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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수는 미래 세력이 못 된다”

‘3인의 대부’ 연쇄 인터뷰③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철저한 반성, 자기개혁, 대안 제시로 가야”
등록 2008-11-18 17:45 수정 2020-05-03 04:25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한겨레 신소영 기자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한겨레 신소영 기자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다. 인터뷰는 전자우편으로 이뤄졌다. 신중하게 표현하는 평소 태도에 비춰, 11월12일에 받은 답신에는 몇몇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는 예전부터 ‘뉴라이트’라는 명칭을 멀리했다. 인터뷰에서도 그는 뉴라이트 운동 전반에 대한 성찰을 강하게 요구했다. 직설적 단어는 피했지만, 구보수에 대한 극복과 단절을 강조했다.

 

- 이명박 정부가 출범 아홉달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의 공과에 대해 평가한다면.

= 솔직히 해외에 주로 있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른다. 대외 여건이 대단히 나쁘고 여러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새 정부가 이 시대의 정신을 읽고 이 시대의 과제를 앞장서 체계적으로 풀면서 나간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지금은 앞을 치고 나가는 모습보다는 변화를 쫓아 가기 바쁜 것 같다. 이래서는 한 단계 높은 역사를 만들기 어렵다.

 

- 한국 보수주의 사상·정치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자처하는 뉴라이트 운동의 현재는 어떻게 평가하나. 특히 정권 창출 이후, ‘사상의 대중화’ 또는 ‘담론과 정책의 대중화’ 차원에서 한국 보수주의 운동이 어떤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나.

= 뉴라이트 운동은 우리나라 보수의 자기혁신운동으로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그 본래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보수가 해방후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나름의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을 끌어 갈 미래세력으로는 대단히 미흡하다.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 성찰, 자기개혁 그리고 대안제시 등이 뉴라이트 운동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의 뉴라이트는 새로운 정권 창출에는 기여하였지만 새로운 보수를 세우는 데는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외부자 또는 일반 국민의 눈으로 보자면 뉴라이트 운동을 이끄는 단체들 사이의 ‘차이‘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시대정신’(구 뉴라이트 재단)은 주로 사상운동,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주로 정치운동을 펼쳐 왔다. 각 단체의 성과에 대해 평가한다면.

= 시대정신 그룹은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특히 보수라는 말 자체가 인기가 없고 무차별 공격을 받을 때 용기있게 나선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앞으로는 단순히 좌파나 진보에 대한 비판을 넘어 신보수의 보다 깊이 있는 철학과 가치와 비전과 정책을 탐구하고 제시하여 나가야 한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정권창출을 위한 기여는 컸는데 진정한 뉴라이트, 즉 신보수를 만들어 나가는데는 진전이 안 보인다. 구보수와 차이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자기정체성을 세워 나가야 할 때다.

 

- 두 단체와 구분되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독특한 위상 또는 지향이 있나.

= 한반도선진화재단은 한반도의 선진화를 위하여 비전과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사회에 알리려고 노력하는 단체이다. 한반도 전체가 선진국이 되려면 반드시 우리나라에 신보수과 신진보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보수와 진보는 과거 세력이지 미래 세력이 못 된다고 본다. 그래서 신보수와 신진보가 나와서 우리나라의 선진화를 향하여 공동노력하고 함께 협력해 나가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은 그러한 선진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바람직한 국가발전 비전과 정책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연구하는 싱크탱크이고 교육기관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신보수와 신진보가 등장하는데 한반도선진화재단은 관심이 많다. 신보수든 신진보이든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이다.

내가 보기에는 합리적인 신보수와 신진보가 나와서 구체적인 선진화 정책에 대하여 토론하면 70% 정도의 합의점 내지 공통점은 쉽게 나온다고 본다. 그러나 구보수와 구진보는 서로 정책의 합의점을 찾기가 대단히 어렵다. 구보수와 구진보의 특징은 정치와 선동과 이미지에는 관심이 있으나 비전과 정책에는 관심이 없다는 데 있다. 그러나 국민의 생활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선동과 정치와 이미지가 아니라 비전과 정책이다.

 

- 참여정부 시절 ‘이념대립’으로 소모적 논쟁을 했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여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는 지적이 있다. 참여정부 시절 ‘과거사 청산 논쟁‘과 현재의 ‘역사교과서 논쟁’은 공세적으로 제기한 주체가 좌에서 우로 바뀌었을 뿐, 합의와 공론을 일구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해 보인다.

= 사실 지난 10년간 특히 참여정부 시절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공격이 도가 심히 지나쳤다. 나는 세계의 진보주의자들 가운데 누구도 자기 나라의 역사를 그렇게 함부로 훼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역사 공동체는 국민행복이나 국가건설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소중히 하여야 할 공동체이다. 한번 훼손시키면 그 피해가 크고 복구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든다.

지금도 우리사회 일각의 ‘사이비 진보’들이 역사 공격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을 애국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단히 곤란한 일이다. 내가 보기에 역사는 당분간 극단에서 극단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한단계 높은 단계로 수렴될 것이다.

 

- 김대중 정부 및 노무현 정부 시기, 보수 진영은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들을 ‘권력화’되고 있고 ‘이념적으로 편협’하다고 비판했다. 이제 그 잣대로 뉴라이트 운동을 평가하면 어떤가.

= 과거 10년간 정치권력은 시민운동 특히 전국적 조직을 가진 대형 시민운동을 이용하면서 타락시켰다. 결국 시민운동의 건강성과 정당성을 정치권력이 죽인 셈이 되었다. 역사의 커다란 후퇴이다. 앞으로 역사의 큰 불행으로 기록될 것이다. 21세기 국가경영에서 건강한 시민운동은 필수적이다. 어떻게 시민운동을 다시 살릴 것인가가 큰 과제이다. 새 정부가 또 시민운동을 정치적으로 타락시키면 절대 안된다. 정권도 자제해야 하고 운동가들도 크게 조심하여야 한다. 시민운동이란 모두가 정성을 들여서 잘 키워가야 할 대단히 중요한 제도이다.

 

- 최근 세계적 경제위기와 맞물린 국내 경제의 침체와 빈부격차 확대에 대해 한국 보수 진영도 새롭게 눈을 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국민통합’ 등의 활동방향을 내놓고 있다.

= 보수든 진보든 관계 없이 경제를 성공시키는 것과 동시에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이 21세기 세계화시대 국가운영의 기본이다. 이 두 가지를 해내는 것은 모든 나라의 기본이다.그래서 한반도선진화 재단은 자유와 공동체를 주장하여 왔다. 즉 공동체자유주의의 길을 주장하여 왔다. 그런데 경제성공과 사회통합을 이루는 방식과 그것을 추구하는 방식은 나라의 크기에 따라,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그리고 국가발전단계에 따라 모두 다르다.

앞으로 신보수와 신진보는 경제성장의 길과 사회통합의 길에 대한 자신들의 정책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정책대안 없이 보수 진보 운운하며 말 싸움하는 것은 선동이고 국민무시이고 지금까지의 구보수 구진보의 특징이였다. 보수든 진보든 새로 거듭나려면 세계의 변화를 보면서 국가정책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여야 한다. 그래고 밤을 새면서 우리나라에 맞는 전략과 정책대안을 연구해 내야 한다.

 

- 뉴라이트 운동이 애초 내걸었던 것과 달리 ‘올드라이트’의 권력지향성과 특권의식을 보다 철저하게 극복하지 못한 탓에 이명박 정부가 ‘강부자 내각’ 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 그동안 우리의 보수는, 특히 지난 10년간 정권을 뺏기고 있는 동안,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 전혀 없었고 그리고 새로운 가치, 비전, 원칙의 제시 등이 크게 부족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시대정신과 시대과제를 못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혜매고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이 한국 보수의 현재의 주소가 아닌가? 시대는 철저한 자기반성과 자기개혁을 요구하는데, 자기개혁도 제대로 못하면서 세상을 어떻게 제대로 바꾸겠는가?

 

- 보수와 진보의 공생 또는 공론의 계기와 매개는 무엇이라고 보나.

= 사실 올바른 보수 또는 올바른 진보라면 반드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서로 서로 협력하여야 나라가 잘 된다. 그런데 서로 공생하고 협력하려면 우선 각자가 스스로에게 정직하여야 한다. 과연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가? 내가 그것을 위하여 몸을 바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반대로 진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분단 때문인지 우리나라에는 희한한 진보가 많다. 지금은 각자 자기반성하고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세울 때이다. 자기의 정체성을 바르게 세운 후에 대화하여야 그 대화가 진실되고 생산적인 대화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진정한 보수와 진정한 진보가 있는지 나는 회의적이다. 그러니 우선 자기를 정직하게 먼저 세우는 일이 급하고 그 다음에 대화하면 나는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게 되고 공생하고 협력하게 되는 일은 오히려 쉽다고 생각한다.지금은 자기에게 정직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 보수 진영 안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비관적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다시 국민적 지지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새 정부 하기 나름 아닌가. 국민들이 원하는 것과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잘하면 지지도가 크게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그때 그때의 지지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올바른 일을 하면 지지도가 낮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나하면 시간이 가면 국민이 이해하고 지지도 역시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바른 일을 제대로 하지 아니 하면서 지지도가 낮으면 정말 큰 문제이다.

 

- 시장과 국가를 중심에 둔 한국의 보수/진보 담론 경쟁에서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

= 우리나라에는 신자유주의가 옳으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논쟁이다. 미국의 이야기이고 유럽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자기 할 일은 잃어버리고 남의 집 싸움에 나서는 셈이다. 그 동안 한국의 전통적 담론구조가 잘못된 것이다. 허구와 허구의 싸움이였다. 신자유주의도 올바로 잘하면 성공하고 못하면 실패한다. 사회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잘하면 성공하고 못하면 실패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진정한 문제는 무엇을 해도 제대로 성공시키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렇게 되는 원인을 찾고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외국 학자들이 자기들 상황에서 이야기 하는것 가지고 떠들 것은 없다 한마디로 우리는 신자유주의도 하고 사민주의도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고 사민주의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문제를 풀 ‘능력과 구조와 주체’가 없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문제이다 그래서 중진국이 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 흔들리고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의 등장은 신자유주의냐 아니냐의 차원보다 훨씬 더 큰 역사적·세계적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앞으로 어디까지 실천할 수 있는가, 구체화할 수 있는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오바마의 등장을 시장이냐 국가냐 하는 작은 차원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사실 시장이냐 국가냐는 하는 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정답이 다 나와 있는 문제이다.

 

- 지난 대선으로 정권 창출의 목적이 완성된 이후 뉴라이트 운동 내부의 자원과 동력이 조금씩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한다. 정치 지향이 강한 운동일수록 특정 선거 이후 자기 동력을 상실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앞으로 뉴라이트 운동은 어떤 일을 해야 하나.

= 길게 보면 한국의 보수주의 운동은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보수의 가치를 세우는 것이다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 왜 개인의 행복과 국가발전에 보수적 가치가 중요한지를 설명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에 기초하여 성장·분배·교육·문화·대북·국제 등의 중요 국정과제를 풀기 위하여 어떠한 정책들이 나와야 하는지, 왜 그 정책이 국리민복을 위하여 옳은 정책인지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둘째,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말로 표현하여야 하고 말을 한 것은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 최근 이명박 정부의 여러 어려움을 풀 수 있는 대안으로 이사장님의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연말 이후 그동안의 연구와 저술 활동을 잠시 접고, 정치 일선에 나설 계획이 있나.

=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리/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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