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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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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40분, 해경은 4번의 현장 보고를 무시했다

123정장·본청 상황실 휴대전화 통화 내역 단독 확인… 첫 번째 세월호, 두 번째 진도 VTS, 세 번째 511호 헬기, 그리고 네 번째 123정 현장 보고가 해경에 닿았지만 ‘퇴선 명령’ 등의 조치 없어
등록 2015-04-23 21:00 수정 2020-05-02 19:28
2014년 4월16일 ‘그날의 진실’을 파헤치는 은 ‘사라진 최초의 현장 보고’를 단독 보도했다(제1057호 표지이야기 참조).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헬기 511호가 “승객이 배 안에 있다”고 보고한 교신 내용(오전 9시27분)이 주파수공용무선통신(TRS) 녹취록에서 삭제돼 있거나 교신자가 뒤바뀌었다는 기사였다. 서로 다른 녹취록을 토대로 감사원과 검찰이 해양경찰 수뇌부의 초동 대응 실패를 다르게 조사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번에는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경비함 123정의 9시37분 첫 현장 보고의 내용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123정의 교신은 9시43분 TRS 교신(“현재 승객이 안에 있는데 배가 기울어 못 나오고 있다”)만 공개돼 있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이 내용은 123정의 두 번째 보고였다. 첫 현장 보고는 김경일 123정장과 해경 본청 상황실의 휴대전화 통화다.
이 보고와 관련해 김경일 정장은 재판에서 “교신 내용은 정확한 기억이 없다. 처음 (본청) 경비과장이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됐냐. 빨리빨리 보고하라’ 그 취지로 2~3분간 통화했다”고 진술했다(2015년 1월28일 광주지법 재판). 은 김 정장과 해경 본청 상황실의 교신 내용을 입수해 처음 공개한다. 123정이 찍은 당시 세월호 영상과 김 정장의 음성을 결합한 기사도 온라인(http://h21.hani.co.kr)에 선보인다.

취재 정은주·김선식 기자, 편집 구둘래 기자, 영상 김양균 객원기자, 디자인 장광석
123정과 해경 본청 상황실과의 최초 통화 기록→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 사고 현장에 도착한 해양경찰 구조 함정은 소형 경비정인 123정(100t급)이 유일했다. 다른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함정들은 불법 중국 어선 단속에 동원된 상태였다.

123정은 4월16일 오전 8시58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독거도 남동쪽 2.4km 지점을 순찰하다가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사고 현장인 병풍도 북방 2.9km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함정이었기 때문이다. 123정은 최고속도(25노트·시속 45km)로 달려가던 중인 9시28분, 주파수공용무선통신(TRS)으로 교신한다.

“도착 2마일(3.2km) 전 쌍안경으로 선박 확인 가능. 좌현으로 45도 기울어져 있고 기타 확인되지 않음.” TRS는 해경 수뇌부(본청, 서해해양경찰청, 목포서 상황실)가 침몰 사고 접수 직후(오전 9시2분)부터 현장 구조 세력(123정장, 헬기 511·512·513호)을 지휘한 다중 무선통신이다. 목포서 상황실은 123정에 “현장 상황 빨리 보고 바”란다고 채근한다(9시37분).

이 시각, 처음으로 123정의 현장 보고가 이뤄진다. 김경일 123정장은 본청 상황실과 휴대전화 통화 중(2분22초)이었다. 이 입수한 교신 자료에는 본청 경비과장이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인다”는 김 정장의 보고에 당황해 되묻는 내용도 나와 있다.





123정과 해경 본청 상황실과의 최초 교신 내용 중 일부



123정장: 현재 (세월호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이고 구명벌(구명뗏목) 투하도 없고, 선박 안에 있나봅니다.
경비과장: 아니, 갑판에 사람들이 한 명도 안 보여요?
123정장: 갑판은 안 보이고요. 간간이 보이는데 (고무)단정으로 구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비과장: 사람들이 바다에 뛰어내렸어요, 안 뛰어내렸어요?
123정장: 바다에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경비과장: 그럼 사람이 배에도 안 보이고 바다에도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123정장: 네, 네. 배는 좌현 50도 기울어졌고요.
경비과장: 침몰할 것 같아요, 안 할 것 같아요?
123정장: 지금 상태로 봐서는 계속 기울어지고 있어요.
경비과장: 지금부터 전화기 다 끊고 모든 상황을 TRS로 실시간 보고하세요.
(해경 본청 상황실 녹취록)

123정과 해경 본청 상황실과의 최초 휴대전화 통화 내용 전문

123정과 해경 본청 상황실과의 최초 휴대전화 통화 내용 전문

김경일 정장의 긴박하고도 구체적인 현장 상황 보고에도 불구하고, 본청 상황실은 선내 진입이나 승객 탈출 등 인명 구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다만 “모든 상황을 TRS로 실시간 보고하라”고만 당부하고 만다.

이 현장 상황 보고는 김경일 정장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뒤 첫 현장 보고였고, 세월호 침몰이 발생한 이후 해경 상황실에 접수된 네 번째 긴급 상황 보고였다. 그러나 본청은 김 정장의 첫 현장 보고를 다른 상황실이나 구조 세력에 전달하지 않고 그냥 묵혀버렸다. 당시 본청·서해청·목포서는 TRS와 ‘상황 정보 문자 시스템’으로 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구조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상태였다.

학생이 사고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123정이 촬영한 세월호 미공개 영상(1)→

해경 수뇌부는 오전 9시4분부터 9시44분까지 최소한 4차례 반복해 △세월호가 좌현으로 40~50도 기울었다 △승객이 배 안에 있다 △침몰할 것 같다는 현장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도 그 위급한 상황 보고를 공유하지 않고 구조 지휘를 서로 떠넘기며 ‘골든타임 40분’을 날려버렸다. ‘해상수색구조 매뉴얼’을 보면, “선박이 경사 되고 공기가 누설되는 상태에서 선체의 부력은 약 30분 정도인 것으로 측정”된다고 돼 있다. 배가 바다 위에 떠 있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셈이다.

123정의 첫 현장 보고를 포함해 9시44분까지 적어도 4차례의 현장 보고가 있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현장 보고는 9시4분께 목포서 상황실이 받았다. 122 긴급전화로 세월호 승선원 강아무개씨가 3분1초간 신고했다.






세월호 승선원 강아무개씨와 목포서 상황실과의 통화 기록


승선원 강씨: 지금 저희가 움직일 수 있으면 상황 파악을 하겠는데, 움직일 수가 없어요. 지금 배가 40도 정도 기울어 있어서 지금.
122: 예 알겠습니다. 지금 저희 경비정이 있는 대로 다 이 이동하고 있거든요. 좀만 참으시고 다들 구명동의(구명조끼)를 입으시라고 다 전파해 주십시오.
강씨: 지금 입을 수 있는 상황이 안 돼요. 배가 기울어서 움직일 수가 없어요.
122: 언제든지 하선할 수 있게 바깥으로 이동할 수 있게 그런 위치에 잡고 계세요.
강씨: 지금 선내에서 움직이지 마시라고 계속 방송하고 있구요.
122: 예, 그렇게 해주세요.
(검찰 수사보고서 ‘세월호 사건경과’와 감사원 문답서)

목포서 상황실은 “선내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계속 방송한다”는 주요 정보를 듣고도 신고자의 전화를 끊어버린다. 해양긴급전화 122 운영 규칙을 보면, 해경이 사고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신고 전화가 끊기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며 질문을 반복하라고 돼 있다. 목포서 상황실은 앞서 8시52분 단원고 학생 최덕하군이 사고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특히 강씨는 승선원인데다 “선내 대기하라”는 방송을 9시50분까지 반복했다. 목포서 상황실에서 언제라도 전화해 세월호 내부 상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만약 해경 수뇌부가 강씨에게 “퇴선 방송을 하라”고 지휘했다면, 123정이나 헬기가 선내 진입을 하지 않더라도 304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당시 강씨의 전화를 받았던 문아무개 경장은 “상황실 근무 경력이 2개월밖에 되지 않아 경황이 없었다. 후회스럽다”고 했다(감사원 문답서).

두 번째 현장 보고는 9시25분께 서해청 상황실로 들어왔다. 세월호가 서해청 소속인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지금 50도 이상 좌현으로 기울어져 사람이 좌우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9시17분)라며 “승객을 탈출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겠느냐”(9시24분)고 문의했다. 진도 VTS는 서해청 상황실에 비상탈출 여부를 문의했고 상황실은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선장이 판단할 사항”이라고 결정권을 떠넘겼다.

이 입수한 검찰 수사 자료를 보면, 검찰은 “선장에게 퇴선 여부를 결정(하라고)할 것이 아니라, 서해청 상황실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세월호와 직접 교신해 현장 상황을 파악한 다음 구조 방법을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따져물었다. 서해청 김아무개 경비안전과장은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얼버무렸다.

9시44분 이후에 대해서만 책임진 123정

9시27분께 세 번째 현장 보고가 본청·서해청·목포서 상황실로 동시에 전달된다.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구조 세력인 헬기 511호가 TRS로 “현재 (세월호가) 40도 우측으로 기울어져 있고 승객은 대부분 선상과 배 안에 있음” “나와 있는 사람 없고”라고 통신한다. 사고 발생 39분 만에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고 있었지만 초동 대응이 안이하다는 방증이었다. 그러나 해경 상황실은 한결같이 침묵했다(제1057호 표지이야기 참조).

그리고 앞서 이 처음 공개한 것처럼, 뒤이어 도착한 123정 역시 휴대전화(9시37분)와 TRS(9시44분)로 “현재 승객이 안에 있는데 배가 기울어 못 나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상황실이 접수한 네 번째 주요 현장 보고였다. 상황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승조원 강씨의 122 신고부터 사고 현장에 출동한 123정장의 보고까지, 40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450명이 탑승한 여객선의 상황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선장과 선원이 비상탈출을 명령해 갑판 등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이 구조를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배는 빠르게 가라앉는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수백 명이 모두 배 안에 있다는 걸 의미했고, 선장이나 선원의 퇴선 명령이 없었다고 추정할 만했다. 그렇다면 퇴선 유도를 해경 상황실이 지휘해야 했다.

이에 대해 해경은 “지휘체계가 많다보니 구조 지휘가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본청·서해청·경찰서 간 역할 분담이 안 됐다”고 설명했다(서해청 상황실 감사원 문답서). 또 “순식간에 배가 뒤집힐 줄 모르고” 대처했다고 설명했다(목포서 상황실 검찰 진술).






6월11일 조아무개 목포서 상황담당관 검찰 진술서 중에서


검사: 123정에 승객들을 대상으로 퇴선 방송을 하라거나 선내로 집입해 탈출 안내를 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나요.
목포서 상황실: 그런 지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는 현장지휘관(123정장)이 판단해 적절하게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장지휘관의 판단에 맡긴 것입니다.
검사: 그렇다면 모든 상황이 끝나고 보고하라고 하면 될 것이지, 123정이 상황실에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보고할 필요가 있는가요.
목포서 상황실: 구조 상황에 대해 알 필요가 있으니까요.

해경 수뇌부가 현장의 긴박한 보고를 무시한 결과는 참혹했다. 그러나 그 책임은 김경일 123정장이 홀로 짊어졌다. 김 정장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는 김 정장이 현장에 도착해 승객들이 선내에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퇴선을 이끌지 않은 잘못을 인정했다.

해경 수뇌부의 업무상 과실 가능성

다만 그 책임 시점을 “9시44분 이후”로 못박았다. 9시44분에야 123정이 고무단정으로 구조한 승객들을 통해 선내 상황을 파악했고 그때부터 “승객이 배 안에 있는데 못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9시44분 이후 123정이 퇴선 명령을 수행하지 않아 최소한 56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대신 123정이 좌현으로 기울어진 세월호를 1.6km 밖에서 지켜본 9시30분부터 9시44분까지는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어도 업무상 과실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퇴선 방송을 하라는 해경 상황실의 지시조차 없었다는 점을 그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그렇다면 9시44분 이전 상황에 대해선 해경 수뇌부에 업무상 과실을 대신 물어야 하지 않을까. 해경 수뇌부는 오전 9시4분부터 9시44분까지 “세월호가 좌현으로 40~50도 기울어 승객이 배 안에 갇혀 있다”는 현장 보고를 4차례나 반복해 받았기 때문이다. 해경 수뇌부는 “승객이 배 안에 있는데 못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50분이나 지난 9시56분에야 123정에 “근처에 어선들도 많고 하니까 배에서 뛰어내리라고 고함치거나 마이크로 뛰어내리라고 하면 안 되나”(목포서장)라고 첫 퇴선 방송을 지시한다. 선체 어디에나 특수훈련을 받은 구조자(구조요원)를 착륙시킬 수 있는 헬기 3대에는 퇴선 명령이나 선내 진입을 끝까지 지시하지 않았다.


해경의 자잘한 조작들



9시3분 지시를 8시58분 지시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해양경찰 상황실과 구조 세력 간의 통신 내용을 삭제·조작하고 부정적 여론 전환을 기획한 것으로 드러난 해경은 검찰 조사에서도 자잘한 허위 상황 보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
목포해양경찰서가 작성해 검찰에 제출한 2014년 4월16일 상황보고서 2보를 보면, “9시58분 침수·침몰 선박 신고 접수, 123정 즉시 이동 구조 지시, 방제20호·상황대응함정 출항 지시, 122구조대 구조 지시”라고 적혀 있다. 목포서 상황실이 주파수공용무선통신(TRS)으로 ‘방제20호·상황대응함정 출항 지시, 122구조대 구조 지시’를 통신했다고 주장한 것인데, 정작 TRS 녹취록에는 그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녹취록을 보면, 9시3분에 “여객선 침몰 중. 모든 선박 집결해달라”는 교신이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9시3분 모든 국에 출동 지시를 해놓고, 8시58분 123정 이외에 다른 구조세력도 출동 지시한 것처럼 허위 내용의 상황보고서를 쓴 것 아닌가”라고 캐물었다. 조아무개 목포서 상황담당관(경감)은 6월11일 검찰 조사에서 “TRS와 시간차가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발뺌하다가 결국 꼬리를 내렸다. “사실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제일 중요한 것은 123정 아닌가. 123정에 8시58분에 출동 지시한 것은 맞다. 다른 구조 세력은 9시3분에 출동 지시했다. 실제와 몇 분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조 상황담당관은 사고 당시 세월호와 교신한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도 경비전화로 연락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통화 목록을 확인해보니 그 전화가 안 찍혔다”고 덧붙였다.
 
검사 전화를 안 했기 때문에 안 찍힌 것 아닌가.
조 담당관 이상하게 목록에 확인이 안 됐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검사 실제로 진도 VTS에 통화를 하지 않은 것 아닌가.
조 담당관 유아무개 경장이 전화를 했다고 한다.
(6월11일 검찰 진술)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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