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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초콜릿 소녀’의 죽음

자오친
등록 2016-01-20 12:29 수정 2020-05-02 19:28
트위터 @ wickedonn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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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초부터 중국 사회가 들썩거렸다. 중국 간쑤성 진창시 용창현의 한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이른바 ‘초콜릿 소녀’ 사건이 사회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28일, 자오친이라는 13살 소녀가 동네 슈퍼마켓에서 초콜릿과 사탕 등을 훔쳤다. 이 일로 소녀는 슈퍼마켓에 2시간 정도 억류돼 주인에게 심한 모욕과 욕설을 들었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엄마에게도 뺨을 맞고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가게 주인은 부모에게 훔친 물건에 대한 배상금으로 100위안(약 1만8천원)을 요구했지만, 당시 소녀의 엄마는 그 얼마 안 되는 돈도 없어서 근처 노점에서 팝콘을 팔던 남편을 찾아갔다. 하지만 남편의 주머니에 있던 돈을 다 털어도 90위안 정도밖에 없었고, 가게 주인은 할 수 없이 그 돈을 받고 소녀와 엄마를 풀어주었다. 가게를 나온 소녀는 엄마와 헤어졌고, 엄마는 딸이 다시 학교로 돌아간 줄 알았지만 딸은 그길로 곧장 슈퍼마켓의 건물 옥상으로 가서 투신자살을 하고 말았다.

자오친의 투신 소식이 마을로 퍼졌고, 격분한 마을 사람들 수천 명이 다음날부터 문제의 진원지였던 슈퍼마켓 주변을 에워싸고 격렬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상주 인구가 약 8만 명에 불과한 용창현에서 5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시위를 벌인 것은 1949년 중국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시위대 규모에 놀란 시·현 정부에서는 곧바로 대규모 경찰 병력을 투입해 무력 강제 진압을 시도했고, 이로 인해 주민들의 공분이 더 깊어지면서 시위도 더 격렬해졌다. 이 과정에서 시위 진압을 지휘하던 현지 시장도 시위대들의 공격으로 얼굴과 머리 등에 상처를 입었고 부상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12월31일 현지 정부는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기 위하여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무기한 계엄령을 선포한다’는 공고문을 붙였다.

이 사건은 현지 정부의 언론 통제로 공식 매체에서는 사건 발생 며칠 뒤에야 그 전말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일명 ‘초콜릿 소녀 사건’은 수많은 버전의 유언비어를 만들며 파장이 커졌다. 슈퍼마켓 주인은 투신자살한 소녀의 부모에게 85만위안(약 1억6천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과 인터넷 등에서는 다시 한번 이 사건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고 있다.

‘초콜릿 소녀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된 원인은 정부의 보도 통제와 사건의 전말을 처음부터 공식적으로 공표하지 않은 권위주의적인 접근 방식과 강압적인 시위 진압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사건이 약자들의 정서를 민감하게 자극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 초콜릿도 사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소녀의 가정환경과, 적당한 훈계와 경고로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을 인신 억류까지 해가며 모욕적인 언사를 한 점, 그리고 결국 어린 소녀가 수치심을 못 이기고 투신자살한 사실 등이 가난한 서민들의 울분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중국의 한 네티즌은 “2010년 말 튀니지에서 한 노점상 청년이 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며 분신자살한 사건이 튀니지 혁명과 아랍의 봄을 촉발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며 “중국에서도 정부에 대한 불신과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시스템은 언제든 대규모 민중봉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이징(중국)=박현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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