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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처럼 막갈 수 있을까? ‘한국판 마니풀리테’ 논의에 부담스런 검찰… 대선자금 수사 뒤에도 ‘전투’는 계속된다
“자살하거나 혹은 자백하거나….” 최재경 법무부 검찰2과장은 이탈리아 마니풀리테 수사를 직접 목격했던 때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마니풀리테 수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던 지난 1993년 11월 그는 법무부 검찰국 소속 검사로 ‘사정 수업’을 떠났다. 세계적인 수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법무부와 검찰의 판단에 따라 이뤄진 출장이었다. 11박12일 일정으로 이탈리아를 돌아본 그는 마니풀리테가 ‘죽음의 사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까닭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마니풀리테 과정서 13명 숨져
“한번 구속을 하면 기소 때까지 2년 동안 구금돼 조사를 계속 받아야 하고, 수사를 하는 검사가 영장 발부 여부를 직접 결정하다 보니 수사대상인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죽을 맛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자살하거나 자백하는 것밖에는 없었다는 뒷얘기를 그때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구속한 뒤 20일이 지나기 전에는 반드시 기소를 해야 하고, 영장 발부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어려워지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조건에서 수사가 이뤄졌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대검 중수부가 벌이는 수사를 이탈리아 마니풀리테 수사와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요. 물론 혁명을 한다는 이탈리아 검사들의 열정이 마니풀리테의 가장 기본이었겠죠.”
마니풀리테 수사를 가능하게 만든 제도적 배경 가운데 핵심은 ‘수사판사’ 제도다. 프랑스식 사법체계를 따른 이탈리아는 사법부 안에 검찰과 법원의 기능이 묶여 있다. 검찰 조직이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에 소속돼 있어 실질적인 독립을 구가할 수 있다. 판사와 검사는 사법부 안에서 순수한 기능분리 관계이며 인사교류가 자유스러운 혼합체로 인식되는 것이다. 한국 검찰은 검찰 조직이 행정부인 법무부의 외청 형태로 존재한다. 검사의 임명권 역시 대통령에게 속해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다 이탈리아 수사판사는 수사를 직접 관장하면서 영장 발부 여부까지 스스로 결정한다. 여기에 최장 구속기간이 2년이다 보니 웬만한 피의자는 그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셈이다.
‘외곽때리기’ 변칙스타일로 승부
이같은 강도 높은 수사 방식이 무조건 좋은 평가만 받았던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검찰이 운용한 이른바 ‘예비구금제도’(수사를 위해 먼저 구금할 수 있는 제도)는 “인권보다 수사를 앞세우는 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미 국무성 인권보고서는 이를 인권침해로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제도가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운 반부패 수사과정에서 증거인멸과 도주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던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장관 재임 중 부정부패 관련 사임자 5명, 주요정당 수뇌부 가운데 재임 중 부정부패 관련 사임자 4명, 수사 대상에 오른 전·현직 총리 5명, 수사대상에 오른 기성 정치인 가운데 4분의 1, 정치인과 기업인을 통틀어 수사대상 3천여명, 실형 선고자 1천여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마니풀리테의 수사결과는 이탈리아 사법 체계에 기댄 측면이 크다. 최근 대선자금 수사를 두고 ‘한국판 마니풀리테’ 논의가 이는 것에 대해 검찰은 무척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라는 말로 검찰의 조심스러운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어 “우리 검찰이 전직 대통령 2명을 구속 기소하고 현직 대통령의 아들들을 구속 기소한 ‘전과’가 있지만 사실 ‘이벤트성’이나 ‘일과성’ 수사였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면서 “그런데 지금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정치개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정치자금 전반을 샅샅이 뒤져서 앞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아예 없애달라는 것인데, 그런 정도까지 수사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 많다”고 털어놨다. 검찰의 고민은 이번 수사가 마니풀리테 수사처럼 대선자금을 샅샅이 뒤지는 수준으로 진행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렵다는 데 있다. 대선자금 수사가 ‘마니풀리테식’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불법 선거자금을 모아 집행한 각 정당의 핵심 정치인→불법자금을 건넨 기업인들→선거자금을 적법하게 쓰지 않은 선거관련자들(지구당 관계자들까지 포함)’로 수사범위를 확대해야 마땅하다. 선거에서 ‘불법’을 ‘싹쓸이’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식의 수사가 이뤄진다면 제도적인 개혁안이 관철되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 내년에 치러질 총선의 정치자금 문화가 확연히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재 대검 중수부의 수사 진행 상황으로 보면 이같은 이상적인 그림은 그려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신 대검 중수부는 주요 정당과 ‘5대기업+α’에 대해서는 확실히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수사결과를 내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수사대상인 정치권 가운데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이 노골적인 수사 거부 의사를 밝혔고, 또 다른 주요 수사대상인 재벌기업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전경련 등을 통해 ‘사면’ 조처를 공공연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사방식도 ‘외곽 때리기’ 방식의 변칙 스타일에 기대고 있다. 즉, ‘민주당 계좌추적→불법 대선자금 내역 및 관련 기업체 파악→해당 기업 임직원 소환조사→한나라당 압박’의 순서로 한참을 에둘러가는 것이다.
‘특검 정치권’과도 일대 결전 태세
검찰은 수사 중인 사안을 특검에 넘기도록 요구한 정치권의 조처에는 일대 결전을 벌일 태세를 보이고 있다. 자칫 정치적인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는 방향으로 선회한 셈이다. 대검 중수부는 11월10일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발효된다면 검찰의 고유권한인 수사권을 침해했는지를 가리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 특검이 이뤄지는 나쁜 전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번 수사만큼은 검찰이 끝까지 해보겠다는 불타는 의지를 엿보인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권에 어지간히 독이 오르지 않은 상황에서는 나올 수 없는 조처로 분석된다. 검찰은 특수부 이외에도 공안부를 내세울 계획도 세우고 있다. 송광수 검찰총장은 최근 전국 공안부장 회의를 열고 내년 총선과 관련해 “금전선거 사범에 대해서는 계좌추적과 압수수색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전에는 논란이 일까봐 자제해왔던 투표 전 선거사무실 압수 수색도 마다하지 않겠다”라고 설명했다. 대선자금 수사가 마무리되더라도 정치자금에 대한 ‘전투’는 계속함으로써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식의, ‘우리식 마니풀리테’를 추구하겠다는 의지로 읽히는 대목이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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