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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주변의 달, 너희는 뭐냐

③ 모호한 정체성- 뿌리 깊은 ‘민주당 형제자매 DNA’, 거대 양당 ‘모두까기’ 하면서는 ‘비호감’ 커져
등록 2022-06-21 12:54 수정 2022-11-09 06:02
2019년 12월2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의 동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2019년 12월2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의 동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한국 진보정치의 얼굴이라 할 정의당이 수렁에 빠졌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참담한 패배를 겪었다. 원내 제3당인데도,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모든 광역의회 정당투표에서 정의당은 득표율 5% 선을 넘지 못했다. ‘심판받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의당 안팎에서는 ‘재창당’ 수준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인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총사퇴, 지역구 의원인 심상정의 정계 은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민주노동당 시절 한때 2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얻었던 진보정치는,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정의당의 참담한 지방선거 성적표가 나온 뒤, 6월7일부터 16일까지 <한겨레21>은 30명가량의 정의당 안팎 인사를 만나거나 전화로 취재해 ‘정의당의 위기’에 대해 묻고 들었다. 30명 중에는 전·현직 국회의원 5명, 6·1 지방선거 출마자 7명, 당과 긴밀한 외부 관계자 5명 등이 포함됐다.
정의당에, 새로운 길이 있을까.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는 이번호에 이어, 정의당이 나아갈 길 등 못다 실은 이야기는 다음호에 이어진다. _편집자주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대연합 내지 선거연합을 통해 성장하겠다고 한 것이 패착이에요. 그 속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도 있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논란도 있죠. 1987년 민주화세대가 끝나고 이제 민주대연합 자체가 의미 없는데 아직도 정의당은 그 범주에 있어요.”(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정의당 안에 민주대연합 디엔에이(DNA)가 뿌리 깊게 박혀 있어요. 지도부나 의원들한테만 있는 게 아니라 당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그 DNA가 정말 세요.”(이병길 정의당 전략홍보본부장)

제20대 대통령선거와 6·1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나타난 정의당 위기의 근본 원인이 민주대연합이라는 ‘유령’이라고 지목하는 이가 많다. 민주대연합은 쉽게 말해 보수 진영의 집권을 막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범민주세력’이 단결해야 한다는 정치전략을 뜻한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때 독재정권을 종식하기 위한 논리로 생겨났는데, 민주화 이후에도 선거 때만 되면 보수정당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후보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뼈아픈 오판

민주대연합은 그동안 정의당에 ‘양날의 칼’이었다. 후보단일화를 하면 민주당 이중대라고 비판받을 때도 있었지만, 당의 생존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후보는 민주당, 정당은 정의당’을 찍는 유권자의 교차투표로 국회 비례대표 5~6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정의당 후보의 지지세가 강한 일부 지역에선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는 ‘배려’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정의당은 민주당의 ‘하위 파트너’가 되고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비판과 견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배경이 됐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공생이 깨진 것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을 때다. 정당득표율만큼 국회의석을 배정받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성사시키려면 민주당의 협조가 필요했다. 이 무렵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터져나왔지만, 정의당은 민주당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추진은 정의당에 ‘마이너스 게임’이 됐다. 국민의힘의 거센 반대를 뚫고 민주당과 정의당이 공직선거법을 통과시켰지만 민주당은 스스로 합의한 제도를 무력화하는 ‘위성정당’을 만들며 정의당을 배신했다. 민주당과 협조하느라 민심을 잃은 정의당은, 결국 실리도 챙기지 못했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조국 사태 때 당내 고문들은 ‘지금은 힘들겠지만 정치를 길게 보고 반대하라’고 (당 지도부에) 조언했다. 하지만 당장 (총선을 앞두고) 광역시도당 위원장들 대부분은 (민주당 입장에) 찬성했다. 민주당이나 개혁세력과 연결돼 있으니 그걸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당대표였던 심상정 의원은 2022년 1월 언론 인터뷰에서 이때의 선택을 돌아보며 “20년 정치하면서 가장 뼈아픈 오판”이라고 말했다.

어디에서도 박수받지 못하는 ‘모두까기’ ‘댓글정치’

2022년 3월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이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급하게 밀어붙일 때도 정의당은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배진교 당시 원내대표는 4월21일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민주당의 속도전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이후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정의당 소속 의원 6명은 검찰청법 개정안에 찬성하고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기권했다. 이를 두고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정의당이 오락가락하다 무리한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에 손들어준 모양새를 취했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또다시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여줘 국민한테 정의당의 필요성과 존재 이유를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종권 전 진보신당 부대표도 “민주당은 싫지만 국민의힘으로는 차마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정의당이 선택지가 되지 못했고, 지구와 달처럼 민주당 주변에 있는, 다른 의미의 위성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못 벗어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의당 사람들은 2020년 총선 이후 민주당과 나름 ‘거리두기’를 해왔다고 항변하면서도 그 방식이 전략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했다. 김보경 정의당 전국위원(서울 마포)은 “비례 위성정당 논란 이후 당의 정치적 포지션이 계속 힘들었다. 민주당 이중대라고 하는데 이중대 구실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기준 없이 양당(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모두까기’만 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너희는 뭐냐’고 묻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선 “댓글정치는 그만하자”는 비판도 나왔다. 거대 양당의 온갖 정치적 싸움에 끼어 댓글을 남기듯이 양쪽을 비판만 하다보니 어느 누구에게도 박수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2022년 4월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실시한 ‘정당 호감도 조사’에서 정의당은 ‘비호감’ 1위를 기록했다. 응답자의 63%가 정의당에 ‘호감 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더불어민주당(59%)과 국민의힘(52%)보다 높았다.

“우리는 캐치올파티가 아니다”

정의당이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심판받았지만, 한국 정치에서 제3정당의 필요성마저 약해졌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과거 민주노동당 때부터 2020년 총선에 이르기까지 주요 선거에서 제3정당인 진보정당의 정당득표율은 10% 안팎을 유지했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최근 두 차례 선거에서 투표 결과가 양당에 쏠리는 현상이 나타난 건 정의당이 대안으로서 인식되지 못해서이지 양당제에 대한 거부감은 더 많이 생기고 있다고 본다. 정의당이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결국 민주당에 동조하느냐 마느냐의 프레임을 넘어 ‘정의당은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는 게 최우선 과제다. 정의당이 최근 제21대 국회에서 주력했던 의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중대재해처벌법, 차별금지법 정도를 손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실질적으로 입법에 성공한 건 중대재해처벌법 하나다. 과거 민주노동당은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같은 슬로건으로 대중에게 당의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국회 의석 6석인 소수정당으로서 정체성을 확보하려면 모든 이슈를 백화점식으로 다룰 게 아니라 핵심 의제 하나를 파고드는 전략을 펴야 한다고 당 안팎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윤재설 정책위원회 연구위원은 “정의당이 캐치올파티(Catch-all Party·국민 전체를 대표하려는 정당)같이 행동하면 안 된다. 우리가 대변하려는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영세 상공인, 여성, 청년의 삶을 개선하는 의제를 갖고 일해야 한다. 정치에 깊이 관련된 사람들만 관심 갖는 의제에 치중하면 우리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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