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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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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따로국밥’

MB 정부 노선 두고 갈등하며 변신 중
등록 2008-11-18 14:21 수정 2020-05-03 04:25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근현대사 교과서를 두고 교육 현장에서 말이 많다. 이미 교과서 채택이 끝났는데도 교육당국은 11월 말까지 재선정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연말까지는 각 교과서의 수정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지난 2004년 이후 4년여간 펼쳐진 진보-보수의 ‘역사 대회전(大會戰)’의 한 매듭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가 될 가능성은 낮다. 교육당국, 교장, 교사 그리고 집필진 사이에서 일련의 절충이 진행 중이다. 논쟁의 불씨는 남겨두고 일단 봉합하는 수순이 예상된다.

“…이제 전선의 성격은 명확해졌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증오하는 사람들의 일대 회전, 이 나라의 운명은 그 결과에 달려 있다.”(2004년 9월15일 칼럼. 신지호 당시 자유주의연대 대표) 그런데 나라의 운명이 걸렸다던 거대한 이념 싸움이 막판을 향해 치닫는 상황에서 정작 이를 촉발했던 뉴라이트 단체들은 전장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 교사와 학생들만 교육관료의 등쌀에 시달리는 형국이다.

‘뉴라이트’ 이름 버린 뉴라이트재단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 뉴라이트 진영은 소리소문 없이 크게 들썩이고 있다. 고립의 위협을 느끼며 변신 중이다. 이념 싸움은 그만하자며 순한 얼굴을 보인다. 역사 문제는 뒤로 미뤘다. 뉴라이트라는 깃발에 대한 회의도 내부에서 일고 있다. 단체들끼리 서로 타박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 때문이다.

지난 11월11일,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선진코리아국민연합’ 등 6개 보수 단체가 보수 신문에 광고를 냈다. “현 정부가 재벌과 부자만을 위한 정부라는 서민의 따가운 질책을 MB 정부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경제를 살린다고 대통령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뭘 했는지 말해보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직격탄이었다. 다음날인 12일 임헌조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이 반격했다. 그는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다분히 의도적인 비난성 광고”이며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극단적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규모 면에선 비교할 바 없이 뉴라이트전국연합이 막강하지만, 양쪽 모두 ‘신보수’를 주창하며 2005년 이후 탄생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뉴라이트 단체가 서로에게 쌍심지를 켜는 일은 전에 없던 일이다. 그 배경에는 수도권 규제 완화를 둘러싼 ‘이명박계’와 ‘박근혜계’의 최근 갈등이 당 외곽의 뉴라이트 단체로 번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뉴라이트 진영 내부의 균열이 당내 계파 싸움의 ‘번외 경기’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뉴라이트 운동을 이끌었던 주요 단체들 역시 이명박 정부의 노선을 놓고 갈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출신 정·관계 진출 인사

뉴라이트 출신 정·관계 진출 인사

뉴라이트 진영을 대표하는 단체로 뉴라이트전국연합, 시대정신(옛 뉴라이트재단), 한반도선진화재단 등이 있다. 지난 4년여에 걸친 뉴라이트 운동은 사실상 이 세 단체가 주도해왔다. 그런데 이들이 최근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면서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다.

이를 웅변하는 상징적 사건이 지난 10월 초에 일어났다. 뉴라이트재단이 이름을 바꿨다. 시대정신으로 개칭했다. 뉴라이트의 흔적을 명칭에서 아예 없애버린 셈이다. 현재 시대정신에는 이사장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이영훈 서울대 교수, 홍진표 전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 등이 몸담고 있다. 2004년 11월 출범해 처음으로 뉴라이트 이론을 본격 전개한 자유주의연대가 지난 6월 뉴라이트재단과 통합했으니, 시대정신은 뉴라이트의 발원지이자 영혼과도 같은 조직이라 평할 만하다. 그들은 왜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버렸을까.

이론·정책·대중조직 대표 3단체

“시민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상을 창조하고 전파하는 것인데 제도권 안에서 편드는 일을 해서는 시민단체로서 결격이 아닌가. 그런데 뉴라이트재단과 뉴라이트전국연합을 사람들이 구분 못하니…. 이름을 바꾼 것은 편들기하는 그런 운동은 지양하자는 뜻이 있다.”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이 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가 지목한 것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정파적 편향 문제다. 그 단체와는 구분되고 싶다는 이야기다. 안병직 이사장은 촛불 정국이 진행 중이던 지난 6월 어느 시국토론회에서 “‘박근혜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주문한 바 있다.

뉴라이트 3단체 개요

뉴라이트 3단체 개요

시대정신이 이론에 강하다면,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정책에 강하다. 이 단체의 이사장인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선진화’의 기치를 가장 먼저 제시해 뉴라이트 운동의 또 다른 브레인 역할을 했다. 그 역시 이명박 정부에 불만이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새 정부가 시대의 과제를 체계적으로 풀면서 나간다고 보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정권 창출을 위한 기여는 컸는데 진정한 뉴라이트를 만들어나가는 데는 진전이 안 보인다”는 이야기도 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2005년 11월에 출범했다. 김진홍 목사가 이끌고 있다. 이 단체는 사상 처음으로 보수우파의 대중조직을 제대로 구현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전국 시·군·구에 200여 개 지부를 두고 17만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노동·종교·교사·기업인·대학생 등 17개 부문조직도 있다. 민주노총, 전교조, 한총련 등을 의식해 조직을 구성한 셈이다. 좌우를 통틀어 최대 규모의 단체다. 이들은 대선 직전인 지난해 11월, 이명박 당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후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이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 그룹이 되면서 영향력이 더욱 높아졌다. 대신 ‘MB 2중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게 됐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이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론 중심의 뉴라이트 단체들에 대해 비판적이다. 특히 현대사 논쟁을 이끈 시대정신 그룹이 ‘친일파’라는 비난을 듣게 된 일에 불만이 있다. 변철환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은 “그 문제(친일파 논란)를 그분들(시대정신)도 모르진 않을 테니, 당사자가 나서 명쾌하게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단체 사람들은 “친일파 논란으로 뉴라이트의 이름에 먹칠해놓고 이제 와서 자기들만 뉴라이트 이름을 뗐다”고 웅성대고 있다.

지난 8월1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 국민행동본부,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승만 건국 대통령님 감사합니다’를 주제로 건국 60주년 기념 행사를 열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지난 8월1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 국민행동본부,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승만 건국 대통령님 감사합니다’를 주제로 건국 60주년 기념 행사를 열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자신감의 발로인가, 위기 의식 반영인가

친일 논란이건 친이명박 논란이건 뉴라이트 운동 전체의 기반을 잠식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뉴라이트의 기치에 대한 여론 시장의 호응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최근 이 세 단체는 나란히 ‘공생’ ‘상생’ 등을 내걸고 운동 방향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시대정신은 지난 10월20일 ‘보수와 진보의 공생모델’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은 11월27일부터 ‘보수를 묻는다’ ‘진보를 묻는다’를 주제로 연쇄 토론회를 연다. 진보와 보수의 건설적 대화를 위한 자리라는 설명이다.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도 “보수단체와 진보단체가 국가 발전을 위해 서로 보완·상생·극복하는 관계를 이뤄갈 때”라고 말했다. 비슷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각 단체마다 초점은 다르다. 시대정신과 한반도선진화재단은 대선 이후 뉴라이트의 새로운 정립에 강조를 두고 있다.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반면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대운하 등 이명박 정부가 내건 정책과제의 합의 도출에 방점을 찍는다. “보수 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정서가 강하다.

진보에 대한 공격을 접고 대화에 나서겠다는 이들의 변화는 자신감의 발로일 수도, 위기 의식의 반영일 수도 있다. 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뉴라이트 진영에서 지금 어떤 변화가 진행 중인 걸까. 뉴라이트 운동의 ‘대부’ 격인 안병직 이사장, 김진홍 공동의장, 박세일 이사장을 연쇄 인터뷰한 이유다.

[‘3인의 대부’ 연쇄 인터뷰]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팽개쳤다”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내년 중반, 지지율 40% 될 것”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지금 보수는 미래 세력이 못 된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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