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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에 부활한 히틀러?

방콕 생활 10년차 이유경 통신원이 ‘나치 상징물’에 놀란 사연… 그것은 패션인가, 극우로 치닫는 상황의 은유인가
등록 2013-03-29 12:23 수정 2020-05-02 19:27
타이 방콕의 ‘노란 셔츠’(PAD) 시위 현장에서 판매 중인 역사 인물 DVD. 유독 히틀러를 다룬 것이 많다. 타이 특유의 ‘암맛’(지배 엘리트) 경배 풍조가 낳은 ‘마초 사회’의 성격이 드러나는 현상이다. 이유경 제공

타이 방콕의 ‘노란 셔츠’(PAD) 시위 현장에서 판매 중인 역사 인물 DVD. 유독 히틀러를 다룬 것이 많다. 타이 특유의 ‘암맛’(지배 엘리트) 경배 풍조가 낳은 ‘마초 사회’의 성격이 드러나는 현상이다. 이유경 제공

2008년 7월이었다. 방콕의 왕당파 ‘노란 셔츠’가 수완나품 공항을 ‘접수’하기 넉 달 전, 그러니까 그들은 그해 하반기 내내 시위에 나서 이따금 레드 셔츠와 (새)총싸움도 벌이다 공항을 접수한 것이었으니, 2년간 이어질 다리품 팔기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날 노란 시위 물품 판매대에서 본 게 나치 상징 스와스티카(swastika·卍)와 히틀러 배지였다. 나는 ‘헐~!’ 정도였는데 동행한 독일 친구에게는 ‘멘붕’이 온 듯했다. 말도 안 되는 말싸움이 시작됐다.

“오호, 저스트 패션!”

농담도 진담으로 알아듣기 일쑤고 나치 상징물을 내보이는 것 자체가 처벌감인 독일에서 온 친구에게 ‘저스트 패션’이 먹힐 리 만무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날 이래 노란 시위에는 ‘나치세’가 번져갔다. 배지, 서적, DVD 등장. 파는 이에게, 사는 이에게 히틀러가 누군지 아느냐고 물으면 ‘역사적 인물’이라는 공통된 답변이 돌아왔다. ‘반탁신’으로 시작된 무대는 극우 논리로 더 충만했다. 그들은 ‘새끼’도 ‘깠다’. 핑크, 멀티컬러, 삐딱시암(타이 수호), 그리고 최근의 ‘타이애국선봉대’까지. 모두 노란 셔츠 오른쪽으로 줄줄이 서 있다.

이 ‘애국자’들이 방콕에 몰려든 레드 셔츠를 향해 “교육 못 받은 이산(동북부) 촌놈들아, 고향으로 꺼지거라”고 퍼붓던 날, 나는 증오와 배척정신이 잘 버무려진 타이 스타일 나치즘을 봤다. 그들이 페이스북에 개설한 ‘소셜 생크션’(Social Sanction)의 약칭 ‘SS’가 나치 친위대 ‘SS’(Schutzstaffel·슈츠슈타펠)와 맞아떨어지는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타이의 나치 스캔들은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2년 전 치앙마이 학교 행사에 나치 상징물을 들고 나온 학생들이라든가, 4년 전 파타야에서 ‘히틀러는 죽지 않았다’는 문구와 함께 등장한 히틀러 간판이라든가. 정작 당사자들의 반응은, 요약하자면, ‘저스트 패션’이다. 나치 피해자들을 모욕할 생각은 없었다는 사과 말씀과 함께. ‘욕하면서 배운다’고 했던가. 정적 노란 셔츠를 나치에 견주기 바빴던 레드 현장에도 스와스티카 문양이 등장한 바 있으니! 군사 쿠데타가 밥 먹듯 일어나고, ‘프라이’(평민)와 ‘암맛’(지배 엘리트)의 도드라진 경계가 ‘경배’로 이어지는 타이에서 세기의 마초 히틀러가 상하좌우로 ‘쿨’해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 아닐까.

온갖 개똥 분석을 해대는 내게 한 방콕 여자가 진단을 보탰다. 2차 세계대전의 직접 피해자가 아닌 타이는 처절한 경험자 유럽이나 한국만큼 체감도가 낮은 게 아닐까라고. 웬걸, 불편한 진실은 계속된다. 전쟁을 지지리도 많이 겪고, 독일과 나란히 선 전범국가 일제의 잔혹함도 배웠는데 부산, 대전, 서울 신촌에는 왜 ‘히틀러(류) 호프집’이 문을 열었는지. 코리아나는 왜 히틀러 정복론을 갖다 씌워 화장품을 팔아먹으려 했는지, 인종주의 언사가 넘쳐나는 ‘다문화 반대 카페’까지 온라인에서 성업 중이니. 노르웨이 극우 테러범이 흠모한 한국,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방콕 통신원·방콕에서 ‘방콕하기’ 10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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