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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마니풀리테! 정치권 부패를 뿌리뽑으려는 검찰의 전쟁, 고개 빳빳이 쳐든 저항세력과의 한판 승부
‘한국판 마니풀리테(깨끗한 손) 운동’은 성공할 것인가? 그리고 마니풀리테 운동의 성공을 가로막는 적들은 누구인가? 현재 검찰이 진행 중인 대선자금 수사는, 1990년대 초반 이탈리아에서 진행됐던 ‘정·관·재계 부패와의 전쟁’을 연상케 한다. 마니풀리테의 정점에 있던 안토니오 드 피에트로 검사는 당시 “우리의 작업은 단순히 더러운 손을 솎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사회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 투명하게 만드는 일종의 구조혁명”이라고 말했다.
“불체포특권을 한시적으로 제한하라”
구조혁명에는 반드시 저항세력이 나오게 마련이다. 또한 저항의 이면에 그 사회의 부패 기득권 구조가 도사린다는 것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탈리아에서도 정치권은 검찰의 전방위 수사에 강력히 반발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예비검속제’ 폐지안을 의회에 제안한 게 단적인 예였다. 예비검속제는 도주와 증거인멸 위험이 분명할 경우 검사의 수사 통보만으로 피의자를 예비구금할 수 있는 제도다. 이탈리아에서는 상·하원 의원 945명 가운데 600여명에 대해 면책특권 정지요청서가 발부됐고, 300여명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에 마니풀리테에 나선 검사들과 판사들은 총사직을 내걸고 반대투쟁을 벌였다. 국민여론도 사법부의 결연한 의지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으며, 결국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여론의 지탄을 받은 끝에 이 제안을 철회했다. 한나라당은 이탈리아의 그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검찰수사에 저항하고 있다. 최돈웅 의원(전 재정위원장)은 더 이상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검찰 출두 요구를 받은 재정국 실무자 두 사람의 거취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의 입장은 모호하다. 한편으로 검찰수사는 “야당 파괴를 노린 기획수사”(최병렬 대표)라며 수사 불응 뜻을 비치는가 하면, 때로는 “출두하도록 설득해보겠다”(심규철 법률지원단장)고 밝히기도 한다. 적어도 검찰수사에 순순히 협력하지 않을 뜻만은 분명한 셈이다. 최돈웅 의원과 관련해선 회기 중 불체포특권(면책특권) 문제가 다시 논란이다. 불체포특권은 독재정권 시절에 의정 단상에서나마 정권의 비리를 지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장치였다. 그러나 권위주의 시대가 끝난 이후 의원들이 비리수사를 피하는 장치로 불체포특권을 악용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세청을 이용한 대선자금 모금 사건, 안기부 자금을 총선에 끌어다 쓴 사건, 정대철 열린우리당 의원이 굿모닝 게이트 수사를 피하는 상황 등이 그러하다.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 특검제도 논란의 여지가 담겨 있다. 대통령 측근 비리를 엄정하게 파헤치자는 한나라당의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특검을 제기한 근본 배경이 정치권 전체를 겨냥한 ‘검은돈’ 수사를 가로막으려는 ‘방탄 특검’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의 11월6일 의견서도 이런 맥락을 대변한다. 변협은 당시 대선자금을 다루기 위한 것을 포함해 한나라당이 제출한 3개 특검법안을 두고 “특검 법안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쪽의 불법 선거자금 문제는 전혀 수사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은 특정 정파의 요구만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며 “이는 특검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토록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돼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변협은 또 “특검 법안은 검찰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을 수사토록 할 뿐아니라 3개의 수사 대상이 실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문제점이 있다”며 “이 경우 특검의 상설화뿐 아니라 동일 사안에 대한 판단의 혼선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한나라당은 특검 후보 추천권을 자당 소속인 국회의장이 갖도록 초안을 만들었다가, 박관용 의장이 이에 반대하자 변협 추천으로 되돌리는 갈팡질팡 행보까지 보였다.
한나라당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
노 대통령의 측근 비리 특검과 관련한 민주당 내 찬반 의견 분포도 흥미롭다. 박상천 대표와 박주선·이협·장성원·최명헌·최재승 의원 등이 찬성파의 주축이다. 이들은 지난 대선 당시 당내 반노무현 그룹을 형성했으며, 호남에서 신진인사들의 물갈이 요구에 시달린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한나라당과 공조하는 흐름과 당내 기득권 구조가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 대목이다. 반면에 추미애·김영환·정범구·설훈 등 당개혁을 주장해온 수도권 의원들은 “검찰수사를 지켜보는 게 먼저”라며 특검에 반대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검찰수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면의 중요한 이유는 ‘사용처 수사’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에선 대선자금 정국이 시작된 이후 최병렬 대표와 소장파들이 검찰수사 협력과 진상규명을 전제로 한 ‘정면돌파론’을 주장하는 데 맞서, 친이회창 7인방을 중심으로 상당수 중진들이 이견을 제기하는 흐름이 계속돼왔다. 한나라당이 하루는 검찰수사에 전향적으로 임하는 듯하다가, 다음날에는 기류가 바뀌는 일이 되풀이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자금 사용처를 포함한 ‘검은돈’의 진실이 드러나는 게 곧바로 자신들의 문제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셈이다. 이탈리아 마니풀리테 운동의 성공은 검찰수사를 전폭적으로 성원한 국민여론에 힘입은 바 크다. 심지어 언론도 검찰수사 과정을 공정하게 보도하기 위해 특종경쟁을 지양하고 마니풀리테 기자단을 구성해 부패세력의 체포와 기소·재판 결과 등을 입체적으로 보도했다. 정치권력이 수사기관을 역공할 때마다 국민들이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이고 언론이 반격에 나서 ‘깨끗한 손’을 지켜냈던 것이다.
이탈리아 마니풀리테 성공의 뿌리는…
그러나 우리 현실은 다른 것 같다. 검찰이 SK 이외의 대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을 굳히자,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를 중심으로 ‘경제 악영향 우려’ 주장이 일부 보수언론을 통해 아무런 여과 없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대기업 수사는 투자 위축과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져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울 수 있다’는 논리다. <조선일보>는 11월3일치에서 “이탈리아 검찰은 당시 부패 정치자금과 관련해 1천명을 처벌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국민일보> 기고문에서 “8년 전 노태우 비자금 수사로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 소환을 받고 경제가 얼어붙어 IMF 환란으로 직행했던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도 1995년 실물경제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음을 각종 통계가 입증하고 있다. 이탈리아 마니풀리테 운동의 성공은 ‘검찰의 완전무결한 정치적 독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우리처럼 행정부에 소속됐던 검찰이, 2차대전 이후 사법부로 소속을 바꾸는 사법개혁이 단행됐다. 이에 검사 선발과 임명·보직 등 인사권은 법관·변호사·법학자들이 주축을 이루는 ‘최고사법위원회’가 갖게 됐다.
우리나라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권력기관을 이용한 통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뒤 검찰은 안희정·염동연·최도술, 정대철 우리당 의원 등 여권의 실세들에게 비수를 들이댐으로써 나름의 중립성을 과시했다. 그럼에도 우리 검찰은 대통령이 인사권을 쥔다는 사실 때문에 완전한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운 상태다.
시민단체는 왜 검찰을 지지하는가
한나라당의 반격도 이 대목을 약한 고리로 파악한 데 따른 것이다. 최병렬 대표는 11월4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고 비난한 뒤 “대선자금 수사는 야당 파괴를 노린 청와대의 기획수사”라고 규정했다. 이재오 사무총장,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 등 한나라당 강경파의 역공도 ‘검찰의 형평성·공정성’에 맞춰졌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특검이냐 아니냐, 또는 검찰 인사제도의 개혁이냐 아니냐를 따지기에 앞서 눈앞의 진실 규명이 좀더 시급하다는 게 대체적인 국민여론 같다. 경실련과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검찰수사를 지지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이 조직 탄생 이래 처음 맞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살려나갈지, 아니면 또 다른 정치적 굴신으로 자신들마저 ‘마니풀리테의 적’이 될지를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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