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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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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법대로만 합시다

자동차 제작공정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쓰는 건
불법이라는 판결 이어져… 회사 쪽은 200억 규모 손배소로 노동자 옥죄는 중
등록 2014-12-19 08:42 수정 2020-05-02 19:27

법원 판결은 마침표가 되지 못했다. 11년간 이어져온 갈등이 끝나기는커녕, 오히려 노-노 대립을 겪는 등 갈등 양상이 복잡해졌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이야기다.
지난 12월11일 현대차 울산·아산·전주 공장에 대자보가 붙었다. ‘더 이상 전주·아산 조합원들을 쓰레기로 모독하지 마십시오’라는 제목의 대자보였다. 8월18일 현대차와 정규직 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아산·전주 공장의 비정규직 노조는 2015년까지 사내하청 노동자 4천 명을 ‘특별고용’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5500여 명인데, 앞서 신규 채용된 2천여 명이 있기 때문에 추가로 특별고용될 인원은 2천 명에 불과하다.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조는 회사 쪽에 면죄부를 주는 안이라며 합의를 거부했다.

불법파견 판결 뒤에도 멎지 않는 갈등

“당신은 불법파견된 현대차 정규직이다.” 지난 9월18일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승소하자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정용일 기자

“당신은 불법파견된 현대차 정규직이다.” 지난 9월18일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승소하자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정용일 기자

한 달 뒤인 9월18~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정창근)와 민사42부(재판장 마용주)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1139명이 불법파견됐기 때문에 “사실상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이거나 회사가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2010년, 2012년 대법원이 최병승씨를 불법파견 노동자로 인정한 판결의 연장선이다. 회사 쪽은 그동안 최씨 개인에 대한 판결이라는 이유를 들어 사내하도급 자체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올 9월 판결로 현대차의 ‘집단’적인 불법파견 사실이 인정됐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의 9234개 공정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바 있다.

현대차는 이번에도 ‘법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8·18 특별합의가 핑계가 됐다. ‘특별고용’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그동안 일해왔던 근속연수를 4분의 1~3분의 1만 인정해준다. 법원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이었다면 받았을 임금을 ‘체불임금’으로 보고 회사 쪽에 지급하라고 했지만, ‘특별고용’된 노동자들은 근로자지위소송 취하가 전제조건이라서 체불임금을 포기해야 한다.

노동조합 내에서는 ‘8·18 특별합의’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24일 금속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는 합의안을 폐기한다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특별고용이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자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법원 판결로 인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12월2~5일 열린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대의원대회에서도 격론이 일었다. 현대차지부는 “전주·아산 조합원들이 투표로 승인한 합의안이기 때문에 번복할 수 없다”는 태도다.

법원의 판단은 명확하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자동차 제작공정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를 쓰는 게 모두 불법이라고 본 것이다. 파견법은 제조업에 파견노동자를 쓰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은 직접 작업 지시를 내리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업무 범위나 담당 공정 등을 수시로 바꿔가면서 ‘고용유연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불법파견을 활용해왔다.

현대차 판결은 시작에 불과했다. 9월25일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468명, 12월4일 한국지엠 사내하청 노동자 5명도 불법파견 판결을 받았다. 차량 뼈대를 만들고 부품을 조립하는 생산공정뿐만 아니라, 엔진·변속기 제작이나 반조립부품(CKD) 포장 등 주변 업무까지도 모두 사내하청 노동자를 쓰면 불법파견이라고 법원은 판단했다.

손배소 압박에 꺾인 생의 의지

‘제가 죽으면 꼭 정규직 들어가서 편히 사세요.’ 지난 11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했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동료들에게 남긴 글이다. 현대차는 2010년 울산공장 점거농성 등을 이유로 그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 400여 명을 상대로 무려 200억원이 넘는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놨다. 현대차의 ‘법대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심사위원 20자평 ▶
김성진 더 이상 같은 것을 다르다고 우기지 말자, 제발~.
박진 같은 라인 같은 노동 같은 작업복. 그러나 회사 마크만 다르죠.
이광수 너무나 당연한 결과. 판결 뒤 호들갑이 의아함.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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