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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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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로 숨진 시설 장애인, 지자체 책임 첫 인정

불법고용한 활동지원사 폭행으로 숨진 장애인
개인 일탈 넘어 시설장, 평택시에도 손배 판결
등록 2022-02-05 02:11 수정 2022-02-05 02:23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이 2022년 1월2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평택의 장애인거주시설 ‘사랑의집’에서 일어난 중증장애인 폭행·사망 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이 2022년 1월2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평택의 장애인거주시설 ‘사랑의집’에서 일어난 중증장애인 폭행·사망 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고 김○○과 평택시는 함께 약 1억4200여만원을 지급하라.”

2022년 1월2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565호 법정.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장애인거주시설 ‘사랑의집’에서 숨진 중증장애인 김성진(가명)씨의 유족이 사랑의집 김은애(가명) 원장과 평택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심 법원이 피해자인 김성진씨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 결과와 손해배상액만 건조하게 읊던 앞선 선고 사건과는 다르게 재판부는 “피고 김씨에 대해서는 사용자 책임이 있다고 봐서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평택시는 책임을 인정하되 김씨에 견줘 70%의 책임이 있다”며 판단 이유도 짧게 덧붙였다.

법정을 나서던 고인의 동생 김성열(가명)씨가 연신 눈물을 훔쳤다. “원장이 돈 때문에 그런 짓을 했잖아요. 그런 사람을 이렇게 돈으로라도 처벌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보조금 노린 불법 운영, 평택시는 부실 감독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재판장 임기환)는 김성진씨 유족이 사랑의집 김은애 원장, 평택시, 국가를 상대로 낸 3억여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장 김씨와 평택시가 함께 유족에게 1억42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학대 사건에서 시설을 관리·감독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다만 재판부는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2020년 3월19일 지적장애인 김성진씨가 장애인 활동지원사에게 폭행당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원장 김씨는 장애인 거주시설인 사랑의집(신고시설)과 평강타운(미신고시설)을 하나의 시설처럼 운영하면서 미신고시설에 파견된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직원처럼 부렸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있는 장애인은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미신고시설로 장애인의 주소를 옮겨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김성진씨도 사랑의집에서 평강타운으로 주소가 옮겨졌다.

지자체나 국가의 별다른 제재도 없었다. 평택시는 장애인시설 정기점검을 멋대로 생략했다. 보건복지부 시설 평가에서 연거푸 F등급을 받아도 사랑의집은 굳건했다. 김성진씨를 숨지게 한 활동지원사가 원장에 의해 불법 고용됐다는 정황이 밝혀진 건 사망사건이 발생한 뒤의 일이었다. 김성진씨를 포함해 장애인 2명이 연달아 숨지고 나서야 2020년 8월 시설은 폐쇄됐다.(제1351호 표지이야기 ‘피가 나도록 때려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유족은 활동지원사(상해치사 혐의 등으로 징역 5년 확정) 뒤에 숨은 사랑의집 원장-지자체-국가에까지 책임을 묻기 위해 2021년 2월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관련 기사를 표지이야기로 다룬 <한겨레21> 제1351호.

관련 기사를 표지이야기로 다룬 <한겨레21> 제1351호.

시설장의 폭행 지시와 직접 학대 모두 인정

재판부는 원장 김씨가 활동지원사를 지휘·감독하는 사용자로서 사망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그동안 미신고시설을 운영하지도 않았고, 활동지원사를 고용한 적도 없다고 부인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씨가 신고시설과 미신고시설을 하나의 시설처럼 운영하면서 사실상 활동지원사를 직원처럼 고용했다고 인정했다. “사망사건은 활동지원사가 원장이 주관하는 예배에 피해자를 강제로 참석하게 하려던 중 발생한 것으로, 이를 통해 활동지원사가 원장의 의사에 부합하게 행동해왔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 김씨가 이 사건 시설을 운영하면서 직접 장애인들을 수차례 폭행한 사실, 장애인 활동지원사들에게 장애인들에 대한 폭행을 조장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며 김씨의 직접 학대 개연성도 높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문제적 시설을 관리·감독해야 할 평택시에까지 그 책임을 물었다. 그동안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면 시설장이 가벼운 처벌을 받고 시설이 폐쇄되는 선에서 사건이 봉합됐다. 시설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지자체나 국가는 그 책임을 피해갔다.

재판부는 평택시 공무원이 시설의 관리·감독을 부실하게 했기 때문에 사망사건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지자체 담당 공무원은 반기별 1회 이상 장애인 거주시설을 정기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평택시 공무원은 2018년은 건너뛰고 2019년은 연 1회로 축소해 시설을 점검했다. 외부 감시 체계인 시설운영위원회나 인권지킴이단이 사랑의집에 설치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지적 없음’으로 점검을 마무리했다. 해당 공무원 2명은 경기도 감사를 받은 뒤 ‘불문 경고’ 처분을 받았다. 유족의 변호를 맡은 대리인단이 공무원 징계 결과를 찾아내 법정에 제출하기 전까지 평택시는 ‘담당 공무원이 관련 규정에 따른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사랑의집에서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폭행이 일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이고, 사망사건은 이러한 시설 내부의 일상적이고 만연한 폭행에서 비롯된 장애인 인권침해 행위였다”고 짚으면서 “평택시 공무원이 법령보다 적은 횟수의 지도·점검을 하는 등 장애인복지법을 위반한 행위는 이 사건 발생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책임 인정은 숙제로 남아

그러나 국가의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시설평가에서 F등급을 받았다고 반드시 시설 폐쇄 조처를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고 시설 쪽에 교육을 안내하고 컨설팅하는 등 그 밖의 사후관리를 시행했다는 점을 재판부는 고려했다. 나동환 변호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거주시설에서 발생하는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은 단순히 가해자 개인의 일탈행위라고 볼 수 없다. 숨진 사람만 있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그릇된 구조 속에서 시설의 인권침해는 방치돼왔다. 이번 소송에서 대한민국의 책임은 인정받지 못해 아쉽지만, 시설장과 평택시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은 부분은 소기의 성과”라고 말했다.

대리인단은 항소해 1심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부분,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위자료는 높게 산정하면서도 피해자 김성진씨의 일실수입은 전혀 인정하지 않은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툴 예정이다. 일실수입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잃게 된 장래의 소득이다. 김남희 변호사(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임상교수)는 “피해자가 당시 일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결과다. (장애인이) 일반적인 노동 능력은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데 일실수입을 아예 인정하지 않은 건 차별적”이라고 말했다.

원장 김씨는 형사재판도 앞두고 있다.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은 2021년 9월 김씨를 사용자로서 활동지원사에 대한 지휘·감독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남편과 함께 직접 학대 행위에 가담한 혐의(장애인복지법 위반)로 기소했다. 재판은 아직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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