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제발 한 달에 이틀은 쉬세요”


‘언니들’에게 보내는 편지
“내가 떠나 더 힘들 텐데… 하루의 절반을 일하고 가족까지 챙기는 언니들이 아름다워요”
등록 2009-11-06 10:46 수정 2020-05-03 04:25
노동OTL

노동OTL

요즘도 이 귓가에 맴돕니다. 자동문이 열리고 이 울리면 손님이 들어왔죠. 그 넓고 넓은 감자탕집. 물과 물통, 물수건을 챙겨들고 주문을 받고 반찬을 챙기고…. 하루 12시간 반복했던 잡다한 업무들이 기억 속에 빼곡합니다. A갈빗집과 B감자탕집의 언니들, 잘 지내고 있나요?

요즘도 매일 점심시간이면 저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습니다. 그곳에는 지난 9월의 제 모습이 있죠. 갈빗집 언니들의 모습이 있고 감자탕집 언니들의 모습도 있습니다. 음식을 건네받을 땐 고맙고 반찬을 더 달라 할 땐 미안하죠. 넓은 식당에 종업원이 1~2명만 있으면 안타깝습니다. 몸은 노동 현장에서 빠져나왔지만 마음은 계속 노동하고 있습니다.

결국 다시 식당에서 일하는 팀장 언니

어느새 단풍이 지천이네요. 함께 일할 때만 해도 더웠는데 말이죠. 어제 퇴근하다가 회사 앞 아파트 단지를 보니 붉게 물들었더라고요. A갈빗집 앞길, 양옆으로 늘어선 은행나무들도 노랗게 물들었겠죠. B감자탕집 뒷마당의 나무는 앙상하겠네요.

갈빗집 팀장 언니, 요즘은 용역회사를 통해 일용직으로 일하신다고요. 근무 중에 전화를 받아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언니의 모습은 지난 9월의 제 모습이죠. 언니가 갈빗집을 그만둔 뒤, 고등학생 딸은 “엄마가 집에 있으니까 정말 좋다”고 했다면서요. 한데 언니는 그 딸의 학원비를 마련해보겠다고 또 일을 나왔군요. 지독한 아이러니예요, 그렇죠?

감자탕집 주방 언니, 언니에겐 계속 미안합니다. 9월25일, 제가 그만두겠다 말한 날이죠. 사실 사장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하긴 어렵지 않았어요. 우릴 착취하는 사장에겐 불만이 쌓여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그만두면 당분간 더 힘들어질 언니를 생각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죠. “아이고, 인제 또 어떻게 일하냐. 적응된 줄 알았는데 그만둔다니….” 언니는 제 얘길 듣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고요.

사장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당장 가방 들고 나가라”고 했을 때 언니를 봤어요. 언니는 차마 제 쪽을 쳐다보지도 못하더군요. 인사를 하는 내게 언니는 “나중에 전화해”라고 속삭였어요. 감자탕집을 나서는 순간 눈물이 맺혔어요. 미안함, 무서움, 억울함이 뒤엉켜 있었죠.

길을 건너 버스 정류장에 서서 식당을 바라봤어요. 저는 이제 감자탕집에서 도망쳤지만 언니는 계속 그 안에서 살아가겠죠. 패배감을 느꼈습니다. 감자탕집 옆으로 식당이 즐비했지요. 식당마다 언니들처럼 일하는 이들이 있겠지요. 몸이 아파도 속이 상해도 앞치마 둘러매고 일하는 이들이 있겠지요.

아무튼 그날, 고생 많았어요. 150평 식당, 혼자 얼마나 바빴겠어요. 사장 내외가 많이 도와줬냐고 물으니 “그 사람들이 하긴 뭘 해…”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체념이 묻어 있더군요. 그날 밤 9시, 야간조 언니들이 와서 얼마나 놀랐을까요. 인사도 못 드리고 나와 야간 언니들에게도 죄송합니다.

9월16일 갈빗집에서 42만원이, 10월16일 감자탕집에서 35만원이 입금됐습니다. 통장에 박힌 사장님들의 이름을 보니 섬뜩하더군요. 77만원을 위해 전 이들 소유의 식당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한 것이지요. 우리 노동력은 그렇게 헐겁게 거래된 거였죠.

부탁합니다. 감자탕집 언니들, 11월엔 제발 한 달에 이틀이라도 꼭 쉬세요. 언니들은 원래 ‘곰과’라서 미련하다고, 그래서 자기 것도 못 챙겨 먹는다고 하셨죠. 그래도 이렇게 살면 나중에 복받지 않겠냐고 하셨죠. 그러면서도 몸이 아파서, 집안 살림이 엉망이라서, 한 달이 너무 길어서 괴롭다고 하셨죠. 3개월째 못 쉬었다며 서로 위로하는 언니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쉬세요. 언니들은 휴일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봤자 한 달에 두 번이잖아요.

사장에게 말하기 어렵다면 함께 말하세요. 손잡고 함께 말해요. “저희는 좀 쉬어야겠습니다.” 언니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사장도 별수 없지 않을까요. 터프가이 사장이 또 소리를 버럭 지르겠지만 어쩌겠어요. 휴일은 언니들의 권리인걸요.

“쉬겠다”고 손잡고 함께 말해보면 어떨까요

제가 만난 언니들은 모두 열심히 사는, 아름답고 강한 여성들이었습니다. 하루의 절반을 일하고도 가족을 챙기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노동력을 바치는 일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언제쯤 돼야 이 빈곤 노동이 끝날까요. 절망하긴 쉽습니다. 희망을 가지려면 용기가 필요하죠. 그래도 우리 모두 같이 고민한다면 희망이 절망보다 빠를 겁니다.

언니들, 건강 잘 챙기세요.

2009년 10월30일 식당 막내 임지선 드림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