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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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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에서 당선될만한 정의당 인물은?

② 리더십 부재- 국회의원 11명 중 심상정·노회찬 제외하고
재선 실패, 1세대·3세대 가교 구실 할 인재도 부족해
등록 2022-06-18 13:39 수정 2022-11-09 06:02
제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2월4일 국회에서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표(오른쪽)가 지금은 고인이 된 노회찬 공동선거대책위원장에게 당의 상징색인 노란색 넥타이를 건네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제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2월4일 국회에서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표(오른쪽)가 지금은 고인이 된 노회찬 공동선거대책위원장에게 당의 상징색인 노란색 넥타이를 건네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한국 진보정치의 얼굴이라 할 정의당이 수렁에 빠졌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참담한 패배를 겪었다. 원내 제3당인데도,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모든 광역의회 정당투표에서 정의당은 득표율 5% 선을 넘지 못했다. ‘심판받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의당 안팎에서는 ‘재창당’ 수준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인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총사퇴, 지역구 의원인 심상정의 정계 은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민주노동당 시절 한때 2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얻었던 진보정치는,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정의당의 참담한 지방선거 성적표가 나온 뒤, 6월7일부터 16일까지 <한겨레21>은 30명가량의 정의당 안팎 인사를 만나거나 전화로 취재해 ‘정의당의 위기’에 대해 묻고 들었다. 30명 중에는 전·현직 국회의원 5명, 6·1 지방선거 출마자 7명, 당과 긴밀한 외부 관계자 5명 등이 포함됐다.
정의당에, 새로운 길이 있을까.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는 이번호에 이어, 정의당이 나아갈 길 등 못다 실은 이야기는 다음호에 이어진다. _편집자주

정의당은 심상정·노회찬이라는 걸출한 스타 정치인 이후 두각을 나타내는 이가 없고 고질적인 리더십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당내에서는 그동안 인재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데 치중하고 당내 정치인 육성에는 소홀했던 점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한다. 정의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이 가운데 당에 ‘뿌리내린’ 사람은 드물다. 정의당 창당(2012년 10월) 이후 제19~20대 국회의원을 한 사람은 11명이다. 이 가운데 심상정 의원과 고 노회찬 의원이 각각 4선, 3선 의원을 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재선에 실패했다.

세 명이 민주당 정권에서 ‘한자리’

제19대 국회 비례대표 4명 가운데 박원석(52)·정진후(65)·김제남(59) 전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판사 출신 서기호(52) 전 의원은 총선에 불출마하고 현재 변호사로 활동한다. 4명 가운데 현재 실질적인 정당 활동을 하는 이는 박원석 전 의원뿐이다. 박 전 의원은 정의당 고양을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제남 전 의원은 제20대 총선에서 서울 은평을에 출마했다가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하고 사퇴했다. 녹색연합 사무처장 출신인 김 전 의원은 이후 2020년 대통령비서실 기후환경비서관에 발탁되고 시민사회수석을 거쳐 2022년 2월부터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을 지내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출신인 정진후 전 의원은 2018년 경기도교육감 선거 출마를 위해 탈당했고, 2019년 경주대 총장을 지냈다. 김제남, 서기호 전 의원도 현재 탈당한 상태다.

제20대 국회에서 정의당 비례대표이던 김종대(56)·윤소하(61)·이정미(56)·추혜선(51) 전 의원도 모두 제21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윤소하, 추혜선 전 의원은 각자의 길을 갔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 출신인 추혜선 전 의원은 2021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상임감사로 임명됐고, 정의당 원내대표였던 윤소하 전 의원도 2021년 한국농어촌공사 감사로 임명됐다.

김종대 전 의원은 현재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로 있다. 김 전 의원은 당직은 맡지 않았지만 현재 당원이다. 당내 인사인 이정미 전 의원이 인천 연수구 지역위원장을 맡아 정치활동을 하며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정의당 국회의원 출신 인사 세 명(김제남·윤소하·추혜선)이 더불어민주당 정권에서 ‘한자리’를 맡은 걸 두고 당내에선 씁쓸하지만 개인의 선택을 탓할 수만은 없다는 분위기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정의당에 있던 의원 보좌관, 당직자, 연구원이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나 공공기관, 연구소, 서울시 산하기관 등으로 진출했다. 윤재설 정의당 정책위원회 연구위원은 “개인적으로 당에서 전망을 찾기 어려워 다른 쉬운 길을 찾아서 가는 것인데 당이 정확한 방향이나 비전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성공했다면

정의당은 창당 이후 10년째 국회의원 5~6명인 소수정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당의 조직 규모도 쪼그라들었다. 정의당 권리당원은 한때 3만5천 명 수준이었다가 2022년 대선 즈음 2만 명대로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에 있던 사람마저 떠나는 것이다.

정의당은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사활을 걸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만큼 의석수를 가져가는 제도다. 지역구에 취약한 정의당은 이 제도로 원내교섭단체(의석수 20석 이상)도 꿈꿀 수 있었다. 심상정 의원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을 맡아 비례대표 의석수 일부에 한해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개정에 반대한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한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얻기 위한 꼼수로 ‘위성정당’을 만드는 바람에 선거법 개정 효과가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제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비례대표 5석을 얻는 데 그쳤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성공했다면 정의당이 인적·물적 기반을 강화해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지 않았으리라는 게 당내 공통 인식이다.

6·1 지방선거에 정의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황순식 경기도당위원장은 “2019년 조국 사태에서 당이 흔들렸어도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유의미한 의석수를 확보했으면 다행인데, 거기서 실패한 게 결정타가 되어 당내 정치인들이 다 무너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2020년 10월 정의당은 당내 4050세대 대표주자이던 김종철을 대표로 하는 체제를 세우며 쇄신을 도모했다. 하지만 ‘2세대 진보정치’를 열 것으로 기대를 모은 김종철 대표는 성추행 사건으로 석 달 만에 물러났다. 이후 류호정·장혜영 의원 등 3세대 정치인들이 정의당의 ‘얼굴’처럼 부각되는 과정에서 당의 정체성과 정치노선 등을 둘러싼 시각차가 분열 양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는 정의당 내부에서 1세대와 3세대의 가교 구실을 할 허리층의 인재풀이 얇아지면서 생긴 문제이기도 했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심상정 이후 후속 리더십이 계속 좌초되고 정체된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조혜민 전 정의당 대변인은 “정치인으로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당이 이들에게 투자하는 문제를 더 고민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이번 지방선거에 나선 몇몇 분이 페이스북에서 ‘이번 선거가 마지막’이라고 쓴 문장을 봤다. 선거 결과가 주는 충격이 있지만 실제 후보로 나섰던 분들이 갖는 당에 대한 아쉬움은 단순히 결과에 비교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비례대표에만 매몰되는 정당?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은 지역정치에 집중한 결과 6·1 지방선거에서 당선자 21명을 배출했다. 진보정당에서 유일한 기초단체장(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을 당선시켰고, 광역의원 3명과 기초의원 17명이 지방의회에 입성했다. 4년 전 지방선거 당선자(10명)에서 두 배로 늘었다. 반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 37명을 당선시킨 정의당은 6·1 지방선거에서 당선자가 9명으로 4분의 1 수준이 됐다. 6·1 지방선거에서 진보당의 정당득표율(광역의원 비례대표)은 0.9%고 정의당은 4.1%였지만, 지역에서의 당선 성과는 정당득표율과 비례하지 않았다. 더구나 정의당 정당득표율은 2018년 9%에서 반토막이 났다. 김준수 정의당 성북구위원장은 “진보당이 지역이든 노동이든 농민이든 전통적인 사회운동 또는 대중운동과 결합력을 높였다. 정의당도 이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를 통해 의회에 진출하려는 정의당의 전략이 당내 인사들의 정치적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측면도 있다. 이병길 정의당 전략홍보본부장은 “우리 당이 비례대표에만 매몰되는 정당이라는 말이 많은데, 이 고리를 한번 끊어내야 당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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