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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원장의 “웃기고 앉았네”

설렁썰렁
등록 2019-10-14 02:31 수정 2020-05-02 19:29
여상규(자유한국당)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연합뉴스

여상규(자유한국당)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연합뉴스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학교, 시설, 직장, 지역사회 등에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장애인차별금지법 제32조)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위배된다. 예외는 없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도, 사법부 운영을 감시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라고 해도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법의 정당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웃기고 앉았네, 병신 같은 게.” 여상규(자유한국당)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10월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한 말이다.

이날 여 위원장이 “(패스트트랙 문제는) 순수한 정치 문제이고, 검찰이 함부로 손댈 일이 아니다. 철저하게 수사할 것은 하고 수사하지 말 것은 말아야 한다”고 말하자, 김 의원이 “수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 수사기관에 대고 국정감사장에서 감사위원 자격으로 해선 안 될 말”이라고 맞섰다. 회의장에선 여야 사이에 신상발언과 고성이 오갔다. 문제는 여 위원장과 한국당 의원들이 패스트트랙 관련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여 위원장은 지난 4월 여당과 야당 일부가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을 추진하자, 표결을 막기 위해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을 의원실에 가둔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국회선진화법 제165조는 “누구든지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폭력 행위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그는 경찰의 출석 요구를 세 차례나 거부했고 검찰의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자신이 고발된) 피의사건에 대해 하는 것이 무슨 신상발언이냐. 수사 외압이다”(표창원 의원), “피의자가, 당사자가 수사 책임자에게 수사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어떻게 국정감사에서 이럴 수 있느냐”(김종민 의원)는 등 항의가 쏟아졌다. “법사위 진행을 이렇게 하느냐. 위원장 자격이 없다”고 야유하자 여 위원장은 “듣기 싫으면 귀 막아요. 듣고 싶은 얘기만 듣잖아.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민주당은”이라며 김 의원에게 장애인 비하 발언을 쏟았다.

여 위원장의 마이크가 켜져 있었던 탓에 그의 욕설이 생중계되고 인터넷으로 퍼지는 등 파문이 커지자, 여 위원장은 1시간 만에 공개 사과했다.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송기헌 의원이 “영상이 돌고 있다”며 “사과를 먼저 하라”고 권하자 마지못해 여 위원장은 “흥분해서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 말을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튿날인 10월8일 민주당은 여 위원장에 대한 징계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 의안과를 찾아 징계안을 건넨 김영호 민주당 원내부대표와 정춘숙 원내대변인은 “여 법사위원장은 본인이 (패스트트랙 폭력 사건의) 피고발인임에도 (검찰에) 수사하지 말란 말을 했고, 동료 의원에게 차마 옮기기 어려운 막말과 욕설을 해 국회의원의 품위를 떨어뜨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 위원장 징계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하고 수사기관의 수사에 불응하며, 장애인차별법을 위반하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계속해도 괜찮을까.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블라블라


살인과 폭력의 연대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8차 사건으로 20년을 복역한 윤아무개씨가 재심 청구 결심을 밝혔다. 새삼 사건을 영화화한 (2003)이 그린 폭력의 시대를 다시 음미하게 된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1986년은 아시안게임을 치르면서 국가적 이벤트에 전 사회의 이목이 몰려 있던 때였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항쟁으로 폭발하기 전 최악의 인권유린이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던 때였다. 형사 조용구(김뢰하·사진)는 중간중간 시위 현장에 차출되어 폭력적인 진압에 가담한다. 용구가 혼자 술을 마시는 술집에서는 부천 성고문 사건 뉴스가 흘러나온다. 사건이 발생한 가상의 도시 태령읍 경찰은 수사를 위해 경찰 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모두 시위 진압에 참여했다는 답변을 듣는다. 경찰이 과로를 견디는 힘은 “나쁜 놈들을 잡는다”라는 것이지만, 범인의 실체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살인사건보다, 경찰에게 선악이 선명했던 것은 시위 현장이었을지도 모른다. 답답해 미칠 듯한 살인사건에서 경찰은 버릇대로 하던 폭력적인 수사에 폭력을 더한다. 용의자를 거꾸로 매다는 고문을 하고 잠을 재우지 않고는 자백을 받아내 현장검증을 나간다. 몰아세우던 또 다른 용의자는 결국 기차에 뛰어들어 사망하고 만다. 실제로 윤씨는 고문에 의해 자백했다고 재판정에서도 밝혔다. 최근 유력 용의자 이아무개의 8차 범죄 자백 이전, 화성을 찾은 언론에 마을 주민들은 “8차 사건 범인도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자유롭지 못했다. 사건의 용의자를 여러 차례 변호한 김칠준 변호사에 따르면 경찰은 미국 점성술사의 말을 듣고 용의자를 잡아다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 용의자는 대법원에서 가혹수사에 대한 승소 판결까지 받았지만 결국 자살하고 만다. 경찰 조사 뒤 자살한 이는 4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뼈아픈 무능은 그뿐이 아니다. 경찰이 빠르게 잡았더라면 살인은 그 정도로 그악스러워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화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에서, 범인은 “초기 허술하게 범죄를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아 범죄가 진화했다”고 말한다. 누구에게 살인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폭력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몸서리치는 기억만이 또렷하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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