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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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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호스에 날려 일어났더니 9개 치아가 후드득

[노회찬재단×노동건강연대]
두 번의 산재 당한 강원도 동해 쌍용시멘트 하청노동자의 호소
잘려나간 엄지는 산재 받았는데 치아는 ‘소멸시효’ 문턱 넘을까
등록 2023-03-03 11:23 수정 2023-03-13 00:13
일하다가 손가락 마디가 잘리고 치아가 부러졌다는 쌍용시멘트 하청 노동자 홍문표(74)씨가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전수경 제공

일하다가 손가락 마디가 잘리고 치아가 부러졌다는 쌍용시멘트 하청 노동자 홍문표(74)씨가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전수경 제공

강원도 강릉 시내의 한 노무사 사무실에 70대 노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노인은 산업재해 신청을 하고 싶어 동해시에서 왔다고 했다. 마주 앉아 보니 오른손 엄지 끝이 뭉툭하다. 한 마디는 잘려나간 것 같다. 노무사는 ‘손가락 다친 일로 산재를 신청하시려나’ 막연히 생각했다.

그는 치과에 온 것처럼 ‘아’ 하더니 자기 이를 보여준다. 치아가 다 있긴 하지만 끝부분이 뭉툭하다. 톱으로 잘라낸 듯 부자연스러운 모양이다. 손도 일하다 다친 것이 맞지만 산재를 신청해야 하는 것은 치아라고 했다. 손은 뒤늦게 산재를 신청했고 이제 치아를 할 차례다. 작은 체구에 단정한 차림새를 한 노인은 영동(강원도 대관령 동쪽에 있는 지역) 에서 쓰는 높낮이가 센 억양으로 말씀한다.

쌍용시멘트 하청노동자로 살아온 30여 년

서울에서 살다 몇 해 전 강릉으로 이주한 노무사 A는 그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없다. 한마디라도 더 들어보려고 자꾸 의자를 당겨 앉는다. 이번 겨울, 일흔네 살의 홍문표 어르신이 노무법인 참터 영동지사에 처음 방문한 날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날 사무실 풍경을 그려봤다.

그는 쌍용시멘트(쌍용C&E) 하청업체에서 30여 년을 일했다. 허투루 하는 법 없이 30년을 일했는데, 쌍용시멘트 하청업체는 어쩐 일인지 똑바로 일처리를 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와 마주 앉아 ‘산재를 신청해보십시다’ 하고는 서류를 챙겨보려 하니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가 따로 없었다.

강릉에서 노무사 A의 사무실에 먼저 들러 이야기를 듣고는 그를 만나러 나섰다. 2023년 2월14일 영동에는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 춥고 많은 눈이 온다고 예보됐다. 강릉역을 출발해 동해로 가는 기차의 창은 굵은 눈발로 가득 찼다. 얼굴을 때리는 눈보라 속 패딩 점퍼에 얼굴을 묻은 이들이 해안선을 따라 레일바이크 페달을 밟고 있다. 바다를 보여주던 기차는 쌍용시멘트 공장의 육중한 원통형 실루엣을 지난다. 동해역은 오가는 사람이 없어 흰 눈 속에서도 스산했다.

역 앞에서 정오에 만나기로 했으나 노인은 보이지 않는다. 겨우 그와 만나 인사를 나누는데, 오전 11시부터 나와 식당을 찾아보고 오는 길이라 한다. 그가 찾아둔 갈비탕 집에는 군인 손님이 많았다. 갈비탕은 좀 짰다. 본인 입맛에도 짜니 서울에서 온 손님인 나에게는 얼마나 짜겠느냐 걱정한다.

홍문표는 1983년부터 1998년까지 15년을 쌍용시멘트 동해공장의 하청노동자로 일했다. 그 뒤 잠시 경기도 성남 건설현장 관리자로 일하기도 했으나 2008년 1월1일 다시 고향에 있는 회사의 하청노동자로 돌아왔다. 입사할 때 ‘영진산업’이던 하청업체 이름은 그사이 ‘진영기업’으로 바뀌었다 . 홍문표는 다시 돌아온 쌍용시멘트 동해공장에서 시멘트 분진을 청소했다 . 분진을 빨아들이는 호스는 압력이 너무 세서 성인 남성이 두 손으로 잡고도 온몸이 흔들린다 .

2017년 7월27일 홍문표에게 호스가 날아들었다. 옆자리 동료가 호스를 놓친 것 같았다. 몇 미터일까. 고압호스는 홍문표의 몸을 날려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공장 바닥이었다. 허리며 어깨며 아픈 것도 문제지만 앞니가 다 부러져 있었다. 회사는 동네 치과의원으로 홍문표를 실어갔다가 그날로 나오게 했다. 산재를 신청해달라고 했지만 하청업체 사장은 홍문표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부러진 이를 해주겠다고 했다. 동해 시내에서 건강원을 하는 이가 와서 홍문표의 이 9개를 해 넣었다. 무자격자가 의료행위를 한 것이다.

엄지 잘리자 ‘산재포기각서’ 내민 회사

홍문표는 평생 일한 사람이다. 쉬지 않았다. 공장에 다시 나갔다. 2020년 5월21일,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벨트에 감겨 들어갔다. 장갑을 껴서 그나마 한 마디만 상했다. 공장 사람들은 그를 동해시의 작은 병원으로 데려갔다. 강릉 큰 병원으로 후송돼 봉합수술을 받고는 입원 하루 만에 퇴원했다.

회사는 치료비가 수백만원이 나왔으니 내주고 싶다면서 산재포기각서를 쓰라고 했다. 홍문표는 각서를 썼다. 그 뒤 홍문표는 더는 일하지 못했다. 그사이 회사는 퇴직 처리를 했다며 14년치 퇴직금을 홍문표의 통장에 입금했다. 통장에는 1400만원이 찍혔다. 서류에는 없어도 다친 날짜들은 잊히지 않는다. 산재도 퇴직금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일이 먼저 출근이 먼저이던 인생이라서 그랬다.

2022년 11월 홍문표는 고용노동부 강릉지청에 찾아갔다. 근로감독관이 홍문표의 오른손을 보고는 산재 신청을 하라고 했다. 산재 전문 노무사라고 찾아갔는데 산재 서류를 써주고는 수수료를 왕창 뗐다. 여하튼 2020년 5월에 다친 손이 2022년 12월 산재가 승인됐다. 이제는 부러졌던 치아에 대해 산재를 받아야 한다. 지금 노무사는 사고로부터 3년 안에 해야 하는 산재 소멸시효 대신, 이가 아픈 현재의 증상으로 산재를 신청할 수 있는지 고심한다.

2019년 12월 쌍용시멘트 동해 공장, 하청업체 노동자가 크레인 작업을 하다가 20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2021년 5월14일 쌍용시멘트 동해 공장, 하청업체 노동자가 창고에 보관 중인 규석을 컨베이어벨트에 옮겨 싣는 크레인 작업을 하다가 10m 높이 크레인이 무너져 숨졌다. 이어 그해 7월에도 하청노동자가 숨졌다. 2022년 2월21일 쌍용시멘트 동해 공장, 하청업체 노동자가 시멘트를 굽는 설비 개조 작업을 하다가 추락해서 숨졌다. 2022년 7월20일 쌍용시멘트 동해 공장, 하청업체 노동자가 시멘트 원료 보관 창고를 청소하다가 석탄회 더미에 매몰돼 구조됐지만 숨졌다. 고압호스에 몸이 날아갔지만 생존했고, 산재 신청을 하려 동분서주하는 홍문표는 운이 좋았다.

59년째 ‘무분규 사업장 기록 달성’ 중이라는 쌍용시멘트

2022년 쌍용시멘트와 쌍용시멘트노동조합은 1964년 노동조합이 생긴 이래 59년 연속 ‘무분규 사업장 기록 달성’ 중이다. 2023년에도 노사가 ‘평화’롭다면 60년이 되겠다. 이 평화가 쌍용시멘트 하청노동자와 함께하기를 바라고, 쌍용시멘트가 받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A등급이 쌍용시멘트 하청업체에도 미치기를 바란다. 아울러 홍문표의 두 번째 사고에 대해 산재 신청을 권유한 고용노동부 강릉지청은 쌍용시멘트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숨지기 전에, 이가 부러지고 손가락이 잘리기 전에, 그리고 이들을 하청업체 사장이 집으로 싣고 가기 전에 감독에 힘써주시기를 바란다.

글·사진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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