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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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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진전, 3년 만의 후퇴

업무방해죄 적용 ‘2009년 철도노조 파업’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대법원…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하는
유일한 나라
등록 2014-12-19 08:52 수정 2020-05-02 19:27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헌법 제33조는 파업이 노동자의 기본권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헌법 조항이 무색할 정도로 파업은 처벌을 피하기 어려웠다.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 때문이다.

철도공사 내부 문서 작성했는데 ‘예측 어려움’
1991년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한 첫 대법원 판결 뒤 ‘파업=업무방해’ 공식이 성립됐다. 다만 법원은 파업의 주체, 목적, 절차, 수단과 방법이 ‘정당’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처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당한 파업으로 인정받는 게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장 논란이 된 건 ‘목적’이었다. 법은 임금·근로시간·복지 등 근로조건 개선을 내건 파업만 목적의 정당성이 있다고 봤다. 정리해고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파업은 목적의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좀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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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헌법재판소는 파업이 “헌법상 기본권이므로 원칙적으로 불법이 아니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파업은 원칙적으로 불법이 아니다”라며 기존 판례를 뒤집었다. 목적이 정당하지 않아도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전격성)으로 이루어져 ‘심대한 혼란이나 막대한 손해를 초래한 경우’(막대한 손해)에만 예외적으로 업무방해죄를 적용한다고 기준을 좁힌 것이다. 어떤 경우가 예측 불가능한 건지, 얼마나 피해를 입어야 막대한 손해인지 여전히 과제는 남았지만 ‘불법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해오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20년 만의 진전은 3년 만에 뒤집혔다. 지난 8월20일과 26일 세 차례에 걸쳐 대법원은 까다롭게 해석했던 업무방해죄 적용 기준을 다시 넓혀 ‘2009년 철도노조 파업’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가장 극적으로 유무죄가 바뀐 사건은 8월26일 선고된 철도노조 간부 9명에 대한 판결이었다.

신영철 대법관 “위험 소지만 있어도 업무방해죄”

1심 재판부인 대구지법은 2011년 2월 철도노조 간부들에게 업무방해죄를 인정해 100만~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2009년 철도노조의 순환파업(11월5~7일)과 전면파업(11월26일~12월3일)이 ‘공기업 선진화 반대’ 등을 요구했기 때문에 기존 판례대로 ‘불법 파업’이라고 봤다. 2012년 12월 대구지법 2심 재판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 하지만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철도노조가 부당한 목적을 위해 순환파업과 전면파업을 강행하리라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한국철도공사가 파업 전에 파업 날짜와 대책을 언급한 내부 문서를 작성하고, 직전에는 보도자료까지 배포해 파업 대비 상황을 알렸던 것은 인정되지 않았다. 앞서 8월20일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심대한 혼란 또는 막대한 손해를 초래할 ‘위험’만 있어도 업무방해죄가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세계에서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해 형사처벌을 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심사위원 20자평 ▶
김성진 예고된 파업을 예견할 수 없다? 무슨 논리?
문병효 파업은 업무방해를 당연히 수반합니다. 노동후진국의 판결 전형!
이광수 법원의 시계는 벤자민 버튼의 시계인가?
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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