 많은 비용을 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한마디로 공권력이 자본이 필요한 다른 경제 주체의 자금 조달 가능성을 빼앗는 것이다.
(8) 좋은 예가 하나 있다. 프랑스 국회 금융위원회 위원장이던 사회당 소속 디디에 미고 의원은 정부가 비밀리에 기업의 장기분할 매각 이익에 대한 세금을 전액 면제해주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 금액은 총 200억 유로에 달했으며 GDP 대비 공공부채의 1%에 해당한다. 세제 혜택과 관련해서는 Jean Gadrey, ‘세금 만세!’, 블로그 ‘Alternatives Economiques’, 2010년 3월 15일 참조.
(9) ‘공공부채라는 유령’, , 200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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