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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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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
숨통 조이는 갑갑한 현실일수록 좋은 세상에 대한 상상 절실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풀뿌리 스스로의 대안 창조해야
등록 2009-08-18 02:39 수정 2020-05-02 19:25
“만일 내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만일 내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정말 괴로워서 못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삶의 희망보다는 절망이 자꾸 늘어나는 현실에 대한 괴로움이요, 그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는커녕 ‘립서비스’나 위선적 이벤트만 일삼는 권력자들에 신물이 난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박정희 독재에 이은 전두환 독재를 종식시킨 1987년 6월 시민항쟁과 7월 노동자대투쟁 이후엔 그나마 ‘살맛나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민주화된 것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낳았다. 본질적으로야 ‘신자유주의’ 정권이었지만 그래도 ‘숨통’은 좀 트인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촛불 정국’ 이후, 갈수록 ‘숨통’이 조여든다. 나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있고 느낌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다 느낀다. 풀뿌리 속에 급속히 늘어가는 ‘집단 우울증’을 저들은 알고나 있긴 한가? 집단 우울증이 심해지면 모든 조직, 전체 사회가 더욱 병들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이렇게 침몰하는 것을 참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만일 내가 대통령이라면…’이라는 상상을 시작해본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용산 참사 현장에 가서 유가족 앞에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꿇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손을 잡고 진심으로 위로하고 사죄할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그 아픔, 그 고통을 미처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사죄를 하러 너무 늦게 온 것을. 나아가 앞으로는 철거민 사태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국민이 나름의 삶의 공간을 알콩달콩 꾸미고 살 수 있도록 모든 방책을 강구할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쌍용차 현장을 직접 방문할 것이다. 전 직원을 정규직화하고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를 실시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자동차 생산을 줄이고 자전거를 생산할 것이다. 이것이 성공적이라면 이 모델을 모든 기업으로 확산할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죄를 하고 법안 그 자체를 국민이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 속으로 보낼 것이다. 대기업이나 재벌이 대학, 학교, 언론, 금융 등을 장악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또 ‘미네르바’ 같은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나와서 개방적 토론을 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대로 명실상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100% 보장할 것이다. 다른 헌법 조항도 그렇게 실시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레드 콤플렉스’를 유도하는 ‘국가보안법’도 당장 없앨 것이다. 개인적 사리사욕이 아니라 사회적 행복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 매도하는 일이 절대 없게 만들 것이다.

좋은 일터·좋은 학교·좋은 농업…








◎ [박노자 인터뷰] 고장난 ‘MB 자전거’

◎ 집단 기억과 현재 그리고 전망
◎ ‘남·북·일 3국의 가교 정대세의 꿈은?

◎ 루앙프라방의 가난한 행복
◎ 쿠데타의 국제정치학

[8월호 기사 목차] | [르 디플로 바로가기]


내가 대통령이라면 비정규직 제도 자체를 없앨 것이다. 모든 사람이 정규직으로서 조금씩 일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사회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사람이 일에 얽매여 귀중한 인생을 헛사는 오류를 반복하지 않도록, 그리하여 날마다 삶의 여유와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특목고니 자사고니 하는 시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가 교장을 선출하게 하고 아이들은 인격 양성에 필요한 공부를 5시간만 하게 하고 오후엔 자기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게 할 것이다. 당장 야간 자율학습이니 기숙사 특별반 운영이니 하는 것 모두 없앨 것이다. 학교마다 학교 텃밭을 가꾸게 하고 아이들 점심시간에 먹는 채소는 일부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기른 것으로 공급하게 할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유기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을 특별 공무원 대접할 것이다. 우리 사회 전체를 먹여살리는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농업은 단지 하나의 경제 분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농약과 제초제 사용은 최대한 규제할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남한과 북한의 기득권자들끼리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이 원하는 방식의 통일을 토론하게 하고 그 전제 조건으로서 다양한 방면에서 상호 교류 활성화를 유도할 것이다.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존하는 제3의 체제를 만들든지, 아니면 현 상태의 상호 인정 위에 민주적 교류를 활성화하든지 등의 방법을 철저히 강구할 것이다. 남북통일의 원칙은 평화와 공존, 진실과 기득권 포기가 될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개성 있는 고교 평등화, 개성 있는 대학 평등화, 개성 있는 직업 평등화를 실현할 것이다. 아이들이 자기 하고 싶은 공부를 꾸준히 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사회적으로 대우를 비슷하게 한다면, 일류대학을 가기 위해 친구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거나 경쟁하다가 좌절감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자기 내면의 끼를 자유롭게 발산하게 한다면 사회 전체의 실력과 활기도 드높아질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대형마트나 초대형 슈퍼 같은 것을 불허할 것이다. 지역마다 전통적인 5일장이나 마을 시장을 활성화하고 자원 재활용을 위한 벼룩시장을 일상화할 것이다. 장터는 단순한 상품 거래 공간이 아니라 지역민들 만남의 공간이자 문화 창조 및 교류의 공간이 되도록 만들 것이다.

탈집중과 주거 교육 의료 탈상품화, 그리고 연대

내가 대통령이라면 서울이나 수도권의 집중을 철저히 완화하며 서울의 기득권을 모두 해체할 것이다. 전국 어느 곳이라도 자연과 인간이 쾌적하게 공존하는 ‘전원 마을’을 만들 것이다. 집집마다 채소를 스스로 길러 먹게 유기농 텃밭 운동도 실시할 것이다. 땅 투기, 난개발은 절대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주거·교육·의료의 탈상품화를 할 것이다. 땅과 집, 육아와 교육, 의료와 건강은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선 곤란하다. 옷이나 가방, 신발이나 그릇 같은 것은 사고팔아도 큰 문제없다. 그러나 주거·교육·의료를 상품화하면 빈익빈 부익부가 증가한다. 모든 국민은 이 세상에 태어날 적에 모두 소중한 보배로 태어났다. 이 보배들이 돈 있다고 잘 누리고 돈 없다고 못 누리며 사는 세상은 대통령으로서 직무유기의 결과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소득세 누진제를 더욱 철저히 실시하고 온갖 탈세, 누세를 잡아낼 것이다. 일부 건설토목업자와 관변 학자들의 배만 불리는 공공사업을 원점 재검토할 것이며 정부 지출에서 국민 복리 향상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을 과감히 줄일 것이다. 탈세, 누세를 잡아내기 위해 ‘경제 암행어사’ 제도를 쥐도 새도 모르게 실시할 것이다. 비리를 일삼는 모든 사람을 공사 구분 없이 엄단할 것이다. 그리고 진실하고 용감한 내부고발자에게 ‘양심 노벨상’을 수여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할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행정책임실명제’를 실시할 것이다. 행정가, 공무원들이 특정한 자리에 있을 때 사리사욕이나 부정부패를 통해 인허가, 승인한 모든 결정 사항에 대해서는 무한 책임을 명백히 물을 것이다. 예컨대, 터무니없는 고층아파트 단지를 허가한 뒤 흉물로 남게 만든 담당 공무원, 과장, 군수, 시장, 도지사, 도시계획위원회 위원들에게는 자신만이 아니라 자손대대로 책임을 물어 흉물이 된 건축물을 모두 허물게 하고 그 자리에 공원이나 유기농 단지, 전원 마을 같은 것을 만들도록 모든 비용을 끝까지 물게 할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 모든 구상에 찬성하는 국민들에게 청와대의 문을 개방하고 날마다 2시간씩 간담회와 토론회를 개최할 것이다. 그 국민들이 이런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국민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점은 보완하고 어떤 점은 수정해야 할지 따위에 대해 따뜻한 차 한 잔씩 나누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런 구상을 구현하겠다고 하는 세계 모든 나라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국제 연대를 구축할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 등 강대국이든, 국제통화기금(IMF)든, 세계은행이든, 세계무역기구(WTO)든, 그 누구라도 이런 구상을 싫어한다면 관계를 단절할 것이고 이런 구상에 찬동하고 함께 만들어간다면 굳게 연대할 것이다. 세상 모든 나라들이 더 이상 무한 경쟁이라는 ‘죽음의 행렬’에 빠지지 않고 각 나라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건강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당연히 이 모든 이야기는 ‘상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절망이 우리 삶을 압도하는 바로 이런 시기야말로 풍부하고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풍성한 상상력에 토대한 꿈,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나 하나만 꿈꾸면 꿈으로 남지만 우리 모두가 꿈꾸면 현실이 된다. 이를 연장하면 이렇다. 오늘만 꿈꾸면 꿈으로 남지만 우리 모두 매일 꿈꾸면 현실이 된다. 여기서만 꿈꾸면 꿈으로 남지만 여기서도 저기서도 우리 모두 매일 꿈꾸면 현실이 된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이라는 상상을 온 사회 구성원이 나누기 시작해보자.

좌절감을 안겨주는 절망적 현실, 좌절하고 포기해버리면 절망을 넘어 끝장이다. 반면에 그런 현실에 분노와 증오로만 대응하는 것도 대안은 아니다. 기득권의 달콤함에 중독된 강자들에게 아무리 호소해봐야 소용없다. 자칫 그들의 새로운 그물망에 포획되기 쉽다. 그래서 풀뿌리 스스로 자본 독립적이고 권력 독립적인 방식으로 대안을 상상하고 토론하고 대화하고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주체적으로 창조해야 한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바로 이것이 희망의 근거가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상상, 과연 이것은 일장춘몽에 불과할 것인가? 참고로, 나는 이장 이상의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글 ·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이자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신안1리 이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2009), (2009), (200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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