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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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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영웅이 된 금메달리스트

문대성 새누리당 후보 ‘복사학위 논문’ 논란에 대한 단상… 학문과 운동 병행할 수 없는 환경에서 학술적 성취 요구한 구조적 문제점도 돌이켜봐야
등록 2012-04-06 07:21 수정 2020-05-02 19:26
지난 3월27일 오후 부산 수영구 남천동 새누리당 부산시당에서 열린 부산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 참여한 새누리당 부산 사하구갑 문대성 후보(왼쪽). <한겨레> 강창광

지난 3월27일 오후 부산 수영구 남천동 새누리당 부산시당에서 열린 부산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 참여한 새누리당 부산 사하구갑 문대성 후보(왼쪽). <한겨레> 강창광

오해 없으시기를! 이 칼럼은 부산 사하구갑에 출마한 ‘새누리당 정치인’ 문대성에 관한 비판이 아니다. 이 나라의 평균적 시민으로서 나 또한 ‘정치인 문대성’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고 있고, 그가 속한 정당의 나름의 장점과 치명적 패악도 잘 알고 있다. 또한 그가 쓴 박사학위 논문이 사실상 ‘복사학위 논문’에 불과하다는 뉴스를 들었으며 그것이 ‘젊고 참신한’이라는 수식을 단 ‘정치인 문대성’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명백한 잘못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유세 활동이 전개된 이후 문대성 후보와 새누리당의 태도로 볼 때, 그가 후보직을 사퇴하거나 진심 어린 사과를 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이 점 안타깝게 여기지만 이 칼럼은 그 일그러진 정치 행태를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그는 꼭 박사학위가 있어야만 했나

나는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이 지면에서 얘기한 적 있지만, 이를테면 히말라야 14좌를 등반한 오은선의 경우다. 논란이 없지 않지만,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경지에 오른 사람으로서 남다른 경험과 성찰을 얻고 내려왔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다면 나는 ‘도전’ ‘희망’ ‘꿈’ 등의 진부한 말 대신 그곳에 오르는 과정이나 아득한 산정에 서서 느꼈을 한없는 고독에 대해 경청하고 싶다. 기껏해야 친구 따라 소백산 꼭대기 딱 한 번 올라봤을 뿐인 내게 그가 히말라야 8천m 설산 준봉의 광막한 공기와 한 작은 인간의 한숨을 얘기한다면, 그보다 더 귀한 강의는 없을 것이다.

‘정치인’ 문대성이 아니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문대성에게서도 나는 마찬가지 요청을 할 수 있다. 성장기 이후 가혹하리만치 제 육체를 단련해야만 했던 금메달리스트라면 ‘국기 태권도 국위선양’ 따위의 진부한 말들 대신 우리에게 들려줄 만한 뜨거운 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지의 선수들이 대학 강단에 선다고 할 때, 그러니까 1회 특강이 아니라 전업 교수로서 지속적으로 학생을 지도하고 그 분야의 현실 역량을 발전시키는 일에 참여한다고 할 때 반드시 ‘박사학위’가 필요한 것인가, 나는 그 점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는 ‘체육학’이나 ‘체육지도학’ 혹은 ‘체육산업학’ 같은 넓은 범주의 학제가 아니라 해당 종목을 정확히 한정한 ‘동아대 태권도학과’ 소속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일이 우격다짐으로 싸움박질이나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트레이닝해야 이룰 수 있는 일이라고 할 때, 그것을 세계 최고 수준에서 성취한 사람이라면 굳이 학위가 없어도 교수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대학교수란 전문 능력만 가졌다 해서 감당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학문을 한다는 것,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 학회 등을 통해 해당 분야에 일정한 기여를 하는 것 등은 상당한 수준의 연구 과정을 필요로 한다. 학위 논문이란 그러한 학문적 능력을 압축한 결과물이다. 대학은 그런 능력을 지닌 역량 있는 교수진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학회 저널로는 도저히 획득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룩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바로 그 과정이 ‘대학원’이었을 것이다.

이런 걱정을 하는 이유는 현장 실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적극적으로 우대해야 한다는 일반론에 더해, 우리의 스포츠 문화가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니라는 현실 때문이다. 물론 축구 해설위원으로 유명한 세종대 이용수 교수처럼 공부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유학까지 가서 고진감래 끝에 학위를 따서 강단에 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교실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성장한다. 체육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한 엘리트 선수들도 대학 4년 대부분을 합숙소와 훈련장에서 보내고 만다. 고려대에 재학 중인 김연아는 해외에서 제출한 리포트로 학년 과정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대성도 그러했을 것이다.

학위 논문 이상의 성취를 이룩했다면

서구에서는 ‘예체능’과 같은 실기 위주의 과목에서(그것의 학문적 기초를 결코 무시하는 바는 아니지만) 실무 경험을 학위 논문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예가 많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이문열(문학), 이윤택(연극), 차승재(영상) 등의 경우처럼 학위는 없지만 그에 못지않은, 아니 해당 분야에서 학위 논문 이상의 성취를 이룩한 것을 존중해 전업 교수로 기꺼이 초빙한 대학이 여럿 있다. 만약 당신이 태권도학과를 새로 만든다고 할 때, 일찌감치 해당 분야의 유망주가 되어 다양한 트레이닝을 거쳐 올림픽 금메달까지 딴 선수가 있다면 우선 고려해보지 않겠는가. 비록 그가 학위가 없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 풍토가 전혀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부다운 공부를 해본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고등 학문을 전제로 하는 대학원 과정을 거쳐 교수가 된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 불가능하다. ‘복사학위 논문’은 이렇게 하여 빚어졌을 것이다. 문대성은 정치인으로서는 물론 대학교수로서의 자격에도 큰 흠결이 났다. 이 점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른 태권도 선수가 태권도학과 교수가 되려면 꼭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해야만 하는가, 하는 점은 별도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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