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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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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밖 팀워크’도 최고다워라

다양한 자선활동 펼치는 유명 클럽들과 스타들…
볼 패스하듯 나누고 봉사하는 게 축구 인기 비결 아닐까
등록 2009-10-28 14:36 수정 2020-05-03 04:25

세계적인 축구스타 지네딘 지단이 10월 말 한국을 방문한다. 유소년 축구를 장려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단은 현재 프랑스 기업 다논의 네이션스컵 글로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세계 10~12살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다논 네이션스컵은 스포츠를 통해 어린이에게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해주자는 취지로 개최되고 있다.

첼시의 조세 보싱와(붉은색 동그라미 안)가 자선행사에 참석해 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첼시의 조세 보싱와(붉은색 동그라미 안)가 자선행사에 참석해 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 딴 자선재단 둔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의 자선행사도 다논 못지않다. 에투(인테르밀란·카메룬), 은완코 카누(포츠머스·나이지리아), 벤자니 음바루바리(맨체스터시티·짐바브웨) 그리고 세드릭 칸테(파나시나이코스FC·말리)는 각자 그들의 이름을 딴 자선단체를 가지고 있을 정도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아프리카인의 교육과 건강 증진을 위해 나선 셈이다. 축구 교육뿐만 아니라 정규 교육을 무료로 제공해 인재를 양성한다. 그들은 왜 자기 주머니를 털어가며 이런 자선활동에 나서는 것일까?

우선, 그들은 어려운 이웃을 돕고도 남을 정도로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는 점을 손꼽을 수 있다. 그들이 버는 돈은 심지어 가난한 나라의 예산보다 많을 때도 있다. 선진국 축구리그에서 성공해 금의환향한 그들의 눈에 끼니조차 잇기 힘든 조국의 처참한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면,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음으로, 다소 거칠게 표현하자면, 선수들 자신과 기업의 이미지를 높여주는 효과도 적지 않다. 그들은 어린이의 우상이 되기를 원하고, 선행을 베풂으로써 명예를 얻고 싶어한다. 기업 또한 상업적인 의도에서 그들의 자선사업을 이용한다. 다논이 지단의 명성을 빌려 좋은 기업 이미지를 쌓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을 통해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을 더욱 과시하려는 전략이다.

여기에 다른 요인들도 적지 않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가족과 지역사회를 제일 먼저 챙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은 비록 유럽에서 활동하지만 조국을 잊지 않는다. 더군다나 아프리카는 세금이라는 개념이 약해서, 부자가 직접 부를 분배하는 문화가 있다. 이런 전통과 조국에 대한 연민이 결합되며 그들은 많은 돈을 가족·친구·지인들에게 나누어준다. 이것이 그들 특유의 자선활동 방식이다.

게다가 아프리카 사람들은 매우 종교적이다. 아프리카 출신 스타 플레이어들은 그들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아프리카 선수들을 제치고 유럽 리그에서 뛸 수 있었던 것은 신의 선택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축복에 대한 감사 때문에라도 부를 나눠주려 한다.

첼시의 다른 선수들도 정기적으로 지역 장애인 체육관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친다.

첼시의 다른 선수들도 정기적으로 지역 장애인 체육관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친다.

물론 축구를 통한 자선행사는 유럽에서도 생활화돼 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맨유)가 대표적이다. 맨유의 사회공헌 활동은 50년 역사를 자랑한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축구를 가르치거나, 7개 자선단체들과 교류협정을 맺어 각종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를 들어 지역병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어린이 환자에게 희망을 심어주거나, 유니세프를 통해 에이즈와 성폭력 퇴출 캠페인을 벌인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지난 7월 방한 때도 가수 비와 함께 드림자선경기를 열고 유소년을 상대로 축구클리닉을 개최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필자가 일했던 첼시 구단 역시 이러한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거의 매일 자선행사가 열리고, 그 내용 또한 다양했다. 축구클리닉이나 자선패션쇼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건강 식단을 장려하는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축구스타들에게 무엇을 먹어야 자신도 그들처럼 튼튼한 몸을 가질 수 있는지 질문하면서 즐거워하던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 기자들에게 굳건히 닫혀 있는 코범 트레이닝센터도 아이들과 장애인에게는 자주 개방돼 선수들과 만날 기회를 준다.

볼 패스도 자신이 소유한 것 나누는 행위

첼시의 관심이 유소년에게만 집중돼 있는 것은 아니다. 첼시에서 뛰었던 선수들의 수술기금과 생계 지원을 위한 매치데이 복권을 발행함으로써 팬들도 자선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자선단체인 ‘라이트 투 플레이’(Right to Play)와 파트너십을 맺고 아프리카를 방문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가 하면, ‘킥 잇 아웃’(Kick It Out)이라는 단체와 함께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첼시의 자선활동은 아시아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들은 아시아축구연맹(AFC)과 동맹을 맺고 아시아 축구 발전을 위한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중국의 경우, 각 도시에서 선발된 10명의 어린 선수들이 첼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기회를 얻고, 첼시의 코치들은 중국에 파견돼 축구 기술을 전수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박지성 선수는 축구센터(JSFC)를 건립해 유소년 선수 지원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며, 히딩크는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환원하겠다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축구 전용 구장을 세우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선수들이 한 골을 넣을 때마다 300만원을 사회공헌기금으로 내놓고 있으며, 수원삼성 구단은 초등학교에 1일 축구클리닉을 여는 등 수원 지역 어린이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다.

축구는 여러 스포츠 종목 가운데서도 개인기보다 팀워크가 더욱 중요한 경기다.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라 할지라도 혼자서 골을 넣을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축구 선수들은 그라운드 밖의 팀워크에도 신경을 쓰는 듯하다. 축구의 볼 패스는 사회로 치면 나눔과 봉사다.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남에게 내준다는 점에서 닮았기 때문이다.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를 보살피지 않고, 더 강한 자가 약자를 보듬어주지 못한다면 사회 전체의 팀워크는 깨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수들은 볼을 패스하듯이 나눔의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축구가 전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글·사진 서민지 축구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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