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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아몰랑 집회금지’

[박수친다] 경찰 2차 민중총궐기 금지통고 처분에 철퇴…“집회금지는 모든 가능성 뒤 고려되는 최종 수단” 판단
등록 2015-12-22 08:37 수정 2020-05-02 19:28

무법자는 경찰이었다. 물대포로 농민 백남기씨를 쓰러트리는 과정부터 그랬다.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청 훈령 ‘경찰장비관리규칙’이 정한 발사 각도 15도 이상 유지, 20m 이내의 근거리 시위대를 향해 직접 살수 금지 규정 따위는 지켜지지 않았다. 시위대가 20m거리에 있는 경우 2천rpm 내외로 살수하도록 정한 살수차 운용지침도 무시됐다. “사고 당시 백씨가 20m 거리에 있었고, 직사 살수는 최대 2800rpm의 물 세기를 유지했다”는 경찰의 설명은 외려 거리낌이 없었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운용지침에 나와 있는 것은 예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무법자임을 자인하는 말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제10조에서 “위해성 경찰장비는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무집행법 시행령 제13조도 “부득이한 경우에 현장 책임자의 판단에 의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가스차 또는 살수차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시행령 제13조 3항은 물포를 사용하더라도 “사람을 향하여 직접 물포를 발사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했다. 어느 것 하나 지켜진 게 없다.

경찰은 특정 집회를 사전에, 자의적으로 불법 취급해왔다.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경찰과 시민의 충돌도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12월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김정숙)는 경찰의 ‘사전 집회금지 통고’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경찰은 특정 집회를 사전에, 자의적으로 불법 취급해왔다.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경찰과 시민의 충돌도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12월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김정숙)는 경찰의 ‘사전 집회금지 통고’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헌재, “집회금지는 최종 수단”

경찰이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 친 차벽은 헌법재판소가 ‘마지막 수단으로 쓸 수 있는 것’이라며 2011년 6월 이미 위헌적 요소를 인정한 것이다. “(차벽은) 서울광장에서 개최될 여지가 있는 일체의 집회를 금지하고 일반 시민들의 통행조차 금지하는 전면적이고 광범위하며 극단적인 조치이므로 집회의 조건부 허용이나 개별적 집회의 금지나 해산으로는 방지할 수 없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에 해당한다.” 이날 경찰은 오후 3시부터 차벽을 설치했다. 일부 집회 참가자와 경찰의 충돌이나 백남기씨 사건도 차벽 설치 이후에 비롯됐다.

가장 큰 문제는 경찰이 특정 집회를 사전에 불법으로 규정해 금지 통고를 내린다는 점이다. 이후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범법자로 규정해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식이다. 정부는 1차 민중총궐기가 열리기 전부터 이 집회를 불법시위로 규정했다.

교육·법무·행정자치·농림축산식품·고용노동부 등 5개 부처 장차관은 공동 담화에서 “불법과 폭력으로 수많은 수험생과 그 가족을 애태우거나 생업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기 바란다. 극렬 폭력 행위자는 끝까지 추적, 검거하여 사법조치 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행자부 장관은 당시 집회에 참가하려던 공무원을, 교육부 장관은 교사를,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농민을,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자를 직접 거론하며 겨냥했다. 법무부 장관은 담화에서 “집회 참가자 여러분, 내가 주먹을 휘두를 자유는 상대의 코앞에서 멈춰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도 했다. 모두 집회 이틀 전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 제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2003년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다원적인 열린 사회에 대한 헌법적 결단”이라고 판단했다.

민중총궐기 집회 뒤에도 경찰의 불법적 행위가 잇따랐다. 민중총궐기 국가폭력 조사단이 12월3일 낸 진상조사 자료를 보면, 알바노조 인천지부 준비위원장인 이경호씨, 정의당 대전시당 홍보국장 홍진원씨, 단양군 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국장 유문철씨 등이 민중총궐기 당시 불법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찾아오거나, 수차례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이들은 이날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김아무개 학생이 재학 중인 고등학교와 집을 경찰이 무작정 찾아가거나, 통신 가입자 조회를 통해 휴대전화 번호를 임의로 확보해 연락하는 일도 벌어졌다. 안산상록경찰서는 민중총궐기에 참석한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홈플러스, 한국가스공사 등에 노조원 명단을 요청하거나, 이들이 상경 버스에 타는 장면이 기록된 폐회로텔레비전(CCTV) 자료를 회사 쪽에 요구하기도 했다. 모두 경찰이 민중총궐기를 사전에, 자의적으로 불법 취급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사전 집회금지’ 안 되는 9가지 이유

경찰은 12월5일 2차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다시 ‘불법집회 통지’ 카드를 꺼냈다. ‘백남기 농민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대책위)는 이날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연 뒤, 이후 2시간 동안 서울광장∼무교로∼모전교∼광교∼보신각 교차로∼종로를 거쳐 백남기씨가 있는 서울대병원 앞까지 2개 차로를 이용해 행진하겠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1차 민중총궐기의 연장선상에서 불법 폭력시위로 개최될 가능성이 높다”며 집회금지를 통고했다. 당시 서울광장이 스케이트장 설치로 절반밖에 사용할 수 없고, 인근 도로의 극심한 혼잡이 예상된다는 따위의 이유도 댔다.

법원이 경찰의 오랜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대책위가 경찰의 집회금지 처분을 막아달라며 낸 ‘집회금지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12월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김정숙)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A4용지 3장 분량의 짧은 결정문에서 경찰의 태도가 잘못된 이유를 무려 9가지로 나눈 뒤, 꼼꼼한 설명을 곁들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집회의 주된 세력이라는 사정만으로 집회에서 집단적 폭행·협박·방화 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거나, 1차 민중총궐기와 주최자가 다르다는 점, 해당 집회가 주변 교통에 심각한 불편을 줄 것이라는 증거를 경찰이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들이다.

집회 주최 쪽이 평화집회를 여러 차례 약속했고, 자체적으로 질서 유지인 300명을 두고 도로행진을 하겠다고 신고한 점, 1차 민중총궐기 이후인 11월28일에도 같은 목적의 집회를 평화적으로 치렀던 점 등도 이유가 됐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집회의 금지는 집회의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 즉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는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후에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인 수단”이라고 설명한 곳이다.

이 대목을 설명하기 위해 재판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끌어왔다.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표적인 공권력의 행위는 집시법에서 규정하는 집회의 금지, 해산과 조건부 허용이다. 집회의 금지와 해산은 집회의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 즉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는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후에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인 수단이다.”(헌재 2003년 10월30일 결정)

재판부는 “경찰 주장에 따르면, 앞으로 민주노총이 주최하거나 참석하는 모든 집회는 허가될 수 없게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판단도 내렸다. 경찰은 “아쉽지만,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촌평을 냈다. 며칠 뒤, 강신명 경찰청장은 “앞으로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5조에 있는 시위 금지 권한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집행정지 결정에 대한 본안 소송에서 논리적인 법원의 판결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벽도, 폭력도 없었다

이에 대해 박주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는 “그동안 경찰이 도로 소통 방해 같은 터무니없는 근거로 헌법적 권리를 막아왔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고도로 보장된 기본권인데, 앞으로는 경찰이 대규모 집회를 사전에 막을 명분이 사라진 것”이라며 “폭력시위로 번질 것이라는 막연한 예측만으로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사실상의 허가제로 운영하려고 한 경찰의 관행에 재판부가 쐐기를 박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집행정지 결정은 본안 소송과 거의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 경찰이 본안 판결을 거론하는 것은 이번 판결의 의미를 떨어뜨리려는 의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12월5일, 2차 민중총궐기는 평화롭게 끝났다. 5만여 명의 시민(경찰 추산 1만4천 명)이 6시간에 걸쳐 서울광장 일대에서 집회를 마치고 대학로까지 4km가량 행진을 벌였다. 차벽도, 폭력도 없었다.




심사위원 20자평


이광수  당연한 말이 용기가 되어야 하는 xxx 세상
최은배  거 봐라, 평화시위 되지 않냐. 폭력시위 원인 제공은 경찰?
염형국  법리상 타당한 판결, 그래서 더욱 소중한 판결~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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