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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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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프로야구를 살찌게 하나

매혹하지 못하는 구장들,

구장 신축은 관중 동원·수입 확충·관련 산업 발달이란 긍정적 도미노 효과 불러와
등록 2010-12-15 02:33 수정 2020-05-02 19:26

한국야구위원회(KBO)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이용일씨에게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내년 팔순이 되는 원로 야구인은 주저 없이 “인프라”라고 말했다.
2010년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구장은 모두 10개다. 이 가운데 2000년대 개장한 구장은 SK 와이번스의 홈인 인천 문학구장(2002년) 한 곳뿐이다. 그다음이 1989년에 지은 서울 목동구장과 전북 군산구장, 1986년부터 롯데 자이언츠가 홈으로 사용하는 부산 사직구장이다. 프로야구의 메카 격인 서울 잠실구장은 1982년 지어진 29년 묵은 구장이다. 대전과 광주구장은 1960년대,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구장은 1948년 개장했다. 이 가운데 2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구장은 잠실·사직·문학 세 곳뿐이다.
‘양심상’ 팔 수 없었던 좌석

좌석이 1만 개에 불과한 대구구장은 낡고 비좁다. 관중을 부르지 못하는 낙후한 시설은 구단의 자생력 약화로 이어진다.한겨레 이재혁

좌석이 1만 개에 불과한 대구구장은 낡고 비좁다. 관중을 부르지 못하는 낙후한 시설은 구단의 자생력 약화로 이어진다.한겨레 이재혁

낡고 비좁은 구장은 프로야구를 적자 산업으로 만든 주범이다. 프로야구가 사상 처음으로 500만 관중을 유치한 1995년 8개 구단 평균 연봉은 2442만원이었다. 두 번째로 500만 관중을 돌파한 2008년에는 8667만원으로 3.6배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페넌트레이스 입장 수입은 218억원에서 249억원으로 14% 증가에 그쳤다.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의 수입에서 입장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30% 전후다. 가장 큰 수입은 방송중계권 판매에서 나온다. 반면 국내 프로구단이 지난해 KBO로부터 분배받은 중계권 수입은 평균 20억원이다. 입장료 수입이 더 중요한 구조다. 그러나 열악한 구장 환경은 이 수입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통산 페넌트레이스 승률 1위인 삼성의 2009년 자체 수입은 40억원에 불과했다. 중계권 분배 몫을 제외하면 20억원에 불과하다. 지출 총액은 201억원이었다.

대구구장 좌석 수는 딱 1만 석이다. 수입 확충에 한계092가 있을 수밖에 없다. 좌석의 질도 문제다. KBO는 2002년 공정거래위원회 결정에 따라 이듬해부터 구단이 입장료를 자율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도 한때 대구구장 중앙지정석에 3만원 가격을 붙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양심적으로’ 도저히 3만원에 팔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삼성 관계자는 “그래서 이 좌석 구매자에게는 3만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했다. 결국 위생 문제를 우려해 2년 만에 가격을 도로 내렸다”고 털어놨다.

삼성의 고민은 곧 해결될지도 모른다. 대구시는 2014년 개장을 목표로 2만5천 석 규모의 야구장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 강운태 광주시장도 11월3일 유영구 KBO 총재와 만나 대구시와 같은 규모의 개방형 야구장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새 야구장은 지금까지 지방자치단체 선거철에 단골로 나오던 공약이었다. 그러나 재원 마련 문제로 번번이 ‘빌 공(空)자’ 공약이 됐다. 하지만 이번 계획은 삼성그룹과 기아차가 수백억원 규모의 투자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게 차이다. 과거 구장 신축 논의가 “왜 사기업(프로야구단)을 위해 공공재원을 투입해야 하는가”라는 반발에 부딪혔다는 점에서 긍정적 신호다. 모기업들은 재원을 투입한 뒤 20~30년 장기 임대해 수익을 낼 수 있다.

메이저리그 평균 관중 변화와 신축 구장 수

메이저리그 평균 관중 변화와 신축 구장 수

가까운 일본의 프로야구 사례에서도 구장 신축과 관중 동원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일본 프로야구 12개 구단의 메인 홈구장 가운데 7개는 1980년대 이후 지어졌다. 이 가운데 5개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퍼시픽리그 구장이다. 1970년대 경기당 평균 1만 명에도 미치지 못했던 퍼시픽리그 관중은 1990년대 이후 매년 2만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기존 구장들도 꾸준히 관중석을 증축해왔다. 이 전 사무총장은 “한 일본 구장을 방문했을 때다. 구단 관계자가 ‘구장 복도는 미로’라고 하더라. 증축을 반복해 동선이 어지러워졌다는 의미”라고 회상했다. 세이부 라이온스는 1998년 시즌 뒤 구장에 지붕을 덮는 공사를 완료했다. 그해 138만 명이던 관중은 이듬해 183만 명으로 33% 증가했다. 다이에 호크스는 후쿠오카돔(현재 야후돔) 개장 첫해에 구단 사상 최초로 200만 관중을 돌파했다.

국내 프로구단은 연간 200억원 내외를 지출한다. 2009년 기준 SK 와이번스가 290억원으로 가장 많은 돈을 썼다. 가장 적은 넥센 히어로즈는 140억원이다. 모그룹 지원금을 모두 비용으로 간주할 경우 SK는 216억원, 삼성은 161억원, 넥센은 25억원 적자를 냈다. 그룹 지원금이 비용이냐, 구단 수입이냐라는 논쟁은 있다. 어느 입장에서 봐도 삼성의 경우처럼 총수입의 82%를 모기업에 의존하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 입장료, 광고 판매, 중계권이 대략 1:2:1로 균형을 이룬 대만 프로야구보다 열악하다. 이런 수입 구조는 굳이 매출을 늘리려 노력하지 않게 되는,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 한 구단 사장은 “사실상 프로야구단은 돈을 벌 필요가 없는 조직”이라고 말했다.

자체 수입 강화, 구단 자생으로 이어져

8개 구단 가운데 수입 구조가 가장 건전한 팀은 롯데다. 2009년 롯데는 입장 수입 62억원, 중계권료 20억원, 자체 광고 34억원, 매점 및 상품 판매 72억원, 모그룹 패키지 광고(지원금)로 130억원 수입을 올렸다. 그룹 지원금을 수입으로 볼 경우 60억원 흑자, 전액 비용으로 계산하면 70억원 적자다. 최규덕 롯데 마케팅팀장은 “팀이 시즌 내내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현재 구장 환경에서 올릴 수 있는 최대 수입은 350억~400억원”이라고 밝혔다. 구단이 충분히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 규모다. 구단이 자체 수입 강화를 위해 노력할수록 관련 산업 규모도 커진다. 롯데는 야구 열기가 높고 인구가 많은 부산·경남 지역을 독점하고 있는 팀이다. 그리고 2만8500석 규모의 사직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다. 구단 관계자들은 “최근 팬들은 야구를 더 즐기기 위해 지갑을 연다”고 말한다. 현재의 대구나 광주구장은 열려던 지갑도 닫게 만든다. 2014년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삼성과 기아가 진정한 주식회사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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