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세상을 바꾼 동물] 낭만으로 시작해 비극으로 끝난 사랑

1960년대 인간의 집처럼 꾸민 공간에서 돌고래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는 실험
등록 2020-05-25 18:00 수정 2020-05-29 01:46
1960년대 초, 존 릴리 박사의 주도로 사람과 돌고래가 함께 살 수 있도록 개조한 공간에서 돌고래 세 마리가 언어를 배웠다. 사진 속 인물은 마거릿 로바트. 다큐멘터리 <돌고래와 말을 한 여자> 화면 갈무리

1960년대 초, 존 릴리 박사의 주도로 사람과 돌고래가 함께 살 수 있도록 개조한 공간에서 돌고래 세 마리가 언어를 배웠다. 사진 속 인물은 마거릿 로바트. 다큐멘터리 <돌고래와 말을 한 여자> 화면 갈무리

지금 이 순간 보이저 2호는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우주를 항해하고 있다. 1977년 ‘골든레코드’를 싣고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떠났다. 혹등고래의 노래와 55개 언어로 된 ‘안녕하세요’ 인사말, 미국 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의 메시지가 녹음돼 실려 있다.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성간우주에 진보된 운명이 있다면 골든레코드의 소리가 재생될 것이다. 빈 병 하나를 우주의 바다에 실어보내는 것은 지구에 사는 생명에게 뭔가 희망적인 일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갈구하는 건 역설적으로 그들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간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외계인처럼 동물이 당신 옆에 서 있다. 우리는 동물과 소통할 수 있을까?

종간 의사소통 연구의 시초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침팬지 ‘님 침스키’, 고릴라 ‘코코’, 오랑우탄 ‘찬텍’ 등 말하는 유인원은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수화를 배워 초보 수준의 의사소통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진정 이들이 ‘언어’를 구사했는지에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학습으로 제한적이나마 뜻을 주고받은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인간-동물의 의사소통 연구는 돌고래에서 역사가 깊다. 1960~70년대였다. 돌고래는 한때 지구에 사는 ‘지적 생명체’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졌고, 인간과 돌고래가 소통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 낭만적이었고, (적어도 그때는) 과학적이었다. 아마 사랑과 해방을 외치는 히피와 평화의 열망이 용솟음치던 시대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이 실험은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실험을 주도한 이는 괴짜 과학자 존 릴리였다. 사이비는 아니었다. 1961년 저명한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돌고래끼리의 소리 교환’이라는 제목으로 글도 실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학계의 상식이 되었지만, 그는 이 보고서에서 돌고래가 휘슬음과 클릭음을 주고받으며 의사소통을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필’(feel)이 꽂혔을까. 돌고래가 딸깍거리고(클릭음)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휘슬음)이 하나의 언어 체계이며, 나아가 그들이 ‘돌고래어’로 인간과 소통하려 한다고 존 릴리는 확신했다. 그는 1963년 카리브해의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세인트토머스섬에 ‘돌핀하우스’라는 이름의 연구실을 열었다. 이곳에서 릴리는 ‘인간 언어’를 돌고래에게 가르치고 나아가 인간과 돌고래 모두 쓸 수 있는 ‘종간 언어’(Interspeicies Language)를 개발하려 했다. 릴리는 돌고래가 인간에 버금가는 ‘대뇌화지수’(EQ)를 지녔다며, 돌고래를 지구에 사는 또 다른 지적 생명체로 여겼다. 대뇌화지수는 몸의 크기를 바탕으로 예상되는 뇌 크기와 몸무게의 비율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이 실험을 후원한 것은 전혀 의외가 아니었다. 우주에서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만났을 때, 인간은 어떻게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이들에게 놓여 있었다. 예행연습으로 지구의 또 다른 지적 생명체인 돌고래를 연구해볼 수 있었다. 원주민 부족의 언어를 연구하던 저명한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도 합류했다.

인간 같은 성대가 없는데

돌핀하우스는 바닷물이 들어오도록 특수 설계된 풀장으로, 여기에 사람 사는 집처럼 책상·전화기·의자·침대가 비치돼 있었다. 유인원이 사람 사는 집에 살면서 수화를 배웠듯이, 돌고래도 비슷한 환경에서 인간 언어를 배웠다. 돌고래의 대모는 대학을 쉬고 연구원에 갓 들어온 마거릿 로바트라는 여성이었다. 암컷 ‘시시’와 ‘패멀라’ 그리고 수컷 ‘피터’, 세 마리의 큰돌고래가 실험을 위해 미국 마이애미의 수족관에서 섬으로 건너왔다.

눈에 띄는 건 피터였다. 로바트는 피터가 잘 볼 수 있도록 입술에 검은 립스틱을 굵게 칠하고 또박또박 말했다. “원, 투, 스리” 하면 피터는 “끼욱, 끼릭, 끼리” 하고 따라 했다. 하루 두 번씩 교육이 이어졌다. 피터의 모방 실력은 갈수록 늘었지만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다. 피터가 간혹 로바트의 무릎과 다리, 손에 몸을 비벼댔기 때문이다. 피터는 이제 갓 성체가 된 나이였다. 암컷인 시시와 패멀라를 풀장 안에 풀어놓으면, 피터의 학습 집중도는 더 떨어졌다. 2014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돌고래와 말을 한 여자>를 보면 로바트가 피터의 성욕을 해소하게 해주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애초부터 이 연구가 잘될 리는 없었다. 돌고래는 인간의 성대 같은 발성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피터는 그저 숨구멍을 여닫으면서 로바트의 소리를 흉내 냈을 뿐이다. 릴리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는 향정신성 의약품인 엘에스디(LSD)가 돌고래의 학습능력을 향상한다고 생각했다. 엘에스디를 피터에게 투여하자, 말하는 시간이 70% 이상 좋아졌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실험의 명망을 유지해주던 베이트슨이 손을 뗐다. 1966년 미 항공우주국도 지원을 끊고, 로바트도 돌핀하우스를 떠났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그 뒤 로바트는 피터가 자살했다는 얘기를 릴리에게 듣는다. 피터가 정말 자살했을까? 다만 돌고래에게 호흡은 의식적인 행동(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쉰다)이기에, 물 위로 올라오지 않는 방식으로 자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실험은 낭만적으로 출발해 낭만적으로 끝났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도 모든 행위가 면제되는 건 아니다.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고 상대방을 속박하는 건 스토커와 다름없다. 오히려 바람직한 사랑이란 열정의 불을 조정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 사이도 마찬가지다. 돌고래에게 인간 언어를 가르쳐보겠다는 건 지금 기준에서 보면 동물학대 혐의로 고발될 일이다.

일방적 사랑에 희생된 상징, 돌고래

사실 인간과 동물은 비언어적으로 소통한다. 개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개가 얼마나 배고픈지, 토라졌는지, 우쭐하는지 안다. 이런 것들의 상당수는 느낌에 기대었다.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지만 대개는 맞는다. 그럼에도 동물의 정신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고, 불확실성의 바다가 절반 이상 차지하는 행성이다. 우리는 이것을 고려해 동물을 대해야 한다.

릴리는 2001년 숨졌다. 말년에는 과거의 연구를 반성하며 고래 보호 목소리를 냈다. 1960~70년대를 통과하며 고래는 사랑과 연대, 평화주의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세계 각국이 돌고래쇼를 금지한 최근까지 역사의 진전은 그 시대 일방적인 사랑에 희생된 돌고래에게 빚지고 있다. 피터는 세상을 바꾼 동물이었다.

남종영 <한겨레> 기자 fandg@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