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다 좋다. 좋아하지 않는 노래가 나와도 없는 것보다는 좋다. 공연 영상을 찾아본다. 라디오도 즐겨 듣는다. 라디오 방송 시간표 따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옮겨가며 듣는다.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뮤지션유니온’이라는 뮤지션 단체가 만들어진 지 10년이 됐다고 한다. 2012년 뮤지션유니온이 발표한 뮤지션의 월수입은 100만원이 안 됐다. 청년 뮤지션 221명 가운데 77%는 음악활동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면서 수입을 보충하고 있었다. 답한 이들의 77%가 전업으로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사회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줘야’ 한다. ‘찾아줘야’ 한다는 말을 듣는 당사자는 마음이 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람들은 음악 없이는 살 수 없으니까, 음악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보호해줘야 한다. 뮤지션의 노동은 우리 사회 필수노동이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선우(38·가명)씨의 작업실을 찾아간 2022년 6월30일 오전은 홍수가 날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기타, 베이스기타, 어쿠스틱기타, 타악기들이 크지 않은 작업실의 벽을 차지하고 컴퓨터도 보인다. 악기는 습도에 약하기 때문에 제습기가 돌아가고 있다. 선씨는 곡을 만들고, 편곡하고, 믹싱, 녹음 작업을 한다. 필요하면 기타, 베이스기타, 피아노 파트를 연주한다. “영화, 뮤지컬, 연극, 기업 행사의 음악을 맡거나, 가요를 편곡해서 올리는 무대가 있으면 현장에서 실연도 하고, 팝스오케스트라에 밴드악기가 더해질 때는 편곡을 하죠.”
공공기관, 기업 등 다양한 경로에서 작업을 의뢰해온다. 그 일도 인맥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함정이다. “불합리한 일이 있어도 인간관계 생각해서 눈감아야 해요.” 선씨는 최근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줬다.
○○지방자치단체 산하 문화재단에서 공연을 기획했다. 야외에서 하는 버스킹 공연이었다. 2개월 전 섭외를 받고 팀을 꾸렸다. 공연 당일, 오후 6시 공연이었다. 오후 1시부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비가 와도 공연할 것인가’, 문화재단에 확인하니 ‘비가 와도 처마 밑에서 공연한다’는 답이 왔다. 공연팀이 리허설을 위해 미리 모인 시각, 문화재단에서 연락이 왔다. ‘공연이 취소됐다, 위에서 갑자기 취소하라고 한다.’
공연에 나올 4명의 연주자가 들은 말은 “미안합니다”가 다였다. 2개월간 작업 일정을 조정하면서 준비해왔다. 타악기를 연주하는 멤버는 직장에 휴가를 미리 내고 하루치 일당을 포기하고 왔는데, ‘미안하다’니.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아 경기도로 간 타악기 연주자는 쿠팡 택배일을 하는 중이었다. 공연장까지 온 거리, 시간을 말하는 것도 구차한 일이었다.
그 많던 음악인은 어디로 갔을까“공연비는 줘야죠, 하루치 인건비인데. 이뤄지지 않은 행사는 지급할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규정에 없대요.” 항의전화, 항의방문을 다 했지만 돈은 받지 못했다. 다음 공연을 할 때 계약서에 반영하겠다는 말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문화재단 담당자는 이 말을 덧붙였다. “하반기에 두 번의 기회를 드릴게요.” 음악도, 음악을 하는 이들도 존중하지 않는 재단 담당자의 말에, 선씨는 자신이 가르치는 대학의 실용음악과 제자들을 생각하면서 최대한 항의했다. 뮤지션유니온이 있어서 항의할 수 있었다. 문화재단은 이렇게 센 항의가 처음인지 당황해하기만 했다.
문화재단만 이런 것은 아니다. 공연 날짜를 확정한 상태에서 취소를 통보받는 일은 많다. “불합리하죠. 돈을 주는 사람이 갑이기 때문에.” ○○지자체 산하 문화재단은 일단 연주자에게 돈을 줘야 한다. 돈을 준 뒤, 갑질해야 한다.
코로나19 유행으로 공연장이 문을 닫으면서 많은 이가 음악을 떠났다. 연주와 레슨, 이 둘이 조금이라도 유지돼야 생계를 지킬 수 있다. 코로나19 유행은 연주도 레슨도 멈추게 했다. 관객이 객석의 10%, 20%만 들어올 수밖에 없어도, 공공기관이 예산에 반영해서 무대를 만들어주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밀접접촉자가 한 명만 생겨도 레슨은 줄줄이 끊겼다.
“유튜브에 악기 레슨 영상이 엄청 올라오고 있어요. 기타 레슨, 드럼 레슨. 오죽하면 그렇게 할까 싶으면서도, 악기 레슨은 유튜브로 하면 안 돼요. 수많은 시간을 들여 연습한 걸 한 번에 보여준다는 게 연주자의 마음도 상하고, 보는 이들도 보이는 게 다라고 생각하게 돼요.”
2년의 공백이 절벽이 된 연주자가 많다. “사람은 한 달만 사는 게 아니잖아요. 삶이 유지되면서 발전해야 하는데” 생계비든 생활비든 한두 달 지원받는다 해도 음악으로 돌아오기는 어렵다. “배달 라이더, 건설 노가다, 편의점 알바를 많이 하죠. 제일 많이 간 건 택배예요. 음악을 떠나 ‘쿠팡맨’들이 됐죠.”
선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 이야기를 해줬다. 취업률을 조사하는 전화였다. “취업하셨나요?” 음악을 하면서 학원에서 강의한다고 하자 “4대 보험 되시나요?” 4대 보험이 없었다. “취준생이시네요.” 이듬해 다시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음악 작업으로 바쁜 한 해를 보낸 뒤였다. 질문은 같았다. 여전히 4대 보험이 없었다. “취업이 안 되셨네요.” 선씨는 학교에 반문했다. “실용음악 전공하고 4대 보험 되는 곳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들고 공연장이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안타까웠던 ‘불합리’한 일들은 여전히 계속된다.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에서 건네지는 리베이트가 여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뮤지컬 공연에서 유명 배우 출연료가 올라가면 연주자들의 인건비가 깎이는 일도 여전하다.
사실은 일 이야기보다 음악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 ‘첫사랑이 떠오르는 노래’ 같은 제목을 달고 인터넷에서 재생되는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같은. “아이디어가 좋은 것 같아요. 과정보다 결과물 중심의 사회가 되어가니까요.”
그러나 아직 세상에 들을 음악은 너무 많고 좋은 음악도 너무 많다. 세상에 없는 가수의 목소리도 복원하는 지금, 음악이 좋은 이유를 잊은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도 음반을 만들 때 짧으면 6개월, 길면 4년이 걸리기도 하거든요. 악기를 넣어보고 빼보고.”
좋은 음악을 추천해달라는 주문에 한국 가요를 연도별로 들어보라고 한다. “획기적이고 센세이션한 음악이 있어요. 수준이 높아요. 남진의 음반을 죽 들어본 적이 있어요. <둥지>도 그렇고 정말 좋더라고요. 송창식의 음악을 들으면 연주도 좋지만 노래의 표현도 훌륭하죠.” 남진과 송창식이 아니어도 좋다. 록페스티벌도 다시 열린다. 선씨는 말한다. “음악은 휘발되기도 하지만 감정이 남아서 마음에 방을 만들어주잖아요.”
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노회찬재단×<한겨레21> 공동기획 내 곁에 산재-마지막 회: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을 만난 이야기를 전하는 칼럼입니다.
*‘내 곁에 산재’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좋은 글 써주신 필자와 사랑해주신 독자께 고맙습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다른 연재로 독자 여러분을 다시 만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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