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스페인 시민참여 싱크탱크 ‘라보데모’ 설립자 - 야고 아바티
② 데이터 시각화 의사소통 도구 ‘폴리스’ 설립자 - 콜린 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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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테러방지법에 대한 4700만 시민 개개인의 의견을 들어 모두가 합의하는 새로운 법안을 만드는 일은 가능할까. 정부가 추진하고 싶어 하는 노동법 개정 세부안에 대해 시민들의 생각을 듣고 그 생각의 합의점을 찾는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을까. 수천만 명 차원이 아니라 수백만 명 단위에서는 가능할까.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 300명이 모인 국회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사람이 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에 기반해 획득한 정보와 그에 따른 의견을 갖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두의,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토론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꿈이다.
가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런 ‘이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위에 구현하려는 젊은이가 있다. 수백만 명의 목소리를 동시에 듣고, 그 목소리들을 계량화해 합의점을 찾으려 시도하고 있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토론콜린 맥길(사진)이 그 주인공이다. 콜린은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시애틀 북서쪽의 한 섬에서 유기농법에 기반한 자급자족적 삶을 꾸리는 방법(WOOFING·우핑)을 배우며 ‘초월주의적’ 생활을 했다. 당시는 미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엉망이던 때였다. 콜린은 ‘새로운 형태의 은행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소통할 도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두 동료와 함께 데이터 시각화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더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웹 기반 애플리케이션 ‘폴리스’(pol.is)를 개발했다.
폴리스는 특정 이슈에 대한 의견의 유사성에 따라 사람들이 어떻게 분포해 있는지, 그 속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시각화해서 보여준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폴리스를 이용해 우버 택시의 도입과 관련한 설문조사 페이지를 개설하고 우버 택시 도입 안건을 사람들의 의견을 토대로 결정했다. 대만 행정원몽장위원회 장관 차이유링(蔡玉玲)은 최근 폴리스를 이용해 미-대만 비즈니스 공동협정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콜린 맥길은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시장이 아침에 일어나 어떤 안건을 폴리스에 올리면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 그 안건에 대한 찬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다. 시 전체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에는 이런 기술의 도움으로 더 큰 규모의 집단에서도 서로를 신뢰하며 긍정적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 ‘긍정주의자’다. 시민의 역량을 믿고 시민의 공동선을 믿는 ‘몽상가’ 폴리스 설립자 콜린 맥길을 만났다.
폴리스를 어떻게 착안했나.2009년 대학을 졸업했다. 투자회사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미국이 금융위기의 한복판에 있던 때였다. 졸업 뒤 나는 대학 때 하고 싶었던 일 가운데 한 가지인 자급자족하며 사는 법(우핑)을 배우기 위해 뉴욕에서 시애틀 북서부의 한 섬으로 이주했다. 여기서 버섯을 채집하고 활로 사냥하는 법을 배웠다. 1년 동안 농사도 지었다.
이 시기는 내가 대학 시절에 공부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읽고, 쓰고, 배우고,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대학 때 많은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경제 체계, 경제 시스템에 관련해서 많이 읽고 공부했다. 그러면서 금융위기와 관련해 새로운 형태의 은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돈을 어떻게 투자할지 함께 결정할 수 있는 은행 제도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토론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폴리스를 처음 생각하게 된 맥락이다.
또 다른 차원이 있다. 당시는 튀니지의 반정부 시위를 시작으로 이집트·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으로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번져가던 때였다. 그 시위들에서 인터넷 기술이 어떻게 사람들의 생각을 모으고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봤다. 동시에 시위의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모여 여러 가지 말을 하면 그 운동의 합의점이 무엇인지, 운동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기 힘들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 역시 폴리스를 구상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정치외교를 전공했지만 사회학과 비교종교, 특히 아시아 종교와 선불교 관련 수업도 많이 들었다. 학부에서 공부하는 동안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행동할 때 겪는 어려움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겼다. 큰 그룹 안에서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능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술이지만,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능력임에도 집단적인 수준에서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협업은 늘 어려운 문제라고 느꼈다.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앞서 말한 시위와 운동을 보면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문제의식이 심화됐다. 섬에서 지내는 3년 동안 그런 생각을 다듬어가다가 시애틀로 이사했다. 시애틀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소프트웨어 회사에 취직해 개발자가 됐다.
이후 정보기술 등과 관련한 여러 모임에서 (나중에 폴리스를 함께 만든) 마이크 뵤케그런과 크리스 스몰을 만났다. 마이크는 당시 아마존에서 개발자로 일했고 크리스는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센터의 시스템 분석자였다. 인공지능, 기계학습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티모 역시 자문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이들과 함께 2012년 폴리스를 오픈했다.
폴리스는 실제 어떻게 사용되고 있나. 폴리스가 사람들 의사소통 방식을 바꾸었나.내가 자주 언급하는 사례는 대만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만 페이스북에서 논쟁이 일었다. 한 콘퍼런스에 중국인 패널이 초대될 예정이었는데, 이 사람을 초대해야 한다, 초대하면 안 된다는 논쟁이었다. 그들이 기술사회에서 정의롭지 않은 일을 하기로 유명한 중국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을 관련 콘퍼런스에 초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을 올리자, 여기에 200여 개의 ‘화난’ 댓글이 달렸다. 서로 싸우는 듯했고 이야기는 공전했다. 그때 대만 오픈소스 온라인 플랫폼 ‘거브제로’를 운영하는 치아량카오가 ‘폴리스’ 링크를 걸고 ‘여기에서 이야기해보자’는 글을 올렸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폴리스에서 이 안건과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올리고 서로의 의견에 투표했다. 폴리스는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의견 지형도를 그렸다.
당연하게도 ‘초대해야 한다’는 그룹과 ‘초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흥미로운 점은 90% 이상의 사람들이 ‘콘퍼런스 책임자가 올바른 결정을 할 거라 믿는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이 의견에 사람들은 합의를 이루고 있었다. 또 ‘그 중국 기업이 매우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의견에도 90% 이상의 사람들이 동의했다. 페이스북에서는 모두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고함치고 있는 듯 보였지만, 의견의 지형도를 그려보니 사람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신뢰하고, 그 커뮤니티가 갖고 있는 공동선에 대부분 동의한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됐다.
보통 수백 명이 온라인 공간에서 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더라도 저마다 말하는 포인트가 다르다. 결국 그 이야기는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토론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될 뿐이다. 그 이야기들마저 어딘가로 수렴되지 않고 흩어진다. 대화들 속에서 합의점은 무엇인지, 이견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찾아내면 잡음은 줄어들고 효용성은 증가한다. 이런 대화를 토대로 사람들 간의 작용도 긍정적으로 바뀐다.
이후 대만에서는 폴리스가 온라인 기반 정치 토크쇼 타오(talkto.tw)에서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크라우드소싱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대만 장관이 미-대만 경제개발 공동협정과 관련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플랫폼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대만에서 폴리스의 성장은 매우 놀랍고, 이 툴이 어디까지 사용될 수 있을지 흥분된다.
폴리스는 여러 의사소통 애플리케이션 가운데 의견 지형도를 시각화해서 보여준다는 점이 특이하다. 어떻게 ‘시각화’를 하게 됐나.보통 사회과학에서는 설문조사를 하면 이것을 다차원적으로 분석하는 통계 툴이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알고리즘은 사회학에서 쓰는 알고리즘과 같다. 차이점은 교수들이 몇 달에 걸쳐 했던 작업을, 우리는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등을 이용해 즉각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보여주는 방식에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금은 의견 지형도를 그릴 때, 각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 사진 아이콘을 사용하지만, 처음에는 단순한 점을 사용했다. 이때는 도대체 이 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것을 ‘얼굴’로 바꾸자 직관적으로 어떤 사람의 ‘위치’를 나타낸다는 게 인지됐다. 많은 시행착오와 반복을 거쳐 지금의 폴리스가 됐다.
폴리스를 통해 구현하고 싶은 사회의 모습이 있나.미국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가 말한 ‘비행기 뒷날개’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비행기의 뒤에는 아주 작은, 회전하는 꼬리 날개가 있다. 이 작은 금속 덩어리가 비행기 전체를 움직이게 한다. 나 역시 전체를 움직이기 위해 ‘시스템’을 생각하려 한다. 모든 사람이 거리집회에 참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리에 서는 것 말고도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작지만 중요한 부분이 매우 많다.
나는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폴리스라고 생각한다. 미디어의 의제 설정과 관련해 걸러냄 없이, 누군가의 간섭 없이 특정 이슈에 대해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듣고 계량화해 표현할 수 있다. 폴리스를 이용하면 시민과 정부가 의사소통하는 방법, 그로 인한 시민과 정부의 관계를 매우 빠르게 바꿀 수 있다.
“스마트폰, 집단행동 규모 바꿀 것” 인터넷 혹은 기술은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바꿀 거라고 생각하나.기술은 미래의 민주주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는 점점 100% 스마트폰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모든 사람이 항상 전화기를 가지고 있고 폴리스를 사용한다고 해보자. 시민에게 물어볼 것이 있는 시장이 아침에 폴리스에 자신의 질문을 올린다. 아니면 언론 기사에 묻고 싶은 내용을 담은 폴리스 링크를 포함한다. 사람들은 일어나서 이걸 보고, 시장에게서 온 질문에 언제 어디서든 답할 수 있다. 출근길 버스 안이든, 회의 중이든 간단히 열어보고 답할 수 있다. 시 전체가 서로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님으로써 상상 가능한 ‘집단경험’ ‘집단행동’의 규모가 달라질 것이다. 기술을 통해 의사소통 방식이 개선되면서 집단행동에 어려움을 겪는 인간이 좀더 서로를 신뢰하며 큰 규모의 집단 속에서도 선의와 효율을 주고받으며 사는 사회가 올 것이다.
인터뷰 와글 이여경 joanna@wagl.net번역·정리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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