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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발적 공공디자인, 차벽


운송수단으로 만들어졌으나 바리케이드가 된 ‘제2의 명박산성’, 21세기 서울 중심부 ‘괴물’의 정체는
등록 2009-05-29 12:18 수정 2020-05-02 19:25

숨이 턱 막힌다. 달아오른 버스 차체에서 뿜어져나오는 복사열에 배기가스까지 범벅이 된 탓이다. 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던 5월26일 낮 12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불과 2∼3cm의 틈만 남긴 채 앞차 엉덩이와 뒤차 머리를 다닥다닥 붙인 엽기적 모습의 경찰버스들이 광장을 포위하고 있다. 면적 1만3207㎡의 드넓은 도심 광장은 단 32대의 버스가 만든 인공 차벽에 의해 간단하게 세상과 분리됐다. 막히는 건 숨만이 아니다. 상상력도 쪼그라든다. ‘인터넷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가 내게 광장으로의 진입 금지를 명령”한 것이다. 삶과 함께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죽음 속으로 전직 대통령이 스러진 마당에 광장은 시민들에게 자유로운 토론은커녕 조문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고약한 노릇이다. 경찰버스 사이 좁은 틈으로 싱그럽기 그지없는 푸른 잔디가 언뜻 보인다. 아, 켄터키블루그래스. 2004년 5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심어놓은 잔디 품종이다. 손을 뻗어본다. 버스 너비에 비해 팔이 턱없이 짧다.

5월2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이 경찰버스 차벽에 둘러싸였다. 대한민국에서는 명백한 위협이 없어도 경찰이 마음대로 광장을 틀어막을 수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은 ‘경찰네맘대로해라법’이 아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5월2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이 경찰버스 차벽에 둘러싸였다. 대한민국에서는 명백한 위협이 없어도 경찰이 마음대로 광장을 틀어막을 수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은 ‘경찰네맘대로해라법’이 아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아련한, 아 켄터키블루그래스

덕수궁 방향 횡단보도를 건넌다. 끝없이 이어진 조문 행렬이 눈에 꽉 찬다. 예상을 넘어선 폭발적 조문 열기에 때 이르게 찾아온 더위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이곳 역시 경찰버스 2대가 대한문 앞과 나머지 공간을 둘로 갈라놓고 있다. 버스 차벽은 조문객을 다른 시민들과 분리함으로써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떡하니 도로를 점거한 채 서 있는 버스 차벽의 폭력성만으로도 조문객들은 국가권력에 감시받고 통제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문객들은 대한문을 기점으로 덕수궁 돌담을 따라 ‘ㄴ’자형으로 둘로 나뉘어 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5월23일 오후부터 버스 차벽은 오밀조밀하게 대한문 일대를 둘러쌌다. 시민과 언론의 비난이 쏟아지자 이날 새벽부터 조금씩 버스가 빠지며 숨통이 트였다. 낮 12시30분께 남은 경찰버스 2대에 시동이 걸리더니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조문객 중에는) 차벽이 병풍 같아서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는 분들도 있다”던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의 집무실에 아늑한 병풍을 치러 갔을까.

꽁무니 빼는 경찰버스 옆면에 적힌 글귀를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늘 겸손하고 친절한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습니다.” 광장을 가로막고 있는 또 다른 경찰버스에는 “국민의 소리 언제나 귀담아듣겠습니다”라는 문구도 있다. 이건 말장난이다. 저 버스에 적힌 ‘국민’이란 글자를 즉석복권 문지르듯 100원짜리 동전으로 살살 벗겨내면 ‘정권’이란 글자가 툭 튀어나올 게 틀림없다. 진짜 국민의 소리를 들어보면 정말 그럴 것만 같다. 광장 근처에 직장이 있다는 김재수(35)씨는 “서울광장을 개방하더라도 일부 몇 명이 거리로 튀어나올 수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시위로 번질 것 같진 않다”며 “아예 경찰이 이 일대 일부 구간의 교통을 통제하고 국민들이 추모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 회사 일 때문에 서울로 왔다는 구미 시민 곽종학(45)씨도 “뉴스에서만 보다 실제로 와서 보니, 광장을 개방하면 더 편하게 조문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지금은 사회 분위기가 성숙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영정 뒤를 막아섰던 버스가 사라지니 이번엔 서울광장을 포위한 경찰버스 차벽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어디를 둘러봐도 막힌 세상뿐이다. 청계광장을 경찰버스가 점거한 지도 이미 오래다. 버스 차벽 저 너머, 이명박 정권 들어 가시밭길에 들어선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이 아지랑이 속에 흐느끼듯 일렁인다.

정부는 그 다음날도 국민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광장을 열지 않았다.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서울광장에서 5월27일 밤부터 추모문화제를 거행하겠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광장 개방을 요구했으나 이를 전해들은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광장 개방을 거부했다. 지난해 촛불에 심하게 덴 바 있는 정권은 혹여 광장이 다시 촛불의 결집터가 될까 우려한다. 버스 차벽은 촛불의 씨가 마를 때까지 계속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킬 것이다.

전·의경의 숙명과 비슷한 버스의 운명

줄지어 선 버스 차벽의 스펙터클은 집회·시위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대한민국을 있는 그대로 상징한다. 지난해 촛불 때 컨테이너를 용접해 광화문 네거리를 완전히 틀어막은 이른바 ‘명박산성’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그 기동성과 창의성을 다른 나라 경찰이 배울까 두렵기조차 한 게 바로 버스 차벽이다. 버스 차벽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기념비적인 도시 조형물이다. 매우 부정적인 의미에서다. 600년 왕조의 궁궐과 일제가 건축한 서울시청, 신축 중인 새 청사, 그 앞의 광장과 그 광장을 둘러싼 버스 차벽.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어느 공공디자인 전공 교수는 에 이렇게 말했다.

“버스는 운송수단이지 방어벽을 쌓으려고 만든 제품이 아니다. 시민의 정서나 외국인 관광객의 눈에 비칠 때 운송수단을 이용한 방어벽은 어색할뿐더러 도시 경관을 훼손하는 풍경이다. 경찰의 목표 달성에는 유효하겠지만…. 전세계 400여 개 도시를 직접 발로 뛰면서 돌아다녔지만 이런 건 본 적이 없다.”

한국공공디자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윤종영 한양대 교수(산업디자인)도 “경찰버스 외관 자체가 촌스러운데다 상시적으로 진을 치고 있는 건 도시 미관을 해친다”며 “바리케이드를 만들든가 도시 미관에 저해되지 않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시위 문화가 바뀌어야 함을 지적하면서 “(경찰 차벽은) 서울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해친다”고 꼬집었다. 과격 시위가 국가 브랜드를 깎아먹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 이명박 대통령이 새겨들을 대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5월23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이들이 모여들자 경찰이 차벽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과 몸싸움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5월23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이들이 모여들자 경찰이 차벽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과 몸싸움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21세기 서울 중심부에 똬리를 튼 이 ‘괴물’의 정체가 궁금하다. 그래서 경찰버스의 태생을 취재해본 결과, 버스의 운명은 그것을 타고 다니는 전·의경의 숙명과 빼닮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의경들은 경찰서 행정업무를 보리란 기대에 입대하고, 전경은 군대 간다며 훈련소나 보충대에 들어갔다가 느닷없이 차출돼 자신의 정치적 지향이나 의사와 상관없이 시위 진압 업무에 투입된다. 경찰버스도 제조 중간 과정까지는 똑같지만 경찰 업무용은 별도의 특수 장착 과정을 거친다. 현재 경찰이 쓰고 있는 버스 모델은 대우버스의 BS-106과 기아자동차의 AM-928 두 종류인데, 일부 시내버스로 운행 중인 것과 같은 모델이다. 기본 차체와 엔진, 구동장치, 조향장치 등은 시내버스와 똑같다. 하지만 이후 개조된다. 대개 시내버스 좌석 간격은 80cm가량이지만 전·의경용은 95cm로 넓힌다. 전·의경들의 이동수단이자 휴식처이기도 하고 식당 구실도 하기 때문에 의자 간격을 넓힌 채 출고된다. 좌석마다 간이식탁이 달려 있고, 좌석은 뒤로 많이 누울 수 있도록 설계됐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7600cc급 디젤 엔진을 장착해 300마력가량의 힘을 낸다. 길이는 10.6m가량이다. 경찰이 운용하는 대형 버스는 전국적으로 1100여 대로 서울 시내에는 340여 대가 일선 경찰서와 기동대에 배치돼 있다.

경찰버스에는 일반 버스에는 없는 특별한 3가지가 있다. 첫째, 보조엔진이다. 정차 중에도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 전·의경 업무의 특성이 반영됐다. 둘째는 소화장치다. 격한 시위 현장에서 불이 날 경우를 대비해 모든 경찰버스에는 분말 형태의 소화장치가 내장돼 있다. 세 번째는 뒤쪽 비상 탈출구인데, 화재 때 긴급한 탈출을 위해 마련됐다. 이런 장비가 달릴 즈음에는 버스도 슬슬 깨달을 게다. 자신이 경찰용 버스로 차출됐다는 사실을. 한 버스회사 홍보팀 관계자는 “우리 뜻과는 상관없이 우리 회사 버스가 서울광장을 가로막은 경찰 차벽의 모습으로 방송 화면에 나오는 걸 보니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답답하다 답답해… 크고 작은 충돌의 빌미

어차피 전국적으로 4만여 명에 달하는 전·의경 제도가 없어지면 이렇게 많은 버스가 필요하지도 않다. 그러면 버스로 차벽을 만들어내는 경찰 관행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전·의경들로서는 기분이 나쁘겠지만, 이들은 버스 차벽과 운명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를 상징하는 광장을 꽉 틀어막은 경찰 차벽은 보는 이에게 심리적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김병후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모든 동물이나 인간의 욕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규제받고 싶지 않은 것인데, (버스 차벽은) 규제받고 통제받는 것이라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나게 하고 이는 답답함, 불안, 분노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버스 차벽이) 정말 답답하더라.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곧 크고 작은 실랑이와 충돌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5월27일 저녁 9시께에는 새 서울시 청사 공사현장 출입구 쪽 경찰버스 차벽 앞에서 시민들과 전·의경들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내 가는 길을 왜 막느냐” “도대체 이렇게 광장을 틀어막는 근거가 뭐냐”며 50대 시민 여럿이 경찰과 드잡이하는 광경이 목격됐다.

법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도심 차로를 수십 대의 경찰버스로 차단하면서 일반인들의 통행까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버스 차벽 설치의 근거로 경찰관직무집행법 6조를 들이댄다. “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발하고, 그 행위로 인하여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지난해 촛불집회 때도 서울 광화문 네거리 인근 골목길까지 모두 차벽으로 틀어막고는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경찰은 이 조항을 읊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추모행사의 경우 집회로 보기 어렵고 범죄행위가 눈앞에서 벌어지리라는 건 경찰의 섣부른 예단에 불과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경찰 차벽은 위법하다고 본다. 박 변호사는 “평택 대추리 사태 때 주민의 출입을 가로막은 경찰에게 법원은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며 “그 법리를 적용하면, 폭력 집회가 예정된 것도 아닌데 모두에게 불편한 차벽을 설치하는 건 위법”이라고 말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는 “광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진입 자체를 허가제로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버스 차벽은 헌법적인 측면에서 큰 문제가 된다”며 “이는 공공도로를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허가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버스를 다닥다닥 붙여 만든 차벽으로 손쉽게 원천봉쇄를 이뤄내는 이런 기발한 시도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취재 결과, 버스 차벽은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직전 처음 등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어청수 전 경찰청장은 전화 통화에서 “2002년 효순·미선양 관련 촛불집회 때 1만여 명이 광화문 집회에 모였는데 전·의경 저지선이 뚫렸다”며 “몸싸움하다 보면 양쪽에 부상자가 생기니까, 이를 막기 위해 그때부터 버스 차벽이 등장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민주정부 시절 경찰이 행정 편의를 위해 고안한 고약한 발명품이 이명박 정부 들어 ‘괴물’의 모습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다.

현란한 주차 기술도 해외 토픽감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버스를 심지어 2~3cm 간격만 남기고 바짝 붙여 맞물려 대는 현란한 주차 기술도 해외 토픽감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별것 아니라고 했다. 옛 삼성본관 건너편 쪽에 줄지어 선 경찰버스 가운데 한 버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의경에게 “차벽 만들기가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일경 계급장을 단 그는 “전혀 어렵지 않아요. 양쪽 거울을 보고 차를 잘 갖다붙이면 돼요. 처음엔 좀 어려운데 몇 번 하다 보면 금방 되거든요”라며 웃었다. 버스 차벽 만들기는 현장 전의경보다 윗사람들에게 더 쉬운 일일 것이다. 누구는 말과 글로 보고하면 되고, 그 윗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면 될 것이므로. 조문객과 지나다니는 시민, 이를 지켜보는 국민만 분통 터지고 시름에 겨워할 따름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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