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그놈
주제 그놈
무대 동자동 9-20(서울시 용산구), 서울·경기 전역
인물 최용구(56·남·가명)
내용 최용구와 최용구가 있다. 최용구①은 동자동 9-20의 강제퇴거 주민이다. 한 뼘 방에서 11년을 살다가 동거하던 가난을 싸들고 동자동 밖으로 떠났다. 최용구②는 최용구면서 최용구가 아니다. 최용구①의 이름을 도용(2001년)해 불법 이득을 취한 뒤 그 책임을 최용구①에게 귀속시킨다. 최용구①에겐 ‘살림살이가 전부 들어가는’ 검은색 소형 배낭이 있다. 최용구②의 채무를 해결하란 독촉장이 배달될 때마다 최용구①은 배낭에 쑤셔넣어 모았다. 공공기관·금융기관·대부업체·수사기관에서 날아온 체납고지서·압류통지서·출두요구서들(2005년 이전 자료들은 버리거나 분실)이 그의 배낭 안에서 바퀴벌레들과 비벼졌다. 말라 바스러진 벌레 가루를 털어낸 자료에서 최용구②의 흔적을 좇았다. 경찰·지방자치단체·세무관청·대포차업계·대부업계·전문가들을 취재해 듬성한 뼈에 살을 입혔다. 최용구로 불리면서도 최용구를 뜯어먹고 사는 ‘보이지 않는 그놈(들)’의 흐릿한 형체가 밟혔다.
▶지난 연재 보러가기(아래)
① 딱지
② 이주
③ 이주2
④ 곡절
2011년 4월 최용구의 자동차가 수심 얕은 강 옆(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에 멈췄다.
강은 경기도 포천시 수원산 계곡에서 발원했다. 물줄기가 남서쪽으로 기어들어 남양주시와 구리시의 경계를 갈랐다. 609년 전 함흥(함경남도)에서 환궁하던 이성계는 그 강을 바라보며 8일을 묵었다. 아들 방원이 보낸 차사(1·2차 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오른 조선 태종이 아버지의 분노를 풀고자 보낸 사신)를 목 베며 귀경을 거부했던 그가 한양을 지척에 두고 다시 주저했다. 고요히 흐르며 왕의 회한을 달랜 강은 왕숙천(王宿川)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놈이 차에서 내렸다. 차량 번호 경기50다4078. 2001년 8월24일 생산된 매그너스2.0 DOHC 로열 흰색 승용차였다. 생산 4일 뒤 ㄷ캐피탈(대전시 대덕구 소재)에 저당권(채권가액 1804만원)을 설정하고 신규차로 등록했다.
그놈은 왕숙천 인근에 살았다. 차의 5번째 운전자였다. 그놈에 앞서 다른 4명의 그놈들이 같은 차를 몰았다. 5명(서로 다른 이름의 5명이 순차적으로 자동차손해보험 가입) 모두 최용구 앞으로 등록된 차를 최용구로 행세하며 사용했다. 10년 전 ‘최초의 그놈’이 뽑은 차가 2011년 ‘왕숙천 그놈’에게까지 이르렀다. 최용구가 빌린 것으로 돼 있는 ㄷ캐피탈 채무는 2005년 2998만6728원으로 불어났다. 그놈(들)에게 120만원을 담보대출해준 ㅎ캐피탈은 2002년 3월25일 최용구 앞으로 1158만7945원을 청구했다. 수원지방법원 오산시법원은 이튿날 ㅎ캐피탈의 자동차 가압류를 승인했다. 물이 흘러 모래를 쌓듯 시간은 흐르며 최용구의 빚을 쌓았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던 그놈은 낡은 차를 세워둔 채 사라졌다.
최용구 앞으로 11년 동안 132건 압류차는 두 달 이상 방치됐다. 2011년 6월30일 구리시가 견인했다. 이듬해 3월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경기50다4078은 폐차됐다. 한 달 뒤 구리시는 차주인의 주소지인 서울 용산구로 ‘자동차 방치 범죄 사실’을 이첩했다. 용산구는 ‘피의자 최용구’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왕숙천 그놈’은 차량 방치 7개월 전 구리시에서 주정차 위반 딱지를 끊었다. 2011년 1월10일 구리시는 과태료 체납으로 차를 압류했다. 과태료 부과와 압류 사실은 최용구 앞으로 통보됐다. 그놈(들)이 돌아가며 사용한 대포차를 전국의 지자체·경찰·법원·기관들은 14년 동안 132차례 압류했다. 그놈(들)이 새 차를 뽑은 지 5개월 뒤부터 압류 기록들(하단 인포그래픽 참조)이 최용구의 이름 위에 탑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경기50다4078을 운전하며 그놈(들)은 교통법규를 마음껏 어겼다. 버스전용차로를 넘나들었으며, 통행료를 내지 않고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책임보험 미가입 상태를 반복했고, 자동차 정기검사 시한도 지키지 않았다. 그놈(들)은 2007년 4월12일 서울 관악우체국 앞을 버스전용차로로 주행했다. 2009년 2월26일과 4월3일엔 각각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와 장안구에서 일을 봤다. 10월16일엔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치과 앞에 차를 세웠고, 11월5일 오후엔 용산구 한강로동 두피관리센터 건물에 나타났다. 2010년 1월22일 서울 신촌의 한 교회에 주차했다가, 4월25일엔 신촌 쇼핑센터에 모습을 보였다. 2011년 1월26일엔 용산구 청파동 공원빌라에서 그의 차가 발견됐다. 그놈(들)은 용산구에서 가장 많은 법규를 위반(62건)했다.
자동차가 폐차될 때까지 그놈(들)은 경찰에 발각되지 않았다. 그놈(들)의 대포차 사용엔 ‘기술’이 있었다. 현장에서 신원조회를 받지 않는 주정차 및 속도 위반은 수없이 저질렀다. 신원조회 위험이 있는 음주운전이나 접촉사고, 안전벨트 미착용 등은 한 차례도 단속되지 않았다. 그놈(들)은 낡은 매그너스2.0 DOHC 로열에 자동차등록원부 24장 분량의 법 위반 책임을 보태 최용구에게 떠넘겼다.
최용구는 핵분열했다. 바퀴벌레가 알을 까듯 많은 최용구(들)가 생겨났다. 2001년 취직시켜준다며 최용구의 명의를 가져간 ‘첫 번째 그놈들’(1077호 ‘죽으면 끝날까’기사 참조)이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서울역에서 노숙 중이던 최용구를 데려가 소머리국밥을 사줬다. 취직에 필요하다며 인감증명서와 주민등록 기록들을 떼게 했다. 고시원에서 6개월간 동거하며 확보한 최용구의 정보를 ‘첫 번째 그놈들’은 새로운 그놈(들)에게 팔았다. 전국에서 최용구(들)의 대포폰이 만들어졌다. 그들이 사용한 통화요금은 최용구(들) 중 ‘가장 가난한 최용구’의 통신채무가 됐다. 몇 명인지도 알 수 없는 최용구(들)의 법적 책임이 동자동 9-20에서 강제퇴거당한 최용구 한 명에게 집중됐다.
2009년 11월16일 오전 그놈(들)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대게요리전문점에 주차했다. 그곳에서 직선거리 560m 지점(방이동 160-×)에 그놈(들)의 전자상거래 회사가 있었다. 그놈(들) 중 한 명(대게전문점을 찾은 명의도용자와 동일인지는 알 수 없음)이 최용구를 대표자 삼아 통신판매업체를 차렸다. 2001년 12월20일 서울시청에 사업신고를 완료했다. 전화번호는 02-413-××××를 제출했다. 그때부터 송파구청이 발송한 등록면허세 체납세액 고지서가 매달(최근엔 2011~2014년 4년치 발송) 최용구에게 날아들고 있다. 최용구는 지체장애 6급이다. 한쪽 다리가 10cm 짧아 평생을 절룩이며 살았다. 사출업체에서 일할 때 프레스에 눌러 왼쪽 손가락 3개가 잘려나갔다. 그의 장애인등록증을 활용해 송파구에서 구두 수선 부스를 운영하는 그놈(들)도 있다.
“채무자의 변제시효는 민법에 의거해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및 직계존속과 배우자, 형제·자매의 순으로 승계되어 사망 후까지도 변제하도록 되어 있다.”
2012년 2월 추심업체 ㅍ에셋컨설팅은 동자동 9-20의 최용구 앞으로 채무 변제 촉구서를 보냈다. 대부·추심 업체들의 (가)압류·강제집행 통지서가 최용구의 가방을 채워갔다. 자기 이름으로 몇 건의 대출이 발생했는지, 자신에게 돈을 받아내려는 추심업체가 몇 곳인지, 상환을 독촉받는 금액이 모두 얼마인지 최용구는 계산하지 못했다. 매달 봉투를 뜯으면 상환액이 무럭무럭 자라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무서웠다. “전·월세 보증금, 금융계좌(예금·적금·보험), 급여를 가압류하고 본안소송·지급명령을 통해 공소시효를 10년 연장하며 채무가 종결되는 그날까지 법 조치를 진행할 것을 통보한다.”
그놈(들)은 2001년 전후 금융기관과 카드사·캐피털사를 돌며 최용구의 이름으로 돈을 빌렸다. 대부업체 대출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전체 대출금의 규모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그놈(들)은 하나은행에서도 대출을 받았다. 2003년 6월27일 하나은행은 최용구의 빚을 부실채권으로 분류해 ㅇ유동화전문유한회사에 매각했다. 보통 수십억∼수백억원대의 채권 덩어리가 총액의 5% 안팎 금액으로 거래된다. 채권을 산 추심업체는 양도받은 채권의 10%만 회수해도 적지 않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 한탕에 대한 기대를 버리기 힘들수록 채무자를 향한 추심 압박은 거세진다.
하나은행 채권을 산 ㅇ유동화전문유한회사는 2008년 11월 ㄷ자산관리대부에 최용구의 채권을 재양도했다. ㄷ자산관리대부의 추심기관인 ㅁ신용정보는 2009월 10월 최용구에게 원금과 이자를 합쳐 1251만64원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2010년 2월 ㄷ자산관리대부가 ㄱ자산관리대부로 넘긴 채권은 10개월 뒤 다시 ㅍ에셋컨설팅으로 양도됐다. 2012년 2월 ㅍ에셋컨설팅이 최용구에게 통지한 변제 규모는 2193만8805원으로 부풀었다. ㅍ에셋컨설팅은 2013년 소멸채권(금융기관-개인 간 발생한 채권은 5년 뒤 소멸)까지 되살렸다. 법원은 죽었던 채권에 새 생명을 부여했다. “사망 후까지” 받아내겠다며 ㅍ에셋컨설팅은 최용구를 압박했다.
금융기관과 대부·추심 업체들은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도 잘 폐기하지 않는다. 소멸채권도 가격 흥정에 쓸모가 있다. 값어치가 없는 채권까지 보태 덩치를 키우면 거래가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채권이 물건처럼 흥정되는 과정에서 개인의 비극도 빚의 크기만큼 자라 현실감을 잃는다.
그놈(들)은 최용구를 ‘보증채무자’로 활용하기도 했다. 최용구를 보증인으로 세운 그놈(들)은 김정희(가명)의 이름으로 신라저축은행(2013년 4월12일 영업정지)에서 대출했다. 김정희는 최용구가 모르는 여자였다. 2010년 11월23일 신라저축은행은 ㅎ파트너스대부와 ㅆ자산관리대부에 채권을 팔았다. 두 업체는 20일도 안 돼 ㅋ자산관리대부로 재양도했다. 2011년 7월27일 ㅇ파이낸셜대부로 매각된 채권은 2014년 7월 전후 ㅋ대부로 넘어갔다. 2011년 1월 ㅋ자산관리대부에서 952만7873원이었던 최용구의 채무는 2015년 1월 ㅋ대부에선 1364만6792원이 됐다. ㅋ대부의 압류·강제집행 통보 우편물은 최용구가 동자동을 떠날 때까지 9-20으로 꼬박꼬박 배달됐다.
‘왕숙천 그놈’이 1980~90년대부터 강을 봐왔다면 ‘성은을 입은 물’의 운명도 알았을 것이다. 왕의 숙박으로부터 564년 뒤 원진레이온(1966년 왕숙천 근처에 설립돼 1993년 폐업한 레이온 생산공장으로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 다수 발생)이 흘려보낸 폐수로 강은 오염됐다. 주변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교가 가사를 바꿔 부르며 강을 조롱(“왕숙천 맑은 물”→“왕숙천 똥물”)했다. 물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흘렀지만 시간이 흐른 자리엔 가난한 사람의 폐허가 남았다.
최용구가 모르는 최용구(들)가 전국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그놈(들)이 도처에 흘린 최용구(들)는 최용구가 평생 써보지 못한 돈을 쓰고, 평생 타보지 못한 차를 타며, 평생 가보지 못한 곳에 갔을지 모른다. 그놈(들)이 남긴 최용구(들)의 흔적이 늘어날수록 가난한 최용구의 자리는 점점 지워지고 있다. 그놈(들)의 뿌연 윤곽 앞에서 그놈(들)이 활용해온 ‘윤기 나는 시스템’과 ‘동자동 퇴거 주민 최용구’의 저는 다리만 선명하다.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영상 이창민 감독 liberachang@gmail.com*제5회에선 동자동을 떠나자마자 되돌아오는 9-20 주민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1년 추적 ‘가난의 경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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