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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태의 또 하나의 일본 2

일본의 올해는 2013년이 아니다?

제947호
등록 : 2013-01-31 16:35 수정 : 2013-01-3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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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25=b2013=c2673 (2) d25=b1950= c2610 이 식에서 a, b, c, d의 값은? 연립방정식도, 난센스 퀴즈도 아닌 이 정체불명의 등식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천재적인 수학자도 아니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도 아니다. 일본통이거나 일본 ‘오타쿠’이다. 답은 이렇다. a는 헤이세이(平成), b는 서기, c는 황기(皇紀), d는 쇼와(昭和)이다. 즉 헤이세이 25년은 서기 2013년이고 황기 2673년이며, 쇼와 25년은 서기 1950년이고 황기 2610년이다. 황기는 신화 속 인물인 진무천황 이래의 연도를 뜻하는데 거의 사용되지 않으니 논외로 하자. 하지만 헤이세이·쇼와 같은 원호(조금 뜻은 다르지만 연호로 이해해도 좋다)는 과거 역사책의 한 자락을 장식하는 게 아니라 지금도 공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패전 뒤 사라졌다 1979년 부활

원호는 원래 헌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졌던 옛 ‘황실전범’(1889년)에 규정됐다가 패전 뒤 없어졌었다. 그런데 1979년 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원호법’이 제정돼 다시 법적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원호법은 “원호는 정령으로 정한다, 그리고 황위의 계승이 있을 때만 원호를 바꾼다”는 매우 간단한 규정에 불과하다. 모든 공문서에 원호를 표기해야 할 의무도 없고 이를 어겼을 때의 처벌 규정도 없다. 정부도 강제 규정이 아님을 누누이 밝혀왔다. 하지만 1999년 제정된 ‘국기국가법’이 그러했듯 이 원호법 제정으로 모든 공문서에 원호 사용이 의무화됐고 이를 어기면 다른 규정을 적용한 처벌이 뒤따랐다. 이해를 돕자면, 지금 원호는 천황이 바뀌어야 바뀐다. 이를 일본에선 일세일원(一世一元)이라 하는데, 하나의 시대는 곧 하나의 원호이며 모든 것의 ‘바탕’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원호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말이다. 메이지유신 이전에는 천황이 바뀌지 않아도 원호가 바뀌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 메이지유신 이후에 일세일원으로 바꾸었는데, 전근대의 문화적 상징인 천황을 호출해 근대 국민국가의 ‘핵’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20세기 끝나도 헤이세이 시대는 계속돼

사실 일본책을 읽거나 이를 한글로 옮길 때 부닥치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골머리를 썩는 게 바로 일본의 연도 표기를 어떻게 옮길 것인가다. 근현대만 보아도, 메이지·다이쇼·쇼와·헤이세이로 이어지는 원호는 이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성가신 일이다. 인터넷을 보니 원호를 서기로 바꾸는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이니 일본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닌 모양이다. 물론 쉬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메이지 원년은 1868년, 다이쇼 원년은 1912년, 쇼와 원년은 1926년, 헤이세이 원년은 1989년이니 이를 서기로 바꿀 때는 메이지 연도에는 1867을, 다이쇼 연도에는 1911을, 쇼와 연도에는 1925를, 헤이세이 연도에는 1988을 각각 더하면 된다. 하지만 얼마나 번거로운가? 더 골치 아픈 일은 시대구분을 원호로 쓰는 경우다. 예를 들면 ‘메이지 20년대’가 어떻고 ‘쇼와 40년대’가 어떻고 이런 식으로 시대적 배경을 원호로 표기해버리면 이를 특히 한글로 옮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메이지 20년대는 1887년부터 1896년이고 쇼와 40년대는 1965년부터 1974년이니 이를 어떻게 옮기겠는가! 하지만 번거로움 정도라면 문화상대주의 차원에서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게 단순히 숫자 옮기기 문제만이 아님은 금방 알 수 있다.

과거에 일본의 어느 대학에서 교수로 일할 때 겪었던 일이다. 국립대학이다 보니(사실 사립대학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모든 공문서는 원호 표기가 의무화돼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생년월일을 기재하는 난에 메이지·다이쇼·쇼와 중 하나에 동그라미를 치고 그다음에 월일을 쓰게 돼 있었다. 필자의 경우, 1959년생이니 쇼와로 따지면 34년이다. 그래서 쇼와에 동그라미를 하고 34년을 써넣어야 했다. ‘외국인’이라 해도 예외가 없는데다 명색이 교육공무원 신세이니 서류를 작성할 때 항상 당혹감을 느꼈다. 아무리 문화상대주의이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지만, 천황제와 직접 이어지는 원호를 내가 자진해서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쇼와에 가위표를 하고 1959년이라 써넣는 ‘조그마한 저항’을 했다. 대학원 시절에 만났던 어느 일본인 선생을 흉내 낸 것이다. 내가 작성한 1959년으로 고쳐 쓴 서류를 사무직원은 아마 다시 쇼와 34년으로 고쳐 썼을 것이다. 번거로움을 사무직원에게 떠맡긴 셈이다. 그 뒤 사무직원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으니, 아마 나같이 ‘조그마한 저항’을 하는 교수가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뿐이다. 쇼와 34년과 1959년. 같은 시간이다. 하지만 같은 시간의 다른 표기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시간과 시대를 무엇이 지배하는가의 문제다.

13살이 되도록 서기를 몰랐던 학자

예를 들어보자. 1899년은 19세기가 막을 내리는 해지만, 메이지 32년은 계속되는 메이지시대 속에 있다. 1989년은 냉전이 해체되는 시기지만, 히로히토의 죽음으로 쇼와가 끝난 시기다. 1999년은 20세기가 끝나는 해지만, 헤이세이 11년은 지금도 계속되는 헤이세이 시대다. 또 1968년 하면 세계적인 반란의 해로 기억된다. 그래서 ‘68혁명’이니 하는 말이 생겨났다. 일본에서도 ‘전공투’라 불리는 학생운동이 전성기를 맞이했고 도쿄대학의 야스다 강당 점거농성 사태까지 일어났던 해다. 도쿄대 입시가 중지됐으니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도쿄대에는 68학번이 없다. 한국에서 학번은 엘리트주의나 서열화의 측면도 있지만, 학번만을 듣고 그 학생이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떠오르게 하는 일종의 기호이기도 하다. 그래서 숫자는 시대다. 그런데 쇼와 43년 하면 의미가 확 달라진다. 특히 이해는 ‘메이지 100년’에 해당된다. 물론 서기가 그 자체로 저항이나 혁명을, 원호가 그 자체로 천황제 국가와의 친화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 해도, 원호를 통해 시대를 떠올리는 사람은 이해를 메이지 100년의 해로, 서기를 통해 시대를 떠올리는 사람은 혁명의 가능성이 있었던 해로 기억한다.


일본의 유명한 사회학자이자 평화운동가(후에 핵무장론자로 전향)였던 시미즈 이쿠타로(1907~88)는 1907년생인데, 그는 1951년에 쓴 글에서 “20세기 초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유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그림이 1907년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세기 초 피카소 같은 서양의 ‘천재’들에 의해 개시된 ‘정신적 모험’이 현대사상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그 ‘천재’들의 모험과 아무런 관계 없는 동양의 끝자락에서 태어난 자신이 이 모험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20세기라는 시대감각을 획득하게 됐다고도 한다. 그는 분명히 20세기라는 시대감각의 전파자였다. 전쟁이 끝난 1946년에 ‘20세기연구소’를 만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태어난 1907년을 20세기 초로 인식한 것은 나중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13살이 되던 1919년까지 서기의 존재를 몰랐고, 그래서 줄곧 메이지 40년생으로 살았다. 즉 원호가 지배하는 시대에, 그리고 그 원호가 지배하는 가치 속에 살았던 셈이다. 그는 1980년에 쓴 <일본이여 국가가 돼라!>라는 일본 핵무장을 주장하는 책에서 1980년을 ‘쇼와 55년 패전기념일’이라 쓰고 있다. 서기를, 현대사상을, 20세기를 버리고 다시 원호로 돌아간 셈이다. 원호와 서기 사이의 왕복운동은 그의 사상적 편력과 함께 그가 살았던 일본 근현대의 사상적 ‘비틀림’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원호 사용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원호 반대 진영의 주장은 맞다. 정보화니 국제화니 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더구나 천황제와 결부돼 있다. 이 때문에 적어도 일본에선 원호와 서기는 그 자체로 보수와 혁신의 다른 이름이다. 일본 신문들은 대체로 서기를 쓰고 괄호 안에 원호를 쓰거나 그 반대로도 쓴다. 병기이고 타협 아닌 타협이다. 하지만 원호 사용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2004년에 쓴 책에서 1975년 미국 예일대학에서 강의했을 때, 일본의 근대문학이 성립됐다는 메이지 20년대와 메이지 30년대가 19세기 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원호가 얼마나 ‘외부와의 관계를 망각하게 만드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음과 함께 슬라보이 지제크가 말한 ‘시차’(Parallax View)에 지금도 얽매여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는 메이지·다이쇼·쇼와에 나오는 이미지가 반드시 천황의 생존 기간에 대응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특정 시대의 역사적 구조와 서사를 반영하고 있으니 원호를 폐기하는 것은 일본 고유의 담론 공간과 시대구분을 잃는 것이라 말한다. 더구나 서기가 숫자를 시간순에 따라 나열한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기독교적 서사 등과 같은 특정 지역의 가치와 지향점이 담겨 있다고도 말한다. 그래서 가라타니는 글에서 원호와 서기를 나누어 쓰는 듯하다.

철갑을 다시 두르려는 일본

영국 런던 유학에서 돌아온 나쓰메 소세키(1867~1916)는 메이지 국가는 성곽을 널빤지로 쌓아올린 듯이 얼기설기 급하게 만든 국가이니 이대로라면 곧 망할 것이라 했다. 그래서 의사이면서 군인이고 작가인 모리 오가이(1862~1922)는 말년에 <원호고>(元号考)를 썼다. 메이지와 다이쇼라는 원호가 각각 중국과 베트남의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서기에 원호를 대치시키되 중국에서 유래된 원호를 중국과 분리시켜 일본 고유의 것으로 삼고자 했다. 일본이라는 국가의 널빤지 성곽을 튼튼한 철갑으로 두르려 했던 것이다. 굳이 비약하자면, 지금의 일본은 모리 오가이가 두른 철갑을 다시 한번 두르려 하고 있다. 시대는 서기로 달려가는데 정치는 원호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올해는 2013년이다. 미국도 2013년이다. 물론 한국과 미국의 2013년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런데 일본은 2013년이면서 헤이세이 25년이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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