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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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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온몸이 익어 있다” 말했다…일 마치고서 ‘폭발’한 몸

[노회찬재단X노동건강연대] 온도계 빨간 막대가 오를수록 전화에 불이 나는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 그를 ‘딸!’이라 부르던 김태범은 왜 구속됐나
등록 2023-07-14 10:30 수정 2023-07-29 06:34
2021년 7월28일 서울 흑석동 아파트 건설현장 공사장 그늘막에서 노동자들이 쉬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선임기자

2021년 7월28일 서울 흑석동 아파트 건설현장 공사장 그늘막에서 노동자들이 쉬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선임기자

“무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사람이 병원에 실려갔다.”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5도, 건설현장에 걸어놓은 온도계의 빨간 막대가 40도를 넘어가던 날, 전재희 전국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실장의 전화도 불이 났다. 폭염 속 건설현장 사람들이 ‘열사병 예방 3대 기본 수칙 이행 가이드’를 배포하는 고용노동부가 아닌 노동조합에 에스오에스(SOS)를 친다.

‘열사병 예방 3대 기본 수칙’은 폭염에서 일하는 이들은 물·그늘·휴식을 챙겨가며 일하라는 것인데, 당연해 보이는 이것이 안 돼 건설현장은 위태롭다. 어떤 지역은 새벽 5시부터 현장을 돌린다. 인구가 밀집한 곳은 이른 새벽부터 일하기 어렵고, 교외 택지개발지구 같은 곳은 가능하지만 새벽 3~4시에 일어나야 5시에 출근할 수 있으니 만만치는 않다.

손이 닿지 않는 현장이 생기고 있다

2022년 여름 열사병으로 사망한 이도 잊지 못한다. 물량은 많이 받고 인원은 적게 돌려서 악명이 높은 중간도급 업체였다. 더워서 못하겠다고 해도 마냥 돌아가던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다가 노동자가 사망했다. 의사는 “온몸이 익어 있다”고 말했다.

건설현장에서 열사병 신고 시간은 오후 4시가 많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쉬거나 제일 더운 오후 2시쯤 쉬고 작업하면 쓰러지지 않는다. 충분히 쉬지 못하고 내처 일하다가 갑자기 체온이 확 올라 쓰러진다. 오후 4시,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을 다 마친 몸이 ‘폭발했다’.

빠른 속도로 이어가던 전재희의 말이 잠시 멈춘다. 이런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공갈 협박 범죄자’로 몰려 감옥으로 보내지기 시작하고부터 현장에서 오는 사고 소식에 구멍이 나고 있다. 지난 몇 해 건설노조 조합원이 빠른 속도로 늘었다. 휴대전화를 팔다가, 조선소에서 용접하다가, 코로나19로 여행사가 망해 건설현장에 온 청년들도 건설노조 울타리가 있어 이 정도 안전망이면 버틸 만하다고 했다.

‘손이 닿지 않는 현장이 생기고 있어요.’ 건설노동자가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을 찾아가며 교섭해온 임금·고용·안전이 건설기업에 대한 협박과 공갈로 둔갑하자, 노조에 소속된 이들을 쫓아내는 현장이 늘고 있다. 사고가 날 것 같아도 말하는 이가 없어 성가시지 않고, 돈은 덜 줘도 공사는 돌아가니 건설현장·건설기업들은 앓던 이 빠진 것처럼 개운할 법하다.

지난 몇 주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를 점검하는데 조합원 사망이 3건, 조합원이 아닌 이의 사망이 2건이었다. “6층 높이 말비계(정상에 디딤판이 있는 사다리)에서 떨어져 사망했어요. 노동조합 조끼 벗고 알음알음 들어가서 일했대요. 뒤늦게 연락이 왔어요.” ‘호이스트(화물 이동 장치) 현장에서 자재를 준비하다 승강기 부품에 맞아 사망했다’는 속보가 떠서 찾아보니 조합원이었다. 노동조합과 연결이 끊어지면 초기에 챙겨줄 수가 없다. 119에 연락하고, 사고현장을 기록하고, 목격자 찾아 사고 원인을 찾고, 2차 사고가 날 것 같으면 작업을 멈추게 하고 안전조치를 요구하는 일, 정부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해온 일이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한여름에 더 바빠진다. 전수경 활동가 제공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한여름에 더 바빠진다. 전수경 활동가 제공

정직하고 당당했던 노동자의 구속

현장을 돌며 법 제정 운동을 하던 전재희도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을 때는 너무 기뻐서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노동자가 제일 많이 죽는 건설현장이니까 법이 시행되면 ‘망치질하고 전기 배선하고 철근 갈고리질하는’ 노동자들이 참여해서 사고를 어떻게 줄일지 이야기하게 될 줄 알았기에.

그러나 2023년, 노동자가 죽으면 현장에서 기업 이름이 떼어지고 안전모의 마크조차 지워진다. 정부의 사고조사 보도자료에는 건설회사 이름이 없다. 대신 정부는 ‘스마트안전’을 하자고 한다. ‘스마트조끼’로 추락사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스마트귀마개’도 있다. 스마트조끼 한 벌 값 100만원, 귀마개 값 100만원을 쓰고 나면 현장 안전관리비에서 안전화와 안전대를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3만원 하는 안전대를 안 주려고 하는데 말이다.

전재희는 감옥에 들어간 한 사람을 생각한다. 김태범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장, 전재희를 ‘딸!’이라 부르던 김태범은 기능공 이름을 빼곡히 적어 다니던 ‘오야지’였다. ‘오야지’ 수첩을 버리고 건설노조를 했다. 전재희에게 보낸 문자에는 여름의 온도계 사진이 있고 조합원들 사고 소식이 가득했다. 일흔 살의 김태범은 ‘공갈 협박’으로 실형 2년을 받고 구속됐다. ‘정직했어’ ‘당당했어’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가 있다고 전재희가 말한다.

노동조합 조끼를 벗게 하는 것은 현장을 찾아 떠도는 이들에게 절실했던 소속감을 빼앗는 일이다. 공동체가 생겨서 따뜻했고 노가다가 아니라 노동자로 불려서 뿌듯했다. 노동조합이 있어서 은행 다니는 이들처럼 달력도 만들 수 있었다.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원청 밑에 하청 밑에 시다오케(재하청) 밑에 오야지 밑에… 일곱 번 여덟 번 전화를 돌려 일당을 받아야 했던 불법 하청이 여전히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뿌리 뽑히지 않은 불법 재하청에 정부도 경찰도 왜 눈을 감는가.

하드의 팥알 하나도 남길 수 없어

전국건설노동조합이 1박2일 집회를 해서 시민들이 불편했다는 2023년 5월16일 서울 광화문에 나갔다. 무채색 조끼 대열이 쨍한 해를 머리에 이고 가득 앉아 있었다. 한 시간 남짓 서 있는데 아스팔트 가운데서 일어선 노동자가 검은 봉지를 들고 와서는 하드(아이스바)를 내밀었다. 나무 그늘에 서서 바라보는 것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 일인데, 팥빙수맛 하드를 받아든 나는 막대에 붙은 팥알 하나도 남길 수 없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내 곁에 산재2’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생생한 현장을 담은 글을 보내주신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와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전수경 활동가는 곧 또다른 ‘노동자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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