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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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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끝, 세 개의 수

설렁썰렁
등록 2019-12-21 07:23 수정 2020-05-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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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이 있었지만 2019년에도 한 가지 사실은 변함없었다. 올해도 약자들이 현실의 높은 벽을 쉽사리 넘지 못했다. 약자들의 ‘값진 승리’를 전하는 소식도 드물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최근 값진 승리를 거둔 이들의 소식을 전한다. 2020년에는 ‘약자들의 승전보’가 더 울려퍼지길 기대하며.

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인 이토 시오리가 성폭행 피해를 배상하라며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리했다. 도쿄지방재판소는 12월18일 이토가 자신을 성폭행했다며 야마구치 노리유키 전 방송 기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위자료 등 330만엔(약 3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4년간의 싸움으로 얻어낸 승리였다. 이토는 2015년 4월 취업 상담을 위해 당시 워싱턴 지국장이던 야마구치와 술을 곁들인 식사를 하다가 의식을 잃고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 경찰에 신고했으나, 2016년 검찰은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결국 이토는 2017년 자신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에서 성폭력 사실을 고발했다. 성폭력 범죄를 쉬쉬하는 분위기가 강한 일본 사회에서 그는 온갖 인신공격에 시달리면서도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토는 “많은 분이 저를 지지해주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12월17일 한국에선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을 와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 의장을 포함해 노조 와해 공작에 가담한 삼성 전·현직 고위 임원 등 7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3년 ‘에스(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세상에 알려지며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6년 만에 나온 법원 판단이다.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 수리기사의 관계가 불법파견이라는 것도 처음으로 인정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관심을 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다시는 어느 노동자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해 삶을 거는 일이 없도록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확산시켜나갈 것을 다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명의로 “노사 문제로 인해 많은 분들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 죄송하다”는 짧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인공지능(AI)이 사람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바둑의 이세돌 9단은 은퇴 대국에서 AI를 한 차례 꺾으며 인간의 자존심을 세웠다. 이세돌 9단은 12월18일 국산 AI ‘한돌’과의 대국 1차전에서 ‘불계승’(집 수의 차가 많은 것이 뚜렷하여 계산할 필요도 없이 이김)을 거뒀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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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블라


밥 같은 술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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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를 밥 삼아 먹을 수 있는 비밀이 밝혀졌다. 반주로 막걸리를 마시는 정씨가 애초 왜 밥을 안 시키는지, 막걸리 반주 ‘쪼렙’(초보)인 김씨가 밥을 시키고는 그답지 않게 몇 술 못 뜨고 왜 “배부르다”라고 하는지 그 이유도 밝혀졌다. 막걸리가 쌀막걸리라서만은 아니었다.
한국소비자원은 12월17일 맥주·소주·탁주 등 주류 20개 제품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영양성분의 자율표시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맥주 10개 제품의 한 병당 평균열량은 236㎉(500㎖ 기준)였고 소주(360㎖)와 막걸리(750㎖)는 각각 408㎉, 372㎉였다. 맥주는 대략 쌀밥 한 공기(200g 열량 272㎉), 소주와 막걸리는 한 공기 반 수준이었다. 이론적으로 알코올은 1g당 7㎉ 열량이 있어, 보통 17도 소주 한 병 360㎖는 341㎉, 맥주 500㎖는 175㎉ 열량을 낸다. 여기에 첨가물이 들어가 열량이 더해진다.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면 칼로리도 높아져서 고량주는 100㎖가 276㎉, 위스키는 237㎉, 보드카는 295㎉였다.
문제는 술병에 이 사실을 고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확인할 때 노안이 온 눈의 핏줄을 세워가며 확인할 만큼 ‘영양성분 표시’ 글자가 작아서, 가 아니다. 아예 열량은 표시하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7년 ‘알코올 섭취로 비만이 야기될 수 있다’며 ‘주류 자율영양표시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열량을 표시하는 한국 제품은 없다. 표시가 있었던 제품은 수입맥주 ‘하이네켄 오리지널’ 1개 제품이었다고 한다. 일반 맥주의 ‘라이트’ 버전에 왜 라이트인지는 ‘상대 비교’밖에 없다. 라이트는 일반 맥주보다 ‘33% 칼로리 Light(라이트)’라고 광고하는 식이다.
사실 애주가들 사이에선 ‘술 마실 때 안주 안 먹으면 살 안 찐다’는 통설이 있었다. 안주 안 먹는 사람이 살 안 빠지는 이유도 밝혀졌다. 구씨가 안줏발을 100에서 50 정도로 줄였음에도 살이 왜 찌기만 하는지 그 이유도 이제 비밀이 아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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