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 마당 한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 조합원들이 새벽녘이면 영하 5~6℃까지 내려가는 날씨에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12월2일부터 18일 현재까지 이어진 농성에서 전교조 서울지부는 시교육청에 “단체협약을 체결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교조가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교섭권’을 두고 농성을 벌이는 것은 불안한 전교조의 법적 지위 때문이다.
“지금 우리 법외야, 아니야?”
2013년 10월24일. 고용노동부는 전교조가 ‘부당해고된 교원은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규약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며 “전교조를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했다. 전교조 조합원인 해직교사 9명으로 인해 전체 조합원 5만9991명의 ‘단결권’을 훼손한 통보였다. 해직교사의 노동조합원 부적격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0.00015%의 ‘부적격성’이 99.99985%의 헌법적 기본권을 훼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다. ‘법외노조’라는 기이한 단어가 전교조 앞에 따라붙게 된 때이기도 하다.
통보 직후 교육부는 전교조 전임자의 학교 복귀를 요구했고, 월급에서 노조 조합비 원천징수를 중단했다. 각종 위원회에 전교조 추천교사를 배제했고 단체교섭을 중단하도록 시도교육청에 알렸다.
2013년의 ‘통보’ 이후 전교조의 법적 지위는 ‘아노미’ 그 자체였다. 전교조가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에 대응해 제기한 ‘법외노조 통보의 적법성을 따지는 소송’과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의 결과에 따라 법적 지위가 왔다갔다 했다. 2년여 사이 여섯 차례 ‘합법노조’와 ‘법외노조’로 옷을 갈아입었다(하단 일지 참조).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지금 우리 법외야, 아니야?’ 할 정도로 헷갈릴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송 대변인은 “가장 나쁜 상황은 아직 확정판결이 있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의 법적 근거 없는 통보에 따라 ‘법외노조’인 양 취급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2014년 6월1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반정우)가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1심 선고 뒤 교육부는 전교조 전임자들에게 모두 학교에 복귀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70명의 전임자 가운데 41명은 학교로 복귀했다. 전교조 업무는 당연히 마비됐다. 29명은 복귀하지 않았다. 당시 전교조 경북지부장을 맡고 있던 이용기 현 전교조 정책실장은 복귀하지 않은 29명에 속해 있었다. “대한민국 법 체계는 3심제잖아요. 확정판결이 아닌데 1심 판결이 나자마자 복귀하라고 하니 따를 수 없었죠. 기본적으로 ‘전교조를 법외노조라고 보는 판단 자체가 틀렸다’는 신념의 문제이기도 했죠.”
이용기 정책실장은 이후 복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북도교육청으로부터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여름방학이 끝난 9월1~31일로 통보된 정직은 2014년 9월19일 서울고법이 전교조가 제기한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자 정지됐다. 전교조가 다시 합법 노조의 지위를 갖게 되자 9월20일자로 징계 처분도 ‘집행정지’된 것이다.
이용기 실장과 징계 처분을 받은 다른 조합원 1명은 현재 ‘부당징계 무효소송’을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고법의 ‘법외노조화 효력정지’ 결정으로 학교로 돌아갔던 전임 조합원 27명은 다시 노조로 복귀했다. 14명은 노조 전임 기간에 채용할 계약직 교사 문제 또는 학생들과의 관계 등 다양한 이유로 아직 복귀하지 못했다. 전임자들이 학교와 노조를 오가며 전교조의 업무 마비는 물론 학교 현장도 혼란을 겪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부창부수’전교조와 고용노동부의 법정 공방은 지금까지 3승3패다. 한번씩 승패를 주고받다가 축이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지는 판결이 두 차례 있었다. 지난 5월28일, 전교조 창립기념일에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라고 통보하는 근거로 내세운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제2조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해직 교원을 조합원에서 제외하도록 한 법 조항이 노동자의 단결권이나 노동조합의 자주적 운영을 크게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이 있자마자 대법원은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 처분을 다시 검토하라’는 파기환송 결정(2015년 6월2일)을 했다. 두 개의 최고법원이 정부 손을 들어준 셈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결정이 있은 뒤 교육부는 즉각 일선 교육청에 공문을 보냈다. “대법원 결정으로 고용노동부 장관의 ‘법상 노조 아님’ 통보의 효력이 회복되어 전교조는 현재 교원노조법상 노동조합의 지위를 상실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귀 교육청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단체교섭, 단체협약 및 이행점검 등을 유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공문이 발행된 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2014년 11월부터 본교섭을 시작해 17차례 실무교섭을 끝내고 단체협약 문구 합의도 마친 상태에서 더 이상 협상을 진전하지 않고 있다. 경상북도교육청도 전교조 경북지부와 단체협약 이행 상황을 점검하기로 합의했지만, 대법원 파기환송 뒤 이행 상황 점검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산교육청, 대전교육청 역시 교육부의 공문을 근거로 단체교섭 등의 절차를 중단한다고 통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고법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레드카드’를 내밀었다. 김명수 재판장이 이끈 서울고법 행정10부는 “교원노조법 제2조가 합헌이라는 결정이 났으니 이 점을 고려해 ‘법외노조 효력정지 신청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대해 차근차근 법리로 답했다.
고법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가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에 근거했는데 시행령에 근거한 행정규제가 적법한지 등을 본안 소송에서 더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본안 소송 판결이 있기 전 ‘법외노조 처분 효력 정지를 하지 않을 경우 △노동조합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부당 노동행위 구제, 단체교섭·단체협약 체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며 △교육활동사업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없는 점 등 전교조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한다고도 명시했다.
송소연 재단법인 ‘진실의 힘’ 상임이사는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전교조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교원노조의 지위를 인정하기까지 판사가 인간적 고뇌를 얼마나 했겠나. 출세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가까운 용기 있는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체협상권·단결권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전교조 서울지부는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의 결정을 치받은 뒤 성명을 내고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이성대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서울고법 결정문을 보면 본안 소송이 있기 전까지 노동조합이 누려야 하는 권익에 대한 심각한 손실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다. 단체협상권, 단결권은 헌법이 정한 기본권이다. 진보교육감에게 이 기본권을 행사하게 해달라고 철야농성까지 해야 하니, 참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취소 소송’ 항소심 본안 선고는 2016년 1월21일로 예정돼 있다.
송소연 헌재도 대법원도 팽개친 헌법 가치, 근본을 사수하다!
김성진 서울고법, “누가 뭐래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김용현, 포고령·비상입법기구 문건 ‘윤석열 비호’ 맞춤 답변
이재명 선거법 2심 이르면 3월 말 선고…대선 중대변수로
윤석열,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했나…“계엄 문건 이상민도 전달”
탄핵 외치면 “중국인”…민주주의 위기 실감한 청년들
서부지법 판사실 문 부순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 구속
현실 직시 [그림판]
헌재, 최상목에 “마은혁 헌법재판관만 임명 안 한 근거 뭐냐” [영상]
법원, ‘혈액암 투병’ 조지호 경찰청장 보석 허가…김용현은 기각
“명태균은 다리 피고름 맺혀도”…윤석열 병원행 분개한 명씨 변호인
관저 골프시설을 ‘초소’라고…경호처·현대건설, 왜 거짓말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