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가해자? 피해자?

자난(쓰레기남 )
등록 2015-10-28 09:01 수정 2020-05-02 19:28
# 쓰레기남 1

10월17일, 중국 상하이시 지하철 8호선에서 안경을 쓴 한 남자가 바닥에 ‘퉤퉤’ 함부로 침을 뱉었다. 이를 보다 못한 승객들이 몇 마디 지적질을 하자 그 남자는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다른 승객들을 향해 끊임없이 욕설과 저주를 퍼부어댔다. 그의 언행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고, 결국 이를 참다 못한 한 건장한 남성이 그를 한 방 갈겨주었다.

이에 대한 중국 언론의 보도와 함께 당시 지하철에서 이 상황을 휴대전화로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널리 퍼지면서, ‘상하이 지하철 쓰레기남’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이 ‘쓰레기남’을 한 방 먹여준 용감한 남성에 대해 인터넷에서 찬사가 쏟아지자, 각 언론에서는 ‘쓰레기남을 폭력적 방법으로 응징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올바른 처사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되었다.

# 쓰레기남 2

이에 앞선 지난 9월12일, 상하이의 명문대학 푸단대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장문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푸단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 중인 교수님들과 지도자 여러분, 저는 역사학과 교수 ××의 아내입니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충격적 폭로를 담아 푸단대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일대 반향을 몰고 왔다.

이 글을 쓴 사람은 푸단대학교 역사학과 쉬총 교수의 아내다. 쉬총 교수는 푸단대에서 젊고 유능한 교수로 학생들 사이에서 평소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을 쓴 그의 아내 역시 중국 최고 명문대학인 베이징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고급 지식인이다. 그런 그녀가 인터넷에 자신의 남편이 같은 과에 재직 중인 미모의 여강사와 바람이 났다는 내용을 깨알처럼 자세하게 폭로한 것이다.

아내가 쓴 바람난 교수 남편 이야기는 그 어떤 치정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극적인 내용이었다. 중국 최고의 엘리트 교수가 처자식을 버리고 같은 과 여강사와 보란 듯이 내연관계를 맺었는가 하면 장인·장모에게 폭언과 폭력까지 행사했다는 내용이 인터넷망을 타고 중국 전역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곧바로 쉬총 교수의 사진들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내연녀인 여강사의 사진과 신상명세가 폭로되는가 하면, 심지어 쉬총 교수의 가족 사진까지 인터넷에 유포되었다. 그러자 주인공인 쉬총 교수 역시 아내의 글을 반박하는 글을 곧바로 인터넷에 올렸다. 그가 올린 반박문은 더 충격적이다. 자신의 아내를 상종 못할 ‘나쁜 년’이라는 식으로 묘사하면서 자신은 그런 아내에게 시달리다 마침내 자신을 이해해주는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는 내용이다.

웨이보 캡처

웨이보 캡처

이 사건은 중국 인터넷과 언론에 ‘푸단대 내연녀 사건’ 또는 ‘푸단대 바람남 사건(사진)’ 등으로 널리 회자되면서 쉬총 교수는 엘리트 지식인 ‘쓰레기남’(渣男)의 대명사가 되었다.

최근 들어 중국에서는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의 보급으로 개인의 사생활과 신상명세가 그대로 노출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각종 기발한 일들이 인터넷 등에 공개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는데, ‘자난’(쓰레기남) 또는 ‘자뉘’(쓰레기녀)가 그 대표적인 예다. 최근 들어 ‘상하이 지하철 쓰레기남’ 사건과 ‘푸단대 내연녀 사건’ 등으로 중국에서는 각종 ‘자난, 자뉘’들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베이징=박현숙 객원기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