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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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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여성 성폭행’ 정보사...법원, 그루밍 인정하면서 무죄 선고

전 국군정보사 군인 2명 북한이탈여성 성폭력 사건
1심 “그루밍 성폭력 입증 어려워” 무죄 선고
등록 2022-01-22 06:25 수정 2022-01-25 05:01
여성단체 회원들이 2022년 1월18일 경기도 수원지법 성남지원 앞에서 전 국군정보사령부 ㄱ중령과 ㄴ상사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안양여성의전화 제공

여성단체 회원들이 2022년 1월18일 경기도 수원지법 성남지원 앞에서 전 국군정보사령부 ㄱ중령과 ㄴ상사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안양여성의전화 제공

“이 사건은 ‘그루밍 성범죄’(정신적으로 길들인 뒤 저지르는 성범죄)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위력’(행사)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무죄를 선고한다.”

“피고인들이 잘해서 무죄가 나온 게 아니다”

2022년 1월18일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2부(재판장 박남준)는 북한이탈여성 한서은(30대 초반·가명)씨를 성폭행한 혐의(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전 국군정보사령부 ㄱ중령(46)과 ㄴ상사(38)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과 피해자 사이에 (오간) 카카오톡 메시지나 (피고인이) 성관계를 녹음했던 파일 등이 있다. 그런데 (피고인들의) 위력 행사가 있었다는 부분에 대해 증거가 부족하다. 그리고 피해자의 일관되지 않은 진술이 많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나란히 두 손 모으고 서 있는 피고인들을 향해 “한마디를 하고 싶다”며 “그루밍 성폭력에 대해서는 입증이 어렵다. 그 부분에 대해 입증이 안 됐기 때문에 무죄가 나온 거지, 피고인들이 잘해서 무죄가 나온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방청석에 앉아 있다가 피고인들에 대한 무죄 선고를 들은 피해자 한서은씨는 몸을 떨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씨는 “억울하다”며 한동안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한씨의 법률 지원을 맡은 전수미 변호사(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는 재판부를 향해 “판사님은 어떻게 이렇게 성인지 감수성이 없으신가? 판사님은 이 사건이 업무 중 하나겠지만, 피해자에게는 평생의 상처다. 그러시면 안 된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한씨도 “(북한이탈여성으로서 낯선 남한 사회에 적응 과정이던) 피해자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 고려는 해보셨냐”고 외쳤다. 재판부는 두 사람에게 퇴정명령을 했다. 이 사건의 선고에는 4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북한이탈주민 특수성 고려하지 않은 판결” 비판

안양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전국 200여 개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공동성명을 내어 “재판부가 이미 관계 속에서 위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 카카오톡 대화와 가해자가 제출한 녹취록에서 ‘위력의 행사’를 찾으려 했다. 이는 재판부가 강간죄 성립 요건을 여전히 ‘폭행과 협박에 의한 것’으로 보는 낮은 성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재판부의 판결은 명백한 2차 가해다. 1심 재판부의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전수미 변호사는 “그루밍 성범죄라고 인정하면서도 성폭력 증거가 부족하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가 아니라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의 법리나 북한이탈주민의 특수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피고인들은 애초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재판받았다. 2021년 6월7일 결심공판에서 국방부 검찰단(군검찰)은 당시 ㄱ중령과 ㄴ상사에게 각각 징역 7년과 10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이후 피고인들이 해임돼 민간인 신분이 됐고, 재판은 2021년 8월 민간법정인 성남지원으로 넘겨졌다. <한겨레21>은 2018년부터 1년여간 ㄴ상사가 8차례 한씨에게 성폭행 등을 가하고 2019년 ㄱ중령이 성폭행한 혐의와, 한씨가 피해자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군검찰에게 2차 가해를 당했다는 내용을 2020년 6월 보도했다(제1318호 표지이야기).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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