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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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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쪽방마다 죽겠다·죽는다·죽었다

2차 퇴거시한 4월20일 넘긴 동자동 9-20, 45명의 ‘가난의 경로’, 1년 추적 취재… 계절이 바뀔 때면 차려지는 새로운 제사상, 고독사-연고자 없는 화장이 일반적인 ‘죽음의 거처’
등록 2015-04-30 09:13 수정 2020-05-03 00:54
가난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엔가 모여 있다. 보편적 가난은 확산되지만 절대적 가난은 집중된다. 절대적 가난의 경로가 응축된 건물이 있다. 서울남대문경찰서(서울 중구)에서 북동쪽으로 질러 오르면 낡은 건물들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새꿈어린이공원을 마주 보고 지하 1층에 지상 4층짜리 건물이 있다. ‘동자동 9-20’을 주소로 쓴다. 현대사의 격랑에 파손되고 산업화의 파고에 휩쓸린 이들이 한 뼘 방 안으로 모여이웃을 이루며 산다.
그들 45개 방의 입주민들이 강제퇴거를 요구받고 있다. 건물주는 보수공사를 이유로 전원 퇴거를 압박하고 있다. 퇴거가 현실화되면 9-20으로 자신들을 이끈 길 위에 그들은 다시 부려질 것이다. 가난의 길에서 ‘이탈할 기회’를 한 차례도 얻지 못한 사람들이 과거 거쳐왔던 길을 되풀이해 밟을 것이다. 은 그들의 경로를 추적하는 1년짜리 심층탐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덫과, 숨거나 숨겨진 극빈의 일상과, 빈곤의 길목마다 흐릿해지는 국가의 모습 등이 ‘가난의 지도’ 위에서 드러날 것이다. 생동 있는 탐사를 위해 영상 다큐멘터리 작업도 병행한다.건물주가 1차 퇴거 시한으로 정한 지난 3월15일께부터 45개 쪽방 주민들을 만나며 취재해왔다. 그들의 행로를 장기적으로 뒤따르고 주기적으로 탐사하는 심층취재는 ‘빈곤이 이동한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1년 뒤 문장과 영상이 결합한 심층탐사의 마지막 보도를 내놓기까지 한 달 안팎을 주기로 연속 기사를 선보이겠다.
글 이문영 기자, 사진 류우종 기자, 편집 구둘래 기자, 디자인 장광석
1년  추적연재


가난의  경로


① 딱지
주제  딱지
무대  서울 용산구 동자동 9-20
등장인물  209호 ㄱ(74), 201호 ㅂ(78), 204호 ㅇ(61), 지하 4호 ㅇ(63), 지하 7호 ㅇ(63), 211호 ㄱ(53)
줄거리  9-20 쪽방 건물 45개 방문에 일제히 노란 딱지가 붙었다. 지난 2월4일 건물주의 ‘전원 퇴거’ 요구는 예고 없이 시작됐다. 어떤 주민은 분노했고, 어떤 주민은 상심했으며, 어떤 주민은 절망했다. 퇴거 논란이 벌어지는 동안 겨울은 가고 봄이 왔다. 지번 9-18, 9-19, 9-20 세 건물은 동자동 쪽방촌 메인 거리에 나란히 있다. 세 건물 맞은편 새꿈어린이공원(동자동 8-1)에 4월1일 파란 천막이 처졌다. 촛농으로 촛불을 고정한 제사상 위에 3개의 영정이 섰는데….


동자동(서울 용산구) 9-20 쪽방의 한 주민 방에서 그의 아픈 몸을 지탱하는 약병으로 탑이 세워졌다.

동자동(서울 용산구) 9-20 쪽방의 한 주민 방에서 그의 아픈 몸을 지탱하는 약병으로 탑이 세워졌다.

구겨진 세종대왕을 손으로 쓰다듬어 폈다.

211호 남자 ㄱ(53)이 봉투에 1만원을 밀어넣었다. 209호 ㄱ(남·74)을 위해 빼둔 돈이었다. 그들은 9-20 쪽방에서 210호를 사이에 두고 살았다. ‘좋은 여행 되십소사.’ 그가 209호에게 봉투를 건넸다. 돈을 받은 209호는 제사상 위에서 말이 없었다. 그는 영정이 되어 길 떠날 채비를 했다.

꽃 피는 계절마다 우수수

그날 아침 211호는 209호의 방에서 냉장고를 꺼내 3만원에 팔았다. 1만원을 떼어 209호의 부의금으로 올렸다.

“내가 7만원 주고 구해서 방에 넣어준 냉장고야. 그걸 내가 3만원에 판 게 잘못됐어?”

주변이 던지는 눈치를 211호는 맞받아 퉁겼다.

주민들이 공원 여기저기 앉아 육개장에 밥을 말았다. 음식은 산 자를 위한 것이었다. 배고픈 자의 죽음이 차린 밥으로 산 자들이 고픈 배를 채웠다. 굶주린 비둘기들이 먹을 것을 찾아 모가지를 뻗었고, 꽃망울 터뜨린 목련 아래서 고성의 욕설이 오갔다. 거리에서 타는 향불은 빨리 사위었다.

“누구야?”

제사상의 얼굴들을 살피던 할머니가 말했다. “어머어머.” 영정의 주인을 알아본 할머니가 잠시 말을 잊었다. “만날 여기 공원에 앉아서 나랑 이야기하던 양반인데, 우야꼬.” 3개의 영정 앞에서 할머니는 망연했다. “저 사람(9-20 쪽방 209호)은, 저 사람(5-4 쪽방 ㅈ·72·남)도, 저 사람(9-19 쪽방 ㅊ·56·남)까지….” 입자가 깨지고 흩어진 영정 사진 속 얼굴들은 살았을 때처럼 죽어서도 표정이 갈라졌다. 할머니가 부의 봉투 3개에 2만원씩을 넣었다.

“왜 그렇게 많이 하세요?”

‘임시 상주’ 김창현(동자동사랑방 대표)씨가 말렸다.

“내가 죄가 많아서.”

할머니에게 6만원은 한 달 수급비 48만원의 10분의 1이 넘는 ‘거액’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치를 수 있는 이상의 ‘죗값’으로 영정 주인들을 떠나보냈다.

2월과 3월의 망자들이 4월1일 합동으로 추모됐다. 누구의 가족도 찾아오지 않았다. 살았을 때 이웃이던 주민들이 익숙하고 덤덤하게 절차를 치렀다. 매번 똑같이 슬퍼하기에 이 동네에선 너무 많이 죽었다.

“쌀도 없이 뭐 먹고 살았노.” 209호 빈방도 주인처럼 싸늘하게 냉동돼 있었다. 작은 플라스틱 통엔 쌀이 한 움큼쯤 남아 있었다. 빨랫줄 위에서 팬티와 양말이 주인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10가지가 넘는 약의 처방전이 낡은 서랍 안에 가득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가졌던 모든 것은 헌것이었다.

닷새 전에도 파란 천막은 같은 자리에 지붕을 펼쳤다. 9-19 쪽방 201호 노인(80·남)의 빈소였다. 그는 3차례 뇌경색 끝에 사망했다. ‘저 사람’ ㅊ(202호)의 옆방에서 30년을 살았다. 이웃한 두 방이 며칠 간격으로 주인들을 잃었다. 동자동에서 올해에만(3월 말까지) 6명이 죽었다. 꽃 피는 계절이 올 때마다 주민들은 우수수 졌다. 겨울 동안 웅크렸던 긴장을 놓으면서 겨울 동안 웅크렸던 생명들이 움틀 때 그들은 떠났다. 2014년엔 최소 14명(상자 기사 참조)이 이생을 정리했다. 저승사자가 실적을 채우지 못할 때마다 들러 ‘머리수’를 흥정하는 듯싶었다. 주민들에게 환절(換節)의 시간은 살아남아야 하는 나날이었다.

“오늘 오후 2시에 화장했어요. 서울시립승화원(벽제)에서요.”

4월20일 서울 중구청의 장례대행업체 대표가 소식을 알렸다. 209호 ㄱ의 마지막은 그렇게 ‘처리’됐다. 211호의 노잣돈을 받고도 20일이 더 지나서였다.

지난 4월20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에선 2월과 3월에 사망한 쪽방 주민 3명의 추모제가 열렸다. 맨 왼쪽 영정 속 얼굴이 9-20 쪽방 209호에서 살다 세상을 떠난 ㄱ씨다. 그는 가족이 주검을 인수하지 않아 사망 두 달여 만에 무연고로 화장됐다.

지난 4월20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에선 2월과 3월에 사망한 쪽방 주민 3명의 추모제가 열렸다. 맨 왼쪽 영정 속 얼굴이 9-20 쪽방 209호에서 살다 세상을 떠난 ㄱ씨다. 그는 가족이 주검을 인수하지 않아 사망 두 달여 만에 무연고로 화장됐다.

화장장 무연고 납골묘에서 멈춘 삶

ㄱ은 9-20 쪽방에서 5년을 살았다. 입원 중이던 국립중앙의료원에서 2월15일 죽었다. 건물주가 방문마다 ‘퇴거 요구’ 딱지를 붙인 뒤 11일이 지나서였다. 췌장암 말기였다. 누군가 그의 방문에서 딱지를 떼어내고 ‘근조’를 써 붙였다.

“4월14일 장례업체에 화장을 요청했습니다.”

중구청 공무원이 기록을 살폈다. 209호의 가족이 나타나지 않자 병원은 3월30일 중구청에 ‘가족 찾기’를 의뢰했다. 친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구청은 ‘시신 인수’를 통보하는 우편물을 보냈다. 우편물은 반송됐다. “거주지가 바뀐 것 같다”고 구청 담당자는 판단했다. 대전에 사는 조카와 전북 무주에 사는 6촌 동생에겐 병원에서 건 전화가 닿았다. “상의해보겠다”던 그들은 연락을 끊었다. 시신이 된 209호는 가족으로부터 인수를 거부당했다. 중구청은 그를 무연고 사체로 최종 분류(14일 안에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무연고 처리)하며 국가의 역할을 끝냈다. 병원 장례식장 냉동고를 두 달 이상 떠나지 못하던 그가 마침내 뼛가루가 됐다. 그의 인생 행로는 화장장 무연고 납골묘에서 멈췄다.

장례 이틀 전 211호 ㄱ이 209호의 방 자물쇠를 땄다. 방마다 퇴거 딱지를 붙였던 관리인(현재 그만둠)은 209호 방 열쇠를 그에게 맡기며 짐정리를 부탁했다. 209호의 옆방 210호 방문도 잠겨 있었다. 방주인 ㅊ(60)이 있었다면 관리인은 그에게 열쇠를 맡겼을지 몰랐다. ㅊ은 지금 교도소에 있다. 폭행 시비로 500만원 벌금형을 받고 노역 중이다. 벌금 낼 돈이 없을 때마다 ㅊ은 교도소 노역으로 하루 5만원씩을 깠다. 그가 구치소에서 관리인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2월이면 나갈 테니 방을 빼지 말라”고 청했다. “날짜 계산을 하면 벌써 나왔어야 하는데 노역이 아니라 다른 일로 들어간 거 아닌가 몰라.” 211호는 짐작했다.

2년쯤 된 일이다. ㅊ이 입주하기 전 210호에 살던 사람도 혼자 죽어 발견됐다.

“젊은 놈이 아침 늦게까지 자고 있어. 저녁에 봐도 그대로야. 다음날 봐도 또 그대로야. 용산경찰서에 신고했지. 날마다 209호하고 붙어서 술 먹더니만. 그놈도 암이었어. 젊은 놈 먼저 가고 이제 늙은 놈까지 따라간 거야.”

209호의 짐이 빠지는 걸 지켜보며 201호 주민 ㅂ(78)이 혀를 찼다. 209호 맞은편 206호에 살던 그는 209호와 210호의 술장단에 질려 복도 끝 201호로 옮겼다.

동자동(서울 용산구) 9-20 쪽방의 한 주민이 공동 세면장 겸 취사장에서 발을 씻고 있다

동자동(서울 용산구) 9-20 쪽방의 한 주민이 공동 세면장 겸 취사장에서 발을 씻고 있다

“벌면 뭐해, 그 돈으로 술 처먹고 죽을 거”

“쌀도 없이 뭐 먹고 살았노.”

209호 빈방도 주인처럼 싸늘하게 냉동돼 있었다. 작은 플라스틱 통엔 쌀이 한 움큼쯤 남아 있었다. 반찬으로 먹었을 마른 멸치들이 비린내를 풍겼다. 한 뼘 방을 가로지른 빨랫줄 위에서 팬티와 양말이 주인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10가지가 넘는 약의 처방전이 낡은 서랍 안에 가득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가졌던 모든 것은 헌것이었다. 뜯지 않은 참치캔 1개와 돼지고기 장조림 1캔만 새것이었다. 방문 위 때 묻은 벽지에선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문장이 선명했다. “이○○씨(기초생활수급자) 다달이 방값 줌.” 매달 방값을 냈다는 증거를 누군가는 그렇게라도 남겨야 했을 것이다. 그의 길마다 함께한 검은색 여행가방이 동반자를 잃고 선반에서 쓸쓸했다. 201호 ㅂ이 말했다.

“저 가방 하나 들고 들어와서 저 가방 하나 들고 나가는 거야. 여기 있는 짐 다 필요 없는 거야. 냄비, 벽시계, 밥솥 모두 ㄱ이 고물 (수집) 하며 주워 쓴 거야. 가져갈 수 없으니까 그냥 버리고 가는 거야. 살 때도 그렇게 살고 죽을 때도 그렇게 죽는 거야. 우리는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가는 거야.”

211호 ㄱ이 건물 밖으로 짐을 내렸다. 고물 하며 장만한 209호의 살림살이가 고물 줍는 이웃들에게 나누어졌다.

첨단과 수직의 고층 빌딩 아래서 낡았고, 삭았고, 헐었다. 9-20 주위에선 죽음이 맴을 돌았다. 벌레가 파먹은 듯한 후미진 땅에서 광신여인숙·성남여인숙·미경여인숙 등과 섞여 도시의 이면을 구성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최하의 주거 공간에서 인간에게 던져진 가장 열악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죽음과 동거하고 있다.

대나무는 순정하고, 호랑이는 포효했다. 죽(竹)과 호(虎)가 201호 쪽방 벽을 장식했다. 209호가 살아 있을 때 고물일을 하며 주워온 액자들이다. “새벽부터 리어카 끌고 다니며 지독하게 벌면 뭐해. 그 돈으로 술 처먹고 죽을 거.”

ㅂ이 액자를 닦았다. 뒤늦게 아들의 자살을 안 뒤부터 209호의 술이 심해졌다고 ㅂ은 기억했다. 지방으로 건설노동을 다니던 그가 몇 달 만에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그는 휴대전화가 없었다. 자활지원기관으로 전달된 아들의 사망 소식을 그는 1년이 지나 알게 됐다. 아들은 어느 스키장 부근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됐다고 했다. 6촌 동생이 주검을 수습해 묻었다며 209호는 201호에게 술 취해 말했다. ‘아버지의 주검을 수습하라’는 우편물이 서울 중구청으로 반송됐을 때, 편지의 수신인은 아버지보다 먼저 죽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 박사(○의 별명), 환청이 들려.”

209호는 암의 고통으로 헛것을 보고 들었다. 204호 ㅇ이 119를 불러 병원으로 옮겼다. 7만~8만원을 써가며 죽과 주스를 사들고 병문안도 다녔다.

ㅇ은 ‘우리동네 나눔이웃’이다. 서울시가 위촉했다. ‘멋진 나눔이웃상’도 받았다. 서울시쪽방상담소장이 줬다. 그는 봉사활동에서 보람을 찾으며 산다.

끝내 떠나려고 그랬을 것이다. “병원에 더는 오지 말라”던 209호의 말이 섭섭했는데, 지켜보는 사람 없이 홀로 죽은 그의 배려가 안쓰러웠다.

9-20의 한 여성 주민이 5천원짜리 지폐를 손에 꼭 쥐고 있다.

9-20의 한 여성 주민이 5천원짜리 지폐를 손에 꼭 쥐고 있다.

죽음의 흉터를 지우려 먹는 약이 40알

소주로 수면제 100알을 털어 먹고, 한센병 치료제를 모아 삼키고, 한강다리 밑으로 뛰어내리고, 달리는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고, 기차 밖으로 몸을 던지고….

204호의 마음속은 ‘죽는다’는 것으로 가득했다. 죽음으로 달려들 때마다 그는 몸에 차곡차곡 상흔을 쌓았다. 머리를 다치고, 팔이 부러지고, 허리가 꺾이고, 내장이 상했다. 한강 밑으로 가라앉을 땐 살고 싶어 허우적거리는 자신이 낯설었다. 죽으려고 먹은 약의 흉터를 지우느라 그가 매일 먹는 약이 하루 40알이다. 죽음 곁을 서성이는 글들로 그의 일기장은 빼곡했다.

“비밀이야. 더는 말 못해.”

‘어떤 수칙’을 외우다 그는 검열하듯 자기 말을 끊었다. ㅇ을 9-20으로 인도한 그의 “깡통 같은 인생”(*3회 ‘곡절’ 편에서 계속)은 듣고 있는 이를 움찔하게 했다.

“세월호…. 그 혈기왕성한 애들은 두고 나를 데려갈 일이지.”

9-20 입구 앞 소파에 앉아 있던 204호 ㅇ이 계단에서 내려오는 지하 4호 ㅇ(63)을 부축했다. 지하 4호 ㅇ은 극심한 관절염으로 걸음마다 10cm씩 전진했다. 아픈 다리를 끌고 그는 열심히 무료급식소를 다녔다. 밥은 평생 온힘을 짜내야 간신히 닿을 수 있는 물질이었다.

지난해 10월 말 토요일이었다. 지하 4호가 밥을 먹고 돌아왔는데 ‘그 인간’(56)이 죽어 있었다. “전날 저녁 찾아와 며칠만 재워달라더라고. ㅎ고시원에서 방값 못 내 쫓겨났다면서. 밤새 술 먹고 담배만 피웠제. 토요일 아침 밥 먹으러 가자니께 어지러워서 못 가겠대. 방문을 여니께 엎어져 있어. 덩치도 큰 인간이 꿈쩍을 안 해. 만져보니까 차갑더라고.”

지하 4호는 ‘그 인간’과 산에서 만났다. 사직공원(서울 종로구 사직동) 뒷산에서 10년을 노숙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여름에도 거기, 눈이 무릎까지 쌓이는 겨울에도 거기, 거기 나무 밑에서 이불만 덮고 잤당께. 머리만 우산으로 가리고.”

‘그 인간’은 주로 산 밑 정자에서 잤다.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진 ‘그 인간’도 209호처럼 무연고 시신으로 화장됐다.

106호 남자(70대)는 ‘그 인간’보다 7개월 먼저 죽었다. 사망 3~4일 만에 발견됐다. 방문 틈으로 썩는 냄새가 새어나왔다. 방바닥에선 그가 죽으며 토한 피가 시커멓게 말라붙고 있었다. 생전 그의 다리는 늘 부어 있었고, 젓가락처럼 근육을 잃어갔다. 폐병이란 말이 있었다.

그 ‘무서운 방’을 지하 7호 ㅇ(63)이 정리했다. 혼자 움직이지 못했던 106호는 누운 채 대소변을 흘렸다. 이부자리를 들치자 구더기가 버글댔다. 지하 7호는 걸레로 핏자국을 닦아냈다. 구더기는 이불로 둘둘 말아 내다버렸다. 방을 청소하고 짐도 빼냈다. 지하 7호의 방에 놓인 반투명 플라스틱 수납장은 106호에서 가져온 물건이다. 문 앞에 놓인 유선 전화기는 304호 방을 치울 때 챙겼다. 그 방의 주인은 추운 겨울 숨을 멈췄다.

9-20 쪽방 주민 ㅇ씨는 좁은 방안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닦는다. 사망자가 생긴 방을 치워주고 가져온 살림살이나 동대문 벼룩시장에서 사온 중고제품을 깨끗하게 닦은 뒤 5천원 정도를 붙여 쪽방 주민들에게 판다.

9-20 쪽방 주민 ㅇ씨는 좁은 방안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닦는다. 사망자가 생긴 방을 치워주고 가져온 살림살이나 동대문 벼룩시장에서 사온 중고제품을 깨끗하게 닦은 뒤 5천원 정도를 붙여 쪽방 주민들에게 판다.

남은 자 밥벌이를 위해 남겨진 고물
“죽어도 깨끗이 있다 죽어야 해. 대비하는 거야.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니까. 죽는 건 겁 안 나. 노숙 오래하면서 얼어 죽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봤어. 길에서 죽고 싶진 않아. 치매라도 걸리면 똥오줌은 누가 받아줘. 그 전에 대가리 처박고 죽을 거야. 방 안에서 깨끗하게 죽는 게 소원이야.”

지하 7호 ㅇ은 고물을 주워 생계에 보탰다. 죽은 자의 방을 치우고 망자들이 남긴 살림을 고물로 가졌다. 죽음이 흔한 동자동에선 범상한 밥벌이다. 그를 잘 봐서인지 관리인은 죽음을 닦을 권리를 그에게 줬다. 9-20에서 그는 3층의 3개 방, 2층과 1층에서 1개 방씩, 지하의 1개 방에서 죽음을 뒤처리하고 유품을 옮겨 팔았다. 낡은 텔레비전과 소형 냉장고 등이 ‘큰 물건’이다. 걸레로 먼지를 닦아 9-20 출입구 벽에 ‘상품 목록’을 게시한다.

“매물. 신형 벽면 TV 19인찌 1만원. 전기장판 1인용 1만원. 손수레(딸딸이) 1만원. 작은 까쓰렌지 7천원. 지하 7호 문의.”

고물로 발 디딜 틈 없는 작은 방에서 그는 ‘꽃밭’을 일구고 있었다. 그가 어디선가 주워왔을 조화 뭉치가 먼지를 쓰고서도 화사했다.

201호 ㅂ의 방은 비좁지만 청결하다. 9-20에서도 그의 방은 깨끗하기로 손꼽힌다. 그는 자신의 방과 복도를 말끔하게 쓸고 닦는다. 벽지를 사다 물 새는 벽도 새로 발랐다.

“죽어도 깨끗이 있다 죽어야 해. 대비하는 거야.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니까. 죽는 건 겁 안 나. 노숙 오래 하면서 얼어 죽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봤어. 길에서 죽고 싶진 않아. 치매라도 걸리면 똥오줌은 누가 받아줘. 그 전에 대가리 처박고 죽을 거야. 방 안에서 깨끗하게 죽는 게 소원이야. 그런데 뭐라. 여기서 나가라고? 나가서 길바닥에서 죽으라고?”

봄이 짙어지고 있었다.

9-20 건물 앞에 가로등이 켜졌다. 쪽방의 어둑한 조명과 뒤편 고층 빌딩의 선명한 불빛이 대조를 이룬다.

9-20 건물 앞에 가로등이 켜졌다. 쪽방의 어둑한 조명과 뒤편 고층 빌딩의 선명한 불빛이 대조를 이룬다.


죽음의 밀도



절반이 ‘고독사’


왜 그렇게 많이 죽을까.
가난의 밀도는 질병의 밀도와 일치한다. 가난해서 병들고, 병들어서 가난하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든 가장 가난한 동네로 죽음은 마실 가듯 찾아와 스스로를 일상으로 노출시킨다.
동자동(서울 용산구)엔 69채의 쪽방 건물이 있다. 주민 1100여 명이 깃들여 산다.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이 집계한 지난해 사망자 수는 14명이다. 두 단체·조합이 사망 사실을 확인한 경우만 그렇다. 이 가운데 9-20 주민이거나 9-20에 와서 사망한 사람은 2명이다. 2015년 현재까지로 기간을 넓히면 9-20 사망자는 3명이다.
사망자 14명 중 절반인 7명이 쪽방에서 ‘고독사’했다. 가족이 주검 인수를 거부해 4명 이상이 무연고 처리됐다. 대부분 암이나 당뇨병, 알코올중독, 호흡기 질환 등의 중병을 앓았다.
2012년 건강세상네트워크가 동자동 주민 225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가장 많은 수가 답한 질병(복수 응답)은 고혈압(40.6%)이었다. 관절염은 29%, 당뇨병은 23%였다. 정신질환도 21%나 나왔다.


동자동 9-20 쪽방 주민 분류 : 전체 48개 방 가운데 지하 창고, 1층 교회, 4층 옛 관리인 방을 제외하고 현재 거주 중이거나 퇴거 논란 전까지 거주했던 방 45개의 입주민을 분류

동자동 9-20 쪽방 주민 분류 : 전체 48개 방 가운데 지하 창고, 1층 교회, 4층 옛 관리인 방을 제외하고 현재 거주 중이거나 퇴거 논란 전까지 거주했던 방 45개의 입주민을 분류

동자동 9-20 쪽방 개요 : 제2종 일반주거지역 주구조 철근콘크리트·연와조. 영업·주택 건축면적 86.31m² 연면적 400.59m². 층별면적 지하 83.54m², 1층 83.54m², 2층 86.31m², 3층 86.31m², 4층 60.89m²

동자동 9-20 쪽방 개요 : 제2종 일반주거지역 주구조 철근콘크리트·연와조. 영업·주택 건축면적 86.31m² 연면적 400.59m². 층별면적 지하 83.54m², 1층 83.54m², 2층 86.31m², 3층 86.31m², 4층 60.89m²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회 ‘이주’에선 9-20 쪽방 주민들이 흘러들어오고 다시 흘러나가는 경로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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