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타히티 앞에서 부끄럽지 않던가

90분 축구를 70분 경기로 바꿔버린 이란 대표팀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충고한다 “축구를 존중하라”
등록 2013-07-03 08:42 수정 2020-05-02 19:27
드러누울 거면 경기가 끝난 뒤에 누워야 한다. 한국·일본 등과 함께 아시아 대표로 2014 브라질월드컵에 나가는 이란은 본선 무대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지난 6월18일 한국과 벌인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경기 후반 1-0으로 앞서기 시작하자 이란 선수가 그라운드에 누워 경기를 지연시키고 있다.

드러누울 거면 경기가 끝난 뒤에 누워야 한다. 한국·일본 등과 함께 아시아 대표로 2014 브라질월드컵에 나가는 이란은 본선 무대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지난 6월18일 한국과 벌인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경기 후반 1-0으로 앞서기 시작하자 이란 선수가 그라운드에 누워 경기를 지연시키고 있다.

누구나 예상했다. 당신들이 경기장에 드러누울 거라는 것. 역시나 후반전 휘슬이 울리자마자 당신들은 취침 소등에 들어갔다. 발을 스치면 얼굴을 감싸쥐며 드러누웠고, 어깨를 부딪히면 발목을 붙잡고 뒹굴었다. 높이 날아올라 공을 잡은 골키퍼는 착지와 동시에 지뢰를 밟은 듯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경기장에 누워 고통스러운 척하던 당신들은 들것이 들어오자마자 벌떡 일어나 천천히 걸어나가는 ‘발연기’도 잊지 않았다. 이른바 ‘침대축구’다. 이제는 짜증도 나지 않는다. 그저 한심할 뿐이다.

1996년의 그 이란팀은 어디로 갔나

나는 이 글을 이란 선수들이 읽길 바라며 쓴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나는 이란이라는 나라에 동경을 가진 한국인이다. 대학 시절 이란 영화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팬이었고 이란에서 만든 가난하지만 위대한 영화들에 매혹되었다. 그 영화들의 배경으로 스쳐 지나가던 스산한 풍경에서 나는 이란인들의 고단했던 현대사에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나는 기본적으로 이란 축구에 대한 경외감이 있다. 당신들이 한국과의 경기 때마다 소환하는 추억, 1996년의 그 경기를 TV로 보며 나는 이란 축구에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중동의 별’로 불린 위대한 스트라이커 알리 다에이를 필두로 알리 카리미, 호아다드 아지지, 카림 바게리 등 페르시아의 후예들이 구축한 가공할 공격 라인에 6골을 폭격당한 충격은 아직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때 이란 축구가 보여준 기술과 파워는 한국 축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그때 한국의 중앙수비수는 홍명보였다). 그때의 이란은 2-1로 지고 있던 경기를 후반에 역전한 이후에도 경기장에 드러눕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공격을 퍼부으며 한국을 부수고 파괴해 기어이 6-2의 참패를 안겼다.

지금의 이란 축구는 힘과 기술이 아닌 엄살과 침대로 대표되고 있다. 공포가 아닌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지난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당신들은 후반전 내내 엄살을 피우며 경기장에 드러누웠고 달 구경으로 시간을 때웠다. 엄살을 부리며 경기장에 드러누워 시간을 보내던 환자들은 경기 휘슬이 울리고 월드컵 진출이 확정되자 우사인 볼트처럼 뛰어다니며 세리머니를 했다. 당신들은 홈에서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후반전 내내 울면서 뛴 한국 선수들과, 마지막까지 추격이 불가능해 보였던 골득실차를 줄여가며 멀리서 기적에 도전하고 있던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의 처절함 앞에 부끄러움을 몰랐다.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오세아니아 대표로 출전한 타히티는 스페인에 10-0의 대패를 당했다. 타히티 팀은 1명의 프로선수를 제외한 선수 전원이 배달원, 어부, 관광가이드 등의 직업을 가진 아마추어로 구성됐다. 10골을 먹으면서도 타히티는 마지막까지 온몸을 던져 스페인 선수들을 막아냈고, 계속 실점을 허용하던 타히티의 골키퍼가 눈물을 흘리자 스페인의 페르난도 토레스는 경기 중 위로를 건네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뒤 스페인과 타히티 선수들은 상대방에게 존경을 표했고, 타히티 선수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준 관중에게 감사의 세리머니로 화답했다.

월드컵은 단순한 국가대항전이 아니다. 대륙을 대표하는 팀들이 대륙의 경쟁력을 시험받고 축구에 녹아 있는 국격을 심판받는 대회다. 경기장에 드러누워 엄살을 부리고 고의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방법으로 승리를 기도하는 한, 아시아 축구는 영원히 존경받지 못한다. 유럽의 힘과 남미의 개인기에 대항하는 아시아의 힘이 엄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당신들은 이란의 대표이며 동시에 아시아의 대표다. 아시아는 더 이상 월드컵의 구경꾼이 아니다. 일본의 조직력, 한국의 스피드, 오스트레일리아의 파워는 충분한 경쟁력으로 강호들을 적잖이 위협해왔다. 그러나 이란의 침대가 과연 누구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가. 당신들은 다른 아시아인들이 동의한 대표인가.

조직력의 일본, 파워의 오스트레일리아, 이란은…

당신들은 축구를 70분 경기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90분 경기라는 축구의 기본적 룰을 파괴하는 행위다. 중동 국가에서 야구가 성행하지 않는 이유는, 야구는 드러누워서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어떻게든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내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이 아닐까.

온갖 엄살과 추태로 한국을 1-0으로 이긴 이란에 박수를 쳐준 건 이란 국민뿐이지만 스페인에 10-0으로 진 타히티는 세계인의 박수를 받았다, 나는 당신들이 부끄러움을 알기 바란다. 아시아 대표로서 자긍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침대에서 일어나라. 상대 선수와 부딪히고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달린 뒤 마음껏 드러누워라. 당신들은 축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당신들을 우리의 대표로 월드컵에 보내는 한 아시아인의 충고다.

김준 칼럼니스트·사직아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