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지휘부나 사고 현장에 같이 출동한 해경들에게도 승객 구조 소홀에 대한 공동책임이 있다.”
광주고법 형사6부(재판장 서경환)는 지난 7월14일 세월호 침몰 당시 구조 활동에 실패 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일(57·해임) 전 해경 123정장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을 선고하며 이렇게 밝혔다. 1심처럼 김 전 정장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인정하면서도, 1심과 달리 해경 지휘부와 다른 해경들의 공동책임까지 지적한 것이다.
해경 지휘부의 잘못으로는,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36분께 해양경찰청 상황실에서 휴대전화를 걸어 2분22초 동안 통화하고,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상황실 등에서도 주파수공용무선통신(TRS)으로 20여 차례 통신해 보고하게 하는 등 김 전 정장이 구조 활동에 전념하기 어렵게 했다는 점을 꼽았다.
9시36분 123정 “승객이 선박 안에 있다”소형 경비정인 123정(100t급)은 4월16일 오전 8시57분 목포서 상황실에서 “350명 태운 여객선 병풍도 북방에서 침몰 중”이라며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23정은 최고속도(25노트·시속 45km)로 사고 현장에 달려갔다. 사고 현장 2마일(3.2km) 앞에서 123정은 TRS로 “선박이 좌현으로 45도 기울어져 있”다고 보고한다. 오전 9시27분이었다. TRS는 해경 지휘부(본청, 서해해양경찰청, 목포서 상황실)가 침몰 사고 직후(오전 9시2분)부터 현장 구조 세력(123정장, 헬기 511·512·513호)를 지휘한 다중 무선통신이다.
그러나 123정의 첫 현장 보고는 TRS가 아니라 휴대전화로 이뤄졌다. 본청 상황실에서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김 전 정장은 1심 재판에서 “본청 상황실과 2~3분간 통화했다”고 진술하면서도 통화 내용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2015년 1월28일 광주지법에서).
123정의 첫 현장 보고 전문은 보도(제1058호 표지이야기 ‘운명의 40분 해경은 4번의 현장 보고를 무시했다’)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이 입수한 본청 상황실과 2분22초간 통화한 내용을 보면, 본청 경비과장은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인다”는 김 전 정장의 보고에 크게 당황한다.
123정장 현재 (세월호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이고 구명벌(구명뗏목) 투하도 없고, 선박 안에 있나봅니다.
경비과장 아니, 갑판에 사람들이 한 명도 안 보여요?
123정장 갑판은 안 보이고요, 간간이 보이는데 (고무)단정으로 구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비과장 사람들이 바다에 뛰어내렸어요, 안 뛰어내렸어요?
123정장 바다에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경비과장 그럼 사람이 배에도 안 보이고 바다에도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123정장 네, 네. 배는 좌현 50도 기울어졌고요.
경비과장 침몰할 것 같아요, 안 할 것 같아요?
123정장 지금 상태로 봐서는 계속 기울어지고 있어요.
경비과장 지금부터 전화기 다 끊고 모든 상황을 TRS로 실시간 보고하세요.
해경 지휘부는 “실시간 보고”만 강조할 뿐 김경일 전 정장에게 세월호 승객의 퇴선을 유도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 전 정장의 첫 현장 보고를 서해청이나 목포서 상황실에 전달하지 않고 묵살해버렸다. 그 결과 다른 상황실은 세월호의 긴박한 상황을 8분이나 늦게 인지했다. 김 전 정장이 9시44분에야 TRS로 보고했기 때문이다. “현재 승객이 안에 있는데 배가 기울어 못 나오고 있답니다. 일단 이곳 직원 한 명을 배에 승선시켜 안전 유도하게끔 유도하겠습니다.”
김경일 전 정장과 본청 상황실과의 9시36분 통화 내용 공개는 항소심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우선 김 전 정장의 업무상 과실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크게 확대됐다. 1심에서는 김 전 정장이 현장에 도착해 승객이 선내에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퇴선을 이끌지 않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 책임을 “9시44분 이후”로 못박았다. 9시44분에야 123정이 고무단정으로 구조한 승객(선원)들을 통해 승객이 배 안에 있다는 선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추정한 탓이다. 그래서 “9시44분 이후” 김 전 정장이 123정 방송장비 등으로 퇴선 명령을 내렸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승객(피해자)을 56명으로 한정했다.
피해자 수 1심 56명→2심 445명
1심 판결이 내려진 뒤 이 김 전 정장의 9시36분 첫 현장 보고를 보도하자 단원고 고 박수현군의 아버지 박종대씨가 항소심 재판부에 7월3일 의견서를 제출했다. ‘김경일 재판과 관련해 유가족이 항소심 재판부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1심 재판부는 9시44분경 목포 상황실과 교신할 때 김 전 정장이 해경 대원을 (세월호에) 승선시켜 퇴선을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9시36분께 (본청) 상황실과 통신한 기록을 보면, 김경일 전 정장은 이미 선내 승객이 대기하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통화에서 그는 ‘사람이 갑판에도 바다에도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며 ‘선박 안에 있나봅니다’라고 뚜렷이 말한다. 김 전 정장이 적정한 인명 구조 활동을 이때부터 펼쳤다면 303명(123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하기 전 바다에 빠져 사망한 1명 제외)은 모두 생존할 수 있었다.”
항소심은 유가족의 의견서를 받아들였다. 123정이 “9시30분” 사고 현장 1마일 앞에서 쌍안경으로 세월호 상황을 파악했을 때 승객 대부분이 선내에 있다는 것을 이미 인식했다고 봤다. 김 전 정장은 이때부터 △세월호 선원과 교신하거나 △123정 방송장비를 이용하거나 △해경 대원들을 갑판에 올려보내 승객 퇴선을 유도했어야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정장은 많은 승객이 세월호를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123정 대원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을 건져올리도록 지시했다. 당시 무능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아무런 조치 없이 해경의 출동만 기다리는 상황이었는데 김 전 정장의 구조 지휘는 훈련받지 않은 어선이나 민간인과 다를 바 없었다.”(7월14일 광주고법 판결문)
초동대응에 실패한 탓에 세월호 승객 303명이 목숨을 잃었고 142명이 다쳤다고 항소심은 결론 냈다. 123정이 도착하기 전 세월호에서 추락해 사망한 1명을 제외하고는 피해자 전원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 법률대리인 박주민 변호사는 “대부분의 유가족들이 부실 구조에 대한 국가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①세월호 침몰의 주된 책임은 선장·선원과 청해진해운 임직원에게 있고 ②123정 승조원이 12명에 불과한 점 ③해경 지휘부나 사고 현장에 같이 출동한 해경들에게도 승객 구조 소홀에 대한 공동책임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김 전 정장의 형량을 1심보다 1년 감형했다.
‘해경 지휘부 공동책임’ 조사는 특조위 몫이지만
이제 칼자루는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로 넘어갔다. 항소심이 판결문에서 “해경 지휘부와 다른 해경들에게도 승객 구조 소홀에 대한 공동책임이 있다”고 명시한 만큼 특조위가 그 구체적인 책임을 밝혀내야 할 상황이다. 또 필요하면 특검을 통해 해경 지휘부 등에도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할 일 많은 특조위는 내부 갈등으로 어수선하기만 하다( 1071호 ‘생떼도 이런 생떼가 없다’ 참조).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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