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2일 파키스탄 북부 국경 지역인 아보타바드의 작은 마을. 굉음이 울리며 헬리콥터 두 대가 다가왔다. 헬리콥터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친 3층집 마당에 진입했고, 중무장한 미 해군 ‘네이비실’ 대원 79명을 차례로 토해냈다. 발이 4개 달리고 코를 킁킁거리는 동물도 있었다. 개였다.
오사마 빈라덴 제거 작전에 투입된 개는 독일 셰퍼드나 벨기에 말리노이즈였을 거라고 이틀 뒤 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군견에게는 빈라덴의 은신처를 발견하는 임무가 주어졌을 것이다. 3층에서 발견된 빈라덴은 곧장 사살됐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인간과 개의 협동 작전을 지켜보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라진 네안데르탈인</font></font>아마 개가 최초로 인간 사회로 들어와 한 일 중 하나가 ‘사냥’이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리되지 않은 견해가 학계에 있다. 개는 언제 가축이 되었는가? 개가 처음 인간에게 길들 때의 풍경은 어떠했나? 늑대와 개의 화석이 많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의 가축화는 여전히 수수께끼 중 하나다.
또 하나의 미스터리도 있다. 3만 년여 전 갑작스러운 ‘네안데르탈인 실종’과 ‘호모사피엔스 등장’이라는 인류사의 격변이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호모사피엔스는 유라시아 대륙에 진출한 뒤 홀로 살아남았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친 기후변화와 사냥감의 감소 속에서도 번성했다. 반면 그전부터 유라시아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라졌다.
2015년 미국에서 출판된 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고생물학자 팻 시프먼은 호모사피엔스의 옆에는 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는 늑대와 비슷한 종을 사냥개로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시프먼이 ‘늑대-개’(wolf dog)로 부른 이 동물은 호모사피엔스보다 빨랐으며 냄새를 잘 맡았고 컹컹 짖어대며 도망가려는 사냥감을 잡아둘 수 있었다. 사냥꾼들은 더 많은 고깃덩어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주장은 대략 구석기시대 말부터 신석기시대 초인 1만8천∼1만2천 년 전에 개가 가축이 됐다는 주류 이론을 뒤집었다. 주류 이론에서 늑대는 유목하는 원시 부족을 쫓아다니거나 마을에 정주하는 이들의 청소동물(scavenger)로 살다가 개로 진화한다. 지금의 길고양이처럼 인간이 버린 음식을 먹고 살다가 인간 사회에 진입했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2009년 벨기에의 고예동굴에서 사육화한 늑대로 보이는 화석이 발견됐고, 방사능 연대 측정을 해보니 그보다 한참 전인 3만6천 년 전이었다. 이때라면 수렵채집인들이 사냥으로 먹고살던 구석기시대다. 그렇다면 이 동물의 쓰임새는 무엇이었을까? 시프먼은 고인류의 식량이던 매머드 대량 발굴터에서 이 동물이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그 시기가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직후라는 점에 착안했다. 그의 가설은 과감해진다. 유라시아로 진출할 때 호모사피엔스에게는 늑대 집단에서 교배해 만들어낸 개가 있었다. 개가 냄새를 맡고 사냥감을 발견해 쫓았고, 사피엔스가 올 때까지 포위하며 잡아두었다. 사피엔스는 최후의 일격을 가하면 됐다.
개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개는 호모사피엔스가 사냥하고 던져주는 음식 덕분에 안정적으로 먹이를 공급받고, 한밤중에는 다른 경쟁자들의 공격에서 보호받게 되었다. 개의 처지에서 보면,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길들여진 게 아니었다. 인간과 동맹함으로써 종의 안녕과 생존을 지속한 것이다. 이 시기 급작스럽게 줄어든 매머드 개체 수는 획기적인 사냥기술 발전과 관련 있다고 시프먼은 설명한다. 사피엔스는 매머드를 사냥하며 경쟁자인 네안데르탈인과 육식성 포유류를 앞질렀다. 네안데르탈인은 경쟁에서 밀려나 도태됐다. 다른 육식성 포유류도 마찬가지였다. ‘사피엔스-개 동맹’은 지구 생태계를 바꾸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개의 관점에서 역사를 본다면?</font></font>구석기시대 ‘사피엔스-개 동맹’이 지구 생태계에 변화를 몰고 왔다면, ‘인류세’라는 지금은 어떨까?
생물학자로 출발해 포스트휴먼 철학자로 거장이 된 도나 해러웨이는 현대사회에서 동물은 세 주체로 기능한다고 말한다. 첫째, 노동자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과 자본의 실핏줄이 되었던 말과 노새 그리고 현대 테마파크 산업의 돌고래까지, 이들은 노동하여 인간에게 이윤을 갖다바친다. 둘째, 상품이다. 펫숍의 기니피그, 고양이, 개 등 동물은 사고팔린다. 인간의 목숨값은 불의의 사고 때만 보험회사가 산정하지만, 동물의 목숨값은 언제나 ‘시세’가 정해져 있다. 셋째, 동물은 소비자다. 반려견과 반려묘는 시장에서 큰손이다. 그들이 제공받는 사료, 유기농 간식, 병원 치료, 펫시터 공유 서비스 등의 국내시장 규모는 1조8천억원에 이른다. 그들이 주는 ‘생명’의 활력과 교감은 산업을 창출하고 자본가와 노동자를 먹여살린다.
인간을 제외하면 개는 지구 생태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에서 공식 통계로 한 해 6만 마리가 버려지지만, 다른 측면에서 개는 다른 종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가족’이라 하면서, 월 8800원에 ‘도그 티브이’를 틀어주고, 집에 없을 때는 ‘도그 시터’를 불러 보살피고, 죽으면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해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대학(UCLA)의 그레고리 오킨 교수는 2017년 학술지 에 개·고양이가 일으키는 기후변화 효과를 산정한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에는 개·고양이가 16억3천만 마리 산다. 이들의 사료를 만들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무려 6400만t이었다. 차량 1360만 대가 내뿜은 온실가스, 미국인 6200만 명의 음식을 만드는 데 쓰이는 에너지양과 같았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개와 고양이가 먹는 사료가 육식이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은 온실가스의 주요 배출원 중 하나다. 개가 문명의 공범인 셈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인간과 개의 공진화</font></font>우리는 개에게 ‘유사 인격’을 부여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사회가 생명을 대하는 방식은 분열증적이다. 개·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은 ‘의인화’하지만, 돼지나 닭 등 밥상에 오르는 동물은 ‘사물화’한다. 동물 삶의 디테일에서 전자는 과시의 대상이고, 후자는 은폐의 대상이다. 개가 이렇게 특별한 지위에 오른 이유는, 아마 인간과 함께 하면서 독특한 능력을 진화시켜왔기 때문일 것이다.
시프먼은 진화 과정에서 ‘하얀 공막’(눈의 흰자위)이 호모사피엔스와 개에게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당신의 개를 보라. 개는 당신이 무엇을 바라보는지 신경 쓴다. 눈빛을 읽어낸다. 개처럼 흰자위가 보이는 동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인간 등 일부 영장류와 개과 동물에서 발견될 뿐이다. 눈동자가 흰자위에 둘러싸여 있으면, 상대방이 시선을 파악하기 쉬워진다. 사피엔스와 개는 사냥에 성공하기 위해 숨죽이며 시선을 교환했을 것이다. 우리 몸에는 개와 함께한 흔적이 새겨 있다.
그레고리 오킨 교수는 반려동물의 온실가스 배출을 다룬 논문을 출판하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개 기르는 사람을 비난하는 게 아니니 오해 마시라. 다만, 개의 생태에 비쳐 시장에서 생산되는 육식 사료가 너무 많아졌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인류는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이래 이렇게 고기를 많이 먹은 적이 없었다. 진화 속도는 문명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진화의학자 마크 핸슨과 피터 글루크먼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의 몸은 아직 문명에 낯설다’. 그래서 성인병에 걸린다. 최대의 육식 시대를 사는 건 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희생자는 비좁은 공장식 농장에서 살다 도축되는 동물이다.
우리는 개가 ‘동물의 공간’에 살 거라 착각한다. 아니다. 개는 ‘문명의 공간’에 산다. 사피엔스가 동물 전사와 눈빛을 교환하면서 매머드를 사냥하기 시작한 3만 년 전부터, 그들은 인간과 함께 지구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 의미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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