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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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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검, 전직 대통령을 베다


용산 참사 수사 때는 비밀 고수하더니
노 전 대통령 피의사실은 의견까지 덧붙여 유포해온 검찰의 이중성
등록 2009-06-05 14:36 수정 2020-05-03 04:25
검찰 수사에 ‘성역’은 없다. 전직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두고 ‘법살’(法殺)이라는 말이 나온다. 용산 참사 철거민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고 있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가 글을 보내왔다. 검찰이 ‘밀행성’ 원칙을 전면 위반했다고 썼다. 검찰의 이중성도 문제 삼았다. 용산 참사 수사와 대비했다. 검찰이 이중 잣대를 휘두르는 한, ‘성역 없는 엄정 수사’라는 모토는 의미를 잃는다. 검찰은 이중 잣대의 한쪽 날로 노 전 대통령을 베었다. 편집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5월1일 새벽 조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검찰은 2007년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올해 2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서면조사했으나 노 전 대통령은 봉하에서 서울로 직접 불러 대면조사했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5월1일 새벽 조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검찰은 2007년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올해 2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서면조사했으나 노 전 대통령은 봉하에서 서울로 직접 불러 대면조사했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지난 2월9일 검찰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 등의 혐의로 용산참사 철거민들을 기소했다. 그리고 이날에서야 검찰은 그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1월20일 사건 발생 이후 20여 일간 검찰은 경찰의 과잉 진압 의혹과 관련한 조사 대상과 내용에 대해 거의 대부분 함구했다.

경찰과 용역 직원들을 언제 불러 어떻게 수사했는지? 누구에게 어떤 내용을 물었는지? 그들은 검찰에서 어떤 진술을 했는지? 어떤 관련 자료를 압수했는지? 경찰과 용역업체의 ‘합동작전’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통신 내용은 조회했는지? 검찰은 이 가운데 어떤 것도 발표하지 않았다. 언론에 ‘흘리지도’ 않았다.

수사 내용 일체 비공개한 용산 수사

용산 참사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면서 변호인단은 수사기록의 열람·등사를 요청했다.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의 진술이 기재된 수사서류, 정보상황 보고 등 경찰의 내부 자료, 경찰 무선교신 자료, 통신사실 조회자료 등은 경찰 진압 과정이 적법했는지와 참사가 경찰의 과잉 진압에 기인한 것인지를 판단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할 자료다. 법원은 검찰에 이 증거들을 변호인단에게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검찰은 법원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 결과 “진압 당시 무전기를 꺼두었다”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의 변명만 외부에 알려졌을 뿐, 진압 작전 당시 김 전 청장과 다른 경찰 간부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게 됐다.

검찰은 지난해 11월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비리 의혹과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의 알선수재 혐의 등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해 12월29일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15억원을 빌려준 내용의 차용증을 확보했다고 언론에 확인해줬다. 이를 시작으로 검찰은 조카사위 계좌를 통해 500만달러가 들어왔다거나,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100만달러를 받았다는 등 노 전 대통령의 피의사실을 차례로 내놓았다. 역시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 보도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포괄적 뇌물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수사 내용과 그 진행 상황을 시시콜콜 언론에 유출했다.

의혹 해명하자 반박 의견까지 내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태에서 사건 관련자의 진술과 수사 내용을 낱낱이 공개함으로써 피의사실을 기정사실화하고 낙인을 찍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지난 4월,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씨가 박연차 전 회장에게 받았다는 500만달러의 실소유주가 노 전 대통령이 아닌지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에 박 전 회장으로부터 “아들과 조카사위를 도와달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탁에 따라 500만달러를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언론에 알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2007년 6월 말 100만달러를 보내고 청와대에서 노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답례 인사를 받았다”는 박 전 회장의 진술도 언론에 유출했다. 노 전 대통령의 해명을 듣기도 전에 피의자 일방의 진술을 언론에 흘린 것이다.

제기된 의혹에 대한 노 전 대통령 쪽의 해명도 언론에 유출했다. 검찰의 ‘의견’까지 덧붙였다. 가족과 측근들이 박 전 회장에게서 받은 돈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모르는 일”이라고 답변한 내용을 전하면서 검찰은 “재직 중 총무비서관이 대통령 부인에게 거액을 건네고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또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에 대한 참고인 조사 뒤에는 권씨가 검찰 조사를 받으며 100만달러의 용처에 대해 밝혀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채무 변제를 받은 사람이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용처를 밝히지 않았다고 공개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이 직접 나서 “개인 채무 변제를 위해 쓴 것이 사실이라면 상대방에게 무슨 피해가 가겠나”라며 권양숙씨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을 기자들 앞에서 표명했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회장의 대질신문 계획까지 미리 언론에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논란이 될 만한 사실은 물론 수사 계획이나 참고인의 진술까지도 낱낱이 공개하는 ‘친절함’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어떻게 수사를 진행할 것인지, 무엇을 조사했는지, 무슨 진술이 있었는지를 미주알고주알 언론에 ‘고자질’하고 그에 대해 검찰의 ‘의견’을 다는 방식을 지속했다.


명예·사생활은 경찰 수뇌부에만?

이는 ‘수사의 밀행성 원칙’을 전면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밀행성 원칙이란 수사기관이 진행 중인 수사 내용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직무상 원칙이다. 또한 피의사실 공표를 통해 피의자의 인권이나 방어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형법은 검찰이나 경찰 등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직무상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기소) 전에 공표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 정지 등 형사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모르지 않을 검찰이 왜 노 전 대통령 관련 수사에서 이같은 태도를 취했을까? 혐의 내용을 입증하기보다 ‘망신주기 방식’의 수사를 펼쳤기 때문일 것으로 의심을 받는 대목이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미 노 전 대통령의 측근과 가족 등에 대한 조사 내용과 피의사실을 모두 언론에 공개했다. 재판을 받기도 전에 여론 재판을 통해 사회적 평가를 유도한 것이다.

검찰은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이 답변서에서 피의자의 권리를 요구한 부분까지 공개하며 그 내용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피의자의 권리 요구는 헌법상 권리로서 당연한 것이고, 그에 대한 대응은 조사 과정에서 반영하면 되는 일이었다.

2007년 11월23일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주고받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임채진 검찰총장.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2007년 11월23일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주고받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임채진 검찰총장.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고급 시계 논란’은 망신주기 수사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검찰은 2006년 9월께 박 전 회장이 회갑 기념 선물로 전달했다는 시계의 이름과 가격을 상세히 공개했다. 받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더라”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내용도 공개했다. 수치심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뇌물수수 혐의와 별 상관이 없는 돈의 ‘사용처’도 세세히 공개했다. ‘풀장과 도어맨이 있는 160만달러짜리 고급 아파트’ 구입 논란은 사건의 성격을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것으로 몰기에 충분했다. 국민들로 하여금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기도 전에 피의자의 유죄를 추단하게 만들고 회복 불가능한 파렴치한으로 낙인찍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검찰의 행위야말로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반됨은 물론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법 행위이다.

이와 달리 검찰은 용산 참사 사건과 관련해선 경찰 수뇌부의 진술이 기재된 수사서류를 공개하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간단했다. 경찰 수뇌부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의 비밀, 생활의 평온 등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교할 때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공개를 마다하지 않은 검찰의 수사 행태는 얼마나 이중적인가. 명예, 사생활, 평온한 생활은 전직 대통령에게도, 아니 더, 필요한 것이었다.

더욱이 검찰은 경남의 봉하마을에 있던 전직 대통령을 서울 서초동에 소재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까지 소환함으로써 수사 상황이 언론의 집중적 조명을 받도록 하는 극적인 효과를 연출했다.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흔히 사용하던 방문조사 혹은 서면조사 방식이 노 전 대통령에게는 왜 제외됐을까? 검찰은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BBK 사건과 관련해 조사할 당시 언론들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서면조사라는 방식을 사용한 전례를 가지고 있다. 또한 용산 참사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경찰의 진압작전 및 지휘책임과 관련해 치밀한 신문이 요구되는 조사 대상이었음에도 방문조사는커녕 서면조사 2회로 수사를 마무리하지 않았던가. 실세 권력과 그 측근들에게 보이는 친절과 죽은 권력에 대해 드러내는 가혹성, 그 이중적 잣대는 정치검찰의 전형이다.

이번 사건에서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구속수사에 대한 설왕설래다. 전직 대통령을 소환까지 할 정도였다면 이미 수사는 마무리 단계라고 봐야 한다. 이미 관련자들에 대한 상당한 수사를 통해 주요 자료를 확보한 상태에서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주장은 억지스럽다. 더구나 주거가 분명하고 도주 우려도 없다. 검찰은 당연히 불구속 수사 원칙과 불구속 재판 원칙에 따라 불구속 기소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소환 이후 20여 일 동안이나 시간을 허송하며 신병 처리를 두고 좌고우면했다. 적어도 좌고우면하는 모습을 언론에 내비쳤다.

신병 처리 좌고우면… 삼성 땐 어땠나?

‘삼성특검’을 떠올려보면 검찰의 이런 행태는 또 다른 이중 잣대다. 당시 삼성 직원들이 이건희 전 회장을 위해 증거 인멸 행위를 감행함에도 검찰은 끝까지 불구속 수사와 불구속 상태의 재판을 유지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신병 처리에 대한 검찰의 자세는 일종의 ‘본때 보이기’ 또는 ‘징벌’을 고려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기업 회장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검찰의 구속수사 관행은 고질적인 것이다. 용산 참사 사건에서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장이 망루에서 떨어져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검찰은 병원에 들이닥쳐 체포·구속을 강행했다. 그로 인해 그는 정상적인 재활치료를 받지 못함으로써 다리가 불편한 지경이다. 만일 검찰의 섣부른 구속으로 인해 다리에 장애가 남는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피의자의 인권이나 신체 상태 따위는 오랜 검찰의 구속수사 관행에 무시되고 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욱이 용산 참사 피고인들의 경우 6명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으나, 검찰의 수사기록 제출 거부로 재판이 파행을 거듭하면서 피고인들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피고인들은 이미 수사가 종료되어 증거 인멸의 우려도 없거니와 재판의 진행을 통해 도주의 우려도 소멸됐다. 이처럼 검찰의 재판 방해 행위로 인해 공판이 장기화되고 있음에도 피고인들은 여전히 감옥에 구속돼 있다. 구속 사유가 소멸된 피고인들에 대해 굳이 구속 상태를 유지하며 재판을 진행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상 무죄 추정과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란 가난한 일반 국민들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법전 속의 원리일 뿐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원인이 된 이번 사건의 뿌리는 박연차 전 회장에게 있고, 그는 ‘살아 있는 권력’과도 연관을 맺었다. 그렇다면 검찰은 이번 사건으로 또는 그 수사 과정에서 의혹 대상에 오른 권력 핵심 인물들에 대해서도 노 전 대통령 수사 때와 똑같은 태도로 임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12월22일 박용석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와 휴켐스 매각 비리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박연차 회장 등의 정·관계 비리 의혹, 불법적인 정치자금 제공 의혹 등에 대해 관련자 조사, 자금추적과 회계분석 등으로 철저히 수사하여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관련자의 신분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 처리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의 측근으로, 박 전 회장한테서 세무조사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 대한 수사에서 “박 전 회장과 관련된 부분만 (수사)한다. 대선자금은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애초 검찰의 태도를 뒤집어버린 것이다. 그 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검찰은 천신일 회장의 조세포탈 등 개인 비리 혐의로 수사를 마무리지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자신의 수사 대상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살아 있는 권력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할 생각이 없음을 고백했다. 대선자금이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선언과 함께 이번 검찰 수사의 ‘성역’이 드러난 셈이다.

살아 있는 권력은 여전히 성역

결국 검찰은 퇴임한 대통령의 도덕성을 공격함으로써 살아 있는 권력의 구미에 맞게 정치적 반사이익을 주고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표적수사와 전방위 수사를 통해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도덕적이었을 대통령을 가장 부도덕한 존재로 몰아 모욕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대해 검찰은 어떻게 책임지려 하는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징치할 일만 남았다.

권영국 변호사·용산철거민변호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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