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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사태, ‘기업사회’의 묵시록



박용성 회장의 강경책은 두산중공업 노사분규 때와 판박이…이윤 극대화 논리가 사회를 잠식하다
등록 2010-05-07 14:18 수정 2020-05-03 04:26
중앙대 사태는 대기업의 논리가 사회의 모든 분야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4월8일 중앙대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학교 앞 공사장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시위하고 있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중앙대 사태는 대기업의 논리가 사회의 모든 분야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4월8일 중앙대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학교 앞 공사장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시위하고 있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박용성스럽다.” 최근 학과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진통 중인 중앙대를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중앙대 이사장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직선적 성격답게 정면돌파를 택했다. 구조조정에 반대하던 김주식(26·철학과 휴학 중)씨에게 학생에겐 ‘사형선고’에 해당하는 퇴학 처분을 내렸다. 시위를 벌인 다른 3명의 학생에게도 징계와 명예훼손 혐의 고소, 공사 지연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제기를 검토 중이다. 또 구조조정 내용과 추진 방식을 비판하는 서울대 장덕진 교수의 글에 대한 반론도 신문에 실었다.

대학이 ‘직업교육소’로 바뀌어야 한다?

경제기자가 대학 문제에 어줍게 나서는 것은 사건의 중심에 박 회장이 서 있고, 그 뒤에 대자본과 대기업의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 학생에 대한 처리 방식은 박 회장이 대표였던 두산중공업의 노사분규 대처와 판박이다. 두산은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한 뒤 노사갈등이 심해지자 노조간부 무더기 징계·해고, 수십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재산 가압류 신청 등의 초강경책을 썼다. 이번 학과 구조조정 방안도 박 회장의 소신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학교 당국은 일방적 구조조정이라는 반발에도 불구하고 현행 18개 단과대, 77개 학부(과) 체제를 10개 단과대, 46개 학과로 줄였다. 취업률이 낮은 인문·사회대가 주로 희생양이 됐다. 이에 앞서 총장 직선제 폐지, 교수 차등연봉제 전환, 전교생 교양필수과목에 회계학 추가 등의 조처를 취했다. 박 회장은 이미 여러 차례 대학이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직업교육소’로 바뀌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혀왔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시절인 2004년 11월 서울대에서 연 강연은 그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대학이 전인교육의 장, 학문의 전당이라는 말은 헛소리이고 옛 이야기다. 이제는 ‘직업교육소’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두산의 고위 임원은 박 회장의 생각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두산은 매년 중앙대에 수백억원을 지원하는데, 그 돈이 낭비되지 않고 제대로 쓰여야 한다. 둘째, 중앙대의 학과가 너무 많다. 서울대라면 몰라도 중앙대는 지금의 학과가 모두 필요하지 않다. 셋째, 일을 더 많이 하는 교수에게는 연봉을 더 주겠다. 이상의 세 가지를 경영용어로 표현하면 효율성, 선택과 집중, 경쟁 도입 정도가 될 것이다. 두산은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주류사업이 핵심인 중견그룹이었다.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 남보다 앞선 구조조정과 과감한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급성장했다. 이제 그 노하우를 중앙대에 접목해 경쟁력 있는 직업교육소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대학=직업훈련소’의 발상은 박 회장 개인의 독창적 착상은 아니다. 대자본과 대기업 일반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현역 시절 대학이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이 직접 교육부 장관을 맡아 대학을 완전히 바꿔보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결국 중앙대 사태의 본질은 박 회장이 대변하는 대기업의 논리와, 19세기 초 독일 베를린대학을 효시로 출범한 근대대학이 200년간 지켜온 ‘인문학 중심의 교양교육과 직업교육 간의 조화’라는 가치가 정면 충돌한 것이다.

사회 각 부문이 지켜온 고유 가치와 원칙들이 대기업의 힘과 논리에 복속되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와 국가의 한 부분이던 기업이 사회와 국가의 전부인 양 부풀려지고, 기업의 이익과 가치가 절대시되는 ‘기업사회’의 징후가 도처에서 감지된다. 기업사회의 대표적 증후군을 꼽아보자. 대기업이 경제는 물론 정치·사회 영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기업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사실상 홍보지로 전락한다. 법치주의를 구현해야 할 검찰이 대기업의 위법행위에 오히려 면죄부를 준다. 진리를 추구해야 할 학자와 지식인들도 대기업의 들러리로 전락한다. 정치는 4류, 정부는 3류, 기업은 1·2류라는 말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심지어 대학총장까지 기업 최고경영자 출신이 차지한다. 금융위기 이후 다시 주목받고 있는 헝가리 태생의 경제학자인 칼 폴라니는 이를 “시장(기업)이 사회를 식민화한 상태”라고 표현했다. 한국 사회는 기업사회 증후군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대한민국 CEO’를 자처한 대통령

기업은 영향력 확대를 위해 막강한 자본과 정보,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한다. 하지만 기업사회가 꼭 강압과 타율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경쟁력과 효율성을 앞세운 대기업의 이데올로기가 사회 구성원의 의식에 내면화하면서 자발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기업의 가치와 자신을 일치화하지 못할 때 오히려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해고, 비정규직화, 노동3권 제한, 인적 구조조정 등 서민의 삶을 파괴하는 ‘괴물’들이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이유로 어느덧 당연시되고 있지 않은가. 또 기업의 이윤 극대화, 경쟁력 강화 요구를 국가 발전이나 국민의 행복과 동일시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존재 이유가 기업과 전혀 다른 병원·학교·종교까지 기업 모델을 따라 자신을 개조하는 세상이다.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에 정부와 정치를 직접 맡기자는 대담한 제안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설마라고 하지 말자. 이명박 대통령이 첫 방미길에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CEO)’를 자처한 것은 기업을 자신의 표상으로 삼는 기업사회의 상징적 모습이다.

문제는 기업사회의 종착점이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 극대화다. 하지만 기업의 과실은 소수 대주주와 최고경영자들에게 집중된다. 기업의 실적이 좋아도 사회 전체 구성원의 행복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회 내 격차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서는 때로는 불법·편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중시하는 기업은 기본적으로 민주적이지 않다. 도로·교통·수도·전기·의료 등과 같이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공공부문이 이윤 극대화라는 사기업의 논리를 좇는다면 사회와 시장경제는 무너진다. 기업경영은 당장의 성과에 매달리지만, 정치는 과정과 명분, 가치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기업사회는 기업 스스로에게도 ‘독’이 될 수 있다. 천문학적 광고비를 동원해 자신의 치부는 가리고 좋은 점만 부각하도록 언론을 매수한 도요타의 절대권력이 오히려 위기의 주범으로 꼽힌다.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단지 회계수치에 익숙한 산업일꾼이 아니라 폭넓은 기초 소양과 샘처럼 솟아나는 창의성을 함께 갖춘 인재다.

재벌 지배는 봉건사회로의 회귀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기업사회의 징후는 서구 선진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지만, 한국은 남다른 특징이 더해진다. 한국의 대기업은 재벌총수가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황제경영이다. 기업사회는 곧 소수 군주들의 지배하에 놓이는 봉건사회로의 회귀를 뜻한다. 기업사회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독점 대기업이 시장을 마음대로 요리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사회, 대기업이 학교·병원 등을 직접 지배하지 못하는 사회, 기업의 정치권 지원을 제한하는 사회, 기업의 언론 소유를 제한하는 사회, 정부와 기업체를 자유로이 오가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를 규제하는 사회, 위법을 한 기업인은 법에 따라 처벌하는 사회…. 우리 사회는 이 요건들을 얼마나 갖추고 있을까?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이번호부터 격주로 연재되는 ‘곽정수의 경제 뒤집어 보기’는 오랫동안 대기업 문제를 심층 취재해온 곽정수 기자가 여러 경제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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