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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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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학생 응원 받고 싶었던 청소하는 이모들

정규직 직원의 노동절 기념식 끝나면 청소를 해야했던 비정규직
학생들의 파업 지지를 꼭 받고 싶어했던 신라대 청소노동자들
등록 2012-09-21 06:00 수정 2020-05-02 19:26
총장실 앞에서 농성을 하는 부산 신라대의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 학교 쪽은 파업 대체 인력으로 학생들을 투입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부산지역 일반노조 제공

총장실 앞에서 농성을 하는 부산 신라대의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 학교 쪽은 파업 대체 인력으로 학생들을 투입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부산지역 일반노조 제공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5층 건물로 층별로 연맹별 노동조합 사무실과 회의실, 교육장, 소극장 등 모두 24개 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이면 건물 관리자나 청소하시는 분이 한두 명 있을 법하지만, 실상은 각 조직에서 자율적으로 청소 및 관리를 하고 있다. 교육이나 행사가 있는 날은 더 열심히 쓸고 닦지만 건물이 워낙 노후해 딱히 티가 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처음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건물의 우중충함과 지저분함에 나쁜 첫인상을 남기곤 한다. 또 지역에 큰 투쟁이 있거나 휴가로 사무실을 며칠씩 비웠다 돌아오는 날이면, 건물 출입구에서부터 담배꽁초며 쓰레기가 쌓여 있거나, 화장실은 쓰레기통 밖으로 넘쳐난 휴지로 까치발로 쫑쫑거리며 다녀야 할 때도 있다.

“학생들아, 이모들이 왜 파업이냐 하겠지”

이렇다 보니 청소는 해도 표시 나지 않는 일이라 소홀히 하는 경우도 있고, 바쁜 업무를 핑계로 뒷전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누군들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가끔 ‘청소도 일의 연장이니 청소 좀 열심히 하자’에서부터 ‘청소하시는 분을 따로 고용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말들이 나온다. 있으면 느끼지 못할 일들이 이렇게 없으면 크게 느끼게 된다. 사실 청소는 단순히 쓸고 닦고 하는 일이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은 곳까지 세심하게 마음 쓰며 알뜰히 살뜰히 챙기지 않고서는 안 되는 일인 것 같다.

얼마 전 부산에 있는 신라대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두 명의 남성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50대 전후의 여성 노동자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국밥집에서 노동조합 가입 원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그들은, 스스로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가입하게 될 줄 몰랐단다.

“그날 비가 억수같이 오기도 해서 웬걸 사람들 오겠나 했지. 그냥 마음 있는 사람만이라도 모이자 하고 모인 건데 6명 빼고는 다 모였어. 그 자리서 다 사인하고 가입했지, 뭐”

그런 아주머니들이 노동조합 가입 뒤 얼마 되지 않아 파업에 들어갔다는 소식과 총장실 로비 농성까지 한다는 소식을 며칠의 틈을 두고 전해들었다. 아주머니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소식에 반가웠다가,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파업, 게다가 점거농성까지 들어갔다는 소식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어 지난 주말 신라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찾았다. 로비 양쪽으로 달랑 박스 한 장씩만 깔고는 변변한 이불도 베개도 없이 겉옷으로 대충 덮은 채 주무시고 계셨다.

“청소노동자도 당신들과 다를 게 없는 인간입니다.”

“학생들아, 이모들이 일만 하지 왜 파업이냐 하겠지. 하루의 근무에 비해 임금이 턱없이 적어 이렇게 파업하고 있으니 이해해다오.”

누운 아주머니들 머리 위로 삐뚤빼뚤 매직으로 아무렇게나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스티로폼이라도 깔고 계시지 그러냐고 했더니, 총장님 만나 대화해보겠다고 올라왔다 얼떨결에 로비 농성까지 하게 됐다며 하루이틀이면 끝날 줄 알았단다. 하긴 자신들의 힘들고 부당한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총장님도 생각이 바뀔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10년을 일한 사람이나 이제 금방 들어온 사람이나 딱 최저임금에 정한 금액만 받고, 본업인 학교 청소만 하는 것도 허리가 휠 지경인데 시간강사나 외부 강사가 이용한다는 아파트의 입주 청소까지 해야 하고,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에도 학교 운동장에 잔디까지 심어야 하고, 결국엔 한 사람이 쓰러지는 일이 있어도 선심 쓰듯 음료수 캔 하나 던져주고 마는 데 대한 자신들의 섭섭한 마음을 다독여줄 거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오히려 총장은 “무~식하게 뭐하는 짓이냐”며 용역회사와 해결할 일이지 학교 쪽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태도였단다. 늘 이런 식이다.

학생들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한 학교

말이 용역이지 실제로 아주머니들에게 일을 시키고 관리·감독하는 것은 학교 쪽 직원들이다. 실제로 아주머니들과 똑같은 일을 하지만 학교 소속이라는 아주머니는 임금이나 각종 처우 면에서 훨씬 좋을 뿐만 아니라, 용역회사 소속 아주머니들에게 업무 지시며 각종 징계도 내린다고 한다.

“손가락으로 창틀을 쫘~악 훑고 지나가. 먼지라도 나오면 그날로 경고 한 번이야. 경고 세 번이면 그길로 나가야 돼. 그러니까 밉보일까봐 아무 말도 못하는 거지.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나 죽었소~ 하고 일해야지. 내를 내년에 또 쓸 낀지 말 낀지가 더 중요해.”

그 직원이 멀리서 손목을 까딱까딱하면 뛰어갔다는 아주머니들은 임금 인상도 함께 요구하긴 했지만, 사실 임금보다 더 중요한 건 고용 안정과 그들과 똑같은 인간으로 대접받는 일이란다.

“노동절이라고 학교 직원들은 행사도 하고 하는데, 우리는 또 그 행사 뒷정리에 학교 청소에… 그날도 일해야 돼.”

학교에서는 휴일수당 지급하는데 뭐가 문제냐 하겠지만, 아주머니들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들도 같은 직원으로 대접받고 싶은 거였다.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의 애정도 배려도 예의도 용역이라는 이름에는 없나 보다. 아주머니들의 가장 큰 바람은 용역업체가 아닌 신라대가 직접 고용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 당장의 고용이라도 보장받으려는 것이다.

아주머니들과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학생이가? 어데 학교 학생인고, 우리 학교 학생이가” 하셨다. 민주노총에서 왔다고 하니 약간 실망하시는 듯했다. 나중에 아주머니 얘기를 들어보니 파업에 들어간 첫날, 신라대 학생들이 대체인력으로 투입됐었단다.

“학생들한테 가가 우리가 그랬지. 너거 아무리 돈 받고 일해도 이라모 못쓴다. 이모들이 왜 이라는지 너거 알기나 알고는 이라나 하고. 그랬더니 담날부터는 학생들은 안 오고 학교 직원들이 대신 일하긴 하던데, 그래도 우리는 마 학생들이 우리가 왜 이라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지.”

아주머니들은 누구보다도 신라대 학생들의 이해와 호응, 관심을 받고 싶어 했다. 당연한 일이다. 말하는 도중에도 학생들이 지나가면 눈을 떼지 못하셨다. 그러는 사이 한쪽에서는 뚝딱거리는 소리와 함께 김치찌개 끓는 냄새가 가득했다. 염치없이 밥까지 얻어먹고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조 통해 자신감, 성취감 찾기를

농성장을 다녀온 며칠 뒤, 다행스럽게도 농성이 해제되고 파업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100%는 아니었지만 노동조합의 요구안이 대체로 받아들여졌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학교 쪽의 직접고용 같은 근본적 문제와 이후 발생하게 될 문제는 노동조합을 통해 차차 해결해야 할 과제다. 가끔 노동조합이 마치 요술방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가입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노동조합이 좀더 나은 근로조건을 유지·개선하려고 만들어진 것이긴 하나, 그것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현재의 노동조건·환경 또한 수많은 노동열사와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과 희생의 결과다.

신라대 청소노동자들 또한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고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도 오늘의 기억으로 ‘똘똘 뭉쳐’ 잘 이겨나가리라 생각한다. 아주머니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근로환경 개선뿐만이 아니라 자신감과 존중감, 성취감도 함께 찾을 수 있길 바란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상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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