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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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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이라는 ‘좋은 집주인’

인천시 검암동 ‘우동사’, 서울시 마포 성미산마을의 공동주택, 제주도 오시리가름 주택 등 주거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나
등록 2015-06-09 11:21 수정 2020-05-03 00:54
지난 5월31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서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성미산마을축제’ 모습. 성미산마을은 주거 대안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표적인 공동체다.

지난 5월31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서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성미산마을축제’ 모습. 성미산마을은 주거 대안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표적인 공동체다.

# “아유, 우리 쑥쑥이도 왔네. 쑥쑥아~.” 아빠 품에 안겨 있는 쑥쑥이의 뽀얗고 보들보들한 얼굴을 비비느라, 다들 첫 음악회를 앞둔 떨림은 잠시 잊었다. 태어난 지 여섯 달 된 쑥쑥이는 이날 열린 ‘소박한 음악회’에서 가장 어린 손님. 인천 서구 검암동의 다세대 빌라에 모여사는 ‘우리 동네 사람들’(우동사)이라는 마을공동체에서 유일한 어린아이다.

지난 5월30일 토요일 저녁 7시 ‘커뮤니티 펍 0.4km’라는 야릇한 이름의 수제맥줏집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0.4km는 가게와 우동사의 거리를 뜻한다. 우동사 입주민들과 동네 손님, 친구 등 30여 명이 52.9m²(16평) 남짓한 공간을 가득 채웠다. 사회를 맡은 박진순씨가 마이크를 들었다. “우리는 가게에서 0.4km 떨어진 곳에서 3년 넘게 셰어하우스 형태로 살고 있어요. 같이 사는 친구 가운데 4명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죠. 동네에서 오며 가며 만난 사람들, 옛 친구들이랑 맥주 한잔 마시며 소박하게 노래 부르고 싶어 작은 음악회를 마련했습니다.” 서툴지만 따듯한 기타 연주 소리가 가게 문지방을 넘어 검암동으로 흘러넘쳤다.

# 다음날인 5월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서초등학교 운동장. 진달래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50~60대 여성 24명이 중앙 무대에 올랐다. 경쾌한 멜로디의 합창이 시작되자, 무대 아래에서는 젊은 주민들이 환호하며 장단을 맞췄다. 흥겹게 어깨춤도 덩실덩실 췄다. 노래와 춤판이 벌어지는 와중에, 넓은 운동장 반대편에서도 또 한판의 난장이 벌어졌다. 손수레에 아이들을 싣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전력질주를 하는 아저씨, 아이들이 던지는 물풍선 세례에 옷이 흠뻑 젖어버린 아빠,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에 앉아서 도란도란 수다 떠느라 바쁜 엄마. 30℃의 무더운 초여름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동네 주민 수백 명이 한데 어우러졌다. 올해로 14회째를 맞은 ‘성미산마을축제’ 모습이다. 지도에도, 행정구역 구분상에도 없는 ‘성미산마을’은 그렇게 지역사회에 뿌리를 넓혀가고 있다.

기획 연재

아시아의 사회적 경제

보증금 1800만원과 월 11만원을 내면

주거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2개의 풍경이다. 귀농을 꿈꾸며 모였던 ‘우동사’ 사람들은 공동육아 공동체로 고민의 폭을 넓혔고, 수제맥줏집을 거점 삼아 지역사회로 녹아들어갈 채비 중이다. 성미산마을에는 초창기 자랑이었던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과 대안학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마을기업과 협동조합이 들어섰다. 공동체주택(코하우징)인 ‘소통으로 행복한 주택 만들기’(소행주)는 어느새 5호점까지 생겼고, 또 다른 대안 주거 모델인 ‘함께하는 주택협동조합’(함께 주택협동조합)도 설립 1년 만에 벌써 3호점 입주자를 모집 중이다.

이곳에 사는 이들에게 집이란, 주택이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다. 동네도 마찬가지다. 강남·분당 등 어느 동네에 사느냐보다, 누구와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집은 ‘○○평’이라는 물질적인 크기로 평가받고, 동네는 중산층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로 평가받게 마련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그런 물질적 가치를 뒤로한 채, 집과 동네라는 주거 공간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고자 한 걸까?

우동사는 2011년 불교단체인 정토회에서 만난 청년 6명이 함께 모여살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귀촌을 준비하면서 주거 공동체를 실험해볼 요량이 컸다. 방 3개짜리 빌라를 전세로 빌려 옹기종기 모여살았다. 그러다가 지금은 같은 빌라 건물 위·아래층 3채를 총 6억원을 주고 매입했다. 집은 주식회사 우동사 명의다. 보증금 1800만원과 은행에서 빌린 주택자금을 갚는 월 11만원을 내면 누구나 우동사 식구가 될 수 있다. 생활비는 각자 월 10만원씩 낸다. “우동사에 들어오면 주거비가 크게 줄어들지만 그건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앞으로 삶을 어떻게 행복하게 만드느냐에 있다.” 우동사 조정훈씨의 말이다.

육아 문제가 대표적이다. 우동사 3채에 모여사는 인원은 스무 명 남짓. 부부가 2쌍, 나머지는 20~40대 싱글 남녀다. ‘쑥쑥이’ 엄마·아빠가 사는 방 3개짜리 집에도 다른 이모, 삼촌 등 총 8명이 산다. “아이가 아침 일찍 깨서 엄청 울면 다른 식구들은 늦잠도 못 잔다. 처음엔 눈치도 보였다. 그런데 친구들은 기꺼이 그런 불편을 감수해줬다. 임신을 고민할 때도 그랬고, 모든 문제는 함께 논의한다.” 교사인 ‘쑥쑥이’ 엄마 이성희씨는 “함께라서 육아가 외롭지 않다”며 웃었다.

우동사 식구들은 강화도에 800여 평의 논을 빌려서 벼농사를 지으며 귀촌의 꿈을 채우고 있다. ‘커뮤니티 펍 0.4km’ 앞에는 얼마 전 정미소를 세워, 갓 지은 쌀을 동네 사람들에게도 공급하기로 했다. 가게와 정미소가 검암동의 ‘마을회관’ 같은 구실을 하길 기대한다. 오는 9월 초에는 게스트하우스를 연다. ‘공동주거’라는 실험에 당장 참여하기 힘든 이들이 머무를 곳이다. 주택과 가게를 여는 초기자금은 모두 우동사 식구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해결했다.

모두 함께 땅 알아보고 집을 짓고 부담하고
인천 서구 검암동에 있는 청년들의 주거 공동체 ‘우동사’에 사는 막내 ‘쑥쑥이’와 엄마 이성희씨.

인천 서구 검암동에 있는 청년들의 주거 공동체 ‘우동사’에 사는 막내 ‘쑥쑥이’와 엄마 이성희씨.

우동사가 만들어가려는 마을공동체를 이미 일군 곳이 바로 성미산마을이다. 20년 전 처음 모여살기로 결정한 이들의 꿈은 ‘소박한 음악회’처럼 소박했다.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모였다. 처음엔 옆집에서 살다가 아예 건물을 한 채 샀다. 2008년 성서초등학교 근처에 세워진 4층짜리 건물이 시초다. 성미산마을의 첫 번째 코하우징 주택이었다. 코하우징이란 ‘따로 또 같이’ 사는 주거 형태다.

이를테면 9가구가 함께 건물을 짓는다. 각자의 집은 14~37평형으로 크기도 다양하게, 내부 설계와 인테리어는 입주자 각각의 입맛에 맞춰 살고 싶은 대로 꾸민다. 현관문 안쪽 사생활은 일반 주거 공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유권 등기도 각자 한다. 다만 건물 안에는 공동 텃밭이나 바비큐 파티 장소 등으로 쓰이는 옥상, 친구들을 초대하거나 주민 모임을 할 수 있는 널찍한 거실, 부피가 커서 집 안에 보관하기 힘든 물건을 모아놓을 커다란 창고 등 공용공간이 존재한다. ‘따로’가 ‘같이’로 되는, 모두의 공간이다. 2011년 성미산마을에 들어선 소행주 1호는 그렇게 탄생했다. 6층짜리 건물에 9가구가 모여산다. 1가구당 2억~3억원대의 비용이 들었다. 집집마다 설계를 달리하고, 공용거실인 ‘씨실’ 소유권도 1평씩 나눠갖다보니 주변 빌라 시세보다는 돈이 조금 더 들었다.

“소행주는 땅값 비싼 도시에서 더 큰 공간을 얻기 위해 나를 희생시키지 말고, 작지만 넓게 쓰는 방법, 즉 공동공간을 만들고 충분히 활용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주택의 면적을 줄여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공간을 같이 사용함으로써 주거의 다양한 어려움을 덜어낼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개인의 주거 문제를 공동의 협력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소행주·박종숙 지음)

이같은 문제의식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집’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었다. “성미산마을에만 현재 5채의 소행주에 44가구가 살고 있다. 입주자들은 땅을 알아보고 집을 짓는 모든 계약 과정에 참여하고, 공동체 주거문화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된다. 육아 품앗이 등이 가능해서 입주자들의 만족도도 높다.” 박흥섭 소행주 공동대표가 자신이 살고 있는 소행주 1호 곳곳을 안내하며 말했다. 소행주는 성미산마을을 넘어 경기도와 대전 등으로 프로젝트를 확장해나가는 중이다.

땅과 집의 소유권은 협동조합
‘우동사’ 멤버 20명은 빌라 3채에서 같이 사는 식구다. 이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펍 0.4㎞’에서 지난 5월30일 동네 주민들과 함께하는 ‘소박한 음악회’가 열렸다.

‘우동사’ 멤버 20명은 빌라 3채에서 같이 사는 식구다. 이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펍 0.4㎞’에서 지난 5월30일 동네 주민들과 함께하는 ‘소박한 음악회’가 열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시 SH공사가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은 대부분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대안이다. 서민들에겐 1년에 몇천만원씩 뛰어오르는 집값을 부지런히 벌어 갚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런데 미세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행주’ ‘우동사’처럼 민간 영역에서 주거비용을 낮추고 대안적인 공동체 주거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움직임이 최근 몇 년 새 부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의 ‘일오집’, 경기도 성남의 ‘태평동락’, 서울 용산의 ‘빈집’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첫 주택소비자협동조합인 ‘하우징쿱 주택협동조합’은 지난해 10월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구름정원사람들’이라는 이름의 공동주택을 지었다. 40~50대 조합원 8가구가 모여서 소행주와 비슷한 코하우징 주택을 지은 것이다. 올 연말께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또 다른 협동조합 주택단지인 ‘오시리 가름 주택’ 입주도 시작한다. 은퇴를 앞둔 16가구가 조합원으로 모였다. 소행주와 달리 ‘오시리 가름 주택’의 땅과 집의 소유권은 협동조합이 갖는다. 주택단지 입구에는 공동작업장과 셰어하우스, 도서관 등도 짓는다. 제주에서 낭만적인 노후생활을 꿈꾸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이 모인 결과다.

성미산마을에도 또 다른 주거 실험이 싹트고 있다. 소행주 일부 식구와 성미산마을 주민들이 참여한 ‘함께 주택협동조합’은 지난해 10월 ‘1호집’ 문을 열었다. 싱글 10명이 모여사는 다가구주택의 소유자는 협동조합이다. 조합원 40명이 낸 종잣돈과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인 ‘소셜하우징’에서 대출받은 기금 등 5억8천만원을 들여 오래된 3층짜리 다세대주택을 매입해 셰어하우스로 개조했다. 입주민 10명은 보증금 1천만원과 임대료 월 20만~33만원을 각각 냈다.

‘함께 주택협동조합’의 박종숙 대표는 소행주 1호에 살고 있다. “소행주가 공급하는 주택에 들어오고 싶지만 2억원이 넘는 비용 때문에 못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협동조합이 ‘좋은 집주인’이 되어서 거주자들이 평생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협동조합이라는 형태의 사회주택을 시도한 까닭이다. 집 없는 청년들이 스스로 비영리 주거 모델을 만들어보자고 모인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도 이런 방식으로 서울 남가좌동에 ‘달팽이집’ 1·2호를 만들어 입주했다.

사회주택 홀씨를 퍼뜨리자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민간에서 ‘사회주택’을 만드는 흐름이 확산되자 서울시도 힘을 보탰다. 서울시는 지난 1월부터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사회주택이란 민간단체들이 공공자금을 빌려 건물을 짓거나 사들인 다음에 1인 가구, 청년, 예술인 등 주거취약계층에게 공급하는 임대주택을 뜻한다. 서울시 소유의 토지와 건물을 임대해주거나, 사회투자기금에서 싼 이자로 민간단체에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다. 소행주가 마포구 서교동에 짓고 있는 토지임대부 공동체주택, ‘함께 주택’, ‘달팽이집’ 등이 이런 방식으로 지어졌다.

최근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사회주택이라는 민들레 홀씨를 널리 퍼뜨리려는 단체들이 뭉쳐서 ‘사회주택협회’를 설립한 것이다. 지난 5월28일 창립총회를 개최한 사회주택협회의 회원사는 ‘함께 주택협동조합’,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소행주’, ‘하우징쿱 주택협동조합’, 셰어하우스 ‘WOOZOO’ 등 30여 개 단체다. 전·월세 가격 폭등, 하우스푸어, 청년과 노인을 위한 1인 가구 주택의 부족 등 한국 사회가 짊어진 ‘주거 문제’를 사회적 경제로 풀어내려는 이들이 이제 ‘따로 또 같이’ 움직이게 됐다. 사회주택협회 추진단 간사를 맡은 전은호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연구원은 “협동조합 주택, 셰어하우스, 빈집 활용 주택 등 공동체가 이끄는 집을 통해 한국 사회에 집이 더 이상 ‘짐’이 아닌 삶의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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