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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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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누다!

일본은 단일민족국가 신화 깨는 ‘아이누민족당’ 결성, ‘류큐독립당’ 존재

차별과 동화의 압력 속 살아온 아이누인들 커밍아웃 계기 되나
등록 2012-06-27 14:12 수정 2020-05-03 04:26

“미국은 다민족국가여서 교육이 쉽지 않고 흑인, 푸에르토리코, 멕시칸 등의 지적 수준이 높지 않다. 일본은 단일민족국가여서 교육이 충실히 행해지고 있다.” 1986년 9월 당시 일본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자민당 연수회에서 한 말이다. 미국 내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나자 나카소네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지만 ‘일본=단일민족국가’라는 등식까지 철회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력 정치가들의 ‘일본=단일민족국가’ 발언이 쏟아져나왔다. 예를 들어 2005년 아소 다로 총리는 “지금 세계 곳곳에선 인종·지역·종교 등의 문제로 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일본만큼 단일문화, 단일문명, 단일민족, 단일언어의 나라는 없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아이누인, 오키나와인 멸종민족화
일본 사회에는 아이누 민족과 오키나와 민족이 있고 다수의 재일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으니 이 발언은 사실에 분명히 어긋난다. 일본은 분명히 다민족국가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이 엄정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일까? 이들이 오키나와나 아이누의 존재를 모를 리 없다. 홋카이도를 지역구로 둔 중의원 의원 스즈키 무네오가 2001년 “(일본은) 단일국가, 단일언어, 단일민족이다. 홋카이도에는 아이누 민족이 있지만 지금은 완전히 동화됐다”고 말했듯이, 이들에게 아이누나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사회에 ‘동화’된 멸종민족이다. 아니 멸종민족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일본은 분명히 다민족사회다. 오키나와에는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1970년 결성된 류큐독립당은 지금도 활동 중이고, 정당 형태는 아니지만 오키나와 독립운동은 여전히 뿌리가 깊다. 오키나와 자치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에 복속되기 전까지 류큐왕국이라는 별도의 나라를 가진 곳이고, 또한 야마토(일본)에 의해 차별과 냉대를 받아온 지역이니 독립론이나 자치론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이누의 땅이 홋카이도로 개칭돼 일본 땅으로 강제 편입된 것은 메이지유신이 일어난 다음 해인 1869년이다. 이후 아이누는 일본 사회의 차별과 냉대, 동화 압력 속에서 살아왔다. 아이누 독립론, 아이누 해방론, 홋카이도 공화국 구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아이누 언어학자 야마모토 다스케는 일본 패전 직후인 1946년 4월 에 “착취와 침략을 천직으로 삼는 나쁜 놈들은 드디어 조국을 멸망의 길로 몰아갔다. 지금 그들은 ‘전범’으로 망해가고 있다. 자업자득이다. 일본의 평화와 민주주의는 아이누도 바라는 바다. 아이누 우타리(동포)여! 각성해 궐기하자. 궐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한다. 홋카이도는 아이누의 나라다. 우리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 아이누는 지금 힘을 내야 한다”고 썼다. 일본의 패전을 아이누 독립의 호기로 본 것이다. 1989년 1월13일치 석간 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1947년 미국은 아이누 대표에게 독립 의사를 물어봤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이 아이누 독립공화국 건설에 얼마만큼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의문이 들지만, 어찌됐든 일본 패전이 아이누 독립의 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자각이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후 아이누 문제는 아이누 해방론같이 급진적 운동을 제외하면 주로 일본이라는 국가 체제 내에서 인권 문제로만 다뤄져왔다. 그런데 최근 홋카이도에서 새로운 정치적 움직임이 나타났다. 지난 1월21일 ‘아이누민족당’이 만들어진 것이다.

새우 모양 닮은 오랑캐로 불리다
지금은 일본 영토에 속해 있지만 홋카이도의 이름은 원래 ‘아이누모시리’(Ainu mosir)다. 아이누모시리란 아이누 말로 ‘아이누의 땅’이라는 뜻이다. 아이누가 ‘사람’이니 ‘사람의 땅’이라는 뜻이 된다. 아이누는 홋카이도뿐만 아니라, 사할린과 쿠릴열도 지역에 거주했던 일본의 ‘선주민족’이다. 아이누 사람들은 일본인을 ‘이웃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시사모’ 혹은 ‘샤모’라 불렀다. 그런데 시사모인 일본인은 아이누를 ‘에조’라 불렀다. ‘에조’란 한자로 하이(蝦夷)라 쓰니 ‘새우 모양을 닮은 오랑캐’라는 뜻일 게다. 이 밖에 일본인은 아이누를 모인(毛人)·부수(?囚)·이부(夷?)라 불렀으니, 털사람·죄수·오랑캐죄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런 부정적 호칭이 아이누를 표상하는 단어다.
아이누의 인종적·민족적 기원을 둘러싸고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일본인’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신체적 특징을 들어 유럽의 코카소이드(Caucasoid)에 가깝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의 러시아 영토와 일본 영토에 산재해 있었으니 아이누의 ‘운명’은 이들 근대국가군의 국경 획정과 네이션 빌딩 과정에서 적잖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졸저 참조).
‘칸토 오로와 야크 사쿠 노 아란케프 시네프 카 이사무’. 지난 1월21일 일본열도의 북단 홋카이도에 자리한 인구 10만여 명의 소도시 에베쓰시에서 열린 아이누민족당 창당 행사는 일본어도 영어도 아닌 이 ‘정체불명’의 언어로 시작됐다. ‘모든 생명은 신의 나라에서 왔고, 모든 생명에는 신의 나라가 부여한 역할이 있다’는 뜻을 가진 아이누 말이다. 아이누 말은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Endangered Languages) 중 하나다. 1996년 조사에 따르면, 약 1만5천 명의 아이누 사람 중에 아이누 말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겨우 15명에 불과하다는 추정도 있다. 이 소멸 위기에 처한 아이누 말의 현재가 홋카이도 등에 살고 있는 일본열도의 선주민 아이누 사람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물론 약 200명이 참여한 이 행사에 눈길을 준 일본의 미디어는 거의 없었다. 신문에 짧은 기사가 실렸을 뿐이다. 신문 등의 눈을 끌기에는 행사 규모가 너무나 조촐했기 때문일까? 미디어가 거의 주목하지 않은 행사를 이 지면에서 소개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사상 첫 아이누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당이 내건 이념은 명확하다. 아이누 민족당은 창당 선언문에서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 식물이나 세균에게도 신이 부여한 고유한 역할과 몫이 있으니, 지금도 계속되는 아이누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선주민족으로서의 권리를 회복해야 할 역할이 아이누들에게 부여돼 있음을, 그리고 행복한 삶을 빼앗긴 지 140년 만에 권리회복을 위해 이 자리에 모였음을 밝혔다. 또한 아이누민족당은 아이누 민족만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아이누의 권리회복과 다민족 공생사회 실현이라는 목적에 찬동하는 18살 이상이라면 일본인도 재일외국인도 입당 가능한 정당이라 밝혔다. 그리고 원전에 반대하며, 이를 위해 2013년 참의원 선거에 아이누민족당의 공인 후보를 내세우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얼마인지도 모르는 아이누 인구
19살의 어린 나이로 요절한 아이누 여성 지리 유키에(1903∼22)가 지은 의 한 구절도 창당 선언문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 넓디넓은 홋카이도는 우리 선조의 자유의 땅이었습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처럼, 아름다운 자연에 안겨 여유롭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던 선조는 진정으로 자연이 낳은 자식들이었고 행복한 사람들이었지요.” 아이누의 행복을 빼앗은 것은 다름 아닌 야마토(일본)였다는 점, 그리고 메이지유신 이후 아이누의 불행이 시작됐음을 숨기지 않았다.
아이누민족당의 앞날은 아이누의 역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평탄치 않을 것이다. 일본 사회의 무관심과 차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니 아이누민족당의 후보가 출마한다 해도 당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우선 아이누민족당의 지지 기반일 터인 아이누 사람들이 전국에 얼마나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 정부에 전국적인 아이누 인구 조사를 요청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사가 이뤄진 곳은 홋카이도와 도쿄뿐이다. 2006년 조사에 따르면, 홋카이도 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누인은 2만3782명이고, 도쿄에 살고 있는 아이누인은 1988년 조사에 따르면 2700명에 불과하다. 이 모두를 합쳐도 3만 명에 미치지 못한다. 1971년 현재 홋카이도에 7만 명 이상의 아이누인이 거주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고, 일본 전국에 20만 명 이상의 아이누인이 거주했다는 추계도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또한 아이누민족당은 재일외국인의 입당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재일외국인은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없다. 국정선거뿐만 아니라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정치자금법상 외국인은 정당에 기부 행위를 할 수도 없으니, 아이누민족당이 재일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더라도 재일외국인이 금전적 기부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재일외국인에 대한 문호 개방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아이누 사람들의 정계 진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4∼98년 참의원 국회의원을 지닌 가야노 시게루는 아이누 출신의 첫 국회의원이다. 그는 “일본에도 야마토 민족 이외의 민족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일본 사회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해 위원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아이누 말로 질문을 했다. 또 나리타(아키베) 도쿠헤이라는 35살의 청년이 ‘아이누 청년 참정 협의회’라는 단체를 통해 1977년 참의원 전국구에 출마해 낙선한 적이 있다. 이 밖에 지난해 4월 지방선거에서 홋카이도 우라호로 정의회 선거에서 사시마 마사키는 공산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정의회에서 아이누의 민족의상을 입고 질문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 모두 아이누 민족에 의한 독자 정당은 아니었다.

아메리카 선주민 통계가 늘어났듯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다른 예상도 가능하다. 아이누임을 숨기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향후 커밍아웃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1970년 약 83만 명이던 선주민(아메리칸인디언)이 선주민족의 권리 향상에 따라 1980년에는 142만 명, 1990년에는 196만 명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누민족당이 국회 진출에 실패하더라도 전국적인 지명도를 획득하고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는 데 성공한다면, 아이누 사람들의 커밍아웃이 늘어나는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아이누 사람들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으로 강제 편입되는 과정에서 호적법에 근거해 ‘아이누 호적’이라는 것을 부여받았다. 따라서 아이누 사람과 그 후손은 모두 ‘아이누 호적’을 가지고 있을 터이다. 그래서 홋카이도에 있는 아이누 단체인 홋카이도 우타리(동포)협회는 회원들에게 호적을 확인해볼 것을 권하고 있는데, 아이누 민족당의 출현은 이런 흐름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29살로 요절한 이보시 호쿠토라는 아이누 활동가가 1920년대에 지은 글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이누를 위해서 아이누라는 말이 가진 나쁜 개념을 일축하기 위해 ‘나는 아이누다!’라고 거꾸로 외쳐야 한다.” 아이누민족당의 출현이 그 계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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