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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OTL

안산은 거대한 ‘인간시장’


수백 개 인력회사 ‘더 싸게 더 바쁘게’ 내세워 경쟁… 가난한 노동자와 초라한 일자리의 악순환

제778호
등록 : 2009-09-15 11:26 수정 : 2009-09-1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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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을 위해 경기 안산시를 처음 방문한 건 지난 8월6일, 뙤약볕이 포탄의 파편처럼 온몸에 박히는 날이었다. 그늘조차 증발시킨 듯, 연고 없는 도시의 첫인사는 거칠고 말랐다. 한 달을 살아보니 안산에는 5가지가 많다. 생활DC마트, 외국인, 관광버스, 노래방, 어린이집이다. 이 부조화로운 요소들은 하나같이 ‘가난한 노동’과 직결돼 있다. 그곳에서 나는 ‘35살 남성, 대졸, 군필, 공장 근무 경력 전무, 안산 거주(이사 예정)’라는 이력으로 ‘파견 노동자’가 되려고 종종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경기 안산시 곳곳에선 구인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중국인 노동자가 많아, 해당 나라말 광고문도 넘친다.

전화로 문의하자 “직접 와서 상담하라”

사실 구직은 7월 후반에 전화로 시작했다. 그런데 첫 통화에서 막혔다.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데요.”

“요즘 모집 안 합니다. 일자리가 없어요.”


안산에 소재한 한 인력회사였다. 시작도 못하나 싶어 벼룩시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인력회사의 말과 달리 구인광고는 넘쳤다. 하지만 직접 고용은 드물었다. 거개 인력회사의 광고가 지면을 채우고 있었다.

인력회사는 전화를 통한 긴 문답을 마다했다. 예제없이 나이와 야간 잔업이 가능한지만 묻고 “직접 와서 상담한 뒤 신상정보를 등록하라”고 말한다. 7월24일 ㅁ인력의 설명은 예외적이었다.

“광고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자리 있습니까?”

“몇 살이세요?”

“35살입니다. 자동차부품 쪽을 찾는데요.”

“요즘엔 F-PCB(휴대전화 등의 칩 조립)가 더 많이 받아요. 일거리도 많고.”

“아 그래요, 얼마나….”

“5일 근무에, 토·일 특근, 주야 교대(일주일은 주근, 일주일은 야근)도 있고요. 그래서 생산 쪽에서 200만원이 좀 안 되게 벌기도 해요. 한국분들한텐 여기 먼저 소개하고 있거든요.”

“본사 면접도 본다면서요. 제가 공장 경험이 없어서. 이력서 필요한가요?”

“있으면 좋고요”

“뭐, 내세울 게 없어서요”

“없으면 뭐. 아무튼 면접 떨어지는 일은 거의 희박해요.”

“안산에 안 사는데, 기숙사 가능합니까?”

“요즘 기숙사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가까운 데 방을 구해야죠. 일단 와서 등록부터 하세요.”

8월6일, 나는 이 회사의 박아무개 과장 앞에서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정규직 되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보통 3~6개월 이상인데, (일을) 잘 못하고 좀 늦어지면 1년도 걸립니다.”

“제가 가게 되는 팀은 얼마나 일하고 받죠?”

“주야 교대조인데, 180만원 정도 돼요. 일요일 근무 같은 건 선택이지만, 되도록 해야죠.”

“보험은요?”

“고용·산재만 돼요. 나머진 지역에서 알아서….”

20~60대, 남녀, 다양한 인종 뒤섞인 안산역

나흘 뒤(8월10일)엔 이 회사가 인력을 대는 ㅇ사(반월공단)로 실려가 면접을 보고 있었다. 표면처리반의 팀장에게 내 이력서가 건네졌다. ‘파견’은 인사팀이나 임원들이 채용하지 않는다. 만나지도 못한다. 파견노동자를 직접 부릴 생산실무팀 팀장이 뽑는다. 30초나 됐을까. “혹시 약품처리 해봤어요?”라고 묻는 팀장의 우습다는 표정과 “약품을 만진다는 얘긴 못 들어봤는데요”라는 나의 우울한 표정이 교차하기까지.

결국 떨어졌다. ‘약품처리’라는 단어만 귓가에 맴돌았다. 이등병처럼 “시켜만 달라”고 해야 했을까? 기사 기획 단계에서 조언을 구했던 32살 여공 출신이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왔다. “표면처리반 1년 이상은 하지 말라고들 해요. 남자는 정자가 줄고 여자는 불임이 된다네요.^^” 팀장은 내 정자를 염려해준 것이라고 안위했다.

첫 면접에서 떨어지자, 당장 일자리를 잃고 분윳값이 떨어진 이들에게 견줄 바는 못 됐으나 혀가 말랐다. 결국 모두 5곳에 신상정보를 등록했다. 주민등록증을 모두 복사해갔다. 그 가운데 4곳엔 부모님 성함 등 가족관계와 경력을 적었다. 한 곳엔 미리 준비한 사진까지 붙였다. 내 정보가 안산 바닥을 어떻게 떠돌지 돌아설 때마다 오싹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날 구제했다. 안산으로 온 지 나흘째, 8월10일 오후 6시였다.

하지만 뒤에 보니, 시급 4천원짜리 일자리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 내가 다닌 A사에 인력을 대는 파견업체가 7~8곳이었다. 애당초 이곳에 들렀다면, 공연히 내 정보를 팔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이 세계조차 정보력 싸움인가 싶어 쓰렸다.

안산은 거대한 ‘인력매매 시장’이다. 아침 7~8시 반월·시화공단의 주요 길목인 안산역만 봐도 안다. 버스 환승장 일대에 20대에서 60대까지 남녀와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발 디딜 틈이 없다.

인력회사마다 주요 알선 업종은 물론 채용 방식도 다르다. 사용주가 면접을 보지만, 내가 일한 A사처럼 파견업체가 채용한 인력을 그대로 ‘납품’받는 경우도 있다. “35살은 안 뽑는다”고 했던 여러 파견·용역업체와 달리, 이곳으로 실려온 파견노동자들은 10대부터 40대 후반까지 다양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로 ‘날품’이 거래되는 것이다. 물론 ‘하자’가 있으면 자른다.

하지만 이는 불법성이 크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파견은 200여개 직무로 한정된다. 건강·안전·건설 관련은 절대 파견 금지다. 제조직접공정도 불법이다. 고용 악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 불법 파견이 만연돼 있는 상황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가장 폭넓게 담은 현장이 되는 것이다.

안산 시내 파견·용업 업체 수만 300곳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만큼 경쟁적이다. 구제금융 이후 기업들의 아웃소싱이 급격히 확산되면서다. 파견업체 사장과의 인터뷰를 담은 책 <부서진 미래>에서는 “아웃소싱으로 경쟁시장에서 한몫을 차지하려는 파견회사는 사회 밑바닥 층인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퍼내, 보다 싼 임금으로 기업에 대주는 중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다른 파견업체가 인력 공급 계약을 새로 따내려면, 기존 업체보다 낮은 임금과 처우 조건을 내걸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 손해분은 노동자 몫이다. 실제 직접 문의해본 안산 시내 파견업체마다 중간수수료가 5~7%로 다양했다. A사를 알선해준 ㄷ사는 7%를 떼었다. A사에 비정규직일지언정 직접 고용됐을 때 107만원을 받는다면, 용역회사가 중간에 개입해 7만원을 떼가고 100만원만 받게 되는 것이다.

알선 수수료 5~7% 월급서 공제

파견·용역 회사는 상당수가 영세하고, 명멸을 거듭한다. 안산시흥비정규노동센터 박재철 소장은 “2년 전만 해도 확인한 파견업체 수가 230여 곳이었다”며 “오늘 망했다 내일 생기고, 아내와 자신 명의로 한 사업체를 두 곳인 양 영업하는 등 이 세계만큼 복잡한 곳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 A사보다 먼저 취직한 곳이 있었다. 방문 첫날(8월6일) “당장 내일부터 일하러 오라”고 했던 ㅁ인력을 통해서다. 하지만 조건이 상상을 초월했다. 아침 8시~저녁 8시30분 근무에 잔업이 밤 11시까지 된다는 정수기 조립회사였다. 점심 1시간을 빼도 14시간이다. 그런 노동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난 ‘필시 일주일 만에 혼절하리라’는 생각에 절망했다. 짐도 안산으로 옮기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였다. 다른 자리를 구해달라고 했더니 이아무개 이사는 “정수기 회사에서 일하는 걸 좀 보고 자동차 조립회사에 넣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전화를 줄 리 만무했다. 직접 신상정보를 등록한 파견업체 5곳 가운데 2곳은 일을 시작한 뒤 자리가 생겼다는 연락을 줬지만, 나머진 지금도 소식이 없다.

초라한 일자리가 많은 건지, 가난한 노동자가 많은 건지 알 수 없다.

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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