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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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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차별주의자들

설렁썰렁
등록 2020-01-18 05:09 수정 2020-05-15 11:21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유튜브 화면 갈무리

“내가 만나보니까 의지가 보통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제 나도 몰랐는데, 선천적인 장애인은 의지가 좀 약하대요.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고 나오니까. 그런데 이제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된 분들은 원래 자기가 정상적으로 살던 것에 대한 꿈이 있잖아요. 그분들이 더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를 심리학자한테 들었는데. 대화를 해보니까 그렇게 의지도 강하면서….” (더불어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 ‘씀’에 출연한 이해찬 당대표 발언)

“대한민국의 장애인들에게 공개적으로 석고대죄함은 물론,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으로 책임지기를 촉구한다. 그리고 이 대표에게 분명히 말씀드린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장애인이 아니다. 삐뚤어진 마음과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장애인이다.” (박용찬 자유한국당 대변인)

1월15일 ‘장애’를 두고 여야 정치인들이 한 말이다. 정치권과 우리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최대한 ‘선해’해 두 정치인이 악의를 갖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민주당의 ‘1호 영입 인재’이자 24살 때 빗길 교통사고로 척수장애를 갖게 된 최혜영 강동대 교수를 칭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박용찬 대변인은 여당 대표를 공격하는 논평을 쓰면서 자신의 인식을 드러냈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번에도(정신장애인 비하 논란) 무의식적으로 했다고 말씀을 드렸고, 이번에도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다. (그렇게) 분석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정도인데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두 발언 모두 ‘장애’는 ‘비정상’ ‘부정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러한 인식은 언제든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비하하고 차별할 수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40대 뇌병변장애인에게 두 발언을 듣고 기분이 어떤지 전화로 물었다. 그는 “내가 의지가 약하다”(선천적 장애인이다)고 한숨을 쉬며 허탈하게 웃었다. 평소 겪는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주변에서 그러면 싫지만 넘길 수밖에 없는데… 정치권에서 그러면 짜증이 납니다. 장애 여성을 영입하고도 왜 그런가요. 한국당 논평은 기가 막히고요.”

민주당은 유튜브 영상을 내렸고, 한국당은 누리집에서 문제 발언만 삭제했다.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이 청년, 장애인, 여성 등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씁쓸한 풍경이다.

지난해 화제가 됐던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말한다.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비장애인에게 아무렇지 않은 것이 장애인에겐 특권이 될 수 있고, 이성애자가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성소수자에겐 특권으로 보일 수 있다. 고의적이고 조직적인 혐오만 차별이 아니라 평범한 발언과 행동이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평범한 차별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일상에서 내가 가진 ‘평범한 특권’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평소 못 보던 얼굴을 맞대는 설 명절, 자신의 ‘평범한 특권’을 인식하고 상대의 다름을 이해하려 한다면 좀더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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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블라


나는 ‘그들’이다


트위터 갈무리

트위터 갈무리


“Someone left their phone behind.” 이 문장에서 ‘their’는 틀린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해 영어권 대표 사전인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they’라는 단어를 ‘올해의 단어’로 선택했다.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they’가 ‘성별을 특정하지 않는 단수 인칭대명사’로 쓰인다고 한다. 웹스터 사전은 이 뜻을 사전에 추가했다. “영어에는 마땅한 중성 단수 인칭대명사가 없었다. ‘everyone’이나 ‘someone’처럼 성별을 특정하지 않는 단어를 받아줄 대명사가 없는 상황에서 지난 600년간 (사실상) 그 역할을 해온 건 ‘they’였다.”
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2017년 <ap통신>은 ‘they’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는데, 독자들의 항의가 많아서였다. <ap통신>이 밝힌 바에 따르면 ‘they’는 여러모로 쓸모 있다. “사실 단수 인칭대명사 ‘they’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기사를 쓸 수 있다. 그래도 이제 기준을 바꾸기로 한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먼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사람들의 구어에 ‘they’가 단수 인칭대명사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남성이나 여성으로 지칭할 수 없는 사람들을 표현할 대명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성별로 구분해 인칭대명사를 쓰는 영어권에서 LGBTQIAPK 등 계속 늘어나기만 하는 여러 성을 지칭할 수 있는 대명사로 ‘they’가 구원자로 등장한 것이다. 커밍아웃한 영국 팝스타 샘 스미스는 자신을 ‘they/them’이라 선언하고 이 말을 계속 의도적으로 썼다. “오랜 세월 젠더와의 전쟁을 치렀고 나 자신을 그대로 껴안기로 했다. 앞으로 나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they/them을 사용하겠다.”
남녀를 불문하고 ‘그’를 써온 한국어에서는 그런 혼란이 없다. ‘그녀’는 영문 번역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 이유가 남녀 평등 때문인지, 여자의 존재 자체를 지워서인지는 알 수 없다. 한국에서는 인간이 ‘그/그것’으로 분화되는지도 모르겠다. “저거 치워.”(2011년 드라마 <로열패밀리>에 나온 말)

*뉴스페퍼민트(https://newspeppermint.com/)의 기사 번역을 가져왔습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ap통신></ap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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