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당신처럼 한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멀리 흘렀다”(첫 번째 시집 ‘시인의 말’ 중)
시인 박준(37)은 주목받는 서정시인이다. 등단 12년, 문학계의 평가와 대중의 사랑을 다 잡았다. 드문 성취다.
첫 번째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2012)는 제31회 신동엽문학상(2013)을 받았다. 이때 “마음을 애틋하게 어루만지고 그윽하게 흔들어주는 무엇, 그것을 일단 느끼고 나면 다른 것은 돌아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황홀한 무엇이 박준의 시에 있었다”라는 심사평을 들었다.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2018)는 제7회 박재삼문학상(2019)과 제29회 편운문학상(2019)을 받았다. “이번 박재삼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김소월, 김영랑, 서정주, 박재삼에서 박준으로 한국 서정시 어법의 기원이 연결되고 새롭게 서정의 방향 전환이 가능해진다면 한국 현대시 발전에 의미 있는 일”(박재삼문학상)이라는 게 당시 심사평이었다.
주황색 다이어리
문단의 깐깐한 심사위원들로부터 ‘후한’ 평가를 받은 그의 작품들은 서점에서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출간 뒤 지금까지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집은 각각 15만7천 부, 5만 부 판매됐다. 척박한 문학시장에서 시집이 1만 부만 팔려도 스타 시인 대접을 받는 현실을 고려하면 경이로운 수치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7년 나온 그의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그의 시집 두 권의 판매량을 합친 양만큼인 20만 부가 나갔다. 2020년 7월에는 20만 부 판매를 기념해 ‘새 옷’을 입은 ‘리커버 에디션’이 나오기도 했다.
‘문학계 아이돌’ 박준 시인을 인터뷰하러 가는 길은 설레기도 했고, 떨리기도 했다. 누구든 만나는 게 기자라는 직업이지만 시인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다 인터뷰이가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우리 시대 대표적인 서정시인이니. 7월21일 박준 시인이 편집자로 일하는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그를 만났다. “책이 나오거나 별 이슈가 있는 상황도 아니라 인터뷰하면 무안할 것 같아 한동안 하지 않았어요. 오랜만에 인터뷰하게 되었네요.” 메모를 위해 늘 가지고 다닌다는, 손때가 묻어 까무잡잡하게 얼룩진 주황색 다이어리를 들고 자리에 앉은 그가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첫 번째 시집 ‘마음 한철’ 중)
근황을 물었다. 6년째 창비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다른 시인들의 시집을 기획하고 출간하는데 이것이 그의 생업이다. 그러면서 틈틈이 시를 쓴다. 이것만으로도 하루가 꽉 찰 것 같지만, 지난 3월부터 매일 밤(자정~2시) 라디오 프로그램(기독교방송(CBS)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 디제이(DJ)로도 일한다. DJ 멘트 원고를 몽땅 쓰는 구성작가 역할도 겸한다. 시인의 언어로 방송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라고. 어떻게 일정을 다 소화할까 싶지만 그는 즐기고 있었다. “작품 외에 제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형식(라디오)이 생겨서 신기하고, 당황스러우면서도 즐거워요.”
‘시인 모드’는 혼자 있을 때
시는 언제 쓸까. 그는 두 달 동안 한 편도 쓰지 못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시가 나한테서 멀어지면 어떻게 하지’ 하며 처음엔 발을 동동 굴렀어요. 그러다가 ‘매번 시를 쓰는 나와 같은 온도로 있을 필요는 없는 거야. 좀 식을 때도 있는 거야. 다만 시라는 끈을 놓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해요.” ‘고수의 여유가 느껴진다’고 추어올리니 그는 “게으른 자의 변명으로 비칠까봐 걱정”이라고 겸연쩍어했다.
그가 ‘시라는 끈’을 단단히 부여잡는 방법은 무엇일까. “두 가지예요. 하나는 책상에 앉아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시쓰기’가 있고, 다른 하나는 ‘완성하는 시쓰기’를 위해 꾸준히 ‘메모’하는 거예요.” 그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휴대전화나 수첩, 다이어리, 어디에든 닥치는 대로 메모한다고 했다. 그 메모한 내용으로 문장을 만들고 다듬는 게 ‘완성하는 시쓰기’다. 그것은 마감 직전에 한다. “(완성하는 시쓰기를 하는) 시간은 주로 밤과 새벽 시간인데 (방송 등을 하느라) 시간이 줄어든 게 맞아요. 하지만 메모의 시간은 줄지 않았어요. 일상에서 시적인 것을 포섭하고, 가공하고, 이것을 제가 경험한 어떤 시적인 순간에 대어보았다가 안 맞으면 떼어내고 이런 조합은 늘 이뤄지는 거니까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밥벌이를 중단하고 시만 쓰는 삶을 선택할까. 시인은 손사래를 쳤다. “계속 회사에 나가야죠. 저에게는 사람들이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하면서 만원버스에서 겪는 일 등 일상의 감각이 필요해요.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과 감정을 갖고 살지 않는 이상 좋은 글을 쓰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있어요.”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넘어짐과 일어섬 그마저도 지나서 한 이틀 후에 오는 반가운 것들”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등 일상의 감수성에서는 잉태되기 어려워 보이는 사유와 서정이 담긴 시어를 낳기 위해선 분주한 ‘일상인 박준’에서 ‘시인 박준’으로의 ‘변신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시인 역시 “그렇다”고 했다. 다만 “쉽지는 않다”고. “메모들을 조합한다고 시가 되지는 않아요. 시가 되려면 ‘미학적으로 점프’하는 단계가 필요해요. 하지만 시를 쓰기 위해 ‘시인 모드가 돼야지’ 한다고 해도 잘 안 돼요. 1980년대에 개그맨 심형래가 나오는 <우뢰매>라는 1세대 히어로물이 있었어요. 심형래가 히어로로 변신하는 방법이 한 바퀴 도는 것인데 이때 조건이 필요해요. 아무도 그 모습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 마찬가지로 제가 시인 모드로 전환하려면 혼자 있어야 해요. 근데 한 바퀴 돈다고 변신하는 것도 아니에요. ‘시적 점프’를 위해선 계속 시도해야 해요.”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과거의 일들과 마음만으로는 될 수 없을 미래의 일들”(산문집 ‘고독과 외로움’ 중)
박준은 2008년 25살(대학교 4학년) 때 계간지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그의 시쓰기 발원지는 고등학교 때 일기였다. “당시 쓴 일기는 시의 형식은 아니었지만, 수험생으로서 겪는 답답함을 날것 그대로 쏟아내는 감정의 배설구였어요. 아름다움·객관성·보편성 등 시의 조건이 여럿 있지만 0순위는 ‘마음을 진실하게 표현한다’인데, 당시 일기를 그렇게 썼던 것 같아요.”
독재자 습작생과 냉혹한 평론가
대학교 1학년 때 습작을 시작했다. 6년 동안 1천 편 가까이 쓰면서 신춘문예와 문예지를 가리지 않고 줄기차게 문을 두드렸다. 대부분 최종심에도 오르지 못했다. 100여 차례 고배를 연거푸 마셨다. 당시 상황을 그는 “지배적인 감정은 분노였고 골방에 앉아 혼자서 독재를 했던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3년쯤 지나자 다행히도 몸의 반절에서 ‘너는 못 써’라고 말하는 냉혹한 평론가가 생겼어요. 나머지 몸의 절반은 ‘와, 어떻게 이렇게 멋있는 시를 쓰지’라고 여전히 칭찬했고요. 창작자에게는 ‘자아존중감’과 ‘냉철한 자기비평’이 정확히 ‘50 대 50’으로 있어야 하는 듯해요.” ‘자아존중 100% 독재자 습작생’에서 ‘균형감각 있는 시인’으로 알을 깨고 나오는 “억겁의 과정”을 헤쳐나온 것이다.
그 진통을 견뎌가면서도 왜 시를 붙들고 있었을까. “시가 좋아서 썼어요. 무인도에 혼자 남아도 시를 쓸 것 같아요.” 그는 단순명쾌하게 답했다. “좋은 시를 한 편 쓰고 나면 엄청 행복하거든요.” ‘좋은 시’는 어떤 시일까. “문학적으로 합의한 좋은 시라는 건 미학적이고 새롭고 객관적이면 좋다고 얘기해요. 그런데 제가 얘기하는 좋은 시는 ‘가장 최근에 쓴 시’예요. 왜냐면 내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시를 끝내지 못하니까요. 부족한 점을 짚고, 퇴고하고, 이런 과정을 뚫고 나와 발표해도 좋은 시라고 저 자신과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 가닿으면 ‘좋다’고 얘기할 수 있어요. 그걸 완성했을 때 ‘행복하다’고 하는 거죠.”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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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의 미인
박준 시인의 팬들은 그의 시에서 나오는 ‘미인’이라는 등장인물에 익숙하다. “미인도 나도 흔들리는 마음들에게 빌려온 것이 적지 않아 보였다”(‘호우주의보’) “오랫동안 미인은 돌아오지 않고 종이학은 미인의 방으로 들어가 날개를 접었다”(‘학’)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마음 한철’)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꾀병’)
미인은 사회적으로는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의미로 읽혀 사용에 주의가 필요한 낱말이다. 하지만 시인의 작품에선 의미가 다르다. 세상을 떠났거나, 시인 곁을 떠나 ‘관계가 죽은’ 이 중 시인에게 아름답고 애틋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시집에 등장하는 미인 중 30% 정도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누나예요. 그리고 10%, 5% 등의 지분으로 다 다른 사람들이 있어요.” 그중 한 사람이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이다. 20대에 권정생 선생의 글을 많이 읽었다는 시인은 그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미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의 첫 번째 시집에 수록된 ‘미인처럼 잠드는 봄날’에 등장하는 미인이 바로 권정생 선생이다. “나는 푹 끓은 백숙 자세로 엎드려 미인을 생각하느라 무릎이 아팠다. (중략) 미인을 생각하다 잠드는 봄날, 설핏 잠이 깰 때마다 나는 몸을 굴려 모아둔 열(熱)들을 피하다가 언제 받은 적 있는 편지 같은 한기를 느끼며 깨어나기도 했던 것이었다.” 권정생 선생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박준 시인은 “선생이 살던 집에 가서 선생을 생각하며 썼던 시”라고 설명했다.
시인은 애초 첫 번째 시집 제목을 ‘미인’으로 하자고 편집자에게 제안했다. 그러다 결국 편집자인 김민정 시인이 추천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로 정해졌다. 이후 이 시집은 신동엽문학상을 받았고, 16만 부 가까이 팔리는 등 좋은 결과를 얻었다. “감각이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가장 훌륭한 감각이라 생각합니다.” 드문 성취를 이룬 시인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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