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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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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록 2012-10-24 09:30 수정 2020-05-02 19:27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주변에선 사서 걱정한다고 하지만, 난 내 엄마가 살아가는 모습만 봐도 그것이 단순히 내 오지랖 넓은 기우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안다. 손가락, 무릎, 허리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면서도 매일 아침 무가지 가판대에서 벼룩신문을 가져다가 볼펜으로 밑줄까지 치며 살피는 게 엄마의 하루 일과다. 그러다 좀 괜찮은 일자리다 싶어 연락을 취해보면 돌아오는 말은 나이가 너무 많아 안 되겠다는 소리다. 어쩌다 운 좋게 일하러 오라는 곳은 임금은 정말 적은데, 일은 너무 고된 일자리다. 그나마 장시간 노동으로 아픈 허리나 손가락이 도져서 며칠 만에 그만두고 나와야 하기 일쑤다. 일하러 갔다가 병원비가 더 많이 드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답답한 마음에 동사무소에 기초생활수급대상자라도 돼볼까 싶어 가보면 장성한 자식이 있어서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장성한 자식은 도대체 별 도움이 돼드리지 못하니 엄마의 황혼은 그렇게 고되고 불안스레 저물어간다.

경비·청소 같은 일자리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이 적지 않지만, 사회는 이들의 노동을 ‘여가일’로 여긴다. 서울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폐지를 정리하고 있는 경비원. 사진 한겨레 신소영

경비·청소 같은 일자리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이 적지 않지만, 사회는 이들의 노동을 ‘여가일’로 여긴다. 서울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폐지를 정리하고 있는 경비원. 사진 한겨레 신소영

2년 동안 하루도 쉰 적이 없었지만

얼마 전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 한 분이 민주노총 부산본부 상담소에 찾아오셨다. “아이고,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하며 허리까지 깊이 숙여 인사를 하시는데 한눈에도 연세가 꽤 있어 보이셨다. 깍듯한 인사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는 상담을 받으시는 내내 꼬박꼬박 존대를 하시며 꼭 내 얘기가 먼저 끝나고 나면 “제가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지는 “제 생각은” 하며 얘기를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평상시 어떻게 일을 하시는지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굽히고, 순종하시는 게 몸에 밴 듯한 할아버지는 빌딩 경비일을 하는 2년 동안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다고 하셨다.

첨엔 그 말을 믿을 수 없어 사실이냐고 재차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그것뿐만 아니라 24시간 격일제 근무를 하면서도 임금은 8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연세가 많으시니 그런 일자리라도 있는 게 어딘가 싶어 불평도 못하고 일하셨단다. 그러다 얼마 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셨다. 이유도 설명도 없이,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억울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갑작스런 해고로 생계가 막막해지셨다며 한숨이 늘어지셨다. “여기 일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고향에 계시는 우리 노모가 돌아가셨어요. 근데 그때 못 갔어요. 하루라도 다녀오겠다 하면 분명히 그만두라고 할 게 뻔해서.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어요.” 할아버지는 가족이나 친지가 없으신지 고시원에서 홀로 지내신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는 해고되는 게 가장 두렵다고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의지할 것이라고는 자신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스스로 움직여 생계비라도 벌 수 있는 일터는 유일한 생존의 끈이었는데, 그것을 잃어버린 할아버지는 얼마나 막막하셨을까. 해고며 임금 문제 등을 상담하고 다음날 노동부에 진정을 넣기로 하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찾아온 할아버지는 사장이 다음달까지 일해도 된다고 했다며 한 달이라도 더 일해서 월급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고시원비도 내야 하고, 노동부에 가도 몇 달 걸린다니 총알이라도 있어야 안 되겠습니까” 하시고는 다음달에 다시 오겠노라며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생각나는 또 다른 한 분이 계셨다.

서럽게 울던 할머니의 두 번째 해고

몇 해 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출판사 빌딩에서 30년가량 청소일을 하시던 할머니가 계셨다. 체구도 작으시고 경상북도 사투리가 유독 귀에 박히던 할머니셨다. 처음 할머니를 뵙던 날, 할머니는 말씀하시는 내내 눈물을 흘리셔서 말을 잇지 못하셨다. 할아버지가 많이 아픈데, 일을 계속해야 된다는 소리만 하셨다.

그래서 “해고되신 거냐”고 여쭙자 대답을 못하고 감정이 북받쳤는지 울며 고개만 끄덕이셨다. 그렇게 또 그 할머니와 인연이 닿아 함께 노동부로, 관청으로 할머니의 퇴직금이라도 받아보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게 됐다. 할머니는 일하는 동안 임금으로 50만원을 받으셨는데, 그 적은 금액조차 30년치의 퇴직금으로 지급하기엔 회사는 아까웠나 보다. 출판사의 총무과에서 나온 두 사람의 직원은 할머니가 자신들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 출판사의 부산 사무소가 만들어져 머릿돌이 세워지는 날부터 청소일을 하셨다는 할머니를 그들은 기록이 없어 자기 회사 직원이 아니라 하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그래서 출판사 건물이 있는 주변 상인들이나 옆 건물에서 청소하셨던 분들까지 찾아다니며 진술서를 받으러 다니기도 하며 할머니 집에도 가보게 되었다.

부산 감만동 부둣가 철길 옆으로 난 판자촌과 같은 동네였다. 골목이라고 해봤자 앞집과의 거리가 한 팔 간격밖에 안 되는 넓이에, 집이라는 것 또한 화장실과 부엌, 방을 모두 합해봐야 보통의 집 방 하나 크기의 그야말로 인형의 집처럼 작고 낮았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계셨다. 할머니가 일자리를 잃고 하염없이 흘리던 눈물이 이해가 됐다.

어쨌든 할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회사와 합의를 통해 퇴직금 등 일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오늘 상담소에 오셨다. 처음엔 반가운 마음에 잘 지내셨는지 안부도 묻고, 지나는 길에 들르신 거냐 여쭙자 조금 망설이더니 이내 “또 도움 좀 받으려고 왔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그때 그 출판사를 나와 백방으로 일자리를 알아보았지만 나이가 많아서 일자리를 쉽게 구하지 못하셨단다. 그러다 어느 사우나의 청소일을 구해 지금껏 다니시다 최근에 또 해고를 당하셨단다. “좋은 일로 찾아와야 하는데 또 이런 일로 와서 어쩌냐. 그래도 생각나는 곳이 여기밖이라”며 겸연쩍어하셨다. 할머니의 한 손에는 벼룩신문이 꼭 쥐어져 있었다.

모든 노동에 안정적 일자리 대책 필요

최근 한국 사회는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늘어난 수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노후 준비와 너무나 빈약한 사회 안전망은 노년의 삶을 더욱 불안하고 힘들게 한다. 게다가 실업자 자녀들의 뒷바라지 내지는 그들의 짐이 되지 않고자 젊은 층이 기피하는 3D 업종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대가도 받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회는 고령자들의 노동에 대해 부수적 노동 내지는 용돈벌이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또 요즘처럼 일자리 가뭄에 젊은 사람들도 실업자로 넘쳐나는 현실을 고려하면 그 정도의 일자리라도 감지덕지 아니냐고까지 얘기한다. 하지만 계층 간의 차별을 두는 고용정책은 사회 양극화 및 계층 간 불균형을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청년, 여성, 장애인, 노인 등을 따로 생각하는 일자리 정책이 아니라 총노동에 대해 안정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증가하는 자살률 함께 노인 인구의 자살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인 나라. 한때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그들이 이제는 늙고 병들고 빈곤에 허덕이며 죽어간다. 그들의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는 것은 우리 사회 모두가 책임져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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