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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비상’ 상황의 25년 진보정당사

⑤ 1997년~2022년 국민승리21에서 정의당까지
등록 2022-06-21 13:10 수정 2022-11-0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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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정치의 얼굴이라 할 정의당이 수렁에 빠졌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참담한 패배를 겪었다. 원내 제3당인데도,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모든 광역의회 정당투표에서 정의당은 득표율 5% 선을 넘지 못했다. ‘심판받았다’는 평가도 나온다.정의당 안팎에서는 ‘재창당’ 수준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인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총사퇴, 지역구 의원인 심상정의 정계 은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민주노동당 시절 한때 2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얻었던 진보정치는,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정의당의 참담한 지방선거 성적표가 나온 뒤, 6월7일부터 16일까지 <한겨레21>은 30명가량의 정의당 안팎 인사를 만나거나 전화로 취재해 ‘정의당의 위기’에 대해 묻고 들었다. 30명 중에는 전·현직 국회의원 5명, 6·1 지방선거 출마자 7명, 당과 긴밀한 외부 관계자 5명 등이 포함됐다. 정의당에, 새로운 길이 있을까.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는 이번호에 이어, 정의당이 나아갈 길 등 못다 실은 이야기는 다음호에 이어진다. _편집자주

1997년

국민승리21 출범과

권영길 대선 출마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전국연합·진보정치연합을 주축으로 한 ‘국민승리21’이 출범, 권영길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을 독자 후보로 추대했다. 1996년 노동법이 ‘날치기’로 통과되자 독자적인 노동자 정치 세력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권 후보의 득표(30만6026표·1.19%)는 저조했지만, 이후 진보정당 건설로 이어지는 초석을 놓았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2000년 1월, 긴 준비 끝에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초대 당대표로 권영길을 선출했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13.1%를 득표, 의원 10명을 배출해 진보정당 첫 ‘원내 진출’을 이뤄냈다. 부유세 신설과 무상의료·무상교육을 주장했으며, 이라크전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졸속 추진을 반대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고금리제한법 등 민생 법안을 여럿 내놓기도 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과

진보신당 창당

2006년 문성현 대표 체제 출범 뒤 민주노동당 내 정파 갈등이 증폭됐다. 당내 다수파였던 자주파가 ‘일심회 사건’(당원이 연루된 간첩사건) 관련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지율도 떨어졌다. 일심회 관련자 제명을 담은 혁신안이 부결되자 노회찬, 단병호, 심상정, 조승수 등 평등파가 대거 탈당했다. 탈당한 이들은 2008년 3월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2011년 12월

통합진보당 창당

2008년 총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의 성적이 저조하자, 노회찬·심상정·조승수 전 의원을 중심으로 진보정당 통합 필요성이 제기됐다. 진보신당 내부에서 민주노동당과의 합당 시도가 실패하자 이들은 탈당해 ‘새진보통합연대’를 꾸렸다.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새진보통합연대는 민주노동당, 친노계열인 국민참여당과 함께 2011년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제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13석을 얻었다.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 창당

진보정당 사상 최다 의석수를 얻었지만 비례대표 후보 부정 경선 사태를 계기로 통합진보당은 분당된다. 당 중앙위원회에서 경선으로 선출된 비례대표 후보 총사퇴 안건을 두고 폭력사태가 일어났고, 결국 노회찬·심상정·유시민 등 비당권파가 탈당해 ‘새진보정당추진회의’를 결성했다. 제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 창당대회를 열어 심상정 의원을 대선 후보로 선출했고, 2013년 당명을 ‘진보정의당’에서 ‘정의당’으로 바꿨다.

2014년 12월

헌재, 통진당 해산 결정

2014년 12월19일, 통합진보당이 창당 3년 만에 해산당했다.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8 대 1의 의견으로 해산을 결정했다. 당 주도 세력이 북한과 연계해 활동했다는 이유다. 2013년 8월 국가정보원의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수사가 발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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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심상정 대선 후보 출마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제19대 대선에 출마해 6.17% (201만7458표)를 득표했다. 진보정당 역사상 최다 득표다. 이전까진 2007년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얻은 3.01%(71만2121표)가 최대치였다. 앞서 심 대표는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진보정의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를 공식 지지하며 사퇴했다.

2018년 7월

노회찬 의원 사망

7월23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드루킹’ 김동원씨가 주도하는 ‘경제적공진화모임’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특검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노 의원은 유서에서 ‘경공모’로부터 4천만원을 받은 점을 인정하며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지만 “어리석은 선택이었고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적었다.

2021년 1월

김종철 대표 직위해제

1월25일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소속 당 국회의원을 성추행해 직위해제됐다. 정의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김 대표를 중앙당기위원회에 제소했다. 당기위(징계위)는 김 대표 제명을 결정했다. 최고수위 징계였지만 정의당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2022년 6월

이은주 비대위 체제 출범

정의당이 6월12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했다. 앞서 여영국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는 6·1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비대위원장은 이은주 원내대표다. 비대위는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9월 전당대회까지 “정의당의 정체성, 노선과 입장, 태도를 분명히 확립”할 책임을 맡았다. 6·1 지방선거에 당선된 정의당 광역·기초의원은 9명으로, 2018년 지방선거(37명)에 견줘 큰 폭으로 줄었다.

정리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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